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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3)

통감절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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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戊午]四年이라
건평建平 4년(무오 B.C.3)
二月 駙馬都尉注+[通鑑要解]武帝置하니 掌御馬하니라 副也 非正駕車 皆爲駙馬 魏晉尙公主者加之하니라侍中董賢 得幸於上하야 出則參(驂)乘하고 入御左右하니 賞賜累鉅萬이라 貴震朝廷이러라
2월에 부마도위駙馬都尉注+[通鑑要解]부마도위駙馬都尉무제武帝가 설치하였으니, 어마御馬를 관장하였다. 라는 뜻이니, 정식正式 거가車駕가 아닌 것을 모두 부마駙馬라 칭하였는 바, 위진魏晉 시대에 공주에게 장가든 자에게 이 벼슬을 가하였다. 시중侍中(宦官) 동현董賢에게 총애를 얻어서 나가면 참승參乘을 하고 들어오면 좌우左右에서 모시니, 으로 하사받은 것이 여러 거만鉅萬이어서 귀함이 조정에 진동하였다.
〈出佞幸傳〉
- 《한서漢書 영행전佞幸傳》에 나옴 -
○ 匈奴單于上書願朝五年이라
흉노匈奴선우單于가 글을 올려 조회할 것을 원한 지가 5년이었다.
公卿 以爲虛費府注+[釋義] 它莽反이요 又音奴 物所聚也 藏金帛之所也이니 可且勿許니이다
공경公卿들이 말하기를 “국고國庫注+[釋義]은 음이 它莽反(탕)이고, 또 음이 노이다. 는 물건을 모아 놓는 곳이고, 은 금과 비단을 보관하는 곳이다. 만 허비하니 우선 허락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였다.
揚雄 上書諫曰
이에 양웅揚雄이 글을 올려 간하였다.
臣聞六經之治 貴於未亂이요 兵家之勝 貴於未戰이라하니이다
“신이 듣건대 육경六經의 다스림은 혼란하기 전에 다스리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병가兵家의 승리는 싸우기 전에 이기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고 하였습니다.
今單于上書求朝어늘 國家不許而辭之하니 臣愚 以爲漢與匈奴從此隙矣라하노이다
이제 선우單于가 글을 올려 조회하기를 요청하는데 국가에서 허락하지 않고 거절하니, 어리석은 신은 나라와 흉노匈奴가 이로부터 틈이 생길까 염려됩니다.
匈奴 本五帝所不能臣이요 三王所不能制 其不可使隙 明甚이니이다
흉노匈奴는 본래 오제五帝도 신하로 삼지 못하였고 삼왕三王도 제재하지 못하였으니, 틈이 생기게 해서는 안 됨이 매우 분명합니다.
以秦始皇之彊 蒙恬之威로도 然不敢窺西河하야 乃築長城以界之하고 會漢初興 以高祖之威靈 三十萬衆으로도 困於平城하고 高皇后時 匈奴悖慢이어늘 大臣 權書遺之然後 得解하고
나라 시황始皇의 강함과 몽념蒙恬의 위엄으로도 감히 서하西河를 엿보지 못하여 마침내 장성長城을 쌓아서 경계로 삼았고, 마침 나라가 처음 일어남에 고제高帝의 위엄과 30만의 병력으로도 평성平城에서 곤궁하였으며, 고황후高皇后 때에 흉노匈奴가 도리에 어긋나고 오만한 짓을 하였는데 대신大臣들이 권서權書(임시방편으로 둘러댄 글)를 보낸 뒤에야 화해할 수 있었습니다.
