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月에 燕主雋이 疾篤하야 召大司馬, 太原王恪하야 受遺詔輔政而卒하니 太子暐卽位하다
○ 朝廷이 初聞燕主雋卒하고 皆以爲中原可圖라호되 桓溫曰 慕容恪이 尙在하니 憂方大耳라하더라
○ 謝安
이 少有
注+[頭註]少는 言自少라重名
하야 前後
에 皆不就
하고 寓居會稽
하야 以山水文籍自娛
하니 雖爲布衣
나 時人
이 皆以公輔期之
라
士大夫至相謂曰 安石이 不出하니 當如蒼生何오하니라
年四十餘에 桓溫이 請爲司馬한대 安이 乃赴召하니 溫이 大喜하야 深禮重之러라
승평升平 4년(경신 360) - 진秦나라 감로甘露 2년이다.
○ 연燕나라 유제幽帝 모용위慕容暐의 건희建熙 원년元年이다. -
정월에 연주燕主 모용준慕容雋이 병이 위독해지자, 대사마大司馬‧태원왕太原王 모용각慕容恪을 불러서 유조遺詔를 받아 정사를 보필하게 하고 죽으니, 태자太子 모용위慕容暐가 즉위하였다.
○ 진晉나라 조정에서 처음에 연주燕主 모용준慕容雋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는 모두 중원中原을 수복할 수 있다고 여겼으나 환온桓溫이 말하기를 “모용각慕容恪이 아직 살아 있으니, 우환이 한창 크다.” 하였다.
○
사안謝安이 젊어서부터
注+[頭註]소少는 젊어서부터라는 뜻이다. 두터운 명망이 있어서 전후의 부름에 모두 나아가지 않고
회계會稽에 우거하여
산수山水와
문적文籍을 스스로 즐기니, 비록 포의의 신분이었으나 세상 사람들이 모두
공경公卿과
재보宰輔로 기대하였다.
사대부들이 심지어 서로 이르기를 “안석安石(謝安)이 세상에 나오지 않으니, 천하의 백성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하였다.
나이 40여 세에 환온桓溫이 사마司馬가 될 것을 청하자 사안謝安이 마침내 부름에 달려가니, 환온桓溫이 크게 기뻐하여 매우 예우하고 소중히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