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通鑑節要(7)

통감절요(7)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통감절요(7)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太宗皇帝 下
태종황제太宗皇帝
[己亥]十三年이라
정관貞觀 13년(기해 639)
正月 加左僕射房玄齡太子少師하다
정월에 좌복야左僕射 방현령房玄齡가봉加封하여 태자소사太子少師로 삼았다.
玄齡注+[釋義]戶部屬官이니 掌天下租賦, 物産하야 歲計所出而支調之하니라 繫天下利害라하야 嘗有闕 求其人未得이어늘 乃自領之하다
방현령房玄齡탁지낭중度支郎中注+[釋義]탁지度支호부戶部속관屬官이니, 천하天下조부租賦물산物産을 관장하여 해마다 소출을 계산하여 조달하였다. 천하 백성들의 이해利害에 관계된다고 하여 일찍이 빈자리가 있어 적임자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하자, 마침내 자신이 겸임하였다.
〈出玄齡傳〉
- 《신당서新唐書 방현령전房玄齡傳》에 나옴 -
○ 上 旣詔宗室, 群臣하야 襲封刺史한대 左庶子于志寧 以爲古今事殊하니 恐非久安之道라하야 上疏爭之注+[頭註] 與諍同이라 하고
이 이미 조명詔命을 내려 종실宗室과 여러 신하의 자손들에게 자사刺史습봉襲封하게 하였는데, 좌서자左庶子 우지녕于志寧이 ‘옛날과 지금은 사정이 다르니 장구하게 천하를 안정시킬 수 있는 방도가 아닐 듯하다.’ 하여 상소하여 이를 간하였다.注+[頭註]과 같다.
侍御史馬周 亦上疏하야 以爲堯, 舜之父로도 猶有朱, 均之子注+[釋義]堯封子朱於丹淵이라 故號丹朱 舜子均於商이라 故號商均이라 하니 儻有孩童嗣職하야 萬一驕愚 兆庶被其殃하고 而國家受其敗하리니
시어사侍御史 마주馬周 또한 상소하여 아뢰기를 “ 같은 성명聖明한 부친에게도 오히려 단주丹朱상균商均과 같은 어리석은 아들이注+[釋義], 순지부舜之父 유유주猶有朱, 균지자均之子:임금이 아들 단연丹淵에 봉하였기 때문에 단주丹朱라 부르고, 임금이 아들 에 봉하였기 때문에 상균商均이라 부른다. 있었으니, 혹시라도 어린아이가 부친의 지위를 계승하였을 경우 만에 하나라도 교만하고 어리석으면 수많은 백성들이 그 화를 입고 국가 또한 이 때문에 패망하게 될 것입니다.
正欲絶之也인댄 則子文之治猶在注+[附註]左宣四年 若敖氏作亂이어늘 王滅之하고 拘(藏)[箴]尹克黃於司敗러니 王思子文之治楚國也하야 曰 子文 無後 何以勸善이리오하고 使復其所하고 改命曰生이라하니 言其更生也 顓頊之裔 熊繹 當周成王時하야 始受封焉하고 至十四世熊儀하니 是爲若敖氏也 若敖生鬪伯比하니 其後 鬪爲氏 伯比生子(産)[文]하고 之子鬪椒作亂하니라 正欲留之也인댄 而欒之惡已彰注+[釋義] 乙減反이라 左傳晉士鞅曰 欒黶汰虐已甚이나 猶可以免하니 其在盈乎인저 黶死 武子所施沒矣 而黶之怨寔彰이라하더니 盈見逐하니라[通鑑要解] 士鞅 晉人이라 武子 卽欒黶之父也 黶之子也 이라 與其毒害於存之百姓으론 則寧使割恩於已亡之一臣이니이다
만일 습봉襲封을 곧바로 없애고자 한다면 자문子文의 정치가 아직 남아 있고,注+[附註]춘추좌전春秋左傳선공宣公 4년조에 약오씨若敖氏가 난을 일으키자, 초왕楚王이 이를 멸하고 잠윤箴尹 극황克黃사패司敗에게 구속하게 하였는데, 초왕楚王자문子文나라를 다스린 공을 생각하여 이르기를 “자문子文에게 후손이 없다면 어떻게 사람들에게 을 권면할 수 있겠는가.” 하고는 극황克黃으로 하여금 잠윤箴尹의 직임을 그대로 맡게 하고 이름을 고쳐 이라 하였으니, 그가 다시 살아났음을 말한 것이다. 나라는 전욱顓頊의 후예이니, 웅역熊繹나라 성왕成王 때에 비로소 봉함을 받았고, 14웅의熊儀에 이르니 이가 바로 약오씨若敖氏이다. 약오若敖투백비鬪伯比를 낳으니, 그 후에는 성씨姓氏로 삼았다. 백비伯比자문子文을 낳았고, 자문子文의 아우인 자량子良의 아들 투초鬪椒가 난을 일으켰다. 만일 남겨 두고자(살려 두고자) 한다면 난염欒黶의 죄악이 이미 세상에 드러났으니,注+[釋義]은 乙減反(암)이다. 《춘추좌전春秋左傳양공襄公 14년조에 〈진백秦伯사앙士鞅에게 “나라 대부大夫 중 누가 먼저 망하겠느냐?”고 묻자,〉晉나라 사앙士鞅이 말하기를 “난염欒黶의 포학함이 매우 심한데도 오히려 화를 면하였으니, 아마도 그 아들인 난영欒盈 때에 망할 것입니다. 난염欒黶이 죽으면 무자武子(欒書)가 베풀었던 은택이 다 없어질 것이니, 난염欒黶에 대한 원한이 실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하였는데, 뒤에 난영欒盈이 축출당하였다. [通鑑要解]사앙士鞅나라 사람이다. 무자武子는 바로 난염欒黶의 아버지이고, 난영欒盈난염欒黶의 아들이다. 현재 살아 있는 백성들에게 해독을 끼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미 죽은 한 신하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然則向所謂愛之者 乃適所以傷之也니이다
그렇다면 예전에 이른바 그들을 사랑한다는 것은 바로 단지 그들을 해치는 것이 될 뿐입니다.” 하였다.
長孫無忌等 皆不願之國하야 上表固讓이어늘 上曰 割地以封功臣 古今通義
마침 장손무기長孫無忌 등이 모두 봉해진 나라로 가기를 원하지 아니하여 표문表文을 올려 굳이 사양하니, 이 이르기를 “땅을 떼어 공신을 봉해주는 것은 고금에 공통된 의리이다.
意欲公之後嗣 輔朕子孫하야 共傳永久어늘 而公等 乃復發言怨望하니 豈彊公等以茅土注+[釋義]古者 天子以五色土爲壇하야 封諸侯호되 取其方面土하야 苴以白茅授之하야 使立社於其國也 아하고 詔停世封刺史하다
나는 내심으로 공의 후대 자손들이 짐의 자손을 보필하여 함께 영구히 전할 것을 생각하였는데, 공들은 도리어 다시 말하면서 원망하니, 짐이 어찌 공들에게 제후諸侯의 직임을注+[釋義]옛날에 천자天子오색토五色土을 만들어서 제후諸侯를 봉해주되 각각 해당하는 방면方面의 흙을 취하여 흰 띠풀로 싸서 제후諸侯에게 주어 봉국封國를 세우게 하였다. 강요할 수 있겠는가.” 하고는, 대대로 자사刺史습봉襲封하는 것을 중지하도록 명하였다.
