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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9)

통감절요(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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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9)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乙丑]天祐二年이라
천우天祐 2년(을축 905)
[新增]朱氏黼曰
[新增]朱氏(朱黼)가 말하였다.
自古卽位 未有不改元者하니 雖垂亡殆盡之國 有革命遜位之勢라도 而亂臣賊子未嘗不使嗣君改元以欺天下也
“예로부터 즉위함에 개원改元하지 않은 자가 있지 않았으니, 비록 멸망하여 거의 끝나게 된 나라로서 혁명하여 황제의 자리를 양보할 형세가 있다 하더라도 난신적자가 일찍이 뒤를 이은 군주로 하여금 개원改元하게 하여 천하를 속이지 않은 적이 없었다.
惟呂后立常山王注+[頭註]常山王 卽恒山王朝也 하고 朱溫立昭宣帝注+[頭註]朱溫 卽全忠이라 又改名晃이니 是爲梁太祖 不復改元하니 蓋示天下之出於己 嗣君之擁虛器也어늘
오직 여후呂后상산왕常山王을 세우고注+[頭註]상산왕常山王은 바로 항산왕恒山王 이조李朝이다. 주온朱溫소선제昭宣帝를 세울 적에注+[頭註]주온朱溫은 바로 주전충朱全忠이다. 또 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니, 이가 바로 후량後梁태조太祖이다. 다시 개원改元하지 않았으니, 이는 천하가 자신에게서 나오고 뒤를 이은 군주는 빈 기물(자리)만 끼고 있음을 보인 것이다.
而朝士猶與全忠爭九錫禮制次第하니 不亦愚乎
그런데 조정의 선비들이 오히려 주전충朱全忠구석九錫을 하사하는 예제禮制의 차례를 논쟁하였으니, 어리석지 않은가.”
五月 彗星長竟天하니 占者曰 君臣俱災하리니 宜誅殺以應之라하니라
5월에 혜성彗星의 길이가 하늘 끝까지 이르니, 점치는 자가 말하기를 “군주와 신하가 모두 재앙을 받을 것이니, 마땅히 사람들을 죽여서 하늘의 뜻에 부응하여야 한다.” 하였다.
○ 六月 全忠 聚朝士貶官者三十餘人於白馬驛하야 一夕 盡殺之하야 投尸于河注+[附註]諫議大夫同平章事李璨 恃全忠之勢하고 恣爲威福이러니 會有星變이라 因疏其素所不快者於全忠하야 曰 此曹皆怨望腹誹하니 宜以之塞災하소서 靑州留後李振 亦言於全忠曰 王欲圖大事인댄 此曹 皆朝廷之難制者 不若盡去니이다 全忠以爲然하야 貶獨孤損, 裴樞, 崔遠, 陸扆, 王溥, 趙崇, 王贊等三十餘人於白馬驛하야 盡殺之하야 投尸于河하니라 하다
6월에 주전충朱全忠이 조정의 인사 중에 좌천된 자 30여 명을 백마역白馬驛에 모아서 하룻저녁에 모두 죽여 시신을 황하黃河에 던졌다.注+[附註]간의대부諫議大夫 동평장사同平章事이찬李璨주전충朱全忠의 권세를 믿고 마음대로 위엄과 복을 행사하였는데, 마침 혜성彗星의 변고가 있었다. 이찬李璨이 이를 이용하여 자신이 평소 좋아하지 않던 자들을 적어서 주전충朱全忠에게 말하기를 “이들은 모두 조정을 원망하고 마음속으로 비방하고 있으니, 마땅히 이들로써 재앙을 막으소서.” 하였다. 청주유후靑州留後 이진李振 또한 주전충朱全忠에게 말하기를 “께서 대사大事를 도모하고자 하신다면 이들은 모두 조정에서 제재하기 어려운 자들이니, 모두 제거하는 것만 못합니다.” 하였다. 주전충朱全忠이 그 말을 옳게 여겨 독고손獨孤損, 배추裴樞, 최원崔遠, 육의陸扆, 왕부王溥, 조숭趙崇, 왕찬王贊 등 30여 명을 백마역白馬驛으로 폄척貶斥하여 모두 죽여서 시신을 황하黃河에 던졌다.
李振 屢擧進士호되 竟不中第
이보다 앞서 이진李振은 여러 번 진사시進士試에 응시하였으나 끝내 급제하지 못하였다.
深嫉搢紳之士하야 言於全忠曰 此輩常自謂淸流라하니 宜投之黃河하야 使爲濁流라하니 全忠 笑而從之하니라
그러므로 진신搢紳의 선비들을 깊이 미워하여, 주전충朱全忠에게 말하기를 “이 무리들은 항상 스스로 청류淸流라고 말하니, 마땅히 이들을 황하黃河에 던져 넣어 그들로 하여금 탁류濁流가 되게 해야 합니다.” 하니, 주전충朱全忠이 웃고 그의 말을 따랐다.
○ 吳王楊行密커늘 其子偓 自立하야 爲弘農郡王하다
오왕吳王 양행밀楊行密이 죽자, 그의 아들 이 스스로 서서 홍농군왕弘農郡王이라 칭하였다.
○ 以朱全忠爲相國하야 進封梁王하고 加九錫하다
주전충朱全忠상국相國으로 삼아 양왕梁王으로 진봉進封하고 구석九錫를 가하였다.
歷年圖曰
역년도歷年圖》에 말하였다.
高祖擧晉陽精兵注+[頭註]高祖 自晉陽宮監而起하니라 하고 承亡隋之弊하야 席卷長驅하야 奄有關中이라
나라 고조高祖진양晉陽에서 정예병을 일으키고注+[頭註]고조高祖나라 말기에 진양궁감晉陽宮監으로 있다가 일어났다. 망한 나라의 피폐한 뒤를 이어받아 천하를 석권하고 승승장구하여 곧바로 관중 지방을 소유하였다.