及孝文時 匈奴侵暴北邊하야 候騎至雍, 甘泉이라 京師大駭하야 發三將軍하야 屯細柳, 棘門, 霸上하야 以備之라가 數月乃罷하고 孝武卽位 設馬邑之權하야 欲誘匈奴注+[釋義]武帝使馬邑人聶翁一 誘致單于러니 單于疑之而還하니라라가 徒費財勞師하야 一虜 不可得見이어든 況單于之面乎잇가
효문제孝文帝 때에 흉노匈奴가 북쪽 변경을 침략하여 정탐하는 기병이 옹주雍州감천甘泉에 이르자 경사京師가 크게 놀라서 세 장군을 출동하여 세류細柳, 극문棘門, 패상霸上에 주둔시켜 대비한 지 수개월 만에야 비로소 파하였고, 효무제孝武帝가 즉위함에 마읍馬邑의 속임수를 써서 흉노匈奴를 유인하려고 하다가注+[釋義]무제武帝마읍馬邑 사람 섭옹일聶翁一로 하여금 선우單于를 유인하게 하였는데, 선우單于가 의심하고 돌아간 일을 가리킨다. 한갓 재물을 허비하고 군사들을 수고롭게 하기만 해서 한 명의 오랑캐도 볼 수가 없었는데 하물며 선우單于의 얼굴이겠습니까.
其後 深惟社稷之計하고 規恢萬載之策하야 乃大興師數十萬하야 使衛靑, 霍去病操兵 前後十餘年이라
그 뒤에 사직社稷을 위한 계책을 깊이 생각하고 만년萬年의 계책을 계획하고 확대하여 마침내 수십만의 군대를 크게 일으켜 위청衛靑곽거병霍去病으로 하여금 군대를 조련하게 한 지가 전후로 십여 년이었습니다.
於是 浮西河하고 絶大幕注+[釋義] 卽沙漠也 直度曰絶이요 沙土曰幕이라하며 破窴顔注+[釋義]匈奴中山名이라하고 襲王庭注+[頭註]單于無城郭하야 其穹廬前地若庭이라 故云王庭이라하야 窮極其地하야 追犇逐注+[釋義]이라하야 封狼居胥山하고 禪於姑衍하고 以臨瀚海注+[釋義] 如字 北海名이니 在沙漠北이라하니 自是之後 匈奴震怖하야 益求和親이나 然而未肯稱臣也하니이다
이에 서하西河에 배를 띄우고 대막大幕(沙漠)을 횡단하며,注+[釋義]은 바로 사막沙漠이다. 직선으로 횡단하는 것을 이라 하고, 모래흙을 이라 한다. 전안산窴顔山(祁連山)注+[釋義]전안窴顔흉노匈奴 가운데에 있는 산 이름이다. 을 격파하고 왕정王庭(單于가 있는 곳)注+[頭註]선우單于성곽城郭이 없어서 그 집 앞의 땅이 과 같기 때문에 왕정王庭이라 한 것이다.을 습격하여 그들의 땅 끝까지 이르러서 도망하는 자들을 추격하고 패배하는 자들을 쫓아가서注+[釋義]축북逐北는 이에 대한 나라 난왕赧王 31년조年條에 보인다. 낭거서산狼居胥山하고 고연姑衍에서 하며 한해瀚海注+[釋義]은 본자대로 읽는다. 북해北海의 이름이니, 사막의 북쪽에 있다. 에 임하였으니, 이후로 흉노匈奴가 두려워하여 더욱 화친하기를 구하였으나 이라고 칭하려 하지는 않았습니다.
且夫前世 豈樂傾無量之費하고 役無罪之人하야 快心於狼望注+[釋義]匈奴中地名이라之北哉리오마는
전대前代에 어찌 한량없는 경비를 쓰고 죄 없는 백성들을 부역시켜서 낭망狼望注+[釋義]낭망狼望흉노匈奴 가운데에 있는 지명이다. 의 북쪽에서 마음을 유쾌하게 하는 것을 좋아했겠습니까.
