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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5)

통감절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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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酉]十年이라 〈秦王苻丕大安元이요 燕二 後秦白雀二年이라
태원太元 10년(을유 385) - 진왕秦王 부비苻丕대안大安 원년元年이고, 나라 2년이고, 후진後秦 백작白雀 2년이다.
○ 西燕主慕容沖更始元年이라
서연주西燕主 모용충慕容沖경시更始 원년元年이다.
○ 西秦王乞伏國仁建義元年이라
서진왕西秦王 걸복국인乞伏國仁건의建義 원년元年이다.
○ 예전에 있던 대국大國이 셋이며, 새로운 대국大國이 하나이고 소국小國이 하나이니, 참국僭國이 모두 다섯이다. -
正月 慕容沖 卽帝位於阿房注+[原註]是爲西燕이라[通鑑要解]先時 謠曰 鳳凰止阿房이라하니 堅曰 鳳凰 非梧桐이면 不捿 非竹實이면 不食이라하고 乃植桐竹數十萬株于阿房하야 以待之하니라 沖小字鳳凰이니 至是하야 止阿房城이라하다
정월正月모용충慕容沖아방성阿房城에서 황제에 즉위하였다.注+[原註]이(慕容沖)가 바로 서연西燕이다. [通鑑要解]이보다 앞서 동요에 이르기를 “봉황鳳凰아방阿房에 머문다.” 하니, 부견苻堅이 말하기를 “봉황鳳凰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지 않고 죽실竹實이 아니면 먹지 않는다.” 하고는 마침내 오동나무와 대나무 수십만 그루를 아방성阿房城에 심어 놓고 봉황을 기다렸다. 모용충慕容沖소자小字봉황鳳凰이니, 이때에 이르러 아방성阿房城에 머물렀다.
○ 四月 劉牢之至鄴하니 燕王垂 邀擊大破之 坐軍敗하야 徵還하다
○ 4월에 유뇌지劉牢之업성鄴城에 이르자 연왕燕王 모용수慕容垂가 기다리고 있다가 공격하여 대파하니, 패전敗戰한 죄에 걸려서 부름을 받고 소환되었다.
○ 五月 西燕主沖注+[通鑑要解]垂復興於山東하고 而沖稱號於關中이라 書西燕以別之也 攻長安이어늘 秦王堅 身自督戰할새 飛矢滿體하야 流血淋漓
○ 5월에 서연주西燕主 모용충慕容沖注+[通鑑要解]모용수慕容垂산동山東에서 나라를 다시 일으키고, 모용충慕容沖관중關中에서 이라고 호칭하였다. 그러므로 서연西燕이라고 써서 구별한 것이다. 장안長安을 공격하자, 진왕秦王 부견苻堅이 몸소 전투를 독려하였는데, 이때 유시流矢가 몸에 가득 꽂혀 흘러나온 피가 흥건했다.
縱兵暴掠하니 關中士民 流散하고 道路斷絶하야 千里無煙이러라
모용충慕容沖이 군대를 풀어서 사납게 노략질하니, 관중關中의 선비와 백성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달아나고 도로에 행인들이 끊어져 천리를 가도 밥 짓는 연기가 나지 않았다.
大懼하야 以讖書云 帝出五將이면 久長得이라하야 乃留太子宏하야 守長安하고 遂出奔五將山하다
부견苻堅이 크게 두려워하여 도참서圖讖書에 “황제皇帝가 나가서 오장五將에 이르면 천하를 장구하게 지킬 수 있다.”고 했다 하여, 마침내 태자太子 모용굉慕容宏을 남겨 두어 장안長安을 지키게 하고는 마침내 나가 오장산五將山으로 도망하였다.
後秦王萇 遣驍騎將軍吳忠하야 帥騎圍之하니 秦兵 皆散走호되 神色自若하야 坐而待之
후진왕後秦王 요장姚萇효기장군驍騎將軍 오충吳忠을 보내어 기병을 거느리고 포위하게 하니, 나라 군대가 모두 흩어져 달아났으나 부견苻堅은 정신과 얼굴빛을 변치 않고 태연자약하게 앉아서 기다렸다.