命將出師하야 掃除亂略注+[頭註]書武成 謀略也라하니라 하야
장수를 임명하고 군대를 출동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모략을 세우는 자들을 소탕하였다.注+[頭註]서경書經》 〈무성武成〉의 에 “은 모략이다.” 하였다.
遂降李密, 繫建德하고 擒世充, 武周하고 翦黑闥, 夷蕭銑하야 六年之中 海內咸服하니 何成功之速哉
그리하여 마침내 이밀李密을 항복시키고 두건덕竇建德을 공격하고 왕세충王世充을 사로잡고 유무주劉武周를 목 베고 유흑달劉黑闥을 제거하고 소선蕭銑을 평정하여 6년 동안에 온 천하가 모두 복종하였으니, 어쩌면 이리도 성공成功이 신속하였는가?
蓋以太宗之爲子也일새라
이는 태종太宗이 아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太宗 文武之才 高出前古
태종太宗문무文武의 재주가 전고前古에 크게 뛰어났다.
驅策英雄하고 罔羅俊乂注+[頭註]才過千人爲俊이요 才也 하며 好用善謀하고 樂聞直諫하야 拯民於水火之中하야 而措之於衽席注+[頭註]臥者爲衽이요 坐者爲席이라 之上하야
여러 영웅들을 채찍질하고 준걸들을 망라하였으며,注+[頭註]재주가 천 명 중에 뛰어난 것을 이라 하고, 는 재주가 있는 것이다. 좋은 계책을 쓰기를 좋아하고 직간을 듣기를 좋아해서 백성들을 물과 불(塗炭) 속에서 구원하여 편안한 자리 위에 내려놓았다.注+[頭註]누울 적에 까는 것을 이라 하고, 앉을 적에 까는 것을 이라 한다.
使盜賊化爲君子하고 呻吟轉爲謳歌하며 衣食有餘하고 刑措不用이라
그리하여 도적으로 하여금 변하여 군자가 되게 하고 신음하는 자들로 하여금 바뀌어 노래를 부르게 하였으며 의식衣食이 풍족하고 형벌을 폐지하여 쓰지 않았다.
突厥之渠 繫頸闕庭하고 北海之濱 悉爲州縣하니 蓋三代以還으로 中國之盛 未之有也
돌궐突厥의 추장이 목을 묶고 대궐 뜰로 와서 항복하고 북해北海의 바닷가가 모두 주현州縣이 되었으니, 삼대三代 이후로 중국中國의 강성함이 이와 같았던 적은 있지 않았다.
惜其好尙功名而不及禮樂하고 父子兄弟之間 慙德注+[頭註]太宗 弑兄殺弟逼父하야 爲帝하고 納弟之妃 多矣
그러나 애석하게도 공명功名을 좋아하고 예악禮樂에 미치지 않았으며 부자간과 형제간에 부끄러운 (일)이 많았다.注+[頭註]태종太宗은 형 건성建成을 시해하고 아우 원길元吉을 죽였으며, 아버지 고조高祖를 핍박하여 황제가 되고 아우 원길元吉(巢剌王妃)를 아내로 맞이하였다.
高宗 沈溺宴安하야 仁而不武
고종高宗은 안일함에 빠져서 인자하기만 하고 무위武威가 없었다.
使天后注+[頭註]則天武后 斲喪唐室하야 屠害宗支하고 毒流縉紳하니 迹其本源하면 有自來矣
그리하여 측천무후則天武后로 하여금注+[頭註]천후天后측천무후則天武后이다. 나라 황실을 망하게 하여 종손宗孫지손支孫들을 도륙하고 해독이 진신縉紳(사대부)들에까지 미쳤으니, 그 근본을 따라가보면 유래가 있다.
中宗 久罹憂辱하야 備嘗險阻러니 一旦得志 荒淫不悛하니 糞土之墻 安可杇(圬)也리오
중종中宗은 오랫동안 근심과 욕을 당하여 험난하고 어려운 일을 빠짐없이 겪었는데, 하루아침에 뜻을 얻자 주색에 빠져 잘못을 고치지 않았으니, 거름흙으로 만든 담장을 어떻게 흙손질할 수 있겠는가.
睿宗 鑑前之禍하고 立嗣以功하니 所謂可與權矣
예종睿宗전일前日의 화를 거울로 삼고 공이 있는 자(玄宗)를 후사後嗣로 세웠으니, 이른바 함께 권도權道를 행할 수 있는 자라는 것이다.
明皇 能謀有斷하야 再淸內難注+[頭註]謂誅 이라
명황明皇(玄宗)은 계책을 잘 세우고 결단력이 있어서 다시 내란을 평정하였다.注+[頭註]다시 내란을 평정하였다는 것은 태평공주太平公主를 죽인 일을 이른다.
開元之初 憂勤庶政하야 好賢樂善하고 愛民利物하야 海內富庶하고 四夷賓服하야 浸淫注+[頭註]隨理也 隨其脈理而浸漬 於貞觀之風矣러니
개원開元 연간 초기에는 여러 정사를 걱정하고 부지런히 힘써 현자를 좋아하고 선행을 즐거워하며 백성을 사랑하고 물건을 이롭게 해서 나라 안이 부유하고 사방의 오랑캐들이 조공을 바치고 복종하여 정관貞觀의 유풍에 젖어들었다.注+[頭註]침음浸淫맥리脈理(결)를 따르는 것이니, 맥리脈理를 따라 물이 스며드는 것이다.
及天寶以降으로 自以功成治定하야 無有後艱이라하야 志欲旣滿 侈心乃生이라
그런데 천보天寶 연간 이후로는 스스로 공이 이루어지고 정치가 안정되어 뒷날의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여겨서 뜻과 욕망이 이미 만족스럽자 사치한 마음이 마침내 생겨났다.
