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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7)

통감절요(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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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辰]十八年이라
정관貞觀 18년(갑진 644)
上曰 蘇文注+[附註] 音盍이니 高麗東部大人이라 或號蓋金하니 自云生水中이라하야 以惑人이라 姓泉氏 凶暴多不法이어늘 其主及大臣 議誅之한대 蓋蘇文 知之하고 勒兵盡殺諸大臣하고 手弑其主하다 立王弟子藏爲王하고 自爲莫離支하니 其官 如中國吏部尙書也 하고 殘虐其民이러니 今又違詔命하니 不可不討라한대
이 이르기를 “개소문蓋蘇文注+[附註]은 음이 합이니 고구려高句麗 동부대인東部大人이다. 혹은 개금蓋金이라고 이름하니, 스스로 물속에서 나왔다고 말하여 사람들을 의혹시켰다. 그러므로 천씨泉氏라 하였다. 흉포하여 불법을 많이 저지르자 군주(榮留王 건무建武)와 대신들이 그를 주벌할 것을 모의하였는데, 개소문蓋蘇文이 이것을 알고 병력을 동원하여 여러 대신大臣들을 다 죽이고 직접 군주를 시해하였다. 아우(太陽王)의 아들 (또는 보장寶藏)을 세워 으로 삼고 자신은 막리지莫離支가 되니, 그 관직이 중국中國이부상서吏部尙書와 같다. 군주를 시해하고 백성을 잔인하게 학대하였는데 지금 또다시 나의 조명詔命을 어기니 토벌하지 않을 수 없다.” 하니,
褚遂良曰 陛下指麾注+[頭註] 與揮通이라 示意曰指 誡勅曰揮則中原淸晏하고 則四夷注+[頭註] 之涉切이니 失氣也하야 威望大矣어늘
저수량褚遂良이 아뢰기를 “폐하께서 지휘하시면注+[頭註]와 통한다. 뜻을 보이는 것을 라 하고, 경계하여 타이르는 것을 라 한다. 중국이 깨끗이 평안하고, 돌아보시면 사방 오랑캐들이 두려워하고 복종해서注+[頭註]은 之涉切(접)이니, 용기를 잃은 것이다. 위엄과 명망이 큽니다.
今乃渡海하야 遠征小夷라가 萬一蹉跌이면 傷威損望이요 更興忿兵이면 則安危難測矣리이다
그런데 이제 마침내 바다를 건너가서 멀리 작은 오랑캐를 정벌하시다가 만일 차질이 있게 되면 위엄과 명망을 손상하게 될 것이요, 작은 일을 참지 못하여 분노하여 군대를 출동하신다면 국가의 안위安危를 측량하기 어렵게 됩니다.” 하였다.
李世勣 勸上伐之하니 上欲自征
이세적李世勣에게 정벌할 것을 권하니, 이 직접 고구려를 정벌하고자 하였다.
褚遂良 上疏諫호되 上不聽하다
저수량褚遂良이 상소하여 간하였으나 이 듣지 않았다.
〈出政要〉
- 《정관정요貞觀政要》에 나옴 -
○ 上嘗謂侍臣曰 於今 名將 惟世勣, 道宗, 萬徹注+[頭註]道宗 江夏王也 高祖從兄之子 萬徹 薛萬徹이라 三人而已
이 일찍이 시신侍臣에게 이르기를 “지금에 명장名將은 오직 이세적李世勣이도종李道宗설만철薛萬徹注+[頭註]이도종李道宗강하왕江夏王이니 고조高祖의 종형의 아들이요, 만철萬徹설만철薛萬徹이다. 세 사람뿐이니,
世勣, 道宗 不能大勝이요 亦不大敗어니와 萬徹 非大勝이면 則大敗矣라하더라
이세적李世勣이도종李道宗은 크게 이기지도 못하고 또한 크게 패하지도 않지만, 설만철薛萬徹은 크게 이기지 않으면 크게 패한다.” 하였다.
〈出萬徹傳〉
- 《신당서新唐書 설만철전薛萬徹傳》에 나옴 -
○ 上 好文學而辯敏하야 群臣言事者 上引古今以折之하니 多不能對
문학文學을 좋아하며 말을 잘하고 민첩해서 여러 신하 중에 상서上書하여 일을 아뢰는 자를 고금古今의 일을 인용하여 꺾으니, 대답하지 못하는 자가 많았다.
