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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8)

통감절요(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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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酉]二十一年이라 〈順宗皇帝永貞元年〉
정원貞元 21년(을유 805) - 순종황제順宗皇帝 영정永貞 원년元年 -
正月癸巳 德宗하고 太子卽皇帝位하다
정월 계사일癸巳日(23일)에 덕종德宗이 별세하고 태자太子가 황제에 즉위하였다.
順宗 失音하야 不能決事하고 常居深宮하야 施簾帷하고 獨宦官李忠言 侍左右
이때 순종順宗이 목소리를 잃어 말을 하지 못하여 일을 결정하지 못하였고, 항상 깊은 궁중에 있으면서 주렴과 휘장을 드리우고 오직 환관인 이충언李忠言소용우씨昭容牛氏가 좌우에서 모셨다.
百官奏事 自帷中으로 可其奏하니라
백관들이 일을 상주上奏함에 황제가 휘장 안에서 허락하였다.
○ 以王伾爲左散騎常侍하고 王叔文爲起居舍人하니 大抵計事 叔文依伾하고 伾依忠言하고 忠言依牛昭容하야 轉相交結하야 每事 先下翰林하야 使叔文可否然後 宣于中書어든 韋執誼承而行之하며
왕비王伾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로 임명하고 왕숙문王叔文기거사인起居舍人으로 임명하니, 대저 일을 계획함에 왕숙문王叔文왕비王伾를 의지하고 왕비王伾이충언李忠言을 따르고 이충언李忠言우소용牛昭容을 따라, 돌려가면서 서로 결탁하여 매사를 먼저 한림원翰林院에 내려 왕숙문王叔文으로 하여금 가부可否를 결정하게 한 후에 중서성中書省에 내리면 위집의韋執誼가 받들어 행하였다.
外黨則韓泰, 柳宗元, 劉禹錫等 主采(採)聽外事하야 謀議唱和하야 日夜汲汲如狂이라
그리고 궁궐 밖의 당으로는 한태韓泰, 유종원柳宗元, 유우석劉禹錫 등이 외부의 정보를 수집하며 일을 다스리고 모의하여 선창하고 화답해서 밤낮으로 그치지 않아서 미친 듯 하였다.
互相推獎하야 曰伊, 曰周, 曰管, 曰葛이라하고 僩然自得注+[頭註]僩然 寬大貌 하야 謂天下無人이라하야
서로 상대방을 추앙하고 장려하여 이윤伊尹이라 칭하고 주공周公이라 칭하고 관중管仲이라 칭하고 제갈공명諸葛孔明이라 칭하였고, 한연僩然이 자만하여注+[頭註]한연僩然은 큰체하는 모양이다. 천하에 인물이 없다고 말하였다.
榮辱進退 生於造次하고 惟其所欲하야 不拘程式하니 士大夫畏之하야 道路以目이러라
그리하여 그들이 사람들에게 가하는 영욕榮辱진퇴進退가 삽시간에 생겨나고, 오직 그들이 하고 싶은대로 행동하여 정식程式(法式)에 구애받지 않으니, 사대부士大夫들이 그들을 두려워하여 아무 소리도 못하고 다만 도로에서 성난 눈초리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史略 史評]范氏曰
[史略 사평史評]范氏(范祖禹)가 말하였다.
天下至大하고 祖業至重이라
천하天下가 지극히 크고 조종祖宗기업基業이 지극히 소중하다.
古之敎太子者 左右前後必皆正人이나
그러므로 옛날에 태자太子를 가르치는 자는 좌우와 전후에 있는 자가 반드시 모두 정직한 사람이었다.
然猶或不能成德이어늘 德宗 乃使技藝博奕之徒 侍太子하니 豈不愚其子乎
그런데도 혹 태자太子을 이루지 못하였는데, 덕종德宗은 도리어 기예와 장기 두고 바둑 두는 무리들로 하여금 태자太子를 모시게 하였으니, 그들이 어찌 그 자식을 어리석게 만들지 않았겠는가.
蓋疑賢者導其子之爲非하야 而不疑於小人하니 亦不思而已矣니라
이는 현자賢者가 자기 자식을 나쁘게 인도할까 의심하고 소인小人을 의심하지 않은 것이니, 또한 이것을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다.”
○ 赦天下하야 諸色逋負 一切하고 常貢之外에는 悉罷進奉하고 貞元之末 政事爲人患者 如宮市, 五坊, 小兒注+[附註]五坊 (鵬)[鵰]坊, 鶻坊, 鷄坊, 狗坊, 鷹坊이라 閑廐使押五坊以供時狩하니라 小兒張捕鳥雀於閭里者 皆爲暴橫하야 以取人錢物이라 至有張羅網於門하고 或張井上이라가 近之 輒曰 汝驚供奉鳥雀이라하고 卽痛毆之하고 出物求謝하고 乃去하니라 之類 悉罷之하다
천하天下에 사면을 선포하여 여러 가지 포흠을 일체 면제해 주고 정상적으로 거두는 공물貢物 이외에는 진봉進奉을 모두 파하고, 정원貞元 말년의 정사 중에 백성들에게 폐해가 되었던 궁시宮市오방五坊소아小兒注+[附註]오방五坊은 보라매를 기르는 조방鵰坊, 새매를 기르는 골방鶻坊, 싸움닭을 기르는 계방鷄坊, 사냥개를 기르는 구방狗坊, 수리매를 기르는 응방鷹坊이다. 이때 한구사閑廐使오방五坊을 맡아 사시의 사냥에 제공하였다. 소아小兒들이 여리閭里에서 그물을 펼쳐서 새와 참새를 잡는 자들을 모두 포악하게 대하여 사람들의 돈과 물건을 빼앗았다. 심지어는 문에 참새 그물을 쳐놓거나 혹은 우물 위에 그물을 쳐놓았다가 사람이 가까이 오면 곧 말하기를 “네가 새를 놀라게 해서 도망갔다.” 하고는 즉시 심하게 구타하고 대신 물건을 내놓게 하고 사죄를 받고 나서야 비로소 떠났다. 같은 따위를 모두 파하였다.