忠直注+[頭註]忠直 姚崇, 宋璟, 韓休, 張九齡之屬이라 寖疏하고 讒諛竝進하야 以遊娛爲良謀하고 以聲色爲急務하며 以李林甫楊國忠爲周召하고 以安祿山哥舒翰爲方虎하야
그리하여 충직한 자들이注+[頭註]충직한 자는 요숭姚崇, 송경宋璟, 한휴韓休, 장구령張九齡 등이다. 점점 소원해지고 참소하고 아첨하는 자들이 함께 등용되어, 놀고 즐기는 것을 좋은 계책으로 여기고 음악과 여색을 급선무로 여기며, 이임보李林甫양국충楊國忠주공周公소공召公 같은 명재상이라고 여기고 안녹산安祿山가서한哥舒翰방숙方叔소호召虎 같은 명장이라고 여겼다.
癰疽結於心腹而不寤(悟)하고 豺狼遯於藩籬注+[頭註] 隱也 而不知
그리하여 종기가 심복心腹에 곪는데도 깨닫지 못하고 시랑豺狼이 울타리에 숨어있는데도注+[頭註]은 숨어있는 것이다. 알지 못하였다.
一旦 變生所忽하야 兵起邊隅하니 廟堂執檄而心醉하고 猛將望塵而束手하야 腥膻注+[頭註] 羊臭也 汚於伊洛하고 流血 染於河潼이라
하루아침에 변란變亂이 소홀히 하는 곳에서 생겨나 난리가 변방에서 일어나니, 묘당廟堂에서는 격문檄文을 쥠에 마음이 동요되고 용맹한 장수들은 먼지만 바라보고도 손을 묶은 것처럼 꼼짝 못하여 오랑캐의 누린내가注+[頭註]은 양고기의 누린내이다. 이수伊水낙수洛水 사이(중국의 중앙 지역)를 더럽히고 흐르는 피가 황하黃河동관潼關을 물들였다.
乘輿播蕩 生民塗炭하고 禍亂竝興하야 不可救藥하야 使數百年之間으로 干戈爛熳(漫)而不息하니
황제의 승여乘輿서촉西蜀으로 파천함에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고 화와 난이 함께 일어나서 다시는 치료할 수가 없게 되어 수백 년 동안 창과 방패가 번쩍거려 그치지 않게 하였다.
嗚呼
아!
靡不有初 鮮克有終하니 安之不可恃 治之不可保 如此夫인저
처음은 있지 않음이 없으나 종말이 있는 자가 드무니, 편안함을 믿을 수 없고 다스림을 보존할 수 없음이 이와 같다.
肅宗 以國之元子 收兵靈武하고 反旆而東하야 不失舊物注+[頭註]不失治天下之舊事 하며 代宗 分命群帥注+[頭註]若郭子儀等이라 하고 翦除兇醜注+[頭註]若僕固懷恩, 回紇, 吐藩이라 하야 使大河南北으로 復爲唐臣하니 其功 皆不細矣
숙종肅宗은 나라의 원자元子영무靈武에서 병력을 수습하고 깃발을 되돌려 동쪽으로 가서 천하를 다스리는 옛일을 잃지 않았으며,注+[頭註]구물舊物을 잃지 않았는다는 것은 천하를 다스리는 옛일을 잃지 않은 것이다. 대종代宗은 여러 장수들을 나누어 명령하고注+[頭註]여러 장수들은 곽자의郭子儀 등과 같은 사람이다. 흉악한 자들을 제거하여注+[頭註]흉악한 자들은 복고회은僕固懷恩회흘回紇, 토번吐藩과 같은 무리이다. 대하大河의 남북으로 하여금 다시 나라의 신하가 되게 하였으니, 그 공로가 모두 작지 않다.
이나 此兩君者 武不足以決疑하고 明不足以燭理하니 曏無郭子儀之忠 李光弼之智하고 因僕固懷恩하야 以(困)[用]回紇之衆이런들 則天下已非唐有矣리라
그러나 이 두 군주는 위무威武는 의심스러움을 결단하지 못하였고 밝음은 이치를 밝게 알지 못하였으니, 그때 만일 곽자의郭子儀의 충성과 이광필李光弼의 지혜가 없고 복고회은僕固懷恩을 이용하여 회흘回紇의 무리를 쓰지 않았더라면 천하는 이미 나라의 소유가 아니었을 것이다.
夫以肅宗之孝慈 而制於李輔國하야 不能養其父注+[頭註]見四十二卷庚子辛丑年이라 하고 惑於張后하야 不能庇其子注+[頭註]見四十二卷辛丑年이라 하니 則其武 可知矣
숙종肅宗의 효도와 사랑으로도 이보국李輔國에게 제재를 받아 아버지(玄宗)를 제대로 봉양하지 못하고注+[頭註]아버지(玄宗)를 제대로 봉양하지 못한 것은 42권 경자년庚子年(760)과 신축년辛丑年(761)에 보인다. 장후張后에게 미혹되어 자식을 비호하지 못하였으니,注+[頭註]자식을 비호하지 못한 것은 42권 신축년辛丑年(761)에 보인다. 그렇다면 그 위무威武를 알 수 있는 것이다.
以代宗之寬仁으로 而聽讒臣之言注+[頭註]讒臣者 程元振이라 하야 使光弼不敢入朝하야 慙憤而死하고 懷恩招引外寇하야 幾再亡國하니 則其明 可知矣
그리고 대종代宗의 관대함과 인자함으로도 참소하는 신하(程元振)의 말을 들어서注+[頭註]참소하는 신하는 정원진程元振이다. 이광필李光弼로 하여금 감히 입조하지 못하여 부끄럽고 분하여 죽게 만들고, 복고회은僕固懷恩이 바깥의 적을 불러들여 나라를 다시 망칠 뻔하였으니, 그의 밝음을 알 수 있다.
