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通鑑節要(5)

통감절요(5)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통감절요(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庚子]太康元年이라
태강太康 원년元年(경자 280)
正月 杜預 向江陵하고 王渾 出橫江하야 攻吳鎭, 戍注+[釋義] 守邊也하니 所向皆克이라
정월에 두예杜預강릉江陵으로 향하고 왕혼王渾횡강橫江으로 출동하여 나라 (변방의 요새)注+[釋義]는 변방을 지키는 것이다. 를 공격하니, 향하는 곳마다 모두 이겼다.
吳人 於江注+[釋義] 水渚有石이라要害之處 竝以鐵鎖橫截之하고 又作鐵注+[釋義] 鋒芒銳者하니 丈餘 暗置江中하야 以逆拒舟艦이러니
나라 사람이 장강長江의 자갈이 깔린 여울注+[釋義]은 물가에 돌이 있는 것이다.의 요해처를 모두 쇠사슬로 가로막고, 또 길이가 한 길이 넘는 쇠몽둥이注+[釋義]는 끝이 뾰족한 것이다. 를 만들어서 몰래 강물 속에 설치하여 주함舟艦을 대비하였다.
作大注+[釋義] 編竹爲之하니 簟筏也數十하니 百餘步 縛草爲人하야 被甲持杖하고 令善水者 以筏先行이라가 遇鐵錐 錐輒注+[釋義] 置也而去하고 又作大炬하니 十餘丈이요 大數十圍 灌以麻油하야 在船前이라가 遇鎖 然(燃)炬燒之하니 須臾 融液注+[釋義] 焮氣上出也 流膏也斷絶이라
왕준王濬이 넓이가 사방 백여 보쯤 되는 큰 뗏목注+[釋義]은 대나무를 엮어 만든 것이니, 뗏목이다. 수십 척을 만들어서 풀을 묶어 인형을 만들어 갑옷을 입히고 무기를 쥐게 하고는 헤엄을 잘 치는 자로 하여금 뗏목을 타고 먼저 가다가 쇠몽둥이가 있는 곳에 이르면 몽둥이가 그때마다 뗏목에 걸리게注+[釋義]은 둠이다. 하여 제거하였으며, 또 길이가 십여 이고 크기가 수십 나 되는 큰 횃불을 만들어 여기에 삼씨기름을 부어 선단船團 앞에 놓아두었다가 쇠사슬을 쳐 놓은 곳에 이르면 횃불에 불을 붙여 태우니, 삽시간에 쇠사슬이 녹아 끊어졌다.注+[釋義]은 뜨거운 기운이 위로 나오는 것이고, 은 녹아 흘러내리는 것이다.
於是 船無所礙러라
이에 배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없어졌다.
庚申 克西陵하고 壬戌 克荊門注+[釋義]今江陵府荊門州 漢之南郡 當陽, 編都二縣 皆荊門地 有荊門山 在夷陵縣江南岸하니 其山對起如門하고 上合下開하야 與江北岸虎牙山相對하니라, 夷道二城하다
경신일庚申日(3일)에 왕준王濬서릉西陵을 함락하고, 임술일壬戌日(5일)에 형문荊門注+[釋義]형문荊門은 지금의 강릉부江陵府 형문주荊門州이니, 나라 남군南郡당양當陽편도編都 두 현은 모두 형문荊門 땅이다. 형문산荊門山이릉현夷陵縣 남안南岸에 있으니, 산이 마주 보고 우뚝 솟아 문과 같으며, 위는 합하고 아래는 열려서 북안北岸호아산虎牙山과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이도夷道 두 성을 함락하였다.
杜預遣(衙)[牙]門注+[附註]古者 軍行有牙하니 尊者所在러니 後人 因以所治爲(衙)[牙]하고 曰(衙)[牙]門者 謂牙之門也 韻會 旗名이니 以象牙 飾其旗竿하야 立於帳前하고 謂之牙門이라周旨等하야 帥騎八百하고 汎船夜渡江하야 襲樂鄕하고 多張旗幟하고 起火巴山注+[釋義]在歸州巴東縣이라하니
두예杜預아문牙門注+[附註]옛날에 군대가 출동할 때에는 아기牙旗가 있었으니 〈아기牙旗를 세워〉 높은 분이 거처하는 곳으로 삼았는데, 후인後人들이 인하여 일을 다스리는 곳을 라 하고 아문牙門이라 한 것은 아기牙旗를 세운 군문軍門을 이른다. 《운회韻會》에 “의 이름이니 상아로 깃대를 장식하여 휘장 앞에 세우고 이것을 아문牙門이라 한다.” 하였다. 주지周旨 등을 보내어 기병 800명을 거느리고 배를 타고 밤에 강을 건너 낙향樂鄕을 습격하여 깃발을 많이 진열하고 파산巴山注+[釋義]파산巴山귀주歸州 파동현巴東縣에 있다. 에 불을 놓으니,
吳都督孫歆 懼曰 北來諸軍 乃飛渡江라하더라
나라 도독都督 손흠孫歆이 두려워하며 말하기를 “북쪽에서 온 여러 군대가 마침내 나는 것처럼 강을 건넜다.” 하였다.
乙丑 杜預進攻江陵克之하니
을축일乙丑日(8일)에 두예杜預강릉江陵으로 진격進擊하여 함락시켰다.
