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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6)

통감절요(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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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6)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丙戌] 〈宋元嘉二十三年이요 魏太平眞君七年이라
병술(446) - 나라 원가元嘉 23년이고, 나라 태평진군太平眞君 7년이다. -
勸魏主하야 盡誅天下沙門注+[頭註]見漢明帝乙丑年이라[通鑑要解]見前註 魏主與崔浩皆重信하야 奉其道 浩素不信佛法하야 每言魏主호되 以爲佛法虛誕하니 宜悉除之라하니 魏主從之하야 命有司하야 宣詔國內하야 毁破經像寺院하니라하고 毁諸經像이어늘 從之하니 塔廟在魏境者 無復注+[頭註] 無右臂貌 餘也 言無復有半身之遺者 一說 獨立之貌 脫也러라
나라 최호崔浩위주魏主에게 권하여 천하天下의 승려들注+[頭註]沙門에 대한 설명은 나라 명제明帝 을축년조乙丑年條(65)에 보인다. [通鑑要解]앞의 에 보인다. 위주魏主최호崔浩와 함께 모두 구겸지寇謙之를 중시하고 신임하여 구겸지寇謙之도교道敎를 신봉하였다. 최호崔浩는 본래 불법佛法을 신봉하지 않아서 매양 위주魏主에게 이르기를 “불법佛法은 허탄하니, 마땅히 모두 제거해야 합니다.”라고 하니, 위주魏主가 그 말을 따라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나라 안에 조서詔書를 반포해서 불경佛經불상佛像사원寺院을 헐어 버렸다. 을 다 죽이고 여러 불경과 불상을 철거할 것을 청하자 이를 따르니, 나라 경내에 있는 불탑佛塔불묘佛廟(佛寺)가 다시는 하나도 남은 것이 없게 되었다.注+[頭註]은 오른쪽 팔이 없는 모양이고 는 남은 것이니, 다시는 반쪽도 남은 것이 없음을 말한다. 일설一說은 홀로 서 있는 모습이고 는 빠진 것이라고 한다.
[新增]尹氏曰
[新增]尹氏(尹起莘)가 말하였다.
自佛入中國으로 人皆敬奉其法하야 以求福利하고 未有敢訾之者注+[頭註] 毁也러니 至魏主燾하야 乃毅然注+[頭註] 果敢也去之하니 亦可謂剛正不惑者矣
불교佛敎가 중국에 들어오면서부터 사람들이 모두 불법佛法을 공경히 받들어 복과 이익을 구하고 감히 비방하는 자가 없었는데,注+[頭註]는 헐뜯음이다. 위주魏主 탁발도拓跋燾(元燾)에 이르러서 비로소 과감하게注+[頭註]는 과감함이다. 제거하였으니, 굳세고 발라서 현혹되지 않은 자라고 이를 만하다.
이나 世之議者 或以魏主不得其終注+[頭註]見弑으로 爲毁佛之報라하니 抑不知梁主衍 奉佛尤篤이나 得禍尤慘注+[頭註]餓死臺城이라하니 豈佛獨靈於魏而不靈於梁耶
그러나 세상의 비평하는 자들은 혹 위주魏主가 제명에 죽지 못했다注+[頭註]위주魏主 탁발도拓跋燾는 끝내 시해당하였다. 하여 부처를 비방한 응보라고 말하는데, 알지 못하겠으나 양주梁主 소연蕭衍(武帝)은 부처를 신봉하기를 특히 돈독히 하였으나 를 받음이 더욱 참혹하였으니,注+[頭註]양주梁主 소연蕭衍대성臺城에서 후경侯景에게 핍박받아 굶어 죽었다. 어찌 부처가 유독 나라에는 영험하고 나라에는 영험하지 않단 말인가.
要知人之禍福 自係乎善惡之積이요 而奉佛與否 初無預注+[頭註] 與通이라
요컨대 사람의 은 원래 이 쌓임에 달려 있는 것이고 부처를 신봉하느냐의 여부와는 애당초 상관이 없음注+[頭註]와 통한다. 을 알아야 한다.
夫居中國而從夷狄하고 捨(王)[正]道而尙異端하야
중국中國에 있으면서 이적夷狄를 따르며, 왕도王道를 버리고 이단異端을 숭상하여
棄君臣, 絶父子하고 滅人倫, 毁形體하며 游手游食하야 以耗蠹平民注+[附註]齊民同이라 等也 無有貴賤故 曰齊民이라 記王制曰 古者 公田 籍而不稅라하니라 其法 計口授田하야 初無貧富不均之患이라 曰齊民이니 言民業均齊也하고
군신간君臣間의리義理를 버리고 부자간父子間인륜人倫을 끊으며, 인륜人倫을 멸하고 형체를 훼손하며 무위도식하여 일반 백성들注+[附註]평민平民제민齊民과 같다. 는 동등함이니 귀천貴賤에 차이가 없기 때문에 제민齊民이라 한 것이다.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이르기를 “옛날에 공전公田은 백성의 힘을 빌려서 경작하고 사전私田에는 세금을 물리지 않았다.” 하였다. 그 법이 식구수를 계산하여 식구수대로 전지田地를 주어 애당초 빈부가 고르지 못한 폐단이 없었으므로 제민齊民이라 한 것이니, 백성들의 생활이 고르고 가지런함을 말한 것이다. 의 재물을 허비하고 좀먹으며,
至於藏姦蓄穢하야 淫汚雜揉注+[附註]魏主至長安하야 入佛寺러니 從官入其室이라가 見大有兵器하고 以白魏主한대 魏主怒曰 此 非沙門所用이라하고 命有司하야 閱其財産하야 大得釀具及窟室婦女 崔浩因說魏主하야 悉誅沙門하고 焚壞經像이어늘 魏主從之하니라 窟室 穴地爲室하야 以匿婦女 又有不可勝言者하니
심지어 간사한 마음을 숨기고 더러운 행실을 감추어 음탕하고 잡됨注+[附註]위주魏主장안長安에 이르러 불사佛寺에 들어갔는데 수행하는 관원들이 그 방에 들어갔다가 병기가 많이 있는 것을 보고 위주魏主에게 아뢰자, 위주魏主가 노하여 말하기를 “이는 사문沙門에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하고,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그 재산을 조사하게 해서 술 빚는 도구와 굴속에 숨겨 놓은 부녀자들을 많이 찾아내었다. 최호崔浩가 이로 인하여 위주魏主를 설득해서 사문沙門을 다 죽이고 불경佛經불상佛像을 불태우고 부수게 하자, 위주魏主가 그의 말을 따랐다. 굴실窟室은 땅을 파서 방을 만들어 부녀자를 숨겨 놓은 것이다. 이 또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宜乎朱子筆之하야 以爲誅沙門也
주자朱子가 이것을 써서 ‘사문沙門을 주벌했다.’고 함이 당연하다.
