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通鑑節要(6)

통감절요(6)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통감절요(6)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乙丑] 〈梁大同十一年이요 魏大統十一年이요 東魏武定三年이라
을축(545) - 나라 대동大同 11년이고, 나라 대통大統 11년이고, 동위東魏 무정武定 3년이다. -
梁賀琛 啓陳四事注+[通鑑要解]一曰 今北邊稽服하니 正是之時어늘 而天下戶口減落하며 郡不堪州侵하고 縣不堪郡責하고 民不堪縣徵하니 此豈非牧守之過歟잇가 二曰 今守宰風俗侈靡하니 欲使人守廉白이나 可得耶잇가 三曰 陛下憂念四海하야 不憚勤勞 至於百司하야는 奏事 詭競求進하고 不論大體하니 誠願責其公平之效하고 黜其讒慝之心이면 則下安上謐이리이다 四曰 今天下無事하니 省事省費하고 養民聚財云云하다 啓奏하니 梁主大怒하야 切責之하니라하야 言奢侈賦役之敝한대 梁主切責之注+[頭註]惡其觸實故하다
나라 하침賀琛이 네 가지 일注+[通鑑要解]하침賀琛이 아뢰기를 “첫째는 지금 북쪽 변경의 동위東魏가 복종하니 지금이야말로 바로 백성을 길러 군대를 양성하고 가르치고 훈련시켜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 천하의 호구戶口가 줄어들며 에서는 의 침탈을 감당하지 못하고 에서는 의 요구를 감당하지 못하며 백성들은 의 징발을 감당하지 못하니, 이는 어찌 지방 수령들의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둘째는 지금 지방의 수령들의 풍속이 사치스러우니, 사람들로 하여금 청렴하고 결백하게 하고자 한들 될 수 있겠습니까. 셋째는 폐하께서는 사해四海를 근심하고 염려하여 근로함을 꺼리지 않으시나 백사百司들에 이르러서는 정사를 아뢸 적에 속이고 다투어 승진되기만을 구하고 대체大體를 논하지 않으니, 진실로 바라건대 공평公平한 성과를 책임지우며 참소하고 간사한 마음을 물리친다면 아랫사람이 편안하고 윗사람이 고요할 것입니다. 넷째는 지금 천하가 무사하니 일을 줄이고 비용을 줄여서 백성을 기르고 재물을 모아야 합니다.” 하고 운운하였다. 이 네 가지 일을 아뢰자, 양주梁主가 크게 노하여 심하게 책망하였다. 을 아뢰어 사치함과 부역의 병폐를 말하자, 양주梁主가 심하게 책망하였다.注+[頭註]양주梁主는 그의 말이 실제를 저촉하여 말이 너무 솔직한 것을 싫어하였기 때문에 노여워한 것이다.
梁主爲人 孝慈恭儉하고 博學能文하며 陰陽卜筮 騎射聲律 草隷圍棊 無不精妙
양주梁主는 사람됨이 효성스럽고 인자하고 공손하고 검소하며 박학하고 문장을 잘하였으며, 음양陰陽복서卜筮와 말타기‧활쏘기‧성률聲律초서草書예서隷書‧바둑에 이르기까지 조예가 정묘精妙하지 않음이 없었다.
勤於政務하야 冬月四更竟이면 卽起視事하니 執筆觸寒하야 手爲注+[釋義] 細皮起也이러라
정사에 부지런하여 겨울철에도 4경만 지나면 즉시 일어나 정사를 보았는데, 날씨가 추워서 붓을 잡은 손이 얼어 터졌다.注+[釋義]은 얇은 피부가 일어나는 것이다.
으로 用釋氏法하야 長齋斷魚肉하고 日止一食호되 惟菜羹注+[釋義] 麤米也 所謂[通鑑要解]糲 與䊪通하니 張宴曰 而已
천감天監 연간으로부터 석씨釋氏(佛法)를 신봉하여 오랫동안 채식을 하고 어육魚肉을 먹지 않았으며, 하루에 단지 한 끼만 먹되 나물국과 거친밥注+[釋義]糲는 거친 쌀이니, 여반糲飯은 이른바 탈속반脫粟飯이라는 것이다. [通鑑要解]糲는 䊪와 통하니, 장연張宴이 말하기를 “1의 곡식을 찧어 7의 쌀이 나오는 것을 라 한다.” 하였다. 뿐이었고,
或遇事繁하야 日移中이면 則嗽(漱)口以過러라
혹 일이 많고 번거로울 때를 만나 해가 중천中天을 지나면 물로 입을 헹구고 넘어갔다.
