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通鑑節要(8)

통감절요(8)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통감절요(8)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辛卯]六年이라
원화元和 6년(신묘 811)
正月 以前淮南節度使李吉甫 爲中書侍郞同平章事하다
정월에 회남절도사淮南節度使 이길보李吉甫중서시랑中書侍郞 동평장사同平章事로 삼았다.
○ 上問宰相호되 以爲政 寬猛何先 權德輿注+[頭註]禮部尙書同平章事 對曰 秦 以慘刻而亡하고 以寬大而興하니이다
이 재상에게 묻기를 “정사를 함에 관대함과 엄격함 가운데 무엇이 먼저인가?” 하니, 권덕여權德輿注+[頭註]권덕여權德輿예부상서禮部尙書 동평장사同平章事이다. 대답하기를 “나라는 참혹하고 각박함으로 망하였고, 나라는 관대함으로 일어났습니다.
태종太宗명당도明堂圖를 보시고 사람들의 등에 매를 때리는 것을 금지하셨습니다.
是故 安史以來 屢有悖逆之臣이나旋踵而亡 由祖宗仁政 結於人心하야 人不能忘故也
이 때문에 안녹산安祿山사사명史思明 이래로 여러 번 패역하는 신하가 있었으나 그들이 곧바로 멸망한 것은 조종祖宗이 베풀었던 어진 정사가 백성들의 마음에 맺혀있어 백성들이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然則寬猛之先後 可見矣니이다 善其言이러라
그렇다면 관대함과 엄격함의 선후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이 그 말을 좋게 여겼다.
〈本傳云
- 《신당서新唐書》 〈권덕여전權德輿傳〉에 말하였다.
德輿對曰 唐家承隋苛虐하야 以仁厚爲先이라
덕여德輿가 대답하기를 ‘나라는 나라의 가혹하고 사나운 정사를 이었기에 인자함과 후덕함을 우선하였습니다.
天寶大盜竊發이로되 俄而夷滅하니 由本朝之化 感人心深也니이다
그러므로 천보天寶 연간에 큰 도둑이 몰래 일어났으나 얼마 후 평정되어 멸망하였으니, 이는 본조本朝덕화德化가 사람들의 마음을 깊이 감동시켰기 때문입니다.’ 하였다.” -
○ 李吉甫奏호되 自秦至隋十有三代注+[頭註]秦, 兩漢, 魏, 晉, 宋, 齊, 梁, 陳, 北魏, 北齊, 周, 隋 로되 設官之多 無如國家者
이길보李吉甫가 아뢰기를 “나라로부터 나라에 이르기까지 13개 왕조인데,注+[頭註]13개 왕조는 , 양한兩漢(東漢과 서한西漢), , , , , , , 북위北魏, 북제北齊, , 이다. 각 왕조에서 설치한 관직의 숫자가 본조本朝보다 많은 적이 없습니다.
天寶以後 中原宿兵注+[頭註]宿 頓也 猶言屯兵이라 在可計者 八十餘萬이요 其餘爲商賈僧道하야 不服田畝者 什有五六이니 常以三分勞筋苦骨之人으로 奉七分坐待衣食之輩也
천보天寶 연간 이후로 중원中原에 주군하고 있는 군대가注+[頭註]宿은 머무는 것이니, 둔병屯兵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현재 계산할 수 있는 것이 80여만 명이고, 그 나머지 상고商賈와 승려와 도사 등 전지田地에서 일하지 않는 자가 10분에 5, 6이니, 이는 항상 근골筋骨을 수고롭게 하여 힘들게 일하는 10분의 3의 백성(농민)들로써 앉아서 의복과 음식을 기다리는 10분의 7의 무리들을 봉양하는 것입니다.
今內外官 以稅錢給俸者 不下萬員이니이다
그리고 현재 조정 내외의 관원 중에 세금으로 봉급을 지급받는 자가 만 명 이상입니다.