而又不思經遠之謀하고 專爲姑息之政하야 盜賊據州郡者 因用爲牧守注+[附註]盧龍朱泚 衆推爲留後어늘 代宗詔許之하다 梁崇義從來瑱하야 得衆心이러니 瑱死 衆推爲帥어늘 上不能討하고 以爲山南節度使하고 授之旄鉞하며 平盧將李懷玉 逐其節度使侯希逸이어늘 代宗 詔以懷玉留後하고 賜名正己하며 幽州將朱希彩 殺其節度使李懷仙이어늘 詔以希彩知留後하며 淮西李希烈 逐其節度使李忠臣이어늘 詔以希烈爲留後하니라 하고 士卒殺主帥者 因授之旄鉞하야 使彊暴縱橫하야
또 떳떳하고 장구한 계책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고식적姑息的인 정사를 행하여, 주군州郡을 점거한 도적들을 그대로 등용하여 목수牧守로 삼고注+[附註]노룡盧龍주체朱泚를 무리(군사)들이 유후留後로 추대하자 대종代宗이 조칙을 내려 허락하였다. 양숭의梁崇義내진來瑱을 따라 병사들의 마음을 얻었는데, 내진來瑱이 죽자 군사들이 그를 장수로 추대하니, 이 이들을 토벌하지 못하고 양숭의梁崇義산남절도사山南節度使로 임명하고 깃발과 부월斧鉞을 내려주었으며, 평로平盧의 장수인 이회옥李懷玉절도사節度使 후희일侯希逸을 쫓아내자 대종代宗이 조칙을 내려 이회옥李懷玉유후留後로 삼고 정기正己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 유주幽州의 장수 주희채朱希彩절도사節度使 이회선李懷仙을 죽이자 조칙을 내려 주희채朱希彩지유후知留後로 삼았으며, 회서淮西이희열李希烈절도사節度使 이충신李忠臣을 쫓아내자 조칙을 내려 이희열李希烈유후留後로 삼았다. 주수主帥를 죽인 사졸들에게 깃발과 부월을 그대로 주어서 강하고 사나운 자들로 하여금 제멋대로 행동하게 하였다.
下陵上替하야 積習成俗하야 莫知其非하니 唐之紀綱大壞하야 不可復振 則肅代之爲也
그리하여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능멸하고 윗사람의 권위가 침체되어 폐습이 쌓여 나쁜 풍속을 이루어서 나쁜 줄을 알지 못하였으니, 나라의 기강이 크게 무너져서 다시 떨쳐지지 못함은 숙종肅宗대종代宗이 이렇게 만든 것이다.
德宗 憤積世之弊하고 憫王室之卑하야 南面之初 赫然有撥亂之志로되 而識度闇淺하고 資性猜하야
덕종德宗은 여러 대 동안 누적된 폐단을 분하게 여기고 왕실王室이 낮아짐을 민망하게 여겨서 남면南面(즉위)하던 초기에 혁연赫然히 난을 다스릴 뜻을 두었으나 지식과 도량이 어둡고 얕으며 타고난 자품이 시기하고 괴팍하였다.
親信 多非其人이요 擧措不由其道하며 賦斂煩重하고 果於誅殺이라
그리하여 친애하고 신임한 자가 대부분 훌륭한 사람이 아니었고 거조擧措가 바른 도를 따르지 않았으며, 부역과 세금이 번거롭고 무거우며 사람들을 처벌하고 죽이는 데에 과감하였다.
關外之寇未平 而京師之盜先起
그러므로 관중關中 이외의 도적을 평정하기 전에 경사京師(關中)의 도둑이 먼저 일어났다.
於是 困辱於奉天하고 播遷於山南하며 公卿拜於賊庭하고 鋒鏑集於黃屋이리니 尙賴陸贄盡心於內하고 李晟渾瑊輸力於外
이에 봉천奉天에서 곤욕을 당하였고 산남山南으로 파천하였으며, 공경公卿들이 적의 조정에서 절하고 칼날이 황옥黃屋(임금의 수레)에 집중되었는데, 다행히 육지陸贄가 안에서 마음을 다하고 이성李晟혼감渾瑊이 밖에서 힘을 쏟음에 힘입었다.
故能誅夷元兇注+[頭註]朱泚 하고 還奉宗社하니 自是之後 消剛爲柔하고 刓方爲圓하야 逮其晩節하야는 偸懦之政注+[頭註] 苟且也 甚於祖考矣
그러므로 능히 원흉(朱泚)을 주벌하고注+[頭註]원흉元兇주체朱泚이다. 종묘의 제사를 다시 받들었으니, 이 뒤로부터 강한 것이 사라져 부드러운 것이 되고 네모난 것이 깎여서 둥근 것이 되어 말년에 이르러서는 구차하고 나태한 정사가注+[頭註]는 구차함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보다도 심하였다.
順宗 不幸嬰疾하야 奸邪肆志로되 而能委政冢嗣하야 以安社稷하니 足爲賢矣
순종順宗은 불행히 병에 걸려서 간사한 자들이 뜻을 얻었으나 정사를 큰아들에게 맡겨서 사직을 편안히 하였으니, 충분히 어질다고 할 만하다.
憲宗 聰明果決 得於天性이요 選任忠良하고 延納善謀
헌종憲宗은 총명함과 과단함을 천성에서 얻었고, 충성스럽고 어진 사람들을 선발하여 임용하고, 좋은 계책을 맞이하여 받아들였다.