身衣布衣하고 木綿注+[附註] 柞實也 可染黑色이라 故通用爲黑色也 木綿 丘濬曰 禹貢島夷卉服注 以爲吉貝라하니 則虞時 已有之하야 時或以充貢이라 漢, 唐之世 遠夷雖以入貢이나 中國未有也러니 宋, 元之間 始傳其種하야 關, 陜, 閩, 廣 先得其利하니 蓋閩, 廣 海通商舶하고 關, 陜 壤接西域故也 今則遍布天下하야 地無南北 皆宜之하니라하며 一冠三載하고 一衾二年이요 後宮貴妃以下 衣不曳地注+[釋義] 引也 衣長不被土
몸에는 삼베옷을 입고 침상에는 목면木綿으로 짠 검은 휘장을 쳤으며,注+[附註]는 도토리(상수리) 열매이니, 흑색을 물들일 수 있으므로 통용하여 흑색을 말한다. 목면木綿구준丘濬이 이르기를 “《서경書經》 〈우공禹貢〉 ‘도이훼복島夷卉服’의 에 ‘길패吉貝’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나라 때에 이미 이것이 있어서 때로 혹 공물貢物로 충당한 것이다. 시대에는 먼 오랑캐들이 비록 공물로 바쳤으나 중국에는 있지 않았는데, 시대에 비로소 그 종자가 전래되어 에서 먼저 그 이익을 얻었으니, 은 바다로 상인들의 선박이 통행하고 은 땅이 서역西域과 접하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온 천하에 두루 퍼져서 남쪽 북쪽 지역 할 것 없이 모두 잘 된다.” 하였다. 하나로 3년을 쓰고 이불 한 채로 2년을 지냈으며, 후궁後宮귀비貴妃 이하의 부인들은 옷이 땅에 끌리지 않았다.注+[釋義]는 끄는 것이니, 의불예지衣不曳地는 옷의 길이가 땅을 덮지 않는 것이다.
性不飮酒하고 非宗廟祭祀大饗宴及諸法事注+[頭註]法事 謂奉佛爲梵唄也 梵音曰唄 未嘗作樂하고
성품이 술을 마시지 않고 종묘宗廟제사祭祀와 큰 연향과 여러 법사法事注+[頭註]법사法事불법佛法을 신봉하여 범패梵唄를 연주하는 것을 이르니, 불교 음악을 라 한다. 가 아니면 일찍이 음악을 연주하지 않았다.
雖居暗室이나 恒理衣冠하고 盛暑 未嘗하며 對內豎小臣 如遇大賓이라
비록 어두운 방에 거처하더라도 항상 의관衣冠을 정제하였고, 궁중의 별실別室에 앉아 있거나 무더운 여름철에도 일찍이 옷을 풀어헤치거나 걷어 올리지 않았으며, 환관宦官소신小臣들을 큰 손님을 대하듯이 공경하였다.
이나 優假士人大(太)過하니 牧守多侵漁百姓하고 使者干擾郡縣이러라
그러나 선비를 너무 지나치게 우대하여 지방의 관원들이 백성들을 많이 침탈하였고 조정의 사자使者들이 군현郡縣을 소란하게 하였다.
又好親任小人注+[頭註]小人 謂朱, 周石珍輩也하고 頗傷苛察하며 多造塔廟하야 公私費損하고
또 간사한 소인들注+[頭註]소인小人주이朱异주석진周石珍의 무리를 이른다. 을 친애하고 등용하기를 좋아하였으며 사람을 등용할 때에 까다롭게 살피는 실책을 범하였고, 불탑佛塔불전佛殿을 많이 지어서 공사간에 비용을 낭비하였다.
江南久安 風俗奢靡 琛奏及之러라
강남江南이 오랫동안 태평하여 풍속이 사치하고 화려하였으므로 하침賀琛이 아뢸 때에 이것을 언급하였다.