以爲不一勞者 不久佚하고 不暫費者 不永寧이라하야
그러나 한 번 수고롭지 않은 자는 오랫동안 편안하지 못하고 잠시 허비하지 않는 자는 오랫동안 편안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是以 忍百萬之師하야 以摧餓虎之喙하고 運府庫之財하야 塡廬山注+[釋義]卽廬朐山也 在匈奴中이라之壑而不悔也하니이다
이 때문에 백만의 군사를 차마 버려서 굶주린 호랑이의 입에 넣고, 부고府庫의 재물을 운반하여 여산廬山注+[釋義]여산廬山은 바로 여구산廬朐山이니, 흉노匈奴 가운데에 있다. 과 같은 골짜기를 메우면서도 후회하지 않은 것입니다.
至本始之初하야 匈奴有桀心注+[頭註] 堅也 言其起立不順이라하야 欲掠烏孫하고 侵公主注+[頭註]武帝元封六年 以宗室女 爲公主하야 嫁烏孫하니라어늘 乃發五將注+[頭註]田廣明, 范明友, 韓增, 趙充國, 田順이라之師十五萬騎하야 以擊之하니 鮮有所獲이요 徒奮揚威武하야 明漢兵若雷風耳
본시本始초년初年에 이르러 흉노匈奴가 건방진 마음注+[頭註]은 견고함이니, 일어서서 순종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이 있어서 오손烏孫을 침략하고 공주公主를 빼앗아 가고자 하자,注+[頭註]무제武帝 원봉元封 6년에 종실宗室의 딸을 공주로 삼아 오손烏孫으로 시집보냈다. 마침내 다섯 장군注+[頭註]다섯 장수는 전광명田廣明범명우范明友한증韓增조충국趙充國전순田順이다. 의 군사 15만 기병을 징발하여 공격하였으니, 이때 노획한 것이 적고 다만 위엄과 무력을 떨치고 드날려서 나라 군대가 우레와 바람처럼 신속함을 보여 주었을 뿐입니다.
雖空行空反이나 尙誅兩將軍注+[頭註]田順 不至期〈會〉하고 詐增虜獲하며 田廣明 知虜在前하고 逗留不進이라 皆下吏하니 自殺하니라 北狄 不服하야 中國 未得高枕安寢也니이다
비록 거저 갔다가 거저 돌아왔으나 오히려 두 장군注+[頭註]전순田順은 약속한 기한에 오지 않고 거짓으로 포로와 수급首級의 숫자를 부풀려 보고하였으며, 전광명田廣明은 오랑캐가 앞에 있음을 알고는 머뭇거리고 전진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 옥리에게 회부하자 자살하였다. 을 처형하였기 때문에 북쪽 오랑캐들이 복종하지 않아 중국 사람들이 베개를 높이 베고 편안히 잘 수가 없었습니다.
逮至元康, 神爵之間하야 大化神明하고 鴻恩溥洽하며 而匈奴內亂하야 五單于注+[附註]宣帝五鳳甲子年 稽侯柵 爲呼韓邪單于하고 日逐王薄胥堂 爲屠耆單于하고 呼揭王 爲呼揭單于하고 {右}奧鞬王 爲車犁單于하고 烏籍都尉 爲烏籍單于하니라爭立이라
그러다가 원강元康신작神爵 연간에 이르러 큰 교화가 신명하고 큰 은혜가 널리 흡족하며, 흉노匈奴에 내란이 일어나서 다섯 선우注+[附註]다섯 선우單于선제宣帝 오봉五鳳 갑자년에 계후稽侯호한야선우呼韓邪單于가 되고, 일축왕日逐王 박서당薄胥堂도기선우屠耆單于가 되고, 호게왕呼揭王호게선우呼揭單于가 되고, 욱건왕奧鞬王거리선우車犁單于가 되고, 오자도위烏籍都尉오자선우烏籍單于가 된 것이다. 가 왕위를 다투었습니다.