天下〈千〉三百餘縣 或以一縣之地而爲州하고 一鄕之民而爲縣者甚衆하니
천하의 1300여 현 중에 혹은 1의 땅으로서 가 되거나 1의 백성으로서 이 된 것이 매우 많으니,
請敕有司하야 詳定廢置호되 吏員可 省之하고 州縣可倂者 倂之하고 入仕之塗 可減者 減之하소서
청컨대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주현州縣의 폐지와 설치를 자세히 살펴서 결정하게 하되 관리들 중에 감원할 수 있는 자는 감원하고, 주현州縣 중에 합병할 수 있는 것은 합병하고, 조정에 들어와 벼슬할 수 있는 길 중에 줄일 수 있는 것을 줄이게 하소서.” 하니,
於是 命段平仲注+[頭註]給事中이라 , 韋貫之注+[頭註]中書舍人이라 , 李絳하야 同詳定注+[通鑑要解]吏部奏하야 準敕하야 倂省內外官計八百八員 諸色流外一千七百六十九人하니라 하다
이에 단평중段平仲,注+[頭註]단평중段平仲급사중給事中이다. 위관지韋貫之,注+[頭註]위관지韋貫之중서사인中書舍人이다. 이강李絳에게 명하여 함께 자세히 살펴서 결정하게 하였다.注+[通鑑要解]이부吏部에서 아뢰어 칙명에 의하여 내외의 관원 808명과 제색諸色유외流外(9품 이하) 관원 1769명을 감원하였다.
〈出吉甫傳〉
- 《구당서舊唐書 이길보전李吉甫傳》에 나옴 -
○ 以戶部侍郞李絳으로 爲中書侍郞同平章事하다
호부시랑戶部侍郞 이강李絳중서시랑中書侍郞 동평장사同平章事로 임명하였다.
李吉甫爲相 多修舊怨하니 頗知之
이길보李吉甫가 재상이 되자 옛날에 자신과 원한이 있던 사람들에게 많이 보복하니, 이 자못 이러한 사실을 알았다.
擢絳爲相하니라
그러므로 이강李絳을 발탁하여 재상으로 삼은 것이다.
吉甫 善逢迎上意하고 而絳 鯁直注+[釋義] 古杏反이니 骨彊四支 故君有忠臣 謂之骨鯁이라 與骾同이라 하야 爭論於上前하니 多直絳而從其言이라
이길보李吉甫의 뜻에 영합하기를 잘하고 이강李絳은 정직하여注+[釋義]고행반古杏反(경)이니, 사지의 뼈가 강한 것이다. 그러므로 군주에게 충신이 있는 것을 골경骨鯁이라 이른다. 과 같다. 자주 의 앞에서 논쟁하니, 은 대부분 이강李絳을 정직하다고 여기고 그의 말을 잘 따랐다.
由是 二人有隙이러라
이로 말미암아 두 사람 사이에 틈이 있게 되었다.
〈出本傳〉
- 《구당서舊唐書 이강전李絳傳》에 나옴-
역주
역주1 太宗……禁杖人背 : 明堂은 침을 놓거나 뜸을 뜨는 經穴을 말한다. 雷公이 사람의 經絡 血脈을 물었을 때, 黃帝가 명당에 앉아서 이를 전수했다는 전설에서 유래하였다. 이로 인하여 醫家에서는 人體의 經絡과 針灸穴을 표시한 그림을 明堂圖라고 한다. 唐太宗이 한가로울 때 明堂圖를 보다가 사람의 五臟의 계통이 모두 등에 속해 있는 것을 보고는 마침내 탄식하기를 “笞刑은 형벌 중에 가장 가벼운 것이고 죽음은 삶에 있어서 지극히 중요한 것인데, 어찌 가장 가벼운 형벌을 범하였다 하여 혹 죽음에 이르게 한단 말인가. 그런데도 예로부터 제왕들이 이를 깨닫지 못하였으니, 슬프지 아니한가.” 하고 즉일로 笞背法을 없앴다. 《通典 170 刑法八寬恕》
역주2 : 현
역주3 : 생
역주4 : 삭

통감절요(8)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