俄而 忠至執之하야 送詣新平하야 幽於別室注+[通鑑要解]後秦王萇 幽秦堅於別室하고 使求傳國璽하니 堅叱之曰 五胡次序 無汝羌名이라 璽已送晉하니 不可得也라하니라 遣人殺之하고 欲隱其名하야 諡堅曰 壯烈天王이라하다이러니 遣人하야 縊堅於新平佛寺하다
얼마 후 오충吳忠이 이르러 부견苻堅을 사로잡아서 신평新平으로 보내어 별실에 가두었는데,注+[通鑑要解]후진왕後秦王 요장姚萇진왕秦王 부견苻堅별실別室에 가두고 사람을 보내 전국새傳國璽를 요구하니, 부견苻堅이 꾸짖기를 “오호五胡차서次序에 너희 강인羌人의 이름은 없다. 전국새傳國璽는 이미 나라로 보냈으니 줄 수가 없다.” 하였다. 요장姚萇이 사람을 보내어 부견苻堅을 죽이고 자기 이름을 숨기고자 하여 부견苻堅의 시호를 장렬천왕壯烈天王이라 하였다. 요장姚萇이 사람을 보내 신평新平불사佛寺에서 부견苻堅을 목 졸라 죽였다.
溫公曰
온공溫公이 말하였다.
論者皆以爲秦王堅之亡 由不殺慕容垂, 姚萇故也라하나 臣獨以爲不然이라
“의론하는 자들은 모두 진왕秦王 부견苻堅이 멸망한 것은 모용수慕容垂요장姚萇을 죽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나 나는 홀로 그렇지 않다고 여긴다.
許劭謂魏武帝 治世之能臣이요 亂世之姦雄이라하니
허소許劭가 이르기를 ‘나라 무제武帝(曹操)는 치세治世의 유능한 신하이고 난세亂世간웅姦雄이다.’라고 하였다.
使堅治國 無失其道 則垂, 萇 皆秦之能臣也 烏能爲亂哉
만일 부견苻堅이 나라를 다스림에 바른 도리를 잃지 않았다면 모용수慕容垂요장姚萇은 모두 나라의 유능한 신하였을 것이니, 어찌 난을 일으킬 수 있겠는가.
堅之所以亡 由驟勝而驕故也
부견苻堅이 망한 이유는 갑자기 승리하여 교만해졌기 때문이다.
魏文侯問李克吳之所以亡한대 對曰 數戰數勝이니이다
나라 문후文侯이극李克에게 나라가 망한 이유를 묻자, 대답하기를 ‘자주 싸워서 자주 승리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였다.
文侯曰 數戰數勝 國之福也어늘 何故亡
문후文侯가 ‘자주 싸워서 자주 승리함은 국가의 복인데, 무슨 이유로 망하였는가?’ 하고 묻자,
對曰 數戰則民疲하고 數勝則主驕하니 以驕主御疲民이면 未有不亡者也라하니 秦王堅 似之矣로다
대답하기를 ‘자주 싸우면 백성들이 지치고 자주 승리하면 군주가 교만해지니, 교만한 군주로써 지친 백성을 부리면 망하지 않을 자가 없습니다.’ 하였으니, 진왕秦王 부견苻堅이 이와 같았다.”
歷年圖曰
역년도歷年圖》에 말하였다.
石氏之彊也 氐, 羌之屬 無不內徙而爲臣이러니 一朝失馭 而角立爲患하니 理固然也
석씨石氏가 강할 때에는 저족氐族강족羌族의 무리가 안으로 옮겨 와서 신하 노릇 하지 않음이 없었는데, 하루아침에 통치 능력을 잃게 되자 맞서서 우환이 되었으니, 이는 이치상 당연한 것이다.