日逐, 呼韓邪注+[釋義]呼韓邪 匈奴單于之號 宣帝五鳳元年 稽侯柵 爲呼韓邪單于하야 甘露二年 款塞請朝하고 後光武建武中 日逐王比 爲呼韓邪單于하야 款塞願爲藩蔽하니라 携國歸死注+[頭註]歸死命於漢也하야 扶伏(匍匐)稱臣이라
일축왕日逐王호한야선우呼韓邪單于注+[釋義]日逐, 호한야呼韓邪:호한야呼韓邪흉노선우匈奴單于의 칭호이다. 선제宣帝 오봉五鳳 원년元年계후稽侯호한야선우呼韓邪單于가 되어서 감로甘露 2년에 국경의 관문에 와서 복종하여 조회할 것을 청하였고, 뒤에 광무제光武帝건무建武 연간에 일축왕日逐王 호한야선우呼韓邪單于가 되어서 복종하여 제후국이 될 것을 원하였다. 가 저들 나라의 사람들을 이끌고 돌아와 목숨을 바쳐서注+[頭註]귀사歸死는 죽음과 삶을 나라에 돌리는 것이다. 부복하여 이라 일컬었습니다.
이나 尙羈縻注+[頭註]馬曰羇(羈) 牛曰縻 言制四夷 如馬牛之受羇縻하고 計不顓(專)制注+[頭註]不顓制 言不爲臣妾이라하니 自此之後 欲朝者 不距하고 不欲者 不彊이라
그러나 아직도 매어두기만 하고注+[頭註]말의 굴레를 라 하고 소의 고삐를 라 하니, 사이四夷를 제어하기를 소와 말이 굴레와 고삐에 제재를 받는 것과 같이 하는 것이다. 계책은 우리 마음대로 제재하지 않았으니,注+[頭註]전제專制하지 않았다는 것은 신첩臣妾이 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이후로부터 조회오려고 하는 자를 거절하지 않고 하고자 하지 않는 자를 억지로 시키지 않았습니다.
今單于歸義어늘 奈何疑而隙之하야 使有恨心하야 因以自絶하야 終無北面之心이니잇고
지금 선우單于에 돌아오는데 어찌하여 의심하고 틈을 두어서 원망하는 마음을 품어 이로 인해 스스로 단절하여 끝내 북면北面할 마음이 없게 하십니까.”
書奏 天子寤焉하고 報單于書而遣之하다
글을 아뢰자, 천자天子가 깨닫고 다시 선우單于에게 답서를 써서 보내었다.
致堂管見曰
치당致堂(胡寅)의 《독사관견讀史管見》에 말하였다.
帝王 於中國無事時 鮮不欲開闢土地하고 行師荒外하여 服前代所不能服하고 臣昔人所不能臣하여 以爲一時駿功하야 自偉其代也
제왕帝王 중에 중국中國이 아무 일이 없을 때에 국경을 개척하고 변경에 군대를 출동하여 전대前代에 복종시키지 못한 곳을 복종시키고 옛사람이 신하로 삼지 못한 자를 신하로 만들어서 이것을 한 때의 큰 공으로 삼아 스스로 한 시대를 훌륭하게 하고자 하지 않는 자가 드물었다.
若漢武之於西北兩垂(陲) 其勤勞費耗 蓋前無比, 後無繼矣 苟使匈奴款塞注+[頭註] 叩也 叩塞門하고 來服從也面內하여 不自欺翫이면 亦可以少疲弊之恥而償侵侮之患也
나라 무제武帝서북西北의 두 변경에 들인 수고와 비용이 예전에 비할 데가 없고 후세에도 이을 자가 없었으니, 만일 흉노匈奴가 국경의 관문에 와서注+[頭註]은 두드림이니, 국경의 관문을 두드리고 와서 복종하는 것이다. 복종하여 스스로 속이거나 희롱하지 않았으면 또한 국가를 피폐하게 만든 치욕을 다소 줄이고 침략과 모욕을 당한 근심을 보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나 師行餘三十年 卒不得如志러니 至於宣元成哀無意武功者하야는 乃坐享其成이라
그러나 군대를 출동한 지 30년이 넘었지만 끝내 뜻대로 하지 못하였는데, 무공武功에 관심이 없는 선제宣帝원제元帝, 성제成帝애제哀帝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앉아서 그 성공을 누리게 되었다.