於是 沅, 湘注+[釋義]沅水 出象郡潭城西하야 (都)[東]注于江하야 合洞庭中하고 湘水 出零陵郡始安縣陽海山하야 東入洞庭下以南으로 接于交廣注+[釋義]交廣 卽今廣州也 州郡 皆望風送印綬어늘 預杖節稱詔而綏撫之하다
이에 원수沅水상수湘水注+[釋義]원수沅水상군象郡 담성潭城 서쪽에서 나와 동쪽으로 양자강揚子江으로 들어가서 동정호洞庭湖 가운데에서 합류하고, 상수湘水영릉군零陵郡 시안현始安縣 양해산陽海山에서 나와 동쪽으로 동정호洞庭湖 아래로 들어간다. 이남으로부터 광주廣州注+[釋義]교광交廣은 바로 지금의 광주廣州이다. 에 이르기까지 주군州郡들이 모두 소문만 듣고도 투항하여 인수印綬를 보내오니, 두예杜預을 잡고 왕명王命이라 칭하며 그들을 편안히 위무하였다.
杜預與衆軍會議할새 或曰 百年之寇 未可盡克이니
두예杜預가 여러 군사들과 모여서 의논할 적에 혹자가 말하기를 “백년의 역사를 지닌 오랑캐를 전부 이길 수는 없습니다.
方春水生하야 難於久駐 宜候來冬하야 更爲大擧라하야늘 預曰 昔 樂毅濟西注+[原註] 借也[頭註]樂毅 燕將也 見一卷丙子年이라一戰하야 以幷彊齊하니
현재 봄물이 불어나서 오래 주둔하기가 어려우니, 겨울을 기다려서 다시 크게 쳐들어와야 합니다.” 하니, 두예杜預가 말하기를 “옛날 악의樂毅제서濟西일전一戰을 빌려서注+[原註]藉는 빌림이다.[頭註]樂毅는 나라 장수이니, 앞의 1권 병자년조丙子年條(B.C.285)에 보인다. 강한 나라를 겸병하였다.
今兵威已振하야 譬如破竹이라 數節之後에는 皆迎刃而解하야 無復着手處也라하고指授群帥方略하고 徑造注+[頭註] 進也建業하다
지금 우리 군대의 위엄이 이미 떨쳐져서 비유하면 대나무를 쪼개는 것과 같으니, 몇 마디를 쪼갠 뒤에는 그 나머지는 모두 칼날이 닿는 대로 저절로 쪼개져서 다시는 손쓸 필요가 없는 것과 같다.” 하고는 마침내 여러 장수들에게 방략方略을 지시하고 곧바로 건업建業(建康)으로 나아갔다.注+[頭註]는 나아감이다.
吳主使丞相張悌等으로 帥衆三萬하야 渡江逆戰이라가 大敗하다
나라 군주가 승상丞相 장제張悌 등으로 하여금 3만 명의 병력을 거느리고 강을 건너 적을 맞이하여 싸우게 하였는데, 대패하였다.
王濬 至西陵하니 杜預與之書曰
왕준王濬서릉西陵에 이르자, 두예杜預가 그에게 편지를 보내 이르기를
足下旣摧其西藩하니 便當徑取建業하야 討累世之逋寇하고 釋吳人於塗炭하고 振旅注+[頭註] 止也 言戰罷而止其衆以入也還都 亦曠世一事注+[頭註]言歷世所曠見之事也니라
족하足下가 이미 적의 서쪽 울타리(西陵)를 꺾었으니, 마땅히 곧바로 건업建業을 취하여 여러 대를 두고 멀리 도망해 있던 도둑을 토벌하고 나라 사람들을 도탄에서 구출한 다음 군대를 정돈하여注+[頭註]은 그침이니, 전쟁이 끝나고 군사를 거두어 들어오는 것을 말한다. 도성으로 돌아온다면 이 또한 세상에 드문 훌륭한 한 가지 일注+[頭註]역대에 보기 드문 일을 말한다. 일 것이다.” 하니,
大悅注+[附註] 詔濬下建平하야 受杜預節度하고 至建業하야 受王渾節度러니 濬至西陵한대 預曰 已得建平이면 則威名已著하니 不宜受制於我라하고 遂與書曰 云云하니 大悅하니라하야 自武昌順流하야 徑趣(趨)建業하다
왕준王濬이 크게 기뻐하여注+[附註]처음에 황제가 왕준王濬에게 명하여 건평建平을 함락시키고 나서 두예杜預절도節度(지휘)를 받게 하고, 건업建業에 이르러서는 왕혼王渾절도節度를 받게 하였는데, 왕준王濬서릉西陵에 이르자 두예杜預가 말하기를 “이미 건평建平을 얻었으면 위엄과 명망이 이미 드러난 것이니, 나에게 통제를 받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 하고는 마침내 편지를 보내어 이리이리 말하니, 왕준王濬이 크게 기뻐하였다. 무창武昌으로부터 강물을 따라 곧바로 건업建業으로 진출하였다.
吳主遣游擊將軍張象하야 帥舟師萬人하야 禦之러니 象衆 望旗而降이라
나라 군주가 유격장군游擊將軍 장상張象을 보내어 주사舟師(水軍) 만 명을 거느리고 막게 하였는데, 장상張象의 무리가 적의 깃발만 바라보고도 투항하였다.
