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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4)

통감절요(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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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巳]六年이라
중평中平 6년(기사 189)
四月 帝崩하고 皇子辯注+[頭註]何后子 卽皇帝位하니 十四
4월에 영제靈帝가 별세하고 황자皇子 注+[頭註]황자皇子 유변劉辯하태후何太后의 아들이다. 이 황제에 즉위하니, 이때 나이가 14세였다.
何太后臨朝하야 封皇弟協注+[頭註]王美人子也 帝以辯輕佻無威儀라하야 欲立協이러니 猶豫未決이라가 會疾篤하야 屬協於蹇碩하니 欲先討何進而立協하니라하야 爲陳留王하다
하태후何太后가 조정에 임어臨御하여 황제皇弟유협劉協注+[頭註]황제의 아우인 유협劉協왕미인王美人의 아들이다. 영제靈帝유변劉辯이 경박하고 위의威儀가 없다 하여 유협劉協을 세우려고 하였는데, 유예猶豫하고 결정하지 못하다가 마침 병이 심해져서 유협劉協건석蹇碩에게 부탁하니, 건석蹇碩이 먼저 하진何進을 토벌한 다음 유협劉協을 세우려고 하였다. 을 봉하여 진류왕陳留王으로 삼았다.
宦官蹇碩 欲誅大將軍何進注+[頭註]何后異母兄이라而立協이어늘 中軍校尉袁紹 因勸進悉誅諸宦官하니 乃白太后호되 太后不聽이라
환관 건석蹇碩대장군大將軍 하진何進注+[頭註]하진何進하태후何太后이모異母(異腹) 오라비이다. 을 죽이고 유협劉協을 세우고자 하자, 중군교위中軍校尉 원소袁紹가 인하여 하진何進에게 환관들을 다 죽일 것을 권하니, 하진何進이 마침내 태후太后에게 아뢰었으나 태후太后가 들어주지 않았다.
紹等 又爲畫策하야 多召四方猛將하야 使竝引兵向京城하야 以脅太后하니 然之하다
원소袁紹 등이 또다시 계책을 내어서 사방의 용맹한 장수들을 많이 불러와서 함께 군대를 이끌고 경성京城으로 향하여 태후를 위협하게 하니, 하진何進이 그 말을 옳게 여겼다.
典軍校尉曹操 聞而笑曰 宦者之禍 古今宜有 但世主不當假之權寵하야 使至於此
전군교위典軍校尉 조조曹操가 이 말을 듣고 웃으며 말하기를 “환관의 고금古今에 있었으니, 다만 세상의 군주가 그들에게 권력과 총애를 빌려 주어서 이러한 지경에 이르지 않게 할 뿐이다.
旣治其罪인댄 當誅元惡이니 一獄吏足矣어늘
이미 그들의 죄를 다스리려 한다면 마땅히 원흉元兇을 죽여야 하니, 한 명의 옥리獄吏면 충분하다.
何至紛紛召外兵乎
어찌 분분하게 외부外部의 군대를 불러온단 말인가?
欲盡誅之인댄 事必宣露하리니 吾見其敗也리라
환관들을 다 죽이고자 한다면 일이 반드시 탄로날 것이니, 내 그 실패함을 볼 것이다.” 하였다.
○ 何進 召董卓注+[附註]隴西臨洮人이라 爲州兵馬掾하야 守塞下러니 雙帶兩鞬하고 左右馳射하며 膂力過人하야 爲羌, 胡所畏 盧植被誣하야 檻車徵還하니 以卓代之하니라하야 使將兵詣京師하니 卽時就道하야 幷上書曰 中常侍張讓等 竊倖承寵하야 濁亂海內하니
하진何進동탁董卓注+[附註]동탁董卓농서隴西 임조臨洮 사람이다. 병마연兵馬掾이 되어 변방 부근을 지켰는데, 두 활집을 쌍으로 차고 좌우로 말을 달리며 활을 쏘았고 힘이 보통 사람보다 뛰어나서 강족羌族호족胡族들이 두려워하는 바가 되었다. 노식盧植이 모함을 받아 함거로 소환되자 동탁董卓으로 대신하였다. 을 불러서 군대를 거느리고 경사京師에 오게 하니, 동탁董卓이 즉시 길에 오르면서 아울러 글을 올리기를 “중상시中常侍 장양張讓 등이 황제의 총애를 도둑질하고 이용하여 온 천하를 혼탁하게 하고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揚湯止沸注+[通鑑要解]枚乘諫吳王曰 欲湯之滄 一人炊之 百人揚之라도 無益也 不如絶薪止火니이다 莫若去薪이요 潰癰雖痛이나 勝於內食注+[頭註]言癰疽蘊結하야 破之雖痛이나 勝於內食肥肉하야 浸淫滋大也이라하니이다
이 듣건대 ‘끓는 물을 퍼냈다가 다시 부어 끓는 것을 막음은 솥 밑의 장작을 빼는 것만 못하고,注+[通鑑要解]매승枚乘오왕吳王에게 간하기를 “끓는 물을 넘치지 않게 할 때에 한 사람이 불을 때면 백 사람이 저어도 무익하니, 섶을 넣는 것을 멈추고 불을 끄는 것만 못합니다.” 하였다. 종기를 터뜨리는 것은 비록 아프지만 종기가 안으로 살을 먹어 들어가는 것보다는 낫다.注+[頭註]潰癰雖痛 승어내식勝於內食:종기가 곪아서 터뜨리는 것이 비록 아프지만 안으로 살을 먹어 들어가 점점 커지는 것보다는 나음을 말한 것이다. ’고 하였습니다.