〈出政要〉
- 《정관정요貞觀政要》에 나옴 -
[新增]胡氏曰
[新增]胡氏가 말하였다.
太宗 嘗讀周官書 辨方正位注+[原註]辨別四方하야 正君臣之位하니 君南面하고 臣北面之屬이라 又考工 匠人建國 (求)하고 以縣하야 視以景(影)하며 爲(視)[規]하야 日出之景與日入之景하며 晝參諸日中之景하고 夜考之極星하야 以正朝夕이라하니 是別四方也 召誥曰 越三日戊申 太保朝至于雒(洛)하야 卜宅하야 旣得卜則經營하니라 越三日 太保乃以庶殷으로 攻位於雒汭하니 越五日甲寅 位成이라하니라 正位 謂此定宮廟 하고 體國經野注+[原註] 猶分也 謂爲之里數 鄭氏曰 營國方九里 國中 九經九緯 左祖右社하고 面朝後市 野則九夫爲井하고 四井爲邑之屬 是也 하고 設官分職注+[原註]置冢宰, 司徒, 宗伯, 司馬, 司寇, 司空하야 各有所職하야 而百事擧 하야 以爲民極之言注+[原註]群書考索曰 極者 至極之義 標準之名이니 嘗在物之中央하야 而四外望之以取正焉者也 皇極爲在中之至則可커니와 而直謂極爲中則不可 若北辰之爲天極 屋棟之爲屋極 其義皆然이라 하고
태종太宗이 일찍이 《주례周禮》에 ‘〈왕이 국도國都를 세울 때에〉방위를 분별하여 궁궐과 사당의 자리를 정하고注+[原註]변방정위辨方正位는 사방을 변별하여 군주와 신하의 자리를 바로잡는 것이니, 군주는 남면하고 신하는 북면하는 따위이다. 또 《주례周禮》 〈고공기考工記〉에 “장인匠人이 도성을 세울 때에 기둥을 세우고 물을 매다는 법으로써 땅이 평평한지 측량하며, 끈을 매다는 방법으로 수직의 말뚝을 설치하고 해그림자를 관찰하며, (그림쇠)를 만들어 해가 뜰 때의 그림자와 해가 질 때의 그림자를 표시한다. 낮에는 일중日中(正午)의 해그림자를 참고하고 밤에는 북극성을 참고하여 조석朝夕(東西)을 바로잡는다.”라고 하였으니, 사방을 분별하는 것이다. 《서경書經》 〈소고召誥〉에 이르기를 “3일이 지난 무신일戊申日태보太保(召公 )가 아침에 낙읍雒邑에 이르러 살 곳을 점쳐 이미 길점을 얻고는 경영하였다. 3일이 지나 태보太保가 마침내 여러 나라 백성을 데리고 낙예雒汭에서 자리를 다스리니, 5일이 지난 갑인일甲寅日에 자리가 이루어졌다.” 하였다. ‘자리를 정하였다.’는 것은 여기에 궁궐과 사당의 자리를 정함을 이른다.도성都城교외郊外의 경계를 구획하며注+[原註]과 같고 이수里數를 만듦을 이른다. 정씨鄭氏(鄭衆)가 말하기를 “장인匠人이 도성을 경영할 때 사방이 9이니, 도성 안에는 9개의 남북으로 난 큰길과 9개의 동서로 난 큰길이 있으며, 왼쪽에는 종묘가 있고 오른쪽에는 사직이 있으며, 앞에는 가 있고 뒤에는 시장이 있으며, 들은 9가 1(사방 1)이고 4이라고 한 따위가 이것이다.” 하였다. 관직을 나누어 설치하여注+[原註]총재冢宰사도司徒종백宗伯사마司馬사구司寇사공司空을 두어 각각 맡은 직책이 있어서 여러 가지 일이 거행되는 것이다. 민극民極(백성의 준칙)을 삼는다.’는注+[原註]나라 장여우章如愚의 《군서고색群書考索》에 이르기를 “은 지극하다는 뜻이요 표준의 이름이니, 항상 물건의 중앙에 있어서 사방에서 바라보고서 바름을 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황극皇極을 중앙에 있는 표준이라고 하는 것은 가하지만 다만 을 일러 이라고 하는 것은 불가하다. 북극성北極星천극天極이라 하고 지붕의 대들보를 옥극屋極이라 하는 것은 그 뜻이 모두 이와 같다.” 하였다. 글을 읽고는,
慨然歎曰 不井田注+[原註]井田之制 見孟子文公註하고 不封建注+[原註]記王制 公, 侯 田方百里 七十里 子, 男 五十里之類 是也 禮地官 封人 凡封國 設其社稷之하고 封其四疆이라이면 不足以法三代之治라하고 詔群臣하야 議封建하니 其本於此乎인저
개연히 탄식하기를 ‘정전법井田法을 행하지 않고注+[原註]정전제井田制는 《맹자孟子》 〈등문공滕文公〉의 에 보인다. 봉건제도封建制度를 쓰지 않으면注+[原註]봉건封建은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전지田地가 사방 100리이고, 은 70리이고, 은 50리이다.”라고 한 따위가 이것이다. 《주례周禮》 〈지관地官 사도司徒〉에 “봉인封人이 무릇 5등의 제후를 봉할 적에 사직단社稷壇을 설치하고 사방의 경내境內를 봉하였다.” 하였다. 삼대三代의 정치를 본받을 수 없다.’ 하고 여러 신하들에게 명하여 봉건제도를 의논하게 하였으니, 이 《주례周禮》에서 근본한 것이다.
夫封建 與天下共其利하니 天道之公也 郡縣 以天下奉一人하니 人欲之私也
봉건제도封建制度는 천하와 이익을 함께 하니 공정한 천도天道이고, 군현제도郡縣制度는 천하를 가지고 군주 한 사람을 받드니 사사로운 인욕人慾이다.
魏徵 蓋未嘗詳考古制하야 注+[原註] 音魯 莫古反이라 莊子云 君爲政 勿鹵莽라한대 不用心也라하니라 甚矣어늘
위징魏徵은 일찍이 옛 제도를 자세히 고찰하지 아니하여 매우 엉성하고 거칠었는데,注+[原註]는 음이 노이고, 는 莫古反(모)이다. 《장자莊子》 〈칙양則陽〉에 이르기를 “군주가 정사를 할 때에는 노망鹵莽하지 말아야 한다.” 하였는데, 에 “마음을 쓰지 않는 것이다.” 하였다.