兵甲滿江하고 旌旗燭天注+[頭註] 王濬傳 作蜀이라하야 威勢甚盛이어늘 吳人 大懼하야 分遣使者하야 奉書於渾, 濬, 伷注+[頭註]王渾, 王濬, 琅琊王伷하야 以請降하다
왕준王濬의 병기와 갑옷이 강에 가득하고 깃발이 하늘을 찔러注+[頭註]은 〈왕준전王濬傳〉에 으로 되어 있다. 위세가 매우 대단하니, 나라 사람들이 크게 두려워하여 사자使者를 나누어 보내어 왕혼王渾왕준王濬낭야왕琅琊王 사마주司馬伷注+[頭註]왕혼王渾왕준王濬낭야왕琅琊王 사마주司馬伷이다. 에게 항복 문서를 바치고 항복할 것을 청하였다.
壬寅 王濬 舟師過三山注+[釋義]太平州繁昌縣東北四十里 有三山磯하니 下流 去(無)[蕪]湖縣二十五里할새 王渾 遣信要濬注+[頭註] 卽信使 與邀通이라하야 暫過論事注+[頭註]詔王濬하야 受王渾節度어늘 而惡其不受하고 且忌先其功也 欲留之한대 擧帆直指建業하고 報曰 風利하야 不得泊也라하니라
임인일壬寅日(3월 15일)에 왕준王濬수군水軍삼산三山注+[釋義]태평주太平州 번창현繁昌縣 동북쪽으로 40리 지점에 삼산기三山磯가 있으니, 하류下流무호현蕪湖縣에서 25리 떨어져 있다. 을 지나갈 때에 왕혼王渾왕준王濬에게 사자使者를 보내어注+[頭註]은 곧 소식을 전달하는 사자使者이고, 와 통한다. 잠시 들러 일을 의논하자고 하였는데,注+[頭註]황제가 왕준王濬에게 명하여 왕혼王渾절도節度(지휘)를 받게 하였는데, 왕혼王渾왕준王濬이 자신의 지휘를 받지 않음을 미워하였고, 또 왕준王濬의 공이 자기보다 앞설까 꺼렸기 때문에 왕준王濬을 지체시키고자 한 것이다. 왕준王濬이 돛을 올려 곧장 건업建業으로 향하고는 답하기를 “바람의 기세가 빨라서 배를 멈출 수가 없다.” 하였다.
是日 戎卒八萬이요 方舟百里
이날 왕준王濬은 병력이 8만 명이고 배들이 백 리에 길게 뻗쳐 있었다.
入于石頭注+[釋義] 群呼也 石頭 城名이니 在金陵하니라하니 吳主皓 面縛輿櫬注+[釋義]注見漢帝禪炎興元年注하니라[頭註]輿 共擧也 空棺也 輿棺從之者 示其將受死하고 詣軍門降하다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며 석두성石頭城에 들어가니,注+[釋義]는 여럿이 함성을 지르는 것이다. 석두石頭의 이름이니 금릉金陵에 있다. 나라 군주 손호孫皓가 두 손을 뒤로 묶고 얼굴은 앞을 향하고서 관을 수레에 싣고注+[釋義]面縛輿櫬은 촉한蜀漢 제선帝禪 염흥炎興 원년元年(263)의 에 보인다.[頭註]輿는 함께 드는 것이고 은 빈 관이니, 빈 관을 함께 들고 따라가는 것은 장차 죽음을 당할 것임을 보이는 것이다. 군문軍門에 나와서 항복하였다.
右吳 四主 共五十九年이라
이상 나라는 네 군주에 모두 59년이다.
[史略 史評]史斷曰
[史略 사평史評]史斷에 말하였다.
吳自孫堅으로 始擧兵於江東하야 破張角, 하니 勇鷙剛果 當時鮮及이라
나라는 손견孫堅으로부터 강동江東에서 처음 군대를 일으켜 장각張角을 격파하고 구성區星을 주벌하니, 용맹함과 과단성이 당시에 그를 따라갈 자가 없었다.
觀其하고 하며 汛掃陵寢하고 平塞發掘하니 可謂壯矣러니
살펴보건대 장온張溫을 인도하여 동탁董卓을 죽이려 하고 화친和親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능침陵寢을 깨끗이 소제하고 발굴發掘한 것을 메워서 평평하게 하였으니, 훌륭하다고 이를 만하였다.
其後 爲善不終하야 受袁術所使하야 以擊劉表라가 卒斃於矢下하야 不死於勤王而死於助桀하니 惜哉
그러나 그 뒤에 끝을 잘 마치지 못하여 원술袁術의 사주를 받고 유표劉表를 공격하다가 마침내 싸움터에서 죽어서 왕실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데에 죽지 않고 걸왕桀王을 돕다가 죽었으니, 애석하다.
孫策 以童子 〈提〉一旅之衆하야 揮馬箠以下江東한대
손책孫策동자童子로서 1(500명)의 군대를 이끌고 말채찍을 휘둘러 강동江東을 함락시켰다.
耆儒宿將 狼狽失據하야 開地千里하니 眞奇才也
그러자 늙은 선비와 경험이 풍부한 장수들이 낭패하고 거점을 잃어서 땅을 천 리나 개척하였으니, 참으로 기재奇才였다.
이나 輕躁好殺하야 卒殞其身이라
그러나 경솔하고 조급해서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여 마침내 자기 몸을 죽였다.