師老財屈하야 異論輻湊로되 而不爲之疑하며 盜發都邑하야 屠害元宰로되 而不爲之懼하야
군사들이 피로하고 재정이 고갈되어서 이론異論이 폭주하였으나 의심하지 않았으며, 도적(자객)이 도읍에 나타나 원재元宰(大臣)를 도륙하고 해쳤으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卒能取靈夏, 淸劍南하고 誅浙西, 俘澤潞하고 平淮右, 復齊魯하니
그리하여 마침내 영하靈夏를 점령하고 검남劍南을 소탕하며 절서浙西를 토벌하고 택로澤潞를 사로잡으며 회우淮右(淮西)를 평정하고 제노齊魯를 회복하였다.
於是 天下深根固蔕之盜 皆狼顧鼠拱하야 納質效地하고 稽顙入朝하야 百年之憂 一旦廓然矣로되 而怠於防微하야 變生肘腋하니 悲夫
이에 천하에 뿌리가 깊고 꼭지가 단단한 도적들이 모두 이리처럼 돌아보고 쥐처럼 두 손을 모아 인질을 바치고 땅을 바쳤으며, 이마를 조아리고 입조하여 백 년 동안의 우환이 하루아침에 깨끗이 사라졌으나 은미함을 막는 데에 태만해서 변란이 가까운 곳에서 생겨났으니, 슬프다.
穆宗 蒙已成之業하고 承旣平之緖로되 授任非才하고 爲謀不臧하야 使柙中之虎 復縱暴於原野하고 網中之魚 得自脫於深淵하야 元和之功 於茲墜矣
목종穆宗은 이미 이루어놓은 기업基業을 이어받고 이미 평정한 실마리를 계승하였으나 제수하여 맡긴 자가 재주 있는 자가 아니었고 도모한 계책이 좋지 못해서 우리 안에 있는 호랑이로 하여금 다시 원야原野에서 포악함을 부리게 하고 그물 안에 있는 물고기로 하여금 스스로 깊은 못으로 빠져나가게 하여 원화元和 연간의 공이 이에 훼손되었다.
輕易荒縱하야 自貽顚覆하고 文宗 優游不斷하야 受制家臣하니 雖有好賢之心 文雅之美 皆不足稱也
보력寶曆(敬宗)은 경솔하고 제멋대로 행동하여 스스로 전복됨을 초래하였고, 문종文宗은 우유부단하여 가신家臣(환관)에게 제재를 받았으니, 비록 현자를 좋아하는 마음과 문아文雅의 아름다움이 있었으나 모두 칭찬할 만한 것이 못 된다.
武宗 英敏特達하고 委任能臣하야 克上黨 如拾芥하고 取太原 如反掌이로되 〈饗國日淺하야〉功業不究하니 惜哉
무종武宗은 영민하여 특별히 명달明達하고 유능한 신하에게 위임해서 상당上黨을 이기기를 지푸라기를 줍듯이 하고 태원太原을 점령하기를 손바닥을 뒤집듯이 쉽게 하였으나 〈나라를 누린 것이 일천日淺하여〉공업을 끝마치지 못했으니, 애석하다.
宣宗 少歷艱難하고 長年踐位하야 人之情僞 靡不周知하야
선종宣宗은 어린 시절에 어려움을 겪고 장성한 나이에 즉위해서 사람들의 실정과 거짓을 두루 알지 못함이 없었다.
盡心民事하고 精勤治道하야 賞簡而當하고 罰嚴而必이라
그리하여 백성들의 일(농사)에 마음을 다하고 다스리는 방도에 마음을 쏟아 부지런히 힘써서 은 간략하면서도 합당하고 은 엄격하면서도 반드시 내렸다.
方內樂業하고 殊方順軌하니 求諸漢世하면 其孝宣之流亞與인저
그러므로 방내方內(나라 안)의 백성들이 생업을 즐거워하였고 수방殊方(異域)의 오랑캐들이 법도를 따랐으니, 나라 세대에 찾아보면 효선제孝宣帝아류亞流일 것이다.
懿宗 驕奢無度하고 賊虐不忌하야 輔弼之任 委於嬖寵注+[附註]上荒宴하야 不親庶政하고 委任路巖하니 乃通賂遺하고 奢肆不法하니라 與韋保衡으로 同當國하야 二人勢動天下하니 目其黨하야이라하니 言如鬼陰惡하야 可畏也 하고 四海之財 竭於淫樂하야
의종懿宗은 교만하고 사치함이 한도가 없고 사람을 살해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으며, 보필하는 임무를 총애하는 자에게 맡기고注+[附註](懿宗)이 연음宴飮에 빠져 여러 정사를 직접 다스리지 않고 노암路巖에게 위임하니, 노암路巖이 마침내 뇌유賂遺(뇌물)을 받았으며 사치하고 방자하여 불법을 자행하였다. 위보형韋保衡과 함께 국사를 담당하여 두 사람의 권세가 천하를 진동하니, 이때에 그 당을 지목하여 우두아방牛頭阿旁이라 하였으니, 마귀와 같이 음흉하고 악하여 두려워할 만함을 말한 것이다. 온 천하의 재물을 지나친 향락에 탕진하였다.
民怨不知하고 神怒不恤하니 李氏之亡 於茲決矣
그리하여 백성들이 원망하는데도 알지 못하고 신명神明이 노여워하는데도 근심하지 않았으니, 이씨李氏의 멸망이 여기에서 결정되었다.
且唐 自至德已來 近習用權하고 藩臣跋扈하니 譬如羸病之人 以糜粥養之라도 猶懼不濟어든 又況飮之毒酒 其能存乎
나라는 지덕至德 연간 이래로 황제 가까이에서 모시는 환관들이 권력을 남용하고 번신藩臣들이 발호하였으니, 비유하면 파리하고 병든 사람이 미음과 죽으로 자양滋養해도 오히려 구제하지 못할까 두려운데 또다시 독주를 마시게 한다면 어찌 보존할 수 있겠는가.