劉洎上書諫曰 帝王之與凡庶 聖哲之與庸愚 上下懸絶하니 是知以至愚而對至聖하고 以極卑而對極尊하야注+[頭註]本傳 作雖 思自彊이나 不可得也
유계劉洎가 상소하여 간하기를 “제왕帝王과 일반 서민, 성철聖哲과 용렬하고 어리석은 자는 상하가 현격하니, 이로 말미암아 지극히 어리석은 몸으로 지극히 성스러운 분을 대하고 지극히 비천한 몸으로 지극히 높은 분을 대함에 비록注+[頭註]는 《신당서新唐書》 〈유계전劉洎傳〉에 ‘’로 되어 있다. 스스로 힘쓸 것을 생각하나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陛下降恩旨, 假慈顔하야 凝旒注+[附註] 冕飾垂玉也 天子十二旒 上公九旒 三公八旒 侯伯七旒 子男五旒 王之大夫與諸侯之孤四旒 垂皆過目하니 所以蔽明也以聽其言하고 虛襟注+[釋義]謂虛其襟懷 不自滿假也 以納其說이라도 猶恐群下未敢對敭注+[釋義] 答也 通作揚이니 答受天子之命而稱揚之이어든 況動神機, 縱天辯하야 飾辭以折其理하고 引古以排其議하시니 欲令凡庶 何階應答이니잇고
폐하께서 은혜로운 말씀을 내리고 안색을 온화하게 하여 면류관의 술을 움직이지 않고注+[附註]면류관冕旒冠에 장식으로 드리운 주옥珠玉이니, 천자天子는 12, 상공上公은 9, 삼공三公은 8, 은 7, 은 5이고, 대부大夫제후諸侯는 4이다. 술이 늘어진 것이 모두 눈앞을 지나가니 밝음을 가리기 위한 것이다. 그들의 간언하는 말을 경청하시며 흉금을 비우고注+[釋義]허금虛襟흉금胸襟을 비움을 이르니, 스스로 자만하거나 잘난 체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의 말을 받아들이시더라도 행여 아랫사람들이 감히 황제에게 제대로 응대하지 못할까 두려운데,注+[釋義]는 답하는 것이고 은 통용하여 으로도 쓰니, 대양對敭천자天子의 명령을 답하고 받들어 널리 펴는 것이다. 더구나 께서 신기神機를 발동하고 뛰어난 언변을 구사하여 말을 꾸며서 그 논리를 꺾고 옛것을 인용하여 그 의론을 배척하시면서, 어떻게 일반 서민들로 하여금 응답하게 하고자 하십니까.
多記則損心하고 多語則損氣하니 心氣內損하고 形神外勞 初雖不覺이나 後必爲累리이다
또 기억을 많이 하면 마음을 손상시키고 말을 많이 하면 기운을 손상시키니, 마음과 기운이 안에서 손상되고 형체와 정신이 밖에서 수고로우면 처음에는 비록 깨닫지 못하나 뒤에는 반드시 해가 될 것입니다.” 하였다.
飛白注+[釋義]字體也 通作帛이라 歸田錄曰 凡飛白 以點畫象物形하니 惟點 最難工이라하니라 答之曰 非慮 無以臨下 非言이면 無以述慮 比有談論하야 遂致煩多하니 輕物驕人 恐由玆道
비백체飛白體注+[釋義]비백飛白은 글씨체이니, 은 통용하여 으로도 쓴다. 구양수歐陽脩의 《귀전록歸田錄》에 이르기를 “무릇 비백飛白은 점과 획으로 물건의 모양을 형상하니, 점을 공교롭게 하기가 가장 어렵다.” 하였다. 답하기를 “생각하지 않으면 아랫사람에게 임할 수가 없고 말하지 않으면 생각을 펼 수 없으나 근래에 국사를 담론할 때에 마침내 번다함을 초래하였으니, 사물(사람)을 경시하고 남들에게 교만함이 이 때문인 듯하다.
形神心氣 非此爲勞 今聞讜言하니 虛懷以改호리라
형체와 정신과 마음과 기운이 이 때문에 수고로워지는 것은 아니나 이제 그대의 충성스러운 말을 들었으니, 이 마음을 비워 고치겠다.” 하였다.