孫權 席父兄之烈하고 師友忠賢하야 以成前志하고 赤壁之役 決志定策하야 以摧大敵하니 非明而有勇이면 能若是乎
손권孫權부형父兄의 공렬을 밑바탕으로 삼고는 충성스럽고 어진 이를 스승 삼고 벗 삼아 전대前代의 뜻을 이룩하였으며, 적벽赤壁의 전투에서 굳게 마음 먹고 계책을 정하여 큰 적(曹操)을 꺾었으니, 총명하고 용맹이 있는 자가 아니라면 이와 같이 할 수 있었겠는가.
奄有荊揚하고 薄(迫)於南海하야 傳祚累世 宜矣로다
곧바로 형주荊州양주揚州 지역을 소유하고 남해南海에 이르러서 국운國運을 여러 대에 전한 것이 당연하다.
惜乎
그러나 애석하다.
見義不明하고 守節不謹하야 今年 臣于操하고 明年 降于魏하며 今年 受操之命하야 領荊州하고 明年 受魏之封하야 爲吳王하야 不能討賊而甘心助賊하고 不能仗義而甘心不義하니 其得保一隅 幸也로다
를 봄이 분명하지 못하고 절개를 지킴이 신중하지 못하여, 금년에는 조조曹操에게 신하 노릇 하고 다음 해에는 나라에 항복하였으며 금년에는 조조曹操의 명령을 받아 형주荊州를 영솔하고 다음 해에는 나라의 함을 받고 오왕吳王이 되어서, 적을 토벌하지 못하고 기꺼이 을 도와주며 를 지키지 못하고 불의不義를 마음에 달게 여겼으니, 강동江東 한 모퉁이를 보전한 것만 해도 다행이다.
孫亮 以童孺之資 乏賢哲之輔하야 輕淺果銳하고 爲謀太疎하니 其替位不終 理所必然이요
손량孫亮은 어린아이의 자질로 현철賢哲의 보좌가 없어서, 경솔하고 얕고 과감하고 날카로우며 도모하는 것이 너무 엉성하니, 왕위를 내주고 끝마치지 못함은 이치상 필연적인 것이었다.
하고 不能拔進賢才하야 改絃易轍하니 雖尙辭好學이나 何捄亂亡이리오
손휴孫休는 예전의 친애함과 지난날의 은혜로 복양흥濮陽興장포張布를 임용하였으며 현재賢才를 발탁 등용하여 예악禮樂제도制度를 고치지 못하였으니, 비록 문장文章을 숭상하고 학문學問을 좋아하였으나 어찌 국가의 혼란과 멸망을 구제할 수 있었겠는가.
孫皓 天性凶頑하고 肆行殘虐하야 忠諫者誅하고 讒諛者進하야 公卿大臣 頸血相濺하고 虐用其民하야 窮奢溢侈하니 欲求不亡이나 得乎
손호孫皓천성天性이 흉악하며 잔학殘虐한 짓을 제멋대로 행하여 충성스럽게 간하는 자를 죽이고 아첨하는 자를 올려 주어서 공경公卿대신大臣이 목의 피를 서로 뿌렸으며 백성들을 학대하여 극도로 사치하였으니, 망하지 않기를 바라나 될 수 있었겠는가.
迹吳之爲國하면 自據一方으로 旣無存漢之心하고 又無呑魏之謀하야 上不係於漢祚之存亡하고 下無關於曹魏之强弱하니 尙奚論焉이리오
나라가 나라를 다스린 자취를 살펴보면 한쪽 지방을 점거한 뒤로부터 이미 나라를 보전하려는 마음이 없었고 또 나라를 병탄倂呑하려는 계책도 없어서, 위로는 나라의 존망存亡에 관계치 않고 아래로는 조위曹魏강약强弱에 상관하지 않았으니, 오히려 어찌 논할 것이 있겠는가.
君子謂曹氏爲漢賊이요 不知孫氏眞漢賊耳
군자君子가 이르기를 ‘조씨曹氏나라의 이었지만 손씨孫氏야말로 참으로 나라의 임을 알지 못하였다.
先主孔明 正做得好時라가 又爲其壞了라하니 嗚呼
그러므로 선주先主(劉備)와 제갈공명諸葛孔明이 마침 좋은 기회를 만들었다가 또 이 때문에 무너졌다.’라고 하였으니, 아!
其知言乎인저
진리를 아는 말이라 하겠다.”
歷年圖曰
역년도歷年圖》에 말하였다.
破虜堅 以孤遠之兵으로 決忠憤之志하야 首犯賊鋒하고 深蹂注+[頭註]音柔 踐也洛川하야 汛掃注+[頭註] 音信이니 灑也陵寢하니 有足多者
파로장군破虜將軍 손견孫堅은 고립되고 멀리 떠나온 군대로써 충분忠憤의 뜻을 결단하여 맨 먼저 적의 예봉을 범하고 낙천洛川을 깊이 유린注+[頭註]는 음이 유이니, 짓밟는 것이다. 해서 능침陵寢을 깨끗이 소제注+[頭註]은 음이 신이니, 물을 뿌리는 것이다. 하였으니, 훌륭한 점이 있었다.
討逆注+[頭註]策爲討逆將軍이라 以童子 提一旅注+[頭註]五人爲伍, 五伍爲兩, 四兩爲卒, 五卒爲旅 五百人也 五旅爲師, 五師爲軍이니 萬人也之衆하야 揮馬箠以下江東한대
토역장군討逆將軍 손책孫策注+[頭註]손책孫策토역장군討逆將軍이 되었다. 동자童子로서 1注+[頭註]5명을 라 하고 5이라 하고 4이라 하고 5라 하니 1는 500명이요, 5라 하고 5이라 하니 1은 만 명이다. 의 군대를 이끌고 말채찍을 휘둘러 강동江東을 함락시켰다.