而近世范, 蘇二公注+[附註]范氏曰 宗元有言曰 封建 非聖人意也 勢也 蓋自上古以來有之하니 聖人不得而廢也 周室旣衰 倂爲十二하고 列爲六七하야 而封建之禮已亡이요 秦滅六國爲郡縣하야 三代之制 不可復矣 必欲法上古而封之인댄 弱則不得以藩屛이요 强則必至於僭亂이라 況諸侯之後嗣 或不肖어늘 而必使之繼世 以一人害一國也 然則如之何 記曰 禮 時爲大하고 順次之라하니 三代封國하고 後世郡縣 時也 因時制宜하야 以便其民 順也 古之法 不可用於今 猶今之法 不可用於古也 後世 如有王者하야 親親而尊賢하고 務德而愛民하고 愼擇守令하야 以治郡縣이면 亦足以致太平而興禮樂矣리니 何必如古封建이라야 乃爲盛哉 東坡曰 聖人 不能爲時 亦不失時하나니 非聖人之所得爲 能不失時而已 三代之興 諸侯無罪 不可奪削하야 因而君之하니 雖欲罷侯置守 可得乎 此所謂不能爲時者也 始皇 旣幷天下 分郡邑하고 置守宰 理固當然하니 如冬裘夏葛하야 時之所宜 非人之私智獨見也 所謂不失時者 柳宗元曰 封建 非聖人意也 勢也라하니 吾取其說而附益之하노라 曰 凡有血氣 必爭이요 爭必以(理)[利] 封建者 爭之端而亂之始也 自書契以來 臣弑其君하고 子弑其父하며 父子兄弟相賊殺 有不出於襲封而爭位者乎 其餘卿大夫不世襲者 蓋未嘗有也 近世 無復封建 則此禍幾絶하니 仁人君子 忍復開之歟 吾以爲李斯, 始皇之言 柳宗元之論 當爲萬世法也라하노라 亦謂封建不可行이니 始皇, 李斯, 柳宗元注+[頭註]憲宗十年 以永川司馬 爲柳州刺史之論 聖人不能易也라하니 嗚呼
근세에 범공范公(范祖禹)과 소공蘇公(蘇軾) 두 분注+[附註]범씨范氏(范祖禹)가 말하였다. “유종원柳宗元이 말하기를 ‘봉건封建성인聖人의 뜻이 아니요 형편상 그렇게 했던 것이니, 상고시대上古時代 이래로 봉건제도가 있었으므로 성인聖人이 폐지하지 못한 것이다. 나라 왕실王室이 쇠약해진 뒤에는 제후국이 합하여 열둘이 되고 나뉘어 예닐곱이 되어 봉건封建하는 가 이미 대부분 없어졌고, 나라가 육국六國을 멸망시키고 군현郡縣으로 만들자 삼대三代의 제도가 회복할 수 없게 되었다. 반드시 상고시대上古時代를 본받아 봉건하고자 할 경우 제후국이 약하면 번병藩屛이 될 수 없고, 제후국이 강하면 반드시 참람하여 난을 일으킬 것이다. 더구나 제후諸侯후사後嗣가 혹 불초한데도 반드시 그로 하여금 대를 잇게 한다면 이는 한 사람으로 한 나라를 해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예기禮記》 〈예기禮器〉에 이르기를 「禮는 때에 맞음이 중요하고 함이 그 다음이 된다.」 하였으니, 삼대시대三代時代봉국封國을 하고 후세에 군현郡縣으로 만든 것은 때에 맞게 한 것이요, 때에 따라 마땅함을 따라서 백성들을 편리하게 한 것은 함이다. 옛날의 법을 지금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오늘날의 법을 옛날에 사용할 수 없는 것과 같다. 후세에 만약 왕자王者가 나와 친척을 친애하고 현인을 존경하며 덕행을 힘쓰고 백성을 사랑하며 수령을 신중하게 선발하여 군현郡縣을 다스린다면 또한 충분히 태평을 이룩하고 예악禮樂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니, 어찌 굳이 옛날의 봉건제도와 같이 하여야만 성대함이 되겠는가.’ 하였다.동파東坡 소식蘇軾이 말하기를 ‘성인聖人은 때를 만들 수 없지만 또한 때를 놓치지도 않는다. 때는 성인聖人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요 때를 놓치지 않을 뿐이다. 삼대三代가 흥할 때에 제후에게 죄가 없으면 관작을 삭탈할 수 없어서 그대로 세습하여 군주를 삼았으니, 비록 제후를 파하고 수령을 두고자 한들 될 수 있었겠는가. 이것이 이른바 「때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시황始皇이 천하를 겸병한 뒤에 군郡과 읍邑으로 나누어 수령守令과 읍재邑宰를 둔 것은 이치에 진실로 당연한 것이다. 마치 겨울에 두꺼운 갖옷을 입고 여름에 시원한 갈옷을 입는 것과 같아서 때에 따라 마땅함을 따른 것이요 사람의 사지私智와 독견獨見이 아니었다. 이것이 이른바 「때를 놓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종원柳宗元이 말하기를 「封建은 성인聖人의 뜻이 아니요 형편상 그렇게 했던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내 그 말을 취하여 다음과 같이 부회附會한다. 모든 혈기血氣가 있는 것들은 반드시 다투며 다투는 것은 반드시 이익 때문이다. 〈이익은 봉건封建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으니〉封建은 다툼의 단서이고 난亂의 시초이다. 복희씨伏羲氏가 서계書契를 만든 이래로 신하가 군주를 시해하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며 부자간과 형제간이 서로 해치고 죽이는 것이 습봉襲封하여 지위를 다투는 데서 비롯되지 않은 경우가 있었는가. 그 나머지 경대부卿大夫가 세습하지 않은 것은 일찍이 〈이러한 제도가〉없었기 때문이다. 근세近世에 더이상 봉건封建 제도를 시행하지 않게 되자 이러한 화禍가 거의 끊어졌으니, 인인仁人 군자君子가 어찌 차마 다시 화의 근원을 열어놓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이사李斯와 시황始皇의 말과 유종원柳宗元의 의론이 만세萬世의 법法이 된다고 생각한다.’ 하였다.” 또한 말하기를 ‘봉건제를 행할 수 없으니, 진시황秦始皇‧이사李斯‧유종원柳宗元의[頭註]유종원柳宗元헌종憲宗 10년(815)에 영천사마永川司馬유주자사柳州刺史가 되었다. 의론은 성인聖人도 바꿀 수가 없다.’라고 하였으니, 아!
豈其然乎
어찌 그러하겠는가.
宗元之言曰 封建 非聖人意也 勢也라하니
유종원柳宗元의 말에 이르기를 ‘봉건제도는 성인聖人의 뜻이 아니요, 형편상 그렇게 했던 것이다.’ 하였으니,
誠使上古諸侯 已爲民害어늘 聖人 不得已而存之 則唐, 虞之際 洪水懷襄注+[原註]書堯典 湯湯洪水方割하야 蕩蕩懷山襄陵이라한대 蔡傳 害也 包其四面也 駕出其上也라하니 言其水勢如此 하야 民無所定하고
진실로 상고시대上古時代제후諸侯가 백성들의 폐해가 되었는데, 성인聖人이 부득이해서 이 봉건제도를 보존한 것이라면 임금과 임금 때에 홍수가 산을 에워싸고 언덕으로 올라가서注+[原註]서경書經》 〈요전堯典〉에 “넘실넘실 흐르는 홍수가 막 해를 끼쳐서 탕탕하게 산을 감싸고 언덕으로 넘어간다.” 하였는데, 채침蔡沈에 “은 해침이요, 는 사면을 에워싸는 것이요, 은 높이 그 위로 나오는 것이다.” 하였으니, 물의 형세가 이와 같음을 말한 것이다. 백성들이 안정할 곳이 없었고,
武王, 周公 誅紂伐奄하야 滅國五十하니 皆天下之大變也어늘
무왕武王주공周公주왕紂王을 죽이고 나라를 정벌해서 50개 국을 멸망시킨 것은 모두 천하의 큰 변고이다.