〈出本傳及政要〉
- 《신당서新唐書 유계전劉洎傳》과 《정관정요貞觀政要》에 나옴 -
○ 八月 謂長孫無忌等曰 人苦不自知其過 卿可爲朕明言之하라 對曰 陛下武功文德 臣等 將順之不暇注+[通鑑要解]孝經云 君子之事上也 將順其美하고 匡救其惡이라한대 註云 將 大也, 奉也라하니라 어니 又何過之可言이리잇고
8월에 장손무기長孫無忌 등에게 이르기를 “사람은 자신의 허물을 알지 못하는 것이 괴로우니, 을 위하여 분명히 말하라.” 하니, 대답하기를 “폐하의 무공武功문덕文德을 신들이 받들어 따르기에도 겨를이 없으니,注+[通鑑要解]효경孝經》 〈사군장事君章〉에 이르기를 “군자가 윗사람을 섬길 적에 아름다운 점은 받들어 따르고 나쁜 점은 바로잡는다.” 하였는데, 에 이르기를 “은 큼이며 받듦이다.” 하였다. 또 어찌 허물을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上曰 朕問公以己過어늘 公等 乃曲相諛說(悅)注+[釋義] 諂也 讀曰悅이라 하니
이 이르기를 “에게 자신의 허물을 물었는데, 공들은 마침내 뜻을 굽혀 아첨하여 나를 기쁘게 하는구나.注+[釋義]는 아첨함이요, 로 읽는다.
朕欲面擧公等得失하야 以相戒而改之하노니 何如 皆拜謝하다
짐이 공들의 득실得失을 면전에서 열거하여 서로 경계하여 고치고자 하니 어떠한가?” 하자, 모두 절하고 사례하였다.
上曰 長孫無忌 善避嫌疑하고 應物敏速하야 決斷事理 古人不過 而摠兵攻戰 非其所長이요
이 이르기를 “장손무기長孫無忌는 혐의를 잘 피하며 사물에 대응하기를 민첩하고 신속히 하며 사리를 결단함은 고인古人도 그보다 잘할 수 없으나 군대를 총괄하여 공격하고 전쟁함은 그의 소장所長이 아니요,
高士廉 涉獵古今하야 心稍明達하며 臨難不改節하고 當官無朋黨이나 所乏者 骨鯁注+[頭註] 與骾通이라 遇事 敢刺骾하야 不從容也 一說 有言難受 如骨之咈咽也 堅剛正直之義라하니라 規諫耳
고사렴高士廉고금古今의 서적을 섭렵하여마음이 밝고 통달하며 위난危難에 임해서도 절개를 변치 않고 관직을 맡아도 붕당朋黨이 없으나 부족한 점은 직언으로注+[頭註]한다. 일을 만났을 때에 과감하게 풍자하고 반대하여 순순히 따르지 않는 것이다. 일설一說에는 말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마치 가시 뼈가 목구멍에 걸린 것과 같으니, 강직하고 정직하다는 뜻이라 한다. 규간規諫하는 것이요,
唐儉 言辭辯捷하야 善和解人이나 事朕三十年 遂無言及於獻替
당검唐儉은 언변이 뛰어나고 민첩하여 사람들과 잘 어울리나 을 섬긴 30년 동안 끝내 착한 일을 하도록 권하고 악한 일을 하지 않도록 하는 일에 대해 말함이 매우 적고,
楊師道 性行純和하야 自無愆違로되 而情實怯懦하야 緩急 不可得力이요
양사도楊師道는 성품과 행실이 순수하고 온화하여 자연 허물이 없었으나 속마음은 실로 겁이 많고 나약해서 급할 때에 힘을 얻을 수 없고,
岑文本 性質敦厚하고 文章華贍하며 而持論 恒據經遠하니 自當不負於物이요
잠문본岑文本은 성질이 돈후하고 문장이 화려하나 지론持論이 항상 떳떳하고 원대함에 근거하여 자연 시무時務에 적절하지 못하고,
劉洎 性最堅貞하야 有利益이나 然其意尙然諾하야 私於朋友
유계劉洎는 성품이 가장 꿋꿋하고 곧아서 유익하게 함이 있으나 그 뜻이 승낙한 말을 숭상해서 붕우朋友에게 사정私情을 두고,
馬周 見事敏速하고 性甚貞正하야 論量人物 直道而言하니 朕比任使 多能稱意
마주馬周는 일을 봄에 민첩하고 신속하며 성품이 매우 곧고 발라서 인물을 품평할 때에 흉중의 생각을 그대로 드러내어 짐이 근래에 그에게 일을 맡기고 부림에 뜻에 맞는 일이 많으며,
褚遂良 學問稍長하고 性亦堅正하며 每寫(瀉)注+[頭註]輸也 忠誠하야 親附於朕하니 譬如飛鳥依人 人自憐之니라
저수량褚遂良은 학문이 다소 뛰어나고 성품 또한 꿋꿋하고 발라서 매번 충성을 기울여注+[頭註]는 바침이다. 짐을 친근히 따르니 비유하면 나는 새가 사람에 의지함에 사람이 절로 사랑하게 되는 것과 같다.” 하였다.