至若渭上盛儀 單于執國珍, 襲冠帶하고 稱臣贊謁하고 稽首而朝 則武帝平生所願欲而不得見者어늘 哀帝之世 漢旣衰矣로되 匈奴烏孫 猶不廢禮하고 西域佩印 五十餘君이니
위수渭水 가의 성대한 의식에 선우單于흉노匈奴 지역에서 생산된 진기한 보물을 잡고 관대冠帶를 하고는 신하라고 칭하여 배알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조회하는 것으로 말하면 무제武帝가 평생토록 원하였지만 보지 못한 것이었는데, 애제哀帝 때에 나라가 이미 쇠약해졌으나 흉노匈奴오손烏孫이 오히려 를 폐하지 않았으며 서역西域의 나라로서 나라의 인수印綬를 찬 것이 50여 군주였다.
雖曰中國榮觀이나 譬猶大木遠條하야 枝葉尙茂로되 而蠹生心腹하여 根幹將顚矣 于是時 縱使九夷八蠻注+[附註]多之稱也 東方之夷九種이니 曰畎夷, 于夷, 方夷, 黃夷, 白夷, 赤夷, 玄夷, 風夷, 陽夷 又玄菟, 樂浪, 高麗, (蒲)[滿]飾, 鳧(吏)[更], 索(豕)[家], 東屠, 倭人, 天鄙也 八蠻 天竺, 咳首, 譙撓, 跛踵, 穿胸, 儋耳, 狗軹, 旁春이라 罔不扶伏闕庭之下인들 夫亦何補리오
이는 비록 중국中國의 영화로운 구경거리라고 말하겠지만 비유하면 큰 나무가 가지가 멀리 뻗어 가지와 잎이 무성하나 속은 좀이 먹어서 뿌리와 줄기가 장차 넘어지려 하는 것과 같으니, 이때에 비록 구이九夷팔만八蠻注+[附註]구이팔만九夷八蠻은 많은 오랑캐를 칭한 것이다. 동방東方의 오랑캐가 아홉 종족이 있으니, 견이畎夷, 우이于夷, 방이方夷, 황이黃夷, 백이白夷, 적이赤夷, 현이玄夷, 풍이風夷, 양이陽夷이고, 또 현도玄菟, 낙랑樂浪, 고려高麗, 만식滿飾, 부경鳧更, 색가索家, 동도東屠, 왜인倭人, 천비天鄙이다. 팔만八蠻천축天竺, 해수咳首, 초뇨譙撓, 파종跛踵, 천흉穿胸, 담이儋耳, 구지狗軹, 방춘旁春이다. 이 대궐 아래에 포복하지 않은 자가 없은들 또한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是故 聖主 專務治內以固其本하고 不勤遠略而忽邇圖하니 其慮遠矣로다
이 때문에 성주聖主는 오로지 나라 안을 다스려서 근본을 견고하게 하는 것을 힘쓰고, 수고롭게 멀리 경략하느라 가까운 계책을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이니, 그 생각함이 원대하다.”
역주
역주1 : 탕
역주2 : 배
역주3 註見周赧王三十一年 : 逐北는 패하여 달아나는 자를 쫓는 것으로, 北方은 그윽한 陰地이기 때문에 군대가 패주하는 것을 北라 한다. 釋義의 내용은 《資治通鑑》을 기준으로 한 것인 바, 《通鑑節要》는 이에 대한 주가 周 赧王 36年條(B.C.279)에 보인다.
역주4 歸死 : 王念孫이 말하기를 “살펴보건대 歸死 두 글자는 뜻에 있어서 통하지 않으니, 마땅히 歸化의 잘못일 것이다.” 하였다.
역주5 : 경
역주6 : 쇄

통감절요(3)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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