此數聖人 不能因時之變하야 更立制度하야 以爲郡縣하고 乃畫壤裂土하야 修明侯, 甸之法注+[原註]見書禹貢하니라 何哉
이에 이 몇 성인聖人들이 때의 변고를 계기로 봉건제도를 바꾸어 군현제도로 만들지 못하고, 마침내 땅을 구획하고 땅을 떼어 주어 후복侯服전복甸服의 법을注+[原註]후복侯服전복甸服은 《서경書經》 〈우공禹貢〉에 보인다. 닦아서 밝힌 것은 어째서인가.
宗元 又曰 德在人者死 必奉其嗣
유종원柳宗元이 또 말하기를 ‘은덕이 백성에게 남아 있는 자(聖王)가 죽으면 반드시 그 후사를 받든다.
故封建 非聖人意也 勢也라하니
그러므로 봉건제도는 성인聖人의 뜻이 아니요, 형편상 그렇게 했던 것이다.’ 하였다.
夫爲其德之不可忘이라 是以 憫其絶이니 仁之至 義之盡하야 而出於人心之固然者
그(聖王)의 은덕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에 그 대가 끊어짐을 민망히 여긴 것이니, 이는 의 지극함이고 의 극진함으로서 인심人心의 당연한 데에서 나온 것이다.
固非聖人之私意어늘 而歸之勢可乎
진실로 성인聖人의 사사로운 뜻이 아닌데, 이것을 형편으로 귀결시킴이 옳겠는가.
宗元 又曰 諸侯國亂이라도 天子不得變其君이라하니 夫孟子所言貶爵, 削地, 六師移之之法 皆先王之制也 烏在其不敢變乎
유종원柳宗元이 또 말하기를 ‘제후諸侯의 나라가 혼란하더라도 천자天子가 그 군주를 바꿀 수 없다.’고 하였으니,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셨던 ‘작위爵位를 깎아내리고 땅을 떼어내며 육군六軍을 출동하여 군주를 바꾸는 법’이 모두 선왕先王의 제도이니, ‘감히 바꿀 수 없다.’는 것이 어디에 있는가.
漢不能制侯王未萌之惡이라가 及大逆不道然後 勒兵而夷之注+[頭註]滅也, 芟也하니 此非三代故事 自漢之失이니 袁盎 固言之注+[頭註]見八卷丁亥年하니라
나라가 제후왕諸侯王이 싹트기 전에 제어하지 못하고 대역무도한 짓을 저지른 뒤에야 군대를 무장하여 제후諸侯를 멸망하였으니,注+[頭註]는 멸하고 베어서 제거하는 것이다. 이는 삼대三代고사故事가 아니고 본래 나라가 잘못한 것으로 원앙袁盎이 진실로 이 점에 대해서 말을 하였다.注+[頭註]원앙袁盎이 말한 것은 8권 정해년조丁亥年條(B.C.154)에 보인다.
豈可擧此하야 以例禹, 湯, 文, 武所爲哉
그런데 어찌 이에 대해 거론하면서 우왕禹王탕왕湯王문왕文王무왕武王이 행한 일을 예로 든단 말인가.
方三代盛時하야 諸侯或自其國으로 入爲三公하고 王室有難이면 諸侯或釋位以間王政注+[原註]左昭二十六年 厲王戾虐하니 萬民弗忍하야 居王于彘한대 諸侯釋位하야 以間王政이라한대 周人 不忍害王하야 乃流王于彘地 猶與也 諸侯去其位하고 與治王之政事 間厠之間이니 一音如字 音預하고 至其衰也하야 五伯(霸)注+[頭註]齊桓, 晉文, 秦穆, 宋襄, 楚莊이라雖强大라도 猶且攘夷狄하야 以尊戴天下之共主注+[原註]周爲天下共所宗主
삼대三代가 융성할 때에는 제후가 혹 자기 나라로부터 천자의 조정에 들어와 삼공三公이 되고, 왕실王室에 난리가 있으면 제후가 혹 자기 지위를 내놓고 왕정王政에 관여하였으며,注+[原註]춘추좌전春秋左傳소공昭公 26년조에 “여왕厲王이 포학하니 만민이 포학함을 견디지 못하여 땅으로 보내어 거하게 하자, 제후諸侯들이 지위를 버리고 왕정王政에 간여했다.” 하였는데, 에 “나라 사람들이 차마 을 해치지 못하여 마침내 땅으로 보낸 것이다.” 하였다. 와 같으니, 제후諸侯들이 지위를 버리고 의 정사에 간예한 것이다. 간측間厠과 같으니, 다른 음은 본자本字와 같고 는 음이 예이다.삼대三代가 쇠퇴할 때에는 오패五霸注+[頭註]오패五霸나라 환공桓公나라 문공文公나라 목공穆公나라 양공襄公나라 장왕莊王이다. 비록 강대하였지만 오히려 이적夷狄을 물리치고 천하가 함께 종주宗主注+[原註]나라가 천하가 함께 종주宗主로 높이는 바가 되었다. 삼는 나라를 높이 받들었다.
凡若此類 宗元 皆略而不稱하고 乃摘取衰微禍亂之一二하야 欲擧封建而廢之하니 是猶見刖者而欲廢天下之
무릇 이와 같은 종류를 유종원柳宗元은 다 생략하여 말하지 않고, 마침내 쇠미했을 때 화란禍亂이 일어난 한두 가지의 경우를 들추어내면서 봉건제도를 거론하여 폐지하고자 하였으니, 이것은 월형刖刑(발을 베는 형벌)을 당한 자를 보고서 천하의 신발을 없애고자 하는 것과 같다.
宗元 又曰 湯資三千諸侯以黜夏하고 武資八百諸侯以翦商이라 故不敢變易也라하니
유종원柳宗元이 또 말하기를 ‘임금은 3천의 제후들에게 의지하여 나라를 내쳤고, 무왕武王은 8백의 제후들에게 의지하여 나라를 무찔렀기 때문에 감히 봉건제도를 바꾸지 못했다.’ 하였으니,
聖人 於未擧兵之前 要結衆力하고 及成功之後 姑息苟安이니
〈그렇다면 이는〉聖人이 군대를 일으키기 전에는 여러 사람의 힘을 결속시키고, 성공한 뒤에는 당장의 안락함을 위해서 구차히 편안히 한 것이니,
此十六國注+[附註]晉室十六國이니 前趙劉淵, 後趙石勒, 前燕慕容廆, 後燕慕容垂, 南燕慕容德, 北燕馮跋, 前秦苻洪, 後秦姚萇, 西秦乞伏國仁, 前涼張軌, 後涼呂光, 南涼禿髮烏孤, 北涼沮渠蒙遜, 西涼李暠, 後蜀李特, 大夏赫連勃勃이라 五代注+[頭註]後梁朱氏晃, 後唐李氏存勖, 後晉石氏敬塘, 後漢劉氏暠, 後周郭氏威 庸主之所行이어늘 而謂湯, 武爲之乎
이는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注+[附註]십육국十六國나라 때 오호五胡가 세운 16개의 나라이니, 전조前趙유연劉淵, 후조後趙석륵石勒, 전연前燕모용외慕容廆, 후연後燕모용수慕容垂, 남연南燕모용덕慕容德, 북연北燕풍발馮跋, 전진前秦부홍苻洪, 후진後秦요장姚萇, 서진西秦걸복국인乞伏國仁, 전량前涼장궤張軌, 후량後涼여광呂光, 남량南涼독발오고禿髮烏孤, 북량北涼저거몽손沮渠蒙遜, 서량西涼이고李暠, 후촉後蜀이특李特, 대하大夏혁련발발赫連勃勃이다. 오대시대五代時代注+[頭註]오대五代후량後梁주황朱晃, 후당後唐이존욱李存勖, 후진後晉석경당石敬塘, 후한後漢유고劉暠(知遠), 후주後周곽위郭威이다. 용렬한 군주가 행한 것인데, 탕왕湯王무왕武王이 이런 일을 했다고 말한단 말인가.