○ 上 敦尙文雅하고 疎簡刑法하야 自公卿大臣으로 咸不以鞫獄注+[頭註] 見上卷覆獄注爲意하니 奸吏招權弄法하야 貨賂成市하야 枉濫者多
문아文雅를 지극히 숭상하고 형법刑法을 소략히 하여 공경公卿대신大臣으로부터 모두 옥사를 국문鞫問注+[頭註]은 해설이 상권上卷의 ‘복옥覆獄에 보인다. 하여 처벌할 것을 생각하지 않으니, 간사한 아전들이 권력을 휘두르고 법을 농간해서 뇌물이 성행하여 억울하게 형벌을 받은 자가 많았다.
王侯子弟多驕淫不法호되 年老하야 厭於萬幾(機)하고 又專精佛戒하야 每斷重罪 則終日不懌하고 或謀反逆이라가 事覺이라도 亦泣而宥之注+[頭註]父子 是也하니
이때에 왕후王侯자제子弟들이 교만하고 음란하여 불법을 자행하였으나 이 연로하여 만기萬機(政務)를 처리하는 것을 싫증 내고, 또 오로지 불교의 계율을 전심專心으로 닦아서 매번 중죄를 판결하면 종일토록 기뻐하지 않았으며, 혹 반역을 도모하다가 일이 발각되어도 또한 눈물을 흘리면서 용서해 주었다.注+[頭註]或謀反逆……亦泣而宥之:임하왕臨賀王 소정덕蕭正德 부자父子와 같은 경우가 바로 이것이다.
由是 王侯益橫하야 或白晝殺人於都街하고 或晝夜公行剽掠하며 有罪亡命者 匿於主家하면 有司不敢搜捕
이 때문에 제후諸侯들이 더욱 횡포를 부려 혹은 대낮에 도로에서 사람을 죽이고 혹은 밤낮없이 공공연하게 약탈을 행하였으며, 죄를 짓고 도망한 자가 왕후王侯의 집안에 숨으면 유사有司가 감히 수색하여 체포하지 못하였다.
深知其敝 而溺於慈愛하야 不能禁也러라
이 그 폐해를 깊이 알았으나 불교佛敎자비慈悲에 빠져 이러한 불법 행위를 금지시키지 못하였다.
역주
역주1 生聚敎訓 : 生聚는 백성을 길러 군대를 튼튼히 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것이요, 敎訓은 백성을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것이니, 상하가 합심해서 부국강병을 도모하여 원수를 갚는 것을 이른다. 《春秋左傳》 哀公 元年條에 伍子胥(伍員)가 말하기를 “越나라가 10년 동안 인구를 늘리고 물자를 비축하며 10년 동안 백성을 잘 가르치고 훈련시키니, 20년 뒤에는 吳나라는 멸망하여 아마도 연못이 될 것이다.[十年生聚而十年敎訓 二十年之外 吳其爲沼乎]”라고 한 데에서 유래하였다.
역주2 : 준
역주3 自天監中 : 天監은 梁나라 武帝의 연호이다.
역주4 : 려
역주5 脫粟飯 : 애벌 찧은 쌀로 지은 밥을 이른다.
역주6 一斛粟舂 七斗米爲糲 : 《詩經》 〈召旻〉의 鄭箋에 이르기를 “米의 搗精率이 糲는 10, 粺는 9, 鑿은 8, 侍御는 7이다.[米之率 糲十 粺九 鑿八 侍御七]” 하였다. 《九章算術》에 “粟 1石은 糲米 6斗가 되고 糲 1斗를 찧으면 粺 9升이 되고 또 찧어서 鑿이 되면 8升이 되고 또 찧어서 侍御가 되면 7升이 된다.[粟一石爲糲米六斗 舂糲一斗爲粺九升 又舂爲鑿則八升 又舂爲侍御則七升]” 하였다.
역주7 : 조
역주8 小坐 : 便坐와 같은 뜻으로, 正寢이 아닌 別室에 앉음을 이른다.
역주9 褰袒 : 건단
역주10 : 이
역주11 臨賀王正德 : 蕭正德은 梁 武帝의 동생인 蕭宏의 아들이다. 齊나라 建武 연간에 武帝의 養子가 되었다가 昭明太子가 태어나자 다시 본가로 돌려보내졌다. 이를 원망하여 武帝 普通 6년(525)에 北魏로 달아났다가 얼마 뒤에 다시 도망쳐 돌아오자, 武帝는 그를 죄주지 않고 원래의 봉작인 西豐縣侯에 다시 봉하였으며, 中大通 4년(532)에는 臨賀郡王에 봉하였다.

통감절요(6)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