及僖昭嗣位하야는 天祿已去하고 民心已離하야 盜賊徧於寰區하고 蓬蒿塞於城闕이라
희종僖宗소종昭宗이 지위를 계승함에 이르러서는 천록天祿이 이미 떠나가고 민심民心이 이미 배반하여 도적이 온 천하에 널려있고 쑥대(잡초)가 성과 대궐을 메웠다.
漂泊幽辱하야 寄命諸侯하니 當是之時하야 雖欲救之 其將能乎
그리하여 황제가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고 유치幽置되어 치욕을 당해서 제후들에게 목숨을 맡겼으니, 이때를 당하여 비록 구원하고자 하나 장차 되겠는가.”
[新增]胡氏曰
[新增]胡氏(胡寅)가 말하였다.
唐有天下하야 歷二十君 爲子所逼奪者三焉이요 爲婦所乘者三焉이요 爲賊所逐者五焉이요 爲妻所弑者一焉이요 爲宦官所立者九注+[附註]通要 作七하니 七君 見上戊申六君註 其二 絳王與代宗也 絳王 見上癸亥年溫公論中이요 代宗 雖已爲太子 然張后謀欲廢러니 而因李輔國하야 得立하니라 이요 爲所弑者三焉이요 爲所廢者一焉이요 爲方士所敗者七焉이요 爲强臣所弑者二焉이니 不爲小人所惑者 僅得二三하야 而無全德者矣
나라는 천하를 소유하여 20명의 군주를 거쳤는데, 자식에게 핍박당하여 빼앗긴 자가 3명이고, 부인에게 능멸당한 자가 3명이고, 역적에게 쫓겨난 자가 5명이고, 아내에게 시해된 자가 1명이며, 환관에 의해 옹립된 자가 9명이고注+[附註]통감요해通鑑要解》에 로 되어 있으니, 칠군七君은 앞의 무신년戊申年(888) 육군六君에 보이며, 그 둘은 강왕絳王대종代宗이다. 강왕絳王은 앞의 계해년癸亥年(903) 온공溫公사론史論 가운데에 보이며, 대종代宗은 이미 태자가 되었으나 장후張后가 폐위하고자 모의하였는데 이보국李輔國으로 인해 즉위할 수 있었다. 시해당한 자가 3명이고 폐위당한 자가 1명이며, 방사方士 때문에 그르친 자가 7명이고, 강한 신하에게 시해당한 자가 2명이니, 소인에게 미혹되지 않은 자가 겨우 두세 명뿐이어서 덕을 온전히 한 자가 없다.
其治效則亦亞於兩漢이로되 而賢君如是其鮮 何也
정치를 잘한 효험은 또한 양한兩漢에 버금갔으나 어진 군주가 이와 같이 드문 것은 어째서인가?
得之以兵力하고 守之以智術이라
당나라는 병력으로써 천하를 얻고 지혜와 꾀로써 이를 지켰다.
知仁義爲美慕하야 而行之其淺者 則文皇矣어니와 若夫躬履聖人之道하고 希跡先王之治 雖文皇이라도 亦未足與議也
인의仁義가 아름답다는 것을 알아서 사모하여 얕게(조금) 행한 것은 문황文皇(太宗)이었으니, 몸소 성인聖人를 행하고 선왕先王의 정치를 따르기를 바라는 것으로 말하면 비록 문황文皇이라 해도 함께 의논할 수가 없다.
雖至於斗米數錢하고 外戶不閉하고 四夷賓服하야 號稱太平하며 傳祚二十하고 享年三百이나 而家國之禍 乃最盛於前代焉하니 豈無所自哉
그러므로 비록 쌀 한 말의 값이 몇 전에 불과하고 도둑이 없어 바깥문을 닫지 않으며, 사방의 오랑캐들이 복종하여 태평성세라고 일컬어지고 국조國祚를 전한 군주가 20명이고 나라를 누린 햇수가 300년에 이르렀으나 집안과 나라의 화가 마침내 전대前代에 비하여 가장 성하였으니, 어찌 연유된 바가 없겠는가?
文皇 弑兄殺弟하고 滅其十子注+[頭註]綱目及資治唐書本紀 竝不見하니 未詳이라 하니 非爲天下除害也 一身之計爾
문황文皇이 형을 시해하고 아우를 죽이며 열 명의 아들을 멸망시켰으니,注+[頭註]태종太宗이 열 명의 아들을 멸망시킨 일은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과 《자치통감資治通鑑》, 《당서唐書》 〈태종본기太宗本紀〉에 모두 보이지 않으니, 미상이다. 이것은 천하를 위하여 해로운 자들을 제거한 것이 아니요, 자기 한 몸을 위한 계책일 뿐이었다.
他日宗枝竝罹戕毒注+[頭註]見三十九卷하니라 하니 出乎爾者反乎爾 天理之必然者也
후일에 종손宗孫지손支孫이 함께 해독에 걸렸으니,注+[頭註]후일 종손宗孫지손支孫이 함께 해독에 걸린 일은 39권 주서종실誅鋤宗室에 보인다. 너에게서 나온 것이 너에게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필연적인 천리天理이다.
是故 古之王者 必修身齊家然後 治國平天下하니 身之不修하고 顧欲以威勢機詐 禽制百千萬人하야 使必我之報而不敢動이면 其可哉
이 때문에 옛날의 훌륭한 왕자王者들은 반드시 몸을 닦고 집을 가지런히 한 뒤에야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하였으니, 몸이 닦여지지 않고 다만 위세와 기지機智와 속임수로써 백천만 명을 사로잡고 제재하여 저들로 하여금 반드시 나에게 은혜를 갚게 하여 감히 움직이지 못하게 하려고 한다면 어찌 될 수 있겠는가.