宗元 又曰 封建 非公之大者 公天下 自秦始라하니
유종원柳宗元이 또 말하기를 ‘봉건제도는 공정한 것 중에 매우 공정한 것이 아니니, 천하를 공정하게 한 것은 나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였다.
夫謂三代聖王 無公心하야 以封建自私라하면 是伯夷而爲盜跖注+[頭註]柳下惠之弟 本黃帝時大盜名이니 以下惠弟 爲天下大盜 云盜跖이라 之事也 謂秦無私意하야 以郡縣公天下라하면 是飛廉注+[頭註]紂臣이라 而有比干之忠也 一何不類之甚與
삼대三代성왕聖王이 공정한 마음이 없어서 봉건제도封建制度를 가지고 사사로이 했다고 말한다면 이는 백이伯夷도척盜跖注+[頭註]도척盜跖유하혜柳下惠의 아우이다. 은 본래 황제黃帝대도大盜의 이름이니, 유하혜柳下惠의 아우가 천하의 대도大盜가 되었기 때문에 도척盜跖이라 이른 것이다. 일을 행한 것이요, 나라가 사사로운 마음이 없어서 군현제도郡縣制度를 가지고 천하를 공정하게 했다고 말한다면 이는 비렴飛廉注+[頭註]비렴飛廉주왕紂王의 신하이다. 비간比干충심忠心을 품은 것이니, 한결같이 어쩌면 그리도 서로 유사하지 않음이 심하단 말인가.
宗元 又曰 諸侯繼世而立하고 又有世大夫食祿菜(采)地注+[頭註] 與采通하니 官也 因官食之 曰菜地하야 以盡其封域이면 雖聖賢生于其時라도 無以立于天下라하니
유종원柳宗元이 또 말하기를 ‘제후諸侯가 대를 이어 즉위하고 또 대대로 대부大夫채지采地를 받아 녹봉을 먹어서注+[頭註]와 통용되니, 벼슬이다. 벼슬로 인하여 먹기 때문에 채지菜地라고 한 것이다.봉지封地가 다한다면 비록 성현聖賢이 그 시대에 태어난다 해도 천하에 설 수가 없을 것이다.’ 하였다.
天子聖明이면 公卿必得其人하고 諸侯不敢越亂法度하야 世固多賢也 而又有鄕擧里選之法하야 有明明側陋之揚注+[原註]書堯典篇 明明揚側陋라한대 明擧明人在側陋者 廣求賢也 側陋 謂微賤之人이라 하리니 何患乎材之不用也리오
천자天子성명聖明하면 공경公卿은 반드시 그 적임자를 얻고 제후諸侯는 감히 법도를 넘거나 어지럽히지 못해서 세상에 진실로 현자가 많을 것이요, 또 에서 천거하고 에서 선발하는 법이 있어서 현달한 자를 밝히고 미천한 자를 천거할 수 있을 것이니,注+[原註]서경書經》 〈요전堯典〉에 “현달한 자를 밝히며 미천한 자를 천거한다.” 하였는데, 에 “현달한 사람과 미천한 사람을 밝히고 천거하는 것이니, 현자賢者를 널리 구한 것이다.” 하였다. 측루側陋는 미천한 사람을 이른다. 인재가 등용되지 못함을 어찌 근심할 것이 있겠는가.
若上無明君하고 下無賢臣하야 如周之衰하고 如秦之季하고 如漢, 魏, 隋, 唐之時하야 在位者無非小人이요 而興邦之良佐 悉沈乎民伍하야 不見庸(用)注+[頭註]用也 하면 雖守宰徧宇內 將何救於此리오
만약 위에는 현명한 군주가 없고 아래에는 어진 신하가 없어서 나라의 쇠할 때와 같고 나라의 말기와 같으며, 나라 때와 같아서 지위에 있는 자는 소인이 아님이 없고 나라를 일으킬 수 있는 어진 보좌는 모두 백성들 속에 매몰되어서 등용되지注+[頭註]은 등용함이다. 못한다면 비록 군현郡縣의 수령들이 천하에 두루 있더라도 장차 어떻게 이것을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凡宗元封建論 皆無稽而不可信也
그러므로 유종원柳宗元봉건론封建論은 모두 터무니 없는 말이어서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夫爲君 如堯, 舜, 禹, 湯이면 亦足矣 帝王之治 至於唐, 虞, 三代 亦無以加矣
군주 노릇 하는 것은 우왕禹王탕왕湯王과 같이 하면 또한 충분하고, 제왕帝王의 다스림은 삼대三代의 다스림에 이르면 또한 더할 나위가 없다.
井天下之田하야 使民各有以養其生하고 經天下之國하야 使賢才皆得以施其用하며 人主自治 不過千里하야 大小相維하고 輕重相制하야 外無强暴侵陵微弱不立之患하고 內無廣土衆民奢泰(汰)注+[頭註] 與汰通하니 亦奢也 恣肆之失이면 以義處利하야 均天下之施
천하의 토지를 정전井田으로 만들어서 백성들로 하여금 각각 그 생명을 기를 수 있게 하고 천하의 나라를 다스려서 어진 이와 유능한 자들로 하여금 모두 쓰여질 수 있게 하며, 군주가 스스로 다스리는 것은 천 리를 넘지 않아 크고 작은 나라가 서로 유지하며 강하고 약한 나라가 서로 견제해서 밖으로는 강포한 나라가 약소국을 침략하고 능멸하여 미약한 나라가 자립하지 못하는 폐해가 없고, 안으로는 영토를 넓히고 백성을 많게 하며 사치하고注+[頭註]와 통용되니, 또한 사치함이다. 방사放肆한 잘못이 없게 한다면 이는 의리로써 이로움에 대처하여 천하에 균등하게 베푸는 것이다.
故曰封建之法 天道之公也라하노라
그러므로 ‘봉건의 법은 공정한 천도天道’라고 말한 것이다.
若秦則妬民之兼幷하야 而自爲兼幷하고 筦(管)天下之利注+[原註] 與管通이라 하야 以自奉이라
나라로 말하면 백성들이 겸병하는 것을 질투하여 스스로 겸병하였고 천하의 이익을 관장하여注+[原註]과 통용된다. 자신을 받들게 하였다.
故曰郡縣之制 人欲之私也라하노라
그러므로 ‘군현의 제도는 사사로운 인욕’이라고 말한 것이다.
蘇氏講之不詳하고 乃以封建으로 爲爭之端하니 不知聖人所以息爭也
소씨蘇氏가 이것을 자세히 강구하지 않고 마침내 봉건제도를 분쟁의 단서라고 하였으니, 성인聖人이 봉건제도로 분쟁을 종식시켰음을 알지 못한 것이다.