趙鞅 興晉陽之甲하야 以逐君側之惡注+[頭註]趙鞅 春秋之末 定公時人이니 卽趙簡子也 君側之惡 謂荀寅與士吉射也하니 今臣 輒鳴鐘鼓注+[頭註]聲其罪也하고 如洛陽하야 請收讓等하야 以淸奸穢하리이다 太后猶不從이러라
옛날에 조앙趙鞅진양晉陽의 군대를 일으켜서 군주 곁에 있는 악한 자를 축출하였으니,注+[頭註]趙鞅……以逐君側之惡:조앙趙鞅춘추시대春秋時代 말엽 나라 정공定公 때 사람이니, 바로 조간자趙簡子이다. 군주 곁에 있는 악한 자는 순인荀寅사길석士吉射를 이른다. 지금 이 곧 종과 북을 울리며注+[頭註]종과 북을 울린다는 것은 그 죄를 성토하는 것이다. 낙양洛陽(雒陽)에 가서 장양張讓 등을 체포하여 간사함과 더러움을 깨끗이 제거할 것을 청합니다.” 하였으나 태후太后가 오히려 따르지 않았다.
中常侍張讓, 段珪 詐以太后詔召進하야 斬進於嘉德殿前하니
중상시中常侍 장양張讓단규段珪가 태후의 명령을 사칭하여 하진何進을 불러내어 하진何進가덕전嘉德殿 앞에서 목 베었다.
袁紹及何苗注+[頭註]進之弟也 聞進被害하고 乃引兵屯朱雀闕下하야 捕得趙忠等及諸宦者하야 皆殺之하니 凡二千餘人이라
원소袁紹하묘何苗注+[頭註]하묘何苗하진何進의 아우이다.하진何進이 살해당했다는 말을 듣고는 마침내 군대를 이끌고 주작궐朱雀闕 아래에 주둔하여 조충趙忠 등 여러 환관들을 체포해서 모두 죽이니, 모두 2천여 명이었다.
進兵攻省內注+[附註]漢宮中 本曰禁中이니 謂門戶有禁하야 非侍(御)[衛]通籍之臣이면 不得入也 後避元后諱하야 改曰省中하니 言入此者 皆當省察이요 不可妄也하니 張讓等 困迫하야 遂將帝與陳留王하고 出穀門注+[頭註]洛城正北門名이라이라가 讓等 投河而死하니
군대를 진격하여 궁궐 안注+[附註]나라 궁중宮中을 본래 금중禁中이라 하였으니, 문호門戶에 금지하는 자가 있어서 시위侍衛하는 자와 문적門籍에 이름을 기록한 신하가 아니면 들어갈 수가 없음을 이른다. 뒤에 원후元后를 피하여 성중省中이라고 고쳤으니, 이곳에 들어오는 자는 모두 살펴야 하고 함부로 해서는 안 됨을 말한 것이다. 을 공격하니, 장양張讓 등이 몹시 곤궁하고 절박하여 마침내 황제와 진류왕陳留王을 데리고 곡문穀門注+[頭註]곡문穀門낙성洛城 정북쪽 문의 이름이다.으로 나가다가 장양張讓 등이 황하黃河에 투신하여 죽었다.
帝獨乘一馬하고 從雒舍注+[頭註]地名이라南行이러라
황제가 홀로 말 한 필을 타고 낙사雒舍注+[頭註]낙사雒舍는 지명이다. 를 따라 남쪽으로 갔다.
董卓 聞帝在北하고 迎於北芒(邙)注+[釋義] 本作邙하니 山名也 在河南雒陽縣北七十里故 曰北邙이라 音返이니 坡阪也하다
동탁董卓은 황제가 북쪽에 있다는 말을 듣고는 북망판北芒阪 아래注+[釋義]은 본래 으로 되어 있으니, 북망北邙 이름이다. 하남군河南郡 낙양현雒陽縣 북쪽 70리 지점에 있으므로 북망北邙이라 하였다. 이 반(판)이니 파판坡阪(언덕)이다. 에서 맞이하였다.
與帝語 語不可了注+[頭註]曉解也러니 乃更與陳留王語하니 無所遺失이라
동탁董卓이 황제와 말을 해 보니 말을 분명히 하지注+[頭註]는 분명히 이해함이다. 못하였는데, 다시 진류왕陳留王과 말을 해 보니 빠뜨리는 바가 없었다.