〈出無忌傳〉
- 《신당서新唐書 장손무기전長孫無忌傳》에 나옴 -
[新增]范氏曰
[新增]范氏가 말하였다.
君臣 以道相與하고 以義相正하야 有朋友之義 非徒以分相使而已
“군신간은 로써 서로 함께하고 의리로써 서로 바로잡아 붕우간의 의리가 있고 다만 분수(신분)로써 서로 부릴 뿐만이 아니다.
太宗 欲聞過어늘 而無忌納諂以悅之하니 其罪大矣
태종太宗이 과실을 듣고자 하였는데 장손무기長孫無忌가 아첨하는 말을 올려 기쁘게 하였으니, 그 죄가 크다.
이나 太宗論群臣之得失 亦豈皆中於理哉
그러나 태종太宗이 여러 신하들의 득실을 논한 것도 어찌 모두 도리에 맞겠는가.
遂良 直道犯顔하고 盡忠無隱하니 王, 魏之比也어늘 而譬之飛鳥하야 輕侮其臣하니 不恭 孰甚焉
저수량褚遂良은 정직한 도로 군주의 안색을 범하면서 간하며 충성을 다하고 속임이 없어서 왕규王珪위징魏徵의 무리였는데 그를 나는 새에 비유하여 신하를 경시하고 업신여겼으니, 불공不恭함이 무엇이 이보다 더 심하겠는가.”
十二月 詔諸軍하야 分道擊高麗하다
12월에 제군諸軍에 명하여 길을 나누어 고구려를 공격하게 하였다.
[史略 史評]范氏曰
[史略 사평史評]范氏가 말하였다.
高麗臣屬於唐이어늘 而其主爲賊臣所弑하니 爲大國者 不可不討
“고구려가 나라에 신하로 복속하였는데 군주가 적신賊臣(淵蓋蘇文)에게 시해당하였으니, 대국大國이 이를 토벌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나 何至自征之乎
그러나 어찌 스스로 정벌하기까지 한단 말인가.
太宗 若從褚遂良之言하야 遣將伐之런들 雖不克이라도 未大失也리라
태종太宗이 만약 저수량褚遂良간언諫言을 따라 장수를 보내어 정벌하게 했더라면 비록 승리하지 못했더라도 크게 잘못하지 않았을 것이다.”
역주
역주1 : 합
역주2 蓋蘇文 : 附註에는 東部大人이라고 하였으나 《舊唐書》 〈高麗傳〉에는 西部大人이라고 되어 있다. 또한 姓은 淵‧泉‧錢 등으로 기록되어 있는 바, 唐 高祖의 이름이 淵이므로 淵을 泉이라 고치고 음을 취하여 錢이라 하였다. 莫離支는 《舊唐書》와 《新唐書》에 모두 兵部尙書와 같다고 하였다.
역주3 弑其君 : 唐나라 太宗 貞觀 16년(642)의 일이다.
역주4 : 반
역주5 : 섭
역주6 高麗 : 《資治通鑑》의 胡三省 註에 “麗의 음은 力知翻(리)이다.” 하였다.
역주7 凝旒 : 면류관의 술이 흔들리지 않고 조용히 멎어 있는 것이니, 제왕이 태도를 엄숙히 하고 專心으로 경청하는 것을 이른다.
역주8 飛白 : 書法 十體의 하나이다. 後漢 靈帝 때 鴻都門을 수선하면서 匠人이 白粉을 칠하는 빗자루로 글자를 쓰자 蔡邕이 이것을 보고 돌아가 ‘飛白書’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 書法은 필획 중에 가닥가닥 흰 부분이 있어 枯筆(붓에 먹을 조금만 찍어 글씨를 쓰는 것)과 흡사하다. 漢나라와 魏나라의 宮闕題字에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통감절요(7)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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