果以爲爭者인댄 何三代封建之長이며 而秦, 漢以來 不封建之短也
과연 봉건제도가 분쟁의 단서라면 어째서 봉건한 삼대三代역년歷年이 장구하였고, 이래로 봉건하지 않은 나라는 역년歷年이 짧았는가.
蘇氏又曰 漢唐以來 卿大夫不世襲하니 則無簒弑之禍라하니라
소씨蘇氏가 또 말하기를 ‘ 이래로 경대부卿大夫선대先代봉작封爵을 세습하지 않으니 찬시簒弑하는 화가 없어지게 되었다.’ 하였다.
夫襲封之大者 莫過於帝王矣 劉劭, 楊廣注+[頭註]劉劭 宋太子也 弑其君義隆하니 在三十一卷癸巳年이라 楊廣 隋煬帝也 見三十四卷帝崩於大寶殿注 皆襲封者也
봉작封爵을 세습하는 것 중에 큰 것은 제왕帝王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유소劉劭양광楊廣注+[頭註]유소劉劭나라 태자太子이다. 군주 유의륭劉義隆을 시해하였으니, 이에 대한 일은 31권 계사년조癸巳年條(453)에 있다. 양광楊廣나라 양제煬帝이니, 34권 〈604년〉‘제붕어대보전帝崩於大寶殿’의 에 보인다. 모두 봉작封爵을 세습한 자이다.
設欲救此하야 其必如而後可인댄 則王莽, 董卓, 曹操, 劉裕之徒 又將何以止之 而三代之君 一姓多者 至三十餘君하고 其諸侯簒弑 亦不聞出於文, 武, 成康之時하니 安得以封建으로 爲爭之端而亂之始歟
설령 이를 바로잡고자 하여 반드시 이 천하를 관청으로 삼은 것처럼 한 뒤에야 가하다고 한다면 왕망王莽동탁董卓조조曹操유유劉裕의 무리를 또 장차 어떻게 그치게 할 수 있겠으며, 삼대三代의 군주는 한 이 많을 경우에는 30여 명의 군주에 이르렀고 제후가 천자를 찬탈하고 시해한 것도 문왕文王무왕武王성왕成王강왕康王의 때에는 나왔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으니, 어떻게 봉건제도를 분쟁의 발단이며 난의 시초라 할 수 있겠는가.
或曰 然則封建 今可行乎
혹자는 ‘그렇다면 봉건제도를 지금 시행할 수 있느냐?’고 한다.
何獨封建也리오
어찌 다만 봉건제도뿐이겠는가.
二帝三王之法 孰不可行者리오
이제二帝삼왕三王의 법 중에 어느 것인들 행할 수 없겠는가.
在人而已矣
사람에게 달려 있을 뿐이다.
然欲行封建인댄 先自井田始
그러나 봉건제도를 행하고자 한다면 먼저 정전제도井田制度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范氏亦惑於宗元하야 謂今之法不可用於古 猶古之法不可用於今이라하니
범씨范氏 또한 유종원柳宗元의 말에 혹하여 이르기를 ‘지금의 법을 옛날에 쓸 수 없음은 옛날의 법을 지금에 쓸 수 없는 것과 같다.’ 하였다.
夫後世之法 私意妄爲하니 固不可行於古어니와 而爲天下者 不以二帝三王善政良法爲則이면 則又何貴於稽古而建事哉
후세의 법은 사사로운 뜻으로 함부로 만들었으니 진실로 옛날에 행해질 수 없거니와, 천하를 다스리는 자가 이제二帝삼왕三王의 선한 정사와 좋은 법을 법칙으로 삼지 않는다면 또 어찌 옛날을 상고하여 일을 세우는 것을 귀하게 여길 것이 있겠는가.”
五月이어늘 詔五品以上하야 上封事한대 魏徵 上疏하야 以爲陛下志業 比貞觀初 漸不克終者 凡十條니이다
5월에 가뭄이 들자 5품 이상의 관원에게 명하여 봉사封事를 올리게 하였는데, 위징魏徵이 상소하여 아뢰기를 “폐하의 뜻과 공업이 정관貞觀 초기에 비하여 점점 잘 마치지 못할 것이 모두 열 조항입니다.” 하였다.
深加獎歎하고 賜黃金十斤, 하다
이 깊이 장려하고 감탄하고는 황금黃金 10근과 마구간에 있는 말 10필을 하사하였다.
〈出諫錄〉
- 《위정공간록魏鄭公諫錄》에 나옴 -
本傳曰 徵 上疏極言曰
신당서新唐書》 〈위징전魏徵傳〉에 위징魏徵이 상소하여 다음과 같이 극언極言하였다.
臣奉侍幃幄十餘年 陛下許臣以仁義之道 守而勿失하고 儉約朴素 終始弗渝라하시니 德音在耳하야 不敢忘也니이다
“신이 위악幃幄(內庭)에서 받들어 모신 지 10여 년에 폐하께서 신에게 인의仁義를 지켜 잃지 않고, 검약하고 질박함을 시종 변치 않을 것을 허락하셨으니, 덕스러운 말씀이 귀에 남아 있어서 감히 잊을 수가 없습니다.
頃年以來 寢不克終注+[通鑑要解] 與浸通하니 漸進也 일새 謹用條陳하야 裨萬分一하노이다
지난해 이후로 점점 끝을 잘 마치지 못하시겠기에注+[通鑑要解](寖)은 과 통하니 점차 나아가는 것이다. 삼가 조목조목 아뢰어서 만분의 일이나마 도울까 합니다.
陛下在貞觀初 淸靜寡欲하야 化被方外러니 萬里遣使하야 市索駿馬하고 幷訪珍怪하시니이다
폐하께서 정관貞觀 초기에는 청정淸靜하여 욕심을 적게 하여 교화가 방외方外에까지 입혀졌는데, 지금에는 멀리 만리에 사신을 보내어 준마駿馬를 사오고 아울러 진귀한 물건을 찾고 계십니다.
하고 하니 陛下居常議論 遠輩堯, 舜이러시니 今所爲 更欲處漢文, 晉武下乎잇가
옛날 나라 문제文帝천리마千里馬를 물리쳤고 나라 무제武帝치두구雉頭裘를 불태웠으니, 폐하께서 평소의 의론이 멀리 을 짝하셨는데, 지금 행하시는 것은 다시 나라 문제文帝나라 무제武帝 아래에 처하고자 하신단 말입니까.
此不克終 一漸也니이다
이는 끝을 잘 마치지 못할 첫 번째 조짐입니다.
陛下在貞觀初 護民之勞하야 注+[頭註]吹氣以溫之也 之如子하야 不輕營爲러시니 頃旣奢肆하야 思用人力하사 乃曰 百姓 無事則爲驕하고 勞役則易使라하시니
폐하께서 정관貞觀 초기에는 백성들의 수고로움을 위로하여 자식처럼 따뜻하게 감싸주어注+[頭註]는 입김을 불어 따뜻하게 하는 것이다. 토목공사를 가볍게 일으키지 않으셨는데, 근년에는 이미 사치하고 방사放肆해서 백성들의 힘을 쓸 것을 생각하여 마침내 말씀하기를 ‘백성들은 일이 없으면 교만해지고 힘들게 일하면 부리기가 쉽다.’ 하셨습니다.