大喜하야 以王爲賢이라하고 有廢立之意하야
동탁董卓은 크게 기뻐하며 진류왕陳留王이 어질다 여겨 황제를 폐위하고 다시 세울 뜻이 있었다.
遂脅太后하야 廢帝爲弘農王하고 立陳留王協하야 爲帝하다
그리하여 마침내 태후를 위협하여 황제를 폐위하여 홍농왕弘農王으로 삼고 진류왕陳留王 유협劉協을 세워서 황제로 삼았다.
[史略 史評]史斷曰
[史略 사평史評]史斷에 말하였다.
靈帝卽位 昏愚尤甚하야 保養奸回 過於骨肉하고 殲滅忠良 甚於寇仇하며 鬻獄賣官 錯直擧枉하고 災異迭見 史不絶書하야 積多士之憤하고 蓄四海之怨이라
영제靈帝가 즉위하자 혼우昏愚함이 더욱 심하여 간사한 자들을 보호하고 기르기를 골육骨肉(兄弟間)보다 더하였고, 충량忠良한 자들을 섬멸하기를 원수보다 더 심하게 하였으며, 돈을 받고서 유리한 판결을 내려 주고 관직을 팔아먹어 정직한 사람을 버리고 부정한 사람을 들어 썼으며, 재이災異가 번갈아 나타남에 사관史官의 기록이 끊이지 아니하여, 많은 선비들의 분노가 쌓이고 온 천하 사람들의 원망이 쌓였다.
於是 何進召戎하고 董卓乘釁하야 虺蜴雖除 而虎狼復入室矣 可悲也乎인저
이에 하진何進이 외부의 군대를 불러오고 동탁董卓이 틈을 타서 이무기와 뱀을 비록 제거하였으나 범과 이리가 다시 방 안에 들어왔으니, 참으로 슬프다.”
○ 董卓 率諸公上書하야 追理陳蕃, 竇武及諸黨人하야 悉復其爵位하고 遣使弔祠하고 擢用其子孫하다
동탁董卓제공諸公들을 거느리고 글을 올려서 진번陳蕃두무竇武 및 여러 당인黨人들을 다시 심리하여 그들의 관작을 모두 회복시키고, 사자使者를 보내어 조문하고 제사하게 하고는 그 자손들을 발탁 등용하였다.
伍瓊 說卓하야 矯桓靈之政하고 擢用天下名士하니 從之하다
오경伍瓊동탁董卓을 설득하여 환제桓帝영제靈帝의 잘못된 정사를 바로잡고 천하의 명사名士들을 발탁하여 등용하게 하니, 동탁董卓이 이를 따랐다.
於是 徵處士荀爽, 申屠蟠等하야 復就하니
이에 처사處士순상荀爽신도반申屠蟠 등을 불러서 다시 나오게 하였다.
拜爽平原相하야 行至宛陵 遷光祿勳하고 視事三日 進拜司空하니 自被徵命으로 及登台司注+[附註]下三台星 兩兩而居하니 在人 爲三公이요 在天 爲三台 三台色齊하면 君臣和 又上台爲太尉 中台爲司徒 下台爲司空이라凡九十三日이러라
순상荀爽에게 평원상平原相을 제수하여 순상荀爽이 길을 떠나 완릉宛陵에 이르자 광록훈光祿勳으로 승진되었고 사무를 본 지 3일 만에 승진하여 사공司空에 제수되었으니, 부르는 명령을 받음으로부터 태사台司注+[附註]두괴斗魁 아래의 삼태성三台星이 두 개씩 서로 모여 있으니, 사람에 있어서는 삼공三公이 되고 하늘에 있어서는 삼태三台가 된다. 삼태성三台星의 색깔이 고르면 군신간이 화합한다. 또 상태上台태위太尉가 되고 중태中台사도司徒가 되고 하태下台사공司空이 된다.에 오르기까지 총 93일이었다.
○ 董卓 拜袁紹渤海太守하니 袁術注+[頭註]紹之從弟 畏卓出奔하니라 出犇(奔)南陽하고 曹操 變易姓名하고 間行注+[頭註] 去聲이니 見五卷이라東歸하야 至陳留하야 散家財하고 合兵得五千人하다
동탁董卓원소袁紹발해태수渤海太守에 임명하니, 원술袁術注+[頭註]원술袁術원소袁紹종제從弟로 동탁을 두려워하여 도망하여 달아난 것이다. 남양南陽으로 도망하여 달아났고 조조曹操는 성명을 바꾸고 샛길로注+[頭註]거성去聲이니, 해설이 오권五卷에 보인다. 동쪽으로 돌아가 진류陳留에 이르러서 가산家産을 흩어 병력을 규합하여 5천 명을 얻었다.
역주
역주1 : 판
역주2 斗魁 : 北斗七星의 첫번째부터 네번째까지의 네 별을 가리키는 바, 곧 樞, 璿, 璣, 權을 이른다.

통감절요(4)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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