耆儒宿將注+[頭註]宿 素也 狼狽注+[附註] 前則跋其胡하고 退則疐其尾 狼屬이라 又狽前足絶短하야 每行 常駕狼하니 失狼則不能動이라 故世言事乖者 稱狼狽失據하야 開地千里하니 眞英才也
그러자 늙은 선비와 경험이 풍부한 장수注+[頭註]宿이다. 가 낭패注+[附註]은 〈턱 밑에 늘어진 살이 있어서〉 앞으로 가면 턱살이 밟혀 넘어지고 뒤로 가면 꼬리가 밟혀 넘어진다. 의 등속이다. 또 는 앞발이 짧아서 매번 다닐 때마다 항상 을 타고 다니니, 을 잃으면 움직이지 못한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일이 어긋나는 것을 말할 때에 낭패狼狽라고 칭한다. 하고 거점을 잃어서 땅을 천 리나 개척하였으니, 참으로 영재英才였다.
大帝注+[頭註]孫權이라 承父兄之烈하고 師友忠賢하야 以成前志하고 赤壁之役 決策定慮하야 以摧大敵하니 非明而有勇이면 能如是乎
대제大帝 손권孫權注+[頭註]대제大帝손권孫權이다. 부형父兄의 공렬을 이어받고는 충성스럽고 어진 이를 스승 삼고 벗 삼아 전대前代의 뜻을 이룩하였으며, 적벽赤壁의 전투에서 방책을 결정하여 강한 적(曹操)을 꺾었으니, 총명하고 용맹이 있는 자가 아니라면 이와 같이 할 수 있겠는가.
奄有荊揚하야 薄于南海注+[頭註] 迫也 迫近之義하야 傳祚累世 宜矣
곧바로 형주荊州양주揚州 지역을 소유하고 남해南海에 이르러서注+[頭註]은 닥침이니, 매우 가깝다는 뜻이다. 국운國運을 여러 대에 전한 것이 당연하다.
候官, 景帝注+[頭註]候官 亮也 爲候官侯하니 見二十五卷戊寅年會稽王注 景帝 休也 皆明(惠)[慧]敢決하야 有先世之風하고 歸命注+[頭註]皓也 驕愎殘虐 深於桀, 紂하니 求欲不亡이나 得乎
후관후候官侯 손량孫亮경제景帝 손휴孫休注+[頭註]候官 경제景帝:후관候官손량孫亮이니, 후관후候官侯가 된 것이 25권 무인년戊寅年(258) 회계왕會稽王에 보인다. 경제景帝손휴孫休이다. 는 모두 밝고 지혜롭고 과감하게 결단하여 선대先代의 유풍이 있었고, 귀명후歸命侯 손호孫皓注+[頭註]귀명후歸命侯손호孫皓이다. 는 교만하고 괴팍하고 잔악함이 보다도 심하였으니, 망하지 않기를 구하나 될 수 있었겠는가.”
四月 詔賜孫皓爵歸命侯하다
4월에 황제가 명하여 손호孫皓에게 귀명후歸命侯의 작위를 하사하였다.
○ 五月 引見歸命侯皓한대 皓登殿이어늘 帝謂皓曰 朕設此座하야 以待卿 久矣로라 皓曰 臣於南方 亦設此座하야 以待陛下러이다
○ 5월에 귀명후歸命侯 손호孫皓를 인견하였는데, 손호孫皓전각殿閣에 올라와 머리를 조아리자, 황제가 손호孫皓에게 이르기를 “이 이 자리를 마련하고서 을 기다린 지가 오래되었다.” 하니, 손호孫皓가 말하기를 “신도 역시 남방南方에서 이러한 자리를 마련하고서 폐하를 기다렸습니다.” 하였다.
賈充 謂皓曰 聞君在南方하야 鑿人目하고 剝人面皮라하니 此何等刑也
가충賈充손호孫皓에게 이르기를 “듣자하니, 그대가 남방에 있을 적에 사람의 눈을 파내고 사람의 얼굴 가죽을 벗겼다 하니, 이것이 무슨 형벌인가?” 하자,
皓曰 人臣 有弑其君注+[頭註]充弑高貴鄕公髦하니 見上卷庚辰年이라하고 及姦回不忠者 則加此刑耳니라
손호孫皓가 말하기를 “신하로서 자기 군주를 시해하고注+[頭註]가충賈充고귀향공高貴鄕公 조모曹髦를 시해하였으니, 이 사실이 25권 경진년조庚辰年條(260)에 보인다. 간사하여 불충한 자가 있으면 이 형벌을 가했다.” 하니,
黙然甚愧러라
가충賈充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매우 부끄러워하였다.
○ 王濬之入建業也 其明日 王渾 乃濟江하야 以濬不待己至하고 先受孫皓降이라하야 意甚愧忿하야 將攻濬이러니 何攀 勸濬하야 送皓與渾하니 由是 事得解하니라
왕준王濬건업建業으로 들어간 그 다음 날에 왕혼王渾이 마침내 강을 건너와서, 왕준王濬이 자기가 도착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손호孫皓의 항복을 받았다 하여 마음속으로 몹시 부끄러워하고 분히 여겨 장차 왕준王濬을 공격하려 하였는데, 하반何攀왕준王濬에게 권하여 손호孫皓왕혼王渾에게 보내게 하니 이로 말미암아 일의 실마리가 풀렸다.
