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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5)

통감절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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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庚辰]三年이라 〈趙光初三年이요 後趙二年이라
태흥太興 3년(경진 320) - 나라(前趙) 광초光初 3년이고, 후조後趙 2년이다. -
祖逖 鎭雍丘하고 遣兵하야 邀擊注+[頭註] 遮也後趙兵하니 後趙鎭戍歸逖者 甚多 境土漸蹙이러라
조적祖逖옹구雍丘진주鎭駐하고 자주 군대를 보내어 후조後趙의 군대를 요격注+[頭註](기다리고 있다가 차단함)이다. 하니, 후조後趙진영鎭營에서 지키는 자들 중에 조적祖逖에게 귀부歸附하는 자가 매우 많아서 후조後趙의 국경이 점점 줄어들었다.
七月 詔加逖鎭西將軍하다
7월에 조서詔書를 내려 조적祖逖에게 진서장군鎭西將軍을 가하였다.
在軍 與將士同甘苦하고 約己務施하고 勸農桑하고 撫納新附하야 雖疎賤者라도 皆結以恩禮하니 自河以南 多叛後趙하고 歸于晉이러라
조적祖逖군중軍中에 있을 때에 장병들과 고락을 함께 하고 자신을 위해서는 검소하게 하고 남에게 베풀기를 힘쓰며 농업과 양잠養蠶을 권장하고 새로 귀부歸附한 자들을 어루만지고 받아들여서 비록 소원하고 천한 자라도 모두 은혜와 예로써 맺으니, 황하黃河 이남 지방이 대부분 후조後趙를 배반하고 나라에 귀부하였다.
練兵積穀하야 爲取河北之計한대 後趙王勒 患之하야 乃下幽州하야 爲逖修祖, 父墓注+[通鑑要解]逖范陽人이니 其祖, 父墓在焉之하고 置守冢二家하고 因與逖書하야 求通하다
조적祖逖이 군사를 훈련시키고 곡식을 저축하여 하북河北을 점령할 계획을 세우니, 후조왕後趙王 석륵石勒이 이를 근심하여 마침내 유주幽州로 내려가서 조적祖逖을 위하여 조적祖逖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묘를 수축하였으며注+[通鑑要解]조적祖逖범양范陽 사람이니,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묘소가 그곳에 있었다. 묘를 지키는 집 두 가호를 설치하고 이를 기화로 조적祖逖에게 편지를 보내어 사신을 통하기를 청하였다.
牙門童建 殺〈新〉蔡內史周密하고 降于後趙어늘 斬之하야 送首於逖하고叛臣逃吏 吾之深仇
조적祖逖아문牙門(衙門) 동건童建신채내사新蔡內史 주밀周密을 죽이고 후조後趙에 항복하자, 석륵石勒이 그의 목을 베어 머리를 조적祖逖에게 보내고 말하기를 “배반한 신하와 도망간 관리는 내가 깊이 미워하는 자이다.
將軍之 猶吾注+[通鑑要解] 皆烏路切이라라하니
장군이 증오하는 것은 또한 내가 증오하는 것과 같다.注+[通鑑要解]는 모두 烏路切(오)이다. ” 하니,
深德之하야 自是 後趙人 叛歸逖者 逖皆不納하고 禁諸將하야 不使暴後趙之民하니 邊境之間 稍得休息이러라
조적祖逖이 그의 은덕에 깊이 감격하여 이후로는 석륵石勒을 배반하고 조적祖逖에게 귀부하려는 후조後趙 사람들을 조적祖逖이 다 받아 주지 않았으며, 제장諸將들을 금지하여 후조後趙의 백성들을 침략하지 못하게 하니, 변경 사이가 차츰 안정되어 갔다.
○ 帝之始鎭江東也 王敦 與從弟導 同心翼戴
○ 황제가 처음 강동江東진주鎭駐했을 때에 왕돈王敦종제從弟 왕도王導와 함께 한마음으로 황제를 보좌하고 떠받들었다.
帝亦推心任之하야 敦總征討하고 導專機政하고 群從子弟注+[頭註]兄弟之子 相謂從이라하니 從昆弟 言本同祖 從父而別也布列顯要하니
황제 또한 성심誠心으로 그들을 신임해서 왕돈王敦은 토벌하는 군무軍務를 총괄하고 왕도王導는 중요한 정사政事를 전담하였으며 여러 종자從子종제從弟注+[頭註]형제兄弟의 아들을 서로 이르기를 이라 하니, 종곤제從昆弟는 본래 조부는 같으나 아버지를 따라서 구별됨을 말한 것이다. 이 현달하고 중요한 관직에 포진布陳하였다.
時人 爲之語曰 王與馬注+[頭註] 謂王導宗族이요 謂晉帝司馬氏共天下라하더라
당시 사람들이 말하기를 “(王氏)과 (司馬氏)注+[頭註]왕도王導종족宗族을 이르고, 진제晉帝 사마씨司馬氏를 이른다. 가 천하를 함께 누린다.” 하였다.
自恃有功하고 且宗族彊盛하야 稍益驕恣어늘 帝畏而惡之하야 乃引劉隗, 刁協等하야 以爲腹心하고 稍抑損王氏之權하니 導亦漸見疎外
뒤에 왕돈王敦건국建國하는 데에 이 있음을 자부하고 또 종족이 강성하여 갈수록 더욱 교만하고 방자해지자, 황제가 두려워하고 미워해서 마침내 유외劉隗조협刁協 등을 나오게 하여 심복으로 삼고 차츰 왕씨王氏의 권한을 억제하고 줄이니, 왕도王導 역시 점점 소외당하였다.
導能任眞推分注+[釋義]任從其眞性하야 不肯假借하고 推之分齊하야 無復顧惜이라[通鑑要解]帝抑損王氏權하야 導漸見疎外어늘 而能任其眞性하고 推之分限하야 不介于懷하니 言自然安分이요 非矯情也하야 澹如也하니 有識 皆稱其善處興廢호되
왕도王導는 천진한 성품에 맡겨 두고 스스로 분수를 지켜注+[釋義]천진한 성품 그대로 맡겨 두어 거짓으로 꾸미려 하지 않고 분제分齊(분수, 본분)를 지켜 다시 돌아보거나 아까워함이 없는 것이다. [通鑑要解]황제가 왕씨王氏의 권한을 억제하고 줄여서 왕도王導가 점점 소외당하였으나 왕도王導는 천진한 성품에 맡겨 두고 스스로 분한分限(분수)을 지켜 마음에 개의치 않았으니, 자연히 분수를 편안히 여긴 것이고 실정實情을 속인 것이 아님을 이른다. 담담하니, 식견 있는 자들이 모두 흥망興亡의 시기에 잘 대처한다고 칭찬하였다.
而敦 益懷不平하야 遂構嫌隙이러라
그러나 왕돈王敦은 더욱 불평하는 마음을 품어 마침내 틈이 벌어졌다.
역주
역주1 : 삭
역주2 : 오
역주3 : 오

통감절요(5)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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