其義深矣로다
그 뜻이 참으로 깊다.”
[二十史略]魏殺其司徒崔浩하고 夷其族하다
[二十史略]魏나라가 사도司徒 최호崔浩를 죽이고 그 집안을 멸족하였다.
浩自明元時 已爲謀臣하야 輒有功이러니 信道士寇謙之하야 勸魏主崇奉하야 立天師道場하야 受符籙하고 而最惡佛法하야 誅沙門하고 毁佛像佛書하다
최호崔浩명제明帝원제元帝 때부터 이미 모신謀臣이 되어 많은 을 세웠는데, 도사道士 구겸지寇謙之를 신임하여 위주魏主에게 우러러 받들기를 권하여 천사도장天師道場을 세워서 부록符籙을 받게 하였고, 불법佛法을 가장 싫어하여 승려들을 죽이고 불상佛像불서佛書을 훼손하였다.
魏主命浩修國史한대 書魏先世事 皆詳實하야 刊石立之衢路하니 北人忿恚하야 譖浩暴揚國惡이라한대
위주魏主최호崔浩에게 국사國史수찬修撰하도록 명하였는데 나라 선대先代사실事實을 모두 상세하게 써서 돌에 새겨 네거리에 세우니, 북쪽 지방(魏나라) 사람들이 분노하여 최호崔浩나라의 나쁜 점을 폭로하였다고 참소하였다.
魏主大怒하야 遂案誅之하다
이에 위주魏主가 크게 노하여 마침내 조사하게 하여 죽인 것이다.
[史略 史評]尹氏曰
[史略 사평史評]尹氏가 말하였다.
之事 前所未聞이요 而始見於此
부록符籙에 대한 일은 전대前代에 듣지 못하였고 여기에 처음 보인다.
魏主虔恭受之하니 自宜神物後先이어늘 而乃其身不保하니 然則果何益哉
위주魏主가 경건히 이것을 받았으니, 마땅히 신물神物이 앞뒤에서 번갈아 가며 보호해 주어야 할 터인데 마침내 그 몸을 보전하지 못하였으니, 그렇다면 과연 무슨 유익함이 있는가.
夫沙門 居中國而從夷狄하고 捨正道而尙異端하야 棄君臣, 絶父子하고 滅人倫, 毁形體하며 遊手遊食하야 以耗蠹民財하니 其罪大矣
사문沙門중국中國에 있으면서 이적夷狄를 따르며 정도正道를 버리고 이단異端을 숭상하여, 군신간君臣間의리義理를 버리고 부자간父子間인륜人倫을 끊으며 인륜人倫을 멸하고 형체形體를 훼손하며, 무위도식하여 일반 백성들의 재물을 허비하고 좀먹으니, 그 죄가 크다.
誅而滅之 不亦宜乎
이들을 주벌하여 멸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後之欲尊奉二敎者 可以鑑矣니라
후대에 불교佛敎도교道敎를 높여 신봉하고자 하는 자는 거울로 삼아야 할 것이다.”
[史略 史評]石氏原曰
[史略 사평史評]石原이 말하였다.
天師道場符籙 不過惑世誣民하야 竊財以自利而已 原情定罪하면 寔天地間一妖妄人也
천사天師(張道陵의 존칭)의 도량道場부록符籙은 세상을 미혹시키고 백성을 속여서 재물을 도둑질하여 자신을 이롭게 한 것에 불과할 뿐이니, 실정實情을 미루어서 죄를 정한다면 진실로 천지간의 한 요망한 사람일 뿐이다.
漢人目之曰 夫豈過哉
나라 사람들이 그를 지목하여 미적米賊이라 한 것이 어찌 지나친 것이겠는가.”
역주
역주1 崔浩 : 崔浩에 관한 사실이 소략하므로 《史略》의 내용을 뽑아 이를 보충하였다.
역주2 寇謙之 : 後魏 사람으로 道術이 있었고 松陽에 은거하다가 肉身으로 화하여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역주3 : 혈
역주4 符籙 : 道敎에서 전하는 신비한 부적이나 서책을 이른다.
역주5 米賊 : 後漢 말기에 張道陵은 蜀中의 鳴鶴山에서 도술을 배웠는데, 病者를 위하여 기도해 주고 다섯 말의 쌀을 받았으므로 五斗米道라 칭하였다. 그 후 張魯가 이것을 계승한 다음 官名인 祭酒를 따서 米巫祭酒라 하였고, 마침내 張角으로 이어져 결국 黃巾賊이 되어 後漢이 멸망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통감절요(6)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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