自古 未有百姓逸樂而致傾敗者
예로부터 백성들이 편안하고 즐거워하면서 국가가 기울어 패망함을 초래한 적은 있지 않습니다.
何有逆畏其驕而爲勞役哉잇가
어찌 백성들이 교만해질 것을 미리 두려워하여 노역을 시킨단 말입니까.
此不克終 二漸也니이다
이는 끝을 잘 마치지 못할 두 번째 조짐입니다.
陛下在貞觀初 役己以利物이러시니 比來 縱欲以勞人하야 雖憂人之言 不絶於口 而樂身之事 實切諸心하시니 此不克終 三漸也니이다
폐하께서 정관貞觀 초기에는 자신을 수고롭게 하여 남을 이롭게 하셨는데, 근래에는 욕심을 부려 백성들을 수고롭게 해서 비록 백성을 걱정하는 말씀이 입에서 끊이지 않으나 몸을 즐겁게 하는 일이 실로 마음에 간절하시니, 이는 끝을 잘 마치지 못할 세 번째 조짐입니다.
在貞觀初 親君子, 斥小人이러시니 比來 輕褻注+[通鑑要解] 狎也 小人하고 禮重君子하시니
정관貞觀 초기에는 군자를 가까이하고 소인을 배척하셨는데, 근래에는 소인들을 경시하여 하찮게 여기고注+[通鑑要解]은 친압함이다. 군자를 예우하여 중시하십니다.
重君子也 恭而遠之하고 輕小人也 狎而近之 近之 莫見其非 遠之 莫見其是
군자를 중시하면 공경하여 멀리하게 되고 소인을 경시하면 친압하여 가까이하게 되니, 가까이하면 그의 잘못을 보지 못하고 멀리하면 그의 옳음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莫見其是 則不待間而疎 莫見其非 則有時而昵이니 此不克終 四漸也니이다
그의 옳음을 보지 못하면 이간질하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소원해지고 그의 잘못을 보지 못하면 때로 친할 수가 있으니, 이는 끝을 잘 마치지 못할 네 번째 조짐입니다.
在貞觀初 不貴異物하고 不作無益이러시니 而今 難得之貨 雜然竝進하고 玩好之作 無時而息하시니 此不克終 五漸也니이다
정관貞觀 초기에는 기이한 물건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시고 무익한 일을 하지 않으셨는데, 지금은 얻기 어려운 보화寶貨를 이것저것 함께 올리고 완호물玩好物을 만들어 어느 때고 쉴 때가 없으니, 이는 끝을 잘 마치지 못할 다섯 번째 조짐입니다.
貞觀之初 求士如渴하야 賢者所擧 卽信而任之하야 取其所長호되 常恐不及이러시니 比來 由心好惡하야 以衆賢擧而用이라가 以一人毁而棄하고 雖積年任而信이라도 或一朝疑而斥하야 使讒佞得行하고 守道疏間하시니 此不克終 六漸也니이다
정관貞觀 초기에는 목마를 때 물을 구하듯이 인재를 구하여 현자賢者가 천거한 사람을 곧바로 믿고 맡겨서 장점을 취하되 항상 미치지 못할 듯이 하셨는데, 근래에는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을 따라서 여러 현자賢者들의 천거로 인해 등용했다가 한 사람의 훼방으로 인해 버리고, 비록 여러 해 동안 맡기고 믿었더라도 혹 하루아침에 의심하고 배척해서, 참소하는 자와 간사한 자로 하여금 뜻이 행해지게 하고 를 지키는 자로 하여금 소원하고 틈이 벌어지게 하시니, 이는 끝을 잘 마치지 못할 여섯 번째 조짐입니다.
在貞觀初 하야 無田獵畢弋注+[通鑑要解]長柄小網으로 用以掩兎曰畢이라 音益이니 繳射曰弋이라之好러시니 數年之後 志不克固하야 鷹犬之貢 遠及四夷하고 晨出夕返하야 馳騁爲樂하시니 變起不測이면 其及救乎잇가
정관貞觀 초기에는 제위帝位에 높이 앉아 팔짱을 끼고 가만히 앉아 있고 전렵田獵과 토끼그물과 주살질을注+[通鑑要解]자루가 긴 작은 그물로 토끼를 잡는 것을 이라 한다. 은 음이 익이니, 줄을 맨 화살을 이라 한다. 좋아하는 일이 없으셨는데, 몇 년 뒤에는 뜻이 견고하지 못하여 사냥하는 매와 개를 공물로 바치는 것이 멀리 사방 오랑캐에까지 미치고, 아침에 사냥을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와서 말을 달리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으시니, 변란變亂이 예측하지 못한 데에서 일어나면 어떻게 미처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此不克終 七漸也니이다
이는 끝을 잘 마치지 못할 일곱 번째 조짐입니다.
在貞觀初 遇下有禮하야 群情上達이러시니 今外官奏事 顔色不接하고 間因所短하야 詰其細過하사 雖有忠款이나 而不得伸케하시니 此不克終 八漸也니이다
정관貞觀 초기에는 아랫사람을 대우함에 가 있어서 여러 사람들의 마음이 위로 도달하였는데, 지금은 지방관들이 일을 아뢸 적에 의 얼굴빛을 대면하지 못하고, 간혹 단점으로 인해서 하찮은 잘못을 힐책하여 비록 충심忠心이 있으나 펼 수 없게 하시니, 이는 끝을 잘 마치지 못할 여덟 번째 조짐입니다.
在貞觀初 孜孜治道하야 常若不足이러시니 比恃功業之大하고 負聖智之明하야 長傲縱欲하고 無事興兵하야 問罪遠裔하시니 此不克終 九漸也니이다
정관貞觀 초기에는 다스리는 에 부지런히 힘써서 항상 부족한 듯이 여기셨는데, 근래에는 공업功業의 큼을 믿고 성지聖智의 밝음을 자부하시어 오만한 마음을 자라게 하고 욕심을 부리며, 일이 없이 군대를 일으켜 멀리 변방에 있는 나라에게 죄를 물으시니, 이는 끝을 잘 마치지 못할 아홉 번째 조짐입니다.
貞觀初 頻年霜旱하야 畿內戶口 竝就關外하야 携老扶幼하야 來往數年호되 卒無一戶亡去하니 由陛下徐育撫寧이라 死不携貳注+[通鑑要解] 離也 러니
정관貞觀 초기에는 서리가 자주 내리고 가뭄이 들어 기내畿內호구戶口가 모두 관외關外로 옮겨가서 노인을 부축하고 어린아이를 끌고 몇 년 동안 오고 갔으나 끝내 한 호구戶口도 도망간 자가 없었으니, 이는 폐하께서 편안히 길러주고 어루만져 돌봐주셨기 때문에 죽어도 배반하지 않은 것입니다.注+[通鑑要解]는 떠남이다.
比者 疲於徭役하야 關中之人 勞弊尤甚하니
그런데 근래에는 요역徭役에 시달려 관중關中의 백성들이 지치고 폐해를 입음이 더욱 심합니다.