文皇 誠以堯舜文王爲師 則其道必始於父子兄弟夫婦之間하야 不至於慙德愧行之多 而其治必臻於敎化之行, 風俗之美하야 而無家法陵遲하야 爲人魚肉之患矣리라
문황文皇이 진실로 문왕文王을 스승으로 삼았다면 그 도가 반드시 부자‧형제‧부부의 사이에서 시작되어 부끄러운 덕과 부끄러운 행실이 많은 데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요, 그 다스림이 반드시 교화가 행해지고 풍속이 아름다움에 이르러서 가법家法이 침체하여 남에게 어육魚肉이 되는 근심이 없었을 것이다.”
右唐 二十一帝 二百八十九年이라
이상 나라는 21명의 황제에 역년이 289년이었다.
范祖禹曰
범조우范祖禹가 말하였다.
唐自高祖取隋 五年而四方底平하고 九年而太宗立하야 幾於三代
나라는 고조高祖나라를 차지한 것으로부터 5년 만에 사방이 평정되었고, 9년 만에 태종太宗이 즉위하여 정관貞觀의 다스림이 거의 삼대三代에 가까웠다.
然一傳而有武氏之篡하야 國命中絶 二十餘年이요 中睿 享國日淺하야 朝廷濁亂注+[頭註]中宗爲韋后所制하야 武氏復振하니라 睿宗 因其子之功하고 在位不久하야 無可稱者하니라 이라
그러나 한 번 전해짐에 무씨武氏의 찬탈이 있어서 국가의 운명이 중도에 끊어진 것이 20여 년이었고, 중종中宗예종睿宗은 나라를 누린 날짜가 일천日淺하여 조정이 혼탁하고 어지러웠다.注+[頭註]중종中宗위후韋后에게 제압당하여 무씨武氏가 다시 위세를 떨쳤다. 예종睿宗은 아들(玄宗)의 공을 이어받았고 재위한 지가 오래지 않아서 칭찬할 만한 것이 없다.
明皇 以兵取而後得之注+[頭註]斬韋后及安樂公主하니 事見三十九卷庚戌年 하야 開元之治 幾於正觀이나 而終之以天寶之亂하야 唐室遂微하고 肅宗以後 無可稱者
명황明皇(玄宗)은 병력으로 취한 뒤에 제위帝位를 얻어서注+[頭註]현종玄宗(李隆基)이 위후韋后안락공주安樂公主를 베어 죽였으니, 이에 대한 일은 39 경술년庚戌年(710)에 보인다. 개원開元의 다스림이 정관貞觀에 가까웠으나 끝내 천보天寶의 혼란으로 끝마쳐 나라가 마침내 미약해졌고, 숙종肅宗 이후로는 일컬을 만한 것이 없다.
憲宗元和之政 號爲中興이나 而晩節不終하야 身且不保하니 凡唐之世 治日 如此其少하고 亂日 如彼其多也
헌종憲宗원화元和 연간의 정사는 중흥中興하였다고 호칭하지만 말년에 제대로 끝마치지 못하여 자기 몸도 보존하지 못하였으니, 무릇 나라 시대에 다스려진 날이 이와 같이 적고 혼란한 날이 저와 같이 많았다.
昔三代之君 莫不修身齊家以正天下어늘 而唐之人主 起兵而誅其親者 謂之定內難이라하고 偪父而奪其位者 謂之受內禪이라하니
옛날 삼대三代의 군주들은 몸을 닦고 집안을 가지런히 하여 천하를 바로잡지 않은 사람이 없었는데, 나라의 군주들은 군대를 일으켜 친족을 죽인 자를 일러 내란을 평정했다고 말하고, 아버지를 핍박하여 황제의 지위를 빼앗은 자를 일러 내선內禪을 받았다고 말하였다.
此其閨門無法하야 不足以正天下하니 亂之大者也
이는 규문閨門에 법도가 없어서 천하를 바로잡지 못한 것이니, 혼란 중에 큰 것이다.
其治安之久者 不過數十年이라 或變生於內하고 或亂作於外하야 未有內外無患하야 承平百年者也
나라를 오랫동안 편안하게 다스린 자도 수십 년을 넘지 못하였으니, 혹은 변란이 안에서 생기거나 혹은 난리가 밖에서 일어나서 내외가 아무 근심 없이 백년 동안 태평을 누린 자가 있지 않았다.
揚雄曰 陰不極則陽不生이요 亂不極則德不形이라하니 唐室之亂 (及)[極]于五代하야 而天祚有宋하야
양웅揚雄이 말하기를 ‘음이 지극하지 않으면 양이 생겨나지 않고, 혼란이 지극하지 않으면 덕이 드러나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니, 나라의 혼란이 오대시대五代時代에 극에 이르자, 하늘이 우리 나라를 도와주셨다.
太祖皇帝注+[頭註]姓趙氏 諱匡胤이니 晉三家趙籍之後 順天人之心하야 兵不血刃하고 市不易肆注+[頭註]陳物處曰肆 하야 而天下定하니 神武所臨 海內有截注+[頭註] 整齊也 이라
그리하여 태조황제太祖皇帝(趙匡胤)가注+[頭註]태조황제太祖皇帝는 성이 조씨趙氏이고 이름이 광윤匡胤이니, 나라 삼가三家조적趙籍의 후손이다. 하늘과 사람들의 마음을 순히 따라서 병사들은 칼날에 피를 묻히지 않고 시장에서는 평소와 다름없이 교역하여注+[頭註]시장에 물건을 진열한 곳을 (가게)라 한다. 천하가 평정되니, 신무神武로 임어함에 온 천하가 정돈되었다.注+[頭註]은 정돈되고 가지런한 것이다.