苻洪 徘徊枋頭하야 有虎踞中原之志 以健注+[頭註]洪之世子爲不肖 然猶西取關中注+[附註] 似也 洪病甚하야 謂健曰 吾所以未入關者 以爲中州可定이러니 今不幸爲豎子所困이라 中州 非汝所能辦이니 我死어든 汝急入關하라하고 言終而卒하다 豎子所困 謂趙將麻秋 爲洪所獲하야 以爲將軍이러니 秋因宴鴆洪하니라하고 幷姚襄注+[頭註]姚襄 弋仲第五子 見二十八卷丙辰年 奔平陽注하고 却桓溫注+[頭註]見二十八卷甲寅年이라하야 遂彊其國하며 堅以雄才英略으로 加之慈惠忠信하고 擧王猛於布衣하야 任之以政하야 勳舊不能離하고 親戚不敢妬하니 非至明이면 能如是乎
부홍苻洪방두枋頭에 배회하여 범처럼 웅크리고 앉아서 중원中原을 병탄할 마음을 품었으며, 부건苻健注+[頭註]부건苻健부홍苻洪의 세자이다. 은 불초하다고 하였으나 오히려 서쪽으로 관중關中을 취하고注+[附註][附註]以健爲不肖 연유서취관중然猶西取關中:는 같음이다. 부홍苻洪이 병이 심해지자, 아들인 부건苻健에게 이르기를 “내가 관중關中에 들어가지 않은 까닭은 중주中州(東晉)를 평정할 수 있다고 여겨서였는데, 지금 불행히도 수자豎子에게 곤욕을 당했다. 중주中州는 네가 차지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니, 내가 죽거든 너는 급히 관중關中으로 들어가라.” 하고는 말을 마치자 죽었다. 수자豎子에게 곤욕을 당했다는 것은 나라 장수 마추麻秋부홍苻洪에게 사로잡히자 그를 장군으로 삼았는데, 마추麻秋가 연회를 틈타 부홍苻洪에게 짐독을 먹인 일을 이른 것이다. 요양姚襄을 겸병하며注+[頭註]요양姚襄요익중姚弋仲의 다섯째 아들이니, 28권 병진년조丙辰年條(356)의 분평양奔平陽 에 보인다. 환온桓溫을 물리쳐서注+[頭註]환온桓溫을 물리친 일은 28권 갑인년조甲寅年條(354)에 보인다. 마침내 자기 나라를 강하게 하였으며, 부견苻堅은 영웅의 재주와 지략에 자애로운 은혜와 충신忠信을 겸하였고 포의布衣로 있던 왕맹王猛을 등용하여 정사를 맡겨서 훈구勳舊의 신하가 이간질하지 못하고 친척들이 감히 질투하지 못하게 하였으니, 지극히 밝은 자가 아니면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能呑彊燕, 擧河西하고 兼巴蜀, 包漢沔하고 俘索頭注+[頭註]索頭 鮮卑別部也 姓拓跋氏 其俗 以索辮髮이라 因號索頭, 屠龜玆注+[原註] 音丘 音慈[頭註]龜玆 西域國名이라하야 奄有天下十分之九하니 五胡注+[頭註]見二十六卷이라之盛 未有如堅者也
그러므로 강한 나라를 병탄하고 하서河西 지방을 차지하고 지방을 겸병하고 지방을 포괄하며 색두索頭注+[頭註]색두索頭선비족鮮卑族 중의 한 부족이니, 탁발씨拓跋氏이다. 풍속에 변발을 하였기 때문에 인하여 색두索頭라 호칭한 것이다. 를 사로잡고 구자국龜玆國注+[原註]龜는 음이 구이고, 는 음이 자이다.[頭註]龜玆는 서역西域의 나라 이름이다. 을 도륙하여 순식간에 천하의 10분의 9를 차지하였으니, 오호五胡注+[頭註]오호五胡는 26권에 보인다. 의 성대함이 부견苻堅과 같은 경우는 있지 않았다.
