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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5)

통감절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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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甲寅]十年이라 〈秦皇始四年이요 燕元璽三年이요 涼王張祚和平元年이라
영화永和 10년(갑인 354) - 나라 황시皇始 4년이고, 나라 원새元璽 3년이고, 양왕涼王 장조張祚화평和平 원년元年이다. -
正月 張祚自稱涼王注+[頭註]張祚 涼州牧이라 軌子寔, 寔弟茂, 寔子駿, 駿子重華, 重華子曜靈이니 涼人 廢之하고 立祚하니 重華之庶兄이라하다
정월에 장조張祚양왕涼王이라 자칭하였다.注+[頭註]장조張祚양주목涼州牧이다. 장궤張軌의 아들이 장식張寔이고, 장식張寔의 아우가 장무張茂이고, 장식張寔의 아들이 장준張駿이고, 장준張駿의 아들이 장중화張重華이고, 장중화張重華의 아들이 장요령張曜靈이다. 양주涼州 사람들이 장요령張曜靈을 폐하고 장조張祚를 세웠으니, 장조張祚장중화張重華서형庶兄이다.
揚州刺史殷浩 連年北伐할새 師徒屢敗하야 糧械都盡이라
양주자사揚州刺史 은호殷浩가 여러 해를 계속하여 북벌할 때에 군사들이 여러 번 패하여 군량과 병기가 모두 떨어졌다.
桓溫 因朝野之怨하야 上疏數浩之罪하고 請廢之하니 朝廷 不得已免浩爲庶人注+[附註]浩恒書空作咄咄怪事字하다 久之 溫將以浩爲尙書令한대 浩欣然將答書할새 慮有誤하야 開閉十數라가 竟達空函하니 溫大怒하야 遂絶하니라[通鑑要解]浩少與溫齊名하니 而心競不相下하야 溫常輕之 浩旣被黜 雖愁怨不形辭色이나 常書空作咄咄怪事字 久之 溫以浩爲尙書令하야 書告之러니 竟達空函이라 遂絶之하니 卒於徙所하니라하다
환온桓溫조야朝野가 원망하는 틈을 타서 상소上疏하여 은호殷浩의 죄를 열거하고 폐출할 것을 청하니, 조정이 부득이 은호殷浩를 면직하여 서인庶人으로 삼았다.注+[附註][附註]殷浩를 면직하여 서인庶人으로 삼으니, 은호殷浩가 항상 허공에 돌돌괴사咄咄怪事라는 글자를 쓰곤 하였다. 오랜 뒤에 환온桓溫이 장차 은호殷浩상서령尙書令으로 삼으려 하자, 은호殷浩가 기뻐하여 장차 답서를 보내려 할 적에 오류가 있을까 우려하여 뜯어보고 봉함하기를 십수 번 하다가 끝내 빈 봉투를 보내니, 환온桓溫이 크게 노하여 마침내 은호殷浩와 절교하였다. [通鑑要解]殷浩가 젊었을 적에 환온桓溫과 명성이 똑같으니, 환온桓溫은 마음속으로 다투고 서로 낮추지 아니하여 항상 은호殷浩를 경시하였다. 은호殷浩는 축출당한 뒤에 비록 근심과 원망을 말과 안색에 드러내지 않았으나 항상 허공에 돌돌괴사咄咄怪事라는 글자를 썼다. 오랜 뒤에 환온桓溫이 장차 은호殷浩상서령尙書令으로 삼고자 하여 이를 편지로 알렸는데, 〈은호殷浩가 답서를 보낼 적에〉 마침내 빈 봉투를 보냈으므로 크게 노하여 끝내 절교하니, 은호殷浩는 유배지에서 죽었다.
自此 內外大權 一歸於溫矣러라
이로부터 내외의 큰 권력이 모두 환온桓溫에게로 돌아갔다.
○ 桓溫 統步騎四萬하고 伐秦하야 進至霸上하니 三輔郡縣 皆來降이라
환온桓溫이 보병과 기병 4만 명을 거느리고 나라를 정벌할 적에 진격하여 패상霸上에 이르니, 삼보三輔군현郡縣이 모두 와서 항복하였다.
撫諭居民하야 使安堵復業하니 爭持牛酒迎勞
환온桓溫이 거주하는 백성들을 어루만지고 타일러서, 백성들로 하여금 사는 곳을 편안히 여기고 생업生業으로 돌아가게 하니, 백성들이 다투어 쇠고기와 술을 가지고 와서 맞이하고 위로하였다.