繼以{無}太宗注+[頭註]諱炅이니 太祖母弟 文治하고 四宗注+[頭註]太宗之子眞宗恒, 眞宗之子仁宗禎, 仁宗從兄濮王之子英宗曙, 英宗之子神宗頊이라 守成하야 太平百有餘年하니 雖三代之盛이라도 未有如此其久者也
뒤이어 태종太宗注+[頭註]태종太宗이니, 태조太祖동모제同母弟이다. 문치文治를 하고 사종四宗注+[頭註]사종四宗태종太宗의 아들인 진종眞宗 조항趙恒, 진종眞宗의 아들인 인종仁宗 조정趙禎, 인종仁宗종형從兄복왕濮王의 아들 영종英宗 조서趙曙, 영종英宗의 아들인 신종神宗 조욱趙頊이다. 수성守成을 하여 백여 년 동안 태평을 누렸으니, 비록 삼대三代의 융성함이라도 이와 같이 오랜 적은 있지 않다.
其取之也 雖無以遠過於前代 其守也 則不愧於三王이라
우리 나라가 천하를 취한 것은 비록 전대보다 크게 뛰어난 점이 없었지만 천하를 지킨 것은 삼왕三王에게 부끄럽지 않다.
內則家道正而人倫明하야 其養民也仁하고 其奉己也儉하야 德澤從厚하고 刑罰從薄하며 外則縣之政 聽於令하고 郡之政 聽於守하며 守之權 歸於按察하고 按察之權 歸於朝廷하야 上下相維하고 輕重相制하야
안으로는 가도家道가 바르고 인륜人倫이 밝아져서 백성을 기르는 것은 인자하였고 자기 몸을 받드는 것은 검소하여, 덕택은 후함을 따르고 형벌은 박함을 따랐으며, 밖으로는 의 정사를 현령縣令에게 다스리게 하고 의 정사를 군수郡守에게 다스리게 하며 군수郡守의 권한이 안찰사按察使에게 돌아가고 안찰사按察使의 권한이 조정으로 돌아가서 상하上下가 서로 유지하고 경중輕重이 서로 제재하게 하였다.
藩鎭 無擅兵之勢하고 郡縣 無專殺之威하야 士自一命以上으로 刑辱不及也
그리하여 번진藩鎭에서는 군대를 마음대로 동원하는 권력이 없고 군현郡縣에서는 마음대로 죽이는 위엄이 없어서 일명一命 이상의 선비로부터는 형벌과 욕됨이 미치지 않았다.
無大臣之誅하고 施及群生하야 功利無窮하니 校(較)之唐世하면 天壤不侔
그러므로 대신大臣이 주벌당함이 없었고 이것이 여러 생민生民들에게까지 미쳐서 공리功利가 무궁하였으니, 나라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처럼 다르다.
夫唐之已事如彼하고 祖宗之成效如此하니 然則今當何監
나라의 이미 지나간 일이 저와 같고, 우리(宋나라) 조종祖宗이 이루어놓은 효과가 이와 같으니, 그렇다면 지금 마땅히 무엇을 거울로 삼아야 하겠는가?
不在唐乎
나라에 있지 않겠는가.
今當何法
지금 마땅히 무엇을 법으로 삼아야 하겠는가?
不在祖宗乎
우리 조종祖宗에게 있지 않겠는가.
夫惟取監於唐하고 取法於祖宗이면 則永世保民之道也니라
오직 나라에서 감계鑑戒를 취하고 우리 조종祖宗에게서 법을 취한다면 영세토록 백성을 보존하는 방법일 것이다.”
역주
역주1 : 삼
역주2 太平公主 : 당나라 高宗과 則天武后의 딸로, 則天武后가 자신을 닮았다 하여 특별히 총애하였다. 韋氏 일파의 주살과 睿宗의 즉위에 공이 있어서 권력을 마음대로 휘둘렀는데, 竇懷貞‧岑羲‧蕭至忠‧崔湜 등과 함께 태자이던 玄宗의 廢立을 모의하였으나 일이 발각되어 태자에 의해 蕭至忠과 岑羲가 伏誅되자 南山으로 들어가 숨었다가 사흘 만에 나와서 집에서 賜死되었다.
역주3 : 퍅
역주4 寶曆 : 당나라 敬宗의 연호이다.
역주5 牛頭阿旁 : 불교에서 말하는 지옥의 鬼卒 이름이다.
역주6 誅鉏宗室 : 則天武后가 戊子年(688)에 韓王 李元嘉와 霍王 李元軌, 魯王 李靈夔를 죽였으니, 이들은 모두 高祖의 아들이다. 越王 李貞은 太宗의 아들이고, 黃公 李譔은 李元嘉의 아들이고, 江都王 李緖는 李元軌의 아들이고, 范陽王 李藹는 李靈夔의 아들이고, 瑯琊王 李沖은 李貞의 아들인데, 이들도 모두 죽였다. 또 庚寅年(690)에 南安王 李穎 등 열한 명을 죽였고, 또 太宗의 아들 紀王 李愼 등 여덟 아들이 서로 이어서 죽임을 당하였으며, 또 鄭王 李璥 등 여섯 명을 죽였다. 또 庚寅年에 淮南王 李安顥 등 열두 명과 옛 태자 李賢의 아들 두 명을 죽이니, 이에 당나라의 宗室이 거의 다하였으며 어리고 약한 자들도 嶺南에 유배 보냈다.
역주7 正觀之治 : 正觀은 唐 太宗의 연호인 貞觀을 가리킨다. 宋나라 仁宗의 휘가 禎이므로 貞을 피휘하였는바, 禎과 음이 유사한 徵은 證으로, 貞은 正으로 바꿔 썼다. 그러므로 貞觀을 正觀이라 한 것이다.

통감절요(9)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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