觀其擧百萬之衆하야 以攻晉할새 先爲之除宮築第하야 以待其君臣하니 意以爲羅中之禽 往無不獲也러니 及一戰而敗 遂顚沛不振하야 昔之俘囚降虜 皆起而爲敵이라
부견苻堅이 백만 명의 군대를 동원하여 나라를 공격할 때에 먼저 궁궐을 소제하고 집을 지어서 나라의 군신君臣들을 대비하였으니,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나라의 군신君臣들은 그물 속의 새와 같아서 어디를 가든 잡지 못함이 없을 것이라고 여긴 것인데, 한번 싸워 패하자 마침내 낭패를 당하여 떨치지 못해서 옛날 포로로 잡혔던 죄수와 항복한 오랑캐들이 모두 일어나 적이 되었다.
數月之間 寇讐徧於四方하고 戎馬塞於郊甸注+[頭註] 自邦國以及四郊之內하야 以至身死人手하고 子孫殄滅 何哉
그리하여 몇 달 사이에 적과 원수가 사방에 두루 널리고 군마軍馬교전郊甸注+[頭註]은 나라 안으로부터 사방 교외郊外의 이내까지이다. 에 가득 차서 몸이 남의 손에 죽고 자손이 멸망함에 이르렀으니, 이는 어째서인가?
論者皆咎堅寵信羌與鮮卑注+[頭註]謂姚萇, 慕容垂하고 輕於伐晉이나
의론하는 자들은 모두 부견苻堅강족羌族선비족鮮卑族注+[頭註]강족羌族선비족鮮卑族요장姚萇모용수慕容垂를 이른다. 을 총애하고 신임하였으며 나라를 경솔하게 정벌한 것을 탓한다.
彼皆睹其迹而言之 未達其本也
그러나 저들은 모두 그 자취만을 보고 말하는 것이요 그 근본은 알지 못한 것이다.
要之컨대 堅恃其强大하야 易而無備하니 此其所以敗亡也夫인저
요컨대 부견苻堅은 자기 나라가 강성하고 큰 것만 믿고 상대방을 쉽게 여겨 대비가 없었으니, 이것이 어쩌면 패망한 이유일 것이다.”
太保安하니 以琅邪(琊)王道子注+[頭註]簡文帝子 錄尙書事注+[頭註] 總也하다
태보太保 사안謝安이 죽으니, 낭야왕琅琊王 사마도자司馬道子注+[頭註]사마도자司馬道子간문제簡文帝(司馬昱)의 아들이다. 녹상서사錄尙書事注+[頭註]은 총괄하는 것이다. 로 삼았다.
○ 長樂公丕 在鄴이라가 將西赴長安이러니 入至晉陽하야 始知長安不守하야 堅已死하고 乃發喪하고 卽皇帝位하다
장악공長樂公 부비苻丕업성鄴城에 있다가 서쪽으로 향하여 장안長安으로 달려가려 하였는데, 진양晉陽에 들어와서 비로소 장안長安을 지켜내지 못하여 부견苻堅이 이미 죽은 것을 알고는 마침내 을 발표하고 황제에 즉위하였다.
○ 十二月 燕王垂 始定都中山하고 卽皇帝位하다
○ 12월에 연왕燕王 모용수慕容垂가 비로소 중산中山에 도읍을 정하고 황제에 즉위하였다.
○ 呂光注+[頭註]秦尙書呂婆樓之子也 略陽氐人이니 是爲後涼이라 自稱涼州刺史하다
여광呂光注+[頭註]여광呂光나라 상서尙書 여파루呂婆樓의 아들이다. 약양略陽저인氐人이니, 이가 바로 후량後涼이다. 양주자사涼州刺史라고 자칭하였다.
○ 乞伏國仁 自稱秦, 河二州牧하다
서진西秦걸복국인乞伏國仁진주秦州하주河州을 자칭하였다.
역주
역주1 舊大國三……凡五僭國 : 예전에 있던 大國 셋은 苻丕의 前秦, 慕容垂의 後燕, 姚萇의 後秦이며, 새로운 大國 하나는 慕容沖의 西燕이고, 小國 하나는 乞伏國仁의 西秦이다.

통감절요(5)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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