男女 夾路觀之하고 耆老 有垂泣者하야不圖今日 復覩官軍이라하더라
이에 남녀들은 길의 좌우에 늘어서서 이것을 구경하였고, 기로耆老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기를 “오늘날 다시 관군官軍을 보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하였다.
○ 北海王猛 少好學하고 注+[通鑑要解]不羈貌 高遠貌有大志하야 不屑細務하니 人皆輕之호되 悠然自得하야 隱居華陰이러니 聞桓溫入關하고 披褐注+[釋義] 通作被 平聲이니 〈褐〉 以毛毳織之詣之하야 而談當世之務호되 旁若無人이라
북해北海왕맹王猛이 젊어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의기가 드높아注+[通鑑要解]척당倜儻은 매이지 않는 모양이요, 고원高遠한 모양이다. 큰 뜻이 있어서 소소한 일을 좋아하지 않으니, 사람들이 모두 그를 경시하였으나 왕맹王猛유연悠然자득自得하여 화음華陰에 은거하였는데, 환온桓溫관중關中으로 들어왔다는 말을 듣고 짧은 갈옷을 입고注+[釋義]와 통용된다. 평성平聲(헤치다)이니, 옷에 띠를 매지 않은 것이다. 갈옷은 털로 짜서 만든다. 찾아가서 이를 잡으며 당세의 일을 말하되 옆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거리낌이 없었다.
溫異之하야 問曰 吾奉天子之命하야 將銳兵十萬하고 爲百姓除殘賊이어늘 而三秦豪傑 未有至者 何也
환온桓溫이 기이하게 여겨 묻기를 “내가 천자天子을 받들어 정예병 10만 명을 거느리고 백성을 위해 잔당들을 제거하는데, 삼진三秦의 호걸 중에 찾아오는 자가 없음은 어째서인가?” 하니,
猛曰 公 不遠數千里하고 深入敵境하야 今長安咫尺이어늘 而不度(渡)霸水하니 百姓 未知公心注+[通鑑要解]桓溫 破秦入關而不渡者 恐官軍知難而退也 又史註云 疑溫有異志也라하니라하야 所以不至니이다
왕맹王猛이 말하기를 “이 수천 리를 멀다 하지 않고 적의 국경에 깊숙이 들어와서 이제 장안長安이 지척에 있는데도 패수霸水를 건너가지 않으니, 백성들이 의 마음을 알지 못하여注+[通鑑要解]不度霸水……未知公心:환온桓溫나라를 격파하고 관중關中에 들어갔는데도 패수霸水를 건너가지 않은 것은 관군官軍이 상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후퇴할까 해서였다. 또 사주史註에 이르기를 “환온桓溫이 딴 뜻이 있다고 의심한 것이다.” 하였다. 이 때문에 이르지 않는 것입니다.” 하였다.
嘿然無以應하고 徐曰 江東 無卿比也라하고 乃署注+[頭註] 除也 謂除官이라猛軍謀祭酒하다
환온桓溫이 묵묵히 대답이 없다가 천천히 말하기를 “강동江東 지방에는 에게 비교할 사람이 없다.” 하고, 마침내 왕맹王猛군모좨주軍謀祭酒로 서용하였다.注+[頭註]는 제수함이니, 관직을 제수하는 것을 이른다.
○ 初 指秦麥以爲粮이러니 旣而 秦人하니 溫軍 乏食이라
○ 처음에 환온桓溫의중意中나라 지방의 보리를 군량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는데, 이윽고 나라 사람이 보리를 모두 베어 가니 환온桓溫의 군대가 식량이 부족하였다.
六月 徙關中注+[頭註]東有函谷關하고 南有嶢關, 武關하고 西有散關하고 北有蕭關故 名關中이라三千餘戶而歸할새 秦兵 追擊之한대 溫軍 屢敗하다
6월에 관중關中注+[頭註]동쪽에는 함곡관函谷關, 남쪽에는 요관嶢關무관武關, 서쪽에는 산관散關, 북쪽에는 소관蕭關이 있으므로 관중關中이라고 이름하였다. 의 3천여 가호를 옮기고 돌아올 적에, 나라 군대가 추격하자 환온桓溫의 군대가 여러 번 패하였다.
역주
역주1 : 척
역주2 裮被衣帶 : 裮被는 옷에 띠를 매지 않은 것을 이르는 바, 마음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삼가지 않음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역주3 : 슬
역주4 : 삼

통감절요(5)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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