與濬爭功이라 表濬違詔하고 不受節度注+[頭註]見上論事注하니라라하야 誣以罪狀하고
왕혼王渾왕준王濬과 공을 다툴 때에 왕혼王渾표문表文을 올려 왕준王濬조명詔命을 어기고 절도節度(지휘)를 받지 않았다注+[頭註]왕준王濬왕혼王渾의 지휘를 받지 않은 것은 앞의 ‘논사論事에 보인다. 하여 거짓 죄상을 꾸며 무고誣告하였다.
渾子濟 尙常山公主注+[附註] 奉也 奉事公主也 又尙者 尊也 帝王之女 尊而尙之하야 不敢斥言娶 天子之女曰公主 周制 天子嫁女 不自主하고 使諸侯同姓者主之 故謂之公主 帝姊妹 爲長公主 姑爲大長公主하야 宗黨 强盛이라 有司奏請檻車徵濬이어늘 帝不許하다
왕혼王渾의 아들 왕제王濟상산공주常山公主에게 장가들어注+[附註]상산공주常山公主무제武帝 사마염司馬炎의 딸이다. 은 받듦이니 공주를 받들어 섬긴다는 뜻이요, 또 은 높임이니 제왕帝王의 딸을 높여서 감히 장가든다고 지척指斥하여 말하지 못한 것이다. 천자天子의 딸을 공주公主라 하니, 나라 제도에 천자天子가 딸을 시집보낼 때에 직접 주관하지 않고 동성同姓제후諸侯로 하여금 혼인을 주관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공주公主라 이른 것이다. 제왕帝王의 자매를 장공주長公主라 하고, 고모를 대장공주大長公主라 한다.종당宗黨(친족)이 매우 강성하였는데, 유사有司함거檻車왕준王濬을 소환할 것을 주청하였으나 황제가 허락하지 않았다.
王濬 自以功大어늘 而爲渾父子及黨與 所挫抑이라하야
왕준王濬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공이 큰데도 왕혼王渾 부자父子와 그들의 도당에게 꺾이고 눌린다.’ 하여
每進見 陳其攻伐之勞 及見枉之狀하고 或不勝忿憤하야 徑出不辭호되 帝每容恕之하니라
매번 나아가 황제를 뵐 때마다 자신이 정벌한 공로와 억울한 정상情狀을 아뢰었으며, 때로는 분함을 이기지 못해서 곧바로 나오고 황제에게 하직 인사를 올리지 않았으나 황제가 매번 용서하였다.
益州護軍范通 謂濬曰 卿 功則美矣 然恨所以居美者 未盡善也로다
익주호군益州護軍 범통范通왕준王濬에게 이르기를 “이 공은 훌륭한데 훌륭한 공에 자처하는 방법이 지극히 선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다.
旋旆之日 角巾注+[通鑑要解]以葛爲之하니 居士野人之服也私第하야 口不言平吳之事하고 若有問者어든 輒曰
이 군대를 이끌고 돌아오던 날에 사저私邸로 돌아와서 각건角巾注+[通鑑要解]각건角巾갈포葛布로 만드니, 거사居士야인野人의 복장이다. 을 쓰고 입으로 나라를 평정한 일을 말하지 않고 만일 묻는 자가 있거든 그때마다 말하기를
聖主之德이요 群帥之力이니 老夫何力之有리오하면 藺生 所以屈廉頗也注+[釋義]藺生, 廉頗 事見周赧王三十六年하니라 王渾 能無愧乎
성주聖主이요 여러 장수의 힘이니, 늙은 지아비가 무슨 힘이 있겠는가.’라고 말씀했다면, 이는 옛날 인생藺生(藺相如)이 염파廉頗를 굴복시킨 방법이니,注+[釋義]인생藺生염파廉頗의 일은 난왕赧王 36년조年條(B.C.279)에 보인다. 왕혼王渾이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濬曰 吾始懲鄧艾之事注+[釋義]事見漢帝禪炎興元年하니라하야 懼禍及身하니 不得無言이어니와 其終不能遣諸胸中 是吾褊也注+[釋義] 小也니라
왕준王濬이 말하기를 “내가 처음에 등애鄧艾의 일注+[釋義]등애鄧艾의 일은 촉한蜀漢 제선帝禪 염흥炎興 원년조元年條(263)에 보인다. 을 징계하여 화가 몸에 미칠까 두려워하여 변명하는 말이 없을 수 없었으나 끝내 이것을 가슴속에서 잊어버리지 못함은 나의 도량이 편협한注+[釋義]은 작음이다. 것이다.” 하였다.
時人 咸以濬功重報輕이라하야 爲之憤邑注+[釋義] 懣也 本作悒하니 憂也이어늘
당시 사람들이 모두 왕준王濬은 공로가 큰데 보답이 가볍다 하여 이 때문에 분해 하고 근심하였다.注+[釋義]은 분개하는 것이요, 은 본래 으로 쓰니 근심함이다.
博士秦秀等 上表하야 訟濬之屈한대 帝乃遷濬鎭軍大將軍하다
박사博士 진수秦秀 등이 표문表文을 올려 왕준王濬의 억울함을 말하자, 황제가 마침내 왕준王濬진군대장군鎭軍大將軍으로 승진시켰다.