在東宮 皆知其弊
동궁東宮으로 있을 때에 그 폐해를 모두 알았다.
卽位 首禁之하니라
그러므로 즉위하자 맨먼저 이것을 금한 것이다.
○ 上 疾久不愈
의 병환이 오랫동안 낫지 않았다.
以廣陵王淳으로 爲太子하고 更名純하다
광릉왕廣陵王 을 태자로 삼고 이름을 으로 고쳤다.
○ 八月庚子호되 令太子 卽皇帝位하고 朕稱太上皇이라하고 徙居興慶宮하다
8월 경자일庚子日(4일)에 황제가 제서制書를 내리기를 “태자太子로 하여금 황제皇帝에 즉위하게 하고 짐은 태상황太上皇이라 칭한다.” 하고, 거처를 흥경궁興慶宮으로 옮겼다.
貶王伾開州司馬하고 王叔文渝州司戶러니 病死貶所하고
왕비王伾개주사마開州司馬로 좌천시키고 왕숙문王叔文투주사호渝州司戶로 좌천시켰는데, 왕비王伾는 얼마 안 되어 병으로 좌천된 곳에서 죽었다.
明年 賜叔文死하다
다음 해에 왕숙문王叔文에게 사약을 하사하였다.
乙巳 憲宗注+[通鑑要解]博聞多能曰憲이라 卽位於宣政殿하다
을사일乙巳日(9일)에 헌종憲宗注+[通鑑要解]널리 듣고 재능이 많은 것을 이라 한다. 선정전宣政殿에서 즉위하였다.
[史略 史評]史斷曰
[史略 사평史評]史斷에 말하였다.
順宗寢疾踐阼 奸邪肆志하고 近習弄權이러니 而能委政冢嗣하야 以安社稷하니 得爲賢矣로다
순종順宗이 병석에서 즉위하자 간사한 자들이 뜻을 펴고 근습近習들이 권력을 농간하였으나 적장자嫡長子에게 정사를 맡겨서 사직社稷을 편안히 하였으니, 현군賢君이라 할 수 있다.”
○ 西川節度使南康忠武王韋臯卒한대 副使劉闢 自爲留後하야 表求節鉞注+[附註] 長一尺二寸이니 凡爲使者持之 秦, 漢以下 皆爲旌幢之形하니라 (誠)[鉞] 大斧也 賜之者 示征伐自天子出也 又節 猶信也 行者所執之信也 (古)[若]曰 節以專殺이요 鉞以專斷이라하니라 이어늘 朝廷不許하고 徵爲給事中하니 不受徵하고 阻兵自守注+[頭註] 恃也 하니라
서천절도사西川節度使남강충무왕南康忠武王 위고韋臯가 죽자, 부사副使유벽劉闢이 스스로 유후留後가 되어 표문을 올려 절월節鉞注+[附註]은 길이가 한 자 두 치이니, 사자使者가 된 자가 가지고 가는 것이다. 이후로 을 모두 정당旌幢(깃발) 모양으로 만들었다. 은 큰 도끼이니, 이것을 하사함은 정벌이 천자로부터 나옴을 보이는 것이다. 또 과 같으니, 길을 떠나는 자가 가지고 가는 신표이다. 절월節鉞은 “로써 마음대로 죽이고, 로써 마음대로 결단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내려줄 것을 요구하였는데, 조정에서 이를 허락하지 않고 유벽劉闢을 불러 급사중給事中을 삼으니, 유벽劉闢이 조정의 부름을 받지 않고 군대를 믿고 스스로 지켰다.注+[頭註]는 믿음이다.
○ 十二月 以闢爲西川節度副使하야 知節度事하니 上以初嗣位하야 力未能討故也러라
12월에 유벽劉闢서천절도부사西川節度副使로 삼아 절도사節度事를 맡게 하였으니, 이 황제의 자리를 계승한 초기여서 무력으로 토벌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역주
역주1 昭容牛氏 : 昭容은 궁중의 女官의 명칭이다. 원래는 修容이라고 칭하였는데, 삼국시대에 魏나라 文帝가 설치하였다. 지위는 昭華의 뒤인데, 南朝 때에 昭容이라고 고쳤으며, 九嬪의 다섯 번째이다. 九嬪은 淑妃, 淑媛, 淑儀, 昭華, 昭容, 昭儀, 婕妤, 容華, 充華이다.
역주2 : 견

통감절요(8)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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