注+[頭註]或然之辭 有一穀不收 百姓之心 恐不如前日之帖泰注+[頭註] 安也 하리니 此不克終 十漸也니이다
혹시라도注+[頭註]은 혹 그럴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만에 하나 흉년이 들어 곡식을 수확하지 못한다면 백성들의 마음이 예전처럼 편안하지注+[頭註]은 편안함이다. 못할까 두려우니, 이는 끝을 잘 마치지 못할 열 번째 조짐입니다.
이요 惟人所召 人無釁焉이면 妖不妄作이어늘
은 문이 따로 없고 오직 사람이 부르는 바이니, 사람에게 잘못이 없으면 요망함이 함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注+[頭註] 燥也 之災遠被郡國하고 凶醜之孼 起於轂下注+[附註]突(厥)[利]可汗之弟結(性)[社]率 入朝하야 爲中郞將이러니 久不進秩한대 陰結故部落四十餘人하야 作亂襲御營이어늘 折衝孫武開等 獲斬之하니라 하니 上天示戒 乃陛下恐懼憂勤之日也니이다
그런데 이제 비가 오지 않아 날이 가무는注+[頭註]은 건조함이다. 재앙이 멀리 군국郡國에 미치고 흉악한 무리들이 곡하轂下(도성) 아래에서 일어나니,注+[附註]돌리가한突利可汗의 아우인 아사나결사솔阿史那結社率입조入朝하여 중랑장中郞將이 되었는데, 오랫동안 품계를 올려주지 않자 남몰래 옛 부락 사람 40여 명과 결탁하여 난을 일으켜 어영御營을 습격하였는데, 절충도위折衝都尉 손무개孫武開 등이 사로잡아 목을 베었다. 이는 상천上天이 위엄을 보인 것으로 바로 폐하께서 두려워하고 근심하여 부지런히 힘쓰셔야 할 때입니다.
千載休期 時難再得이어늘 明主可爲而不爲하시니 臣所以鬱結長嘆者也로소이다
천년 만에 얻는 좋은 시기는 다시 얻기 어려운데 명주明主께서는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으시니, 신이 이 때문에 가슴이 답답하여 길이 한탄하는 것입니다.”
疏奏 帝曰 朕 今聞過矣 願改之하야 以終善道하노라
이 상소문을 아뢰자, 황제가 이르기를 “이 이제 잘못을 듣고 알았으니, 잘못을 고쳐 선도善道로써 끝마치기를 원한다.
有違此言이면 當何施顔面하야 與公相見哉아하고 乃以所上疏 列爲屛幛하야 庶朝夕見之하고 兼錄付史官하야 使萬世知君臣之義하다
이 말을 어긴다면 어떻게 얼굴을 들고서 과 서로 만나 볼 수 있겠는가.” 하고, 마침내 올린 상소문을 나열하여 병풍으로 만들어서 거의 아침저녁으로 보고 반성하게 하였으며, 겸하여 사관史官에게 녹부錄付하여 먼 후대로 하여금 군신간君臣間의 의리를 알게 하였다.
역주
역주1 : 탁
역주2 度支 : 度支郎中을 가리킨다. 戶部에는 度支司‧民部司‧金部司‧倉部司 등 네 개의 司가 있는데, 度支司는 郎中과 員外郞이 正‧副官이다.
역주3 子文弟子良 : 子文은 子良의 兄이다.
역주4 : 암
역주5 : 현
역주6 茅土 : 띠풀과 흙으로 고대에 제후왕을 봉하게 되면 封地가 있는 방향에 따라 흙을 띠풀에 싸서 주었는 바, 곧 제후로 봉해짐을 이른다. 흙은 방향에 따라 동쪽은 청색, 서쪽은 백색, 남쪽은 적색, 북쪽은 흑색이며, 이 흙으로 壇을 쌓되 위에는 황토를 덮었다.
역주7 水地以縣 : 水準器의 원리를 이용하여 지면이 평평한가 아닌가를 재거나 기울기를 측량하는 것으로, 鄭玄의 注에 “땅의 사방 모퉁이에 네 개의 기둥을 세우고 물을 매달아 高下를 바라보는데, 高下가 이미 정해지면 마침내 자리를 만들고 땅을 평평하게 한다.[於四角立植而縣以水 望其高下 高下旣定 乃爲位而平地]” 하였다.
역주8 置槷以縣 : 置槷은 해그림자를 관찰하기 위하여 세우는 말뚝인데, 기둥의 四角과 四中에 줄을 매달아 8개의 줄이 모두 기둥에 붙으면 그 기둥이 바른 것이다. 鄭玄의 注에 “槷은 古文의 臬이니 假借字이다. 평평하게 한 땅 중앙에 8尺의 말뚝을 세우고 줄을 매달아 말뚝을 똑바로 세우고 말뚝의 그림자를 관찰한다.[槷 古文臬 假借字 於所平之地中央 樹八尺之臬 以縣正之 眡之以其景]”라고 하였다.
역주9 : 얼
역주10 : 지
역주11 : 유
역주12 鹵莽 : 노무
역주13 侯甸 : 五服 중의 侯服과 甸服으로 五服은 甸服‧侯服‧綏服‧要服‧荒服으로 천자가 직접 통치하는 畿內를 전복이라 하고, 500리씩 점점 멀어져 황복에 이른다. 〈禹貢〉의 五服은 畿內까지 통틀은 것이고, 周나라 제도의 五服은 王畿의 밖에 있었다.
역주14 : 구
역주15 唐虞官天下 : 天下를 子孫에게 물려주지 않고 賢者에게 禪讓함을 이른다. 이에 상대되는 것을 ‘三代家天下’라 하는 바, 夏‧殷‧周 三代는 天下를 자기 집처럼 子孫에게 세습함을 이른다. 官은 관청과 같아서 자신이 근무하다가 떠나가면 다른 사람이 와서 근무하는 반면 집은 대대로 자손에게 물려주기 때문이다.
역주16 廐馬十匹 : 《資治通鑑》에는 ‘廐馬二匹’로 되어 있다.
역주17 漢文帝却千里馬 : 漢나라 文帝 元年(B.C.179)에 어떤 사람이 千里馬를 獻上하자 황제가 말하기를 “鸞旗가 앞에 있고 屬車가 뒤에 있으며, 吉行은 하루 50리를 가고 師行(군대의 행군)은 30리를 간다. 내가 천리마를 타고 혼자 앞서서 어디를 가겠는가.[鸞旗在前 屬車在後 吉行日五十里 師行三十里 朕乘千里之馬 獨先安之]” 하고 물리쳤다.
역주18 晉武帝焚雉頭裘 : 雉頭裘는 꿩 머리털로 짜서 만든 갖옷을 이른다. 晉나라 武帝 4년(278)에 太醫인 司馬程據가 雉頭裘를 바치자, 武帝는 기이한 재주와 의복은 典禮에서 금하는 것이라고 하여 궁전 앞에서 이것을 불태웠다.
역주19 : 후
역주20 高居深拱 : 《書經》 〈武成〉에 “의상만 드리우고 팔짱을 끼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천하가 잘 다스려진다.[垂拱而天下治]”라고 보이는 바, 뒤에 제왕이 하는 일이 없어도 천하가 잘 다스려짐[无爲而治]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역주21 禍福無門 : 화복은 운명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이 선한 일을 하거나 악한 일을 함에 따라서 각각 받음을 이른다.
역주22 : 한

통감절요(7)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