○ 杜預還襄陽하야 以爲天下雖安이나 忘戰必危라하야 乃勤於講武하고 申嚴戍守하다
두예杜預양양襄陽으로 돌아와 말하기를 “천하가 비록 안정되었으나 전쟁의 대비를 잊으면 반드시 위태로워진다.” 하여 마침내 무예를 강마함에 힘쓰고 변경의 수비를 거듭 엄하게 하였다.
身不跨馬하고 射不穿札注+[釋義]言〈射〉無力也 或云 札 甲也호되用兵制勝 諸將 莫及이러라
두예杜預는 직접 말을 타지 않았으며 활을 쏨에 힘이 없어 화살이 갑옷의 엽편葉片을 뚫지 못하였으나注+[釋義]활을 쏨에 화살이 갑옷을 뚫지 못하였다는 것은 활을 쏨에 힘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은 갑옷이다.” 하였다. 군대를 운용하여 승리하는 것은 제장諸將이 미치지 못하였다.
○ 詔曰 昔在漢末 四海分崩하야 刺史內親民事하고 外領兵馬러니 今天下爲一하니干戈注+[釋義]韜, 戢 皆藏也
에 이르기를 “과거 나라 말기에 온 천하가 분열되어 자사刺史가 안에서는 백성의 일을 직접 처리하고 밖에서는 병마兵馬를 통솔하였는데, 지금은 천하가 통일되었으니 창과 방패를 거두어 깊이 간직注+[釋義]은 모두 감춤이다. 해야 한다.
刺史分職 하야 悉去州郡兵하고 大郡 置武吏百人하고 小郡 五十人하라
자사刺史의 직책을 모두 나라의 고사故事와 같이 하여 주군州郡의 병력을 다 제거하고, 큰 에는 무리武吏 100명, 작은 에는 50명을 두라.” 하였다.
交州牧陶璜 上言호되 州兵 未宜約損하야 以示單虛니이다 僕射山濤 亦言不宜去州郡武備라호되 帝不聽이러니
교주목交州牧 도황陶璜상언上言하기를 “의 병력을 줄여서 미약하고 비어 있음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하였고, 상서복야尙書僕射 산도山濤 또한 주군州郡무비武備를 버려서는 안 된다고 말하였으나 황제가 듣지 않았다.
及永寧注+[通鑑要解]惠帝年號以後 盜賊群起 州郡無備하야 不能禽制注+[頭註] 擒也 言鳥力少하야 可擒捉而取之하야 天下遂大亂하야 如濤所言이라
영녕永寧注+[通鑑要解]영녕永寧나라 혜제惠帝연호年號이다. 이후로 도적들이 떼 지어 일어났는데, 주군州郡무비武備가 없어서 도적들을 사로잡아 제어注+[頭註]은 사로잡는 것이니, 새는 힘이 부족하여 산 채로 잡아서 취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하지 못하니, 천하가 마침내 크게 혼란해져서 산도山濤가 말한 것처럼 되었다.
이나 其後 刺史復兼兵民之政하니 州鎭 愈重矣러라
그러나 뒤에 자사刺史가 다시 군정軍政민정民政을 겸하니, 주진州鎭의 지위가 더욱 중요해졌다.
○ 漢, 魏以來注+[頭註]羌在西方이라 本牧羊人이니 三苗 羌氏之別裔, 胡, 鮮卑注+[釋義]本山名이니 東胡之別種이러니 因退保此山하고 遂以爲號하니라[頭註]其先東胡이니 漢初 爲匈奴所敗하야 保鮮卑山하고 因以爲號하니라降者 多處之塞內諸郡이러니 其後 數因忿恨하야 殺害長吏하야 漸爲民患이라
이래로 강족羌族注+[頭註]서방西方에 있다. 본래 양을 치던 사람이니, 삼묘三苗강씨羌氏별예別裔이다. 호족胡族선비족鮮卑族注+[釋義]鮮卑는 본래 산 이름이니 동호東胡별종別種이었는데, 인하여 물러가 이 산을 확보하고 마침내 칭호로 삼았다.[頭註]선조는 동호東胡이니, 나라 흉노匈奴에게 패배당하여 물러가 선비산鮮卑山을 확보하고 인하여 이로써 칭호를 삼았다. 중에 항복한 자들을 대부분 변방(만리장성) 안의 여러 에 살게 하였는데, 그 후에 여러 차례 마음속에 불만을 품고서 장리長吏를 살해하여 점점 백성들의 근심거리가 되었다.
侍御史郭欽 上疏曰 戎狄注+[釋義] 暴橫也 若犬之獷獷하야 不可附也하야 歷古爲患하니
시어사侍御史 곽흠郭欽이 상소하기를 “융적戎狄이 거칠고 사나워서注+[釋義]은 포악하고 제멋대로 구는 것이요, 은 개처럼 제멋대로 날뛰어서 따르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예로부터 근심이 되었으니,
宜及平吳之威 謀臣猛將之略하야 漸徙內郡雜胡注+[釋義]謂戎狄之在塞內諸郡者 雜居不一이라於邊地하야
나라를 평정한 위엄과 모신謀臣맹장猛將들의 지략을 가지고 내지內地군현郡縣에 있는 여러 오랑캐들注+[釋義]잡호雜胡는 변방 안의 여러 에 있는 오랑캐들이 섞여 살아서 한 종류가 아님을 말한 것이다. 을 차츰 변방으로 옮겨서,
峻四夷出入之防하고 明先王荒服注+[頭註]見下하니 從天子之事之制 萬世之長策也니이다 帝不聽하다
사방 오랑캐들의 출입을 제한하는 방안防岸(禁令)을 엄격하게 하고 선왕先王황복荒服注+[頭註]황복荒服은 설명이 뒤의 ‘요황要荒에 보이니, 천자天子의 일에 종사하는 것이다.을 다스리던 제도를 분명하게 한다면 이는 만대토록 이어질 장구한 계책입니다.” 하였으나 황제가 듣지 않았다.
[新增]養心吳氏曰
[新增]養心吳氏가 말하였다.
觀漢魏居戎於內郡하면 便當知五胡注+[附註]漢劉淵 字元海 匈奴也 漢高以宗女爲公主하야 以妻冒頓故 其子孫 遂冒姓劉氏하니라 後趙石勒 羯也 前燕慕容廆 鮮卑也 前秦苻洪 氐也 後秦姚弋仲 羌也之亂所由始 觀郭欽之疏不行하면 便當知五胡之亂所以不可制也니라
나라와 나라가 오랑캐들을 내지內地군현郡縣에 살게 한 것을 보면 오호五胡注+[附註]나라(五胡十六國의 전조前趙) 유연劉淵원해元海이니 흉노匈奴이다. 나라 고조高祖가 종실의 딸을 공주公主라 하여 묵특冒頓에게 시집보냈기 때문에 그 자손들이 마침내 가탁하여 유씨劉氏으로 삼은 것이다. 후조後趙석륵石勒갈족羯族이고 전연前燕모용외慕容廆선비족鮮卑族이고 전진前秦부홍苻洪저족氐族이고 후진後秦요익중姚弋仲강족羌族이다. 이 생겨난 이유를 알 수 있고, 곽흠郭欽의 상소가 시행되지 않은 것을 보면 오호五胡을 제재할 수 없었던 이유를 알 수 있다.”
역주
역주1 : 적
역주2 : 추
역주3 : 벌
역주4 : 착
역주5 : 착
역주6 : 자
역주7 燭天 : 沖天(하늘 높이 오름)과 같다.
역주8 : 조
역주9 誅區星 : 區星은 長沙 사람으로 1만여 명의 무리를 모아 스스로 將軍이라 칭하고는 城邑을 포위 공격하다가 長沙太守 孫堅에게 격파당하였다.
역주10 導溫戮卓 : 董卓이 邊章의 난을 토벌하다가 功을 세우지 못하자, 황제가 張溫을 보내어 邊章을 토벌하게 하였다. 張溫이 詔書로써 董卓을 불렀는데 응대하는 것이 불손하자 孫堅이 張溫의 귀에 대고 軍法에 따라 참수하자고 하였는데, 張溫이 따르지 않았다.
역주11 不許和親 : 辛未年(191)에 孫堅이 董卓의 장수들을 격파하자, 董卓이 두려워하여 和親할 것을 청하였는데, 孫堅이 말하기를 “내가 너희 三族을 멸하지 않으면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없으니, 마침내 화친을 하겠는가?” 하고 진격하였다. 董卓이 패주하니 孫堅이 마침내 洛陽으로 들어가 여러 陵寢을 수리하였다.
역주12 以宿愛舊恩 任用興布 : 濮陽興의 濮陽은 邑으로 姓을 삼은 것이다. 《陳留風俗傳》에 漢나라에 長沙太守 濮陽逸이 있었다. 吳主 孫休가 會稽에 있을 때 太守로 있던 濮陽興과 깊이 허여하여 서로 친하였는데, 孫休가 즉위하게 되자 濮陽興이 마침내 張布와 함께 모두 신임을 받아 등용되었다.
역주13 宿將 : 素將과 같은 말로, 늙고 공로가 많은 장수, 또는 경험이 많아 군사 지식이 풍부한 장수를 이른다.
역주14 稽顙 : 계상
역주15 (文帝昭)[武帝炎]之女 : 附註에는 常山公主가 文帝 司馬昭의 딸이라고 하였으나, 《晉書》를 살펴보건대 王濟는 武帝 司馬炎의 딸에게 장가들었으므로 이에 근거하여 바로잡았다.
역주16 鄧艾之事 : 三國시대에 魏나라 鄧艾가 蜀을 정벌하자, 蜀漢의 군주인 劉禪이 鄧艾에게 나아가 항복하였다. 鍾會가 이것을 시기하여 武帝에게 鄧艾가 悖逆하다고 모함하자, 武帝가 詔書로 鄧艾를 불러 서울로 오게 해서 衛瓘을 시켜 철수하게 하였다.
역주17 韜戢 : 도집
역주18 皆如漢氏故事 : 漢나라 때에 刺史는 다만 郡縣의 長吏를 살펴 천거할 뿐이요, 軍事는 주관하지 않았다.
역주19 : 광
역주20 要荒 : 요황은 五服 중의 하나인 要服과 荒服으로 먼 지방을 가리킨다. 五服은 甸服‧侯服‧綏服‧要服‧荒服으로, 천자가 직접 통치하는 畿內를 전복이라 하고, 5백 리씩 점점 멀어져 황복에 이른다.

통감절요(5)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