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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3)

통감절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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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丙辰]中元元年注+[頭註]綱目 冠以建武中元元年이라 梁武帝大同大通 俱有中字하니 是亦憲章於此 只書中元者 從簡易耳이라
중원中元 원년元年(병진 56)注+[頭註]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에는 앞에 건무중원원년建武中元元年이라고 되어 있다. 양무제梁武帝대동大同대통大通에도 모두 〈중대동원년中大同元年, 중대통원년中大通元年이라 하여〉 중자中字가 있으니, 이 또한 이것을 본받은 것인데 다만 중원中元이라고 쓴 것은 간략함을 따른 것이다.
讀河圖會昌符注+[釋義]符者 讖記之書也 會昌 其書之名也하니 曰赤劉之九注+[釋義] 火色이니 漢姓劉 以火德王이라 故尙赤하니 赤劉 猶言炎正也 世數也 光武 高帝九世孫故이라 會命岱宗注+[通鑑要解]岱宗 泰山也 岱宗 宗長也 東岳爲泰山이니 衆山之宗이요 五嶽之長也이라하야늘
하도河圖회창부會昌符注+[釋義]도참圖讖을 기록한 글이고, 회창會昌은 그 글의 이름이다.를 읽어보니, 그 내용에 이르기를 “적유赤劉注+[釋義]화색火色이니, 나라 국성國姓유씨劉氏이고 화덕火德으로 왕 노릇 하였기 때문에 적색赤色을 숭상하였으니, 적유赤劉염정炎正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9는 대수代數이니, 광무제光武帝고제高帝의 9대손이므로 말한 것이다. 대종岱宗注+[通鑑要解]대종岱宗태산泰山이다. 대종岱宗종장宗長이란 뜻이니, 동악東岳태산泰山이라 하니, 모든 산의 종주宗主이고 오악五嶽의 으뜸인 것이다. 회명會命한다.” 하였다.
感此文하야 乃詔梁松等하야 按索河雒讖文注+[釋義]易繫辭曰 河出圖하고 洛出書어늘 聖人則之라한대 孔安國曰 河圖者 伏羲氏王 龍馬出河어늘 遂則其文하야 以畫八卦하고 洛書者 禹治水時 神龜負文而列於背호되 有數至九어늘 禹遂因而(敍)[第]之하야 以成九疇也라하니라 符命之書也하니 言九世 當封禪者 三十六事
이 이 글에 감동되어 마침내 양송梁松 등에게 명해서 하락河雒도참문圖讖文注+[釋義]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에 이르기를 “하수河水에서 그림이 나오고 낙수洛水에서 글이 나오자, 성인聖人이 이를 본받았다.” 하였는데, 공안국孔安國이 말하기를 “하도河圖복희씨伏羲氏가 왕 노릇 할 때에 용마龍馬하수河水에서 나오자 마침내 그 무늬를 본받아서 팔괘八卦를 그었고, 낙서洛書임금이 홍수를 다스릴 때에 신귀神龜가 등에 무늬가 나열된 것을 지고 나왔는데, 가 1부터 9까지 있으므로 임금이 마침내 이것을 따라 차례로 진열하여 홍범洪範 구주九疇를 이루었다.” 하였다. 부명符命을 적은 책이다. 을 상고하고 찾게 하니, 이르기를 “9에 마땅히 봉선封禪해야 할 것이 36가지 일이다.” 하였다.
於是 張純等 復奏請封禪한대 乃許焉하고 登山하야 以璽 親封玉牒檢注+[附註]凡封禪 用玉牒書하야 藏方石하니 有玉檢하고 又用石檢十枚하야 列於石旁이라 檢用金繩하고 纏以玉하고 以水銀和金爲泥하야 封之하고 印以受命之璽 又有玉匱一하니 長一尺三寸이니 以藏上帝之冊이라 韻書 檢者 書函之蓋也 玉檢 謂以玉爲檢(冊)[束]也[頭註]見元封故事(武帝封禪故事也)하니 則用方石하야 置壇中호되 皆方五尺, 厚一尺이요 用玉牒書하야 藏方石하니 厚五寸, 長尺三寸, 廣五寸이라 有玉檢하고 又有石檢十枚 列於石旁하니 東西各三이요 南北各二 皆長五尺, 廣三尺, 厚七寸이라 檢中刻三處하니 深四寸, 方五寸이요 有蓋檢하니 用金縷五周하야 以水銀和金以爲泥하다
이에 장순張純 등이 다시 봉선封禪할 것을 주청奏請하니, 이 마침내 허락하고 태산泰山에 올라 옥새玉璽로써 친히 옥첩玉牒(뚜껑)注+[附註][附註]무릇 봉선封禪할 때에 옥첩서玉牒書를 사용하여 네모난 돌에 보관하니, 여기에 옥검玉檢이 있고 또 석검石檢 10를 돌 옆에 나열한다. 은 쇠줄을 사용하고 옥으로 묶으며, 수은水銀에다가 을 섞어 진흙처럼 개어서 봉함하고 수명지새受命之璽를 찍는다. 또 옥궤玉匱 하나가 있으니, 길이가 1 3이니, 상제지책上帝之冊을 보관한다. 《고금운회거요古今韻會擧要》에 “은 책을 넣는 함의 뚜껑이다.” 하였으니, 옥검玉檢으로 검속檢束함을 이른다.[頭註]武帝의 원봉元封 연간年間에 행한 봉선封禪고사故事에 보이니, “네모진 돌을 가운데에 넣어 두되 모두 사방 5, 두께 1이다. 옥첩서玉牒書를 네모진 돌에 보관하니, 은 두께가 5, 길이 1 3, 너비가 5이다. 옥검玉檢이 있고 또 석검石檢 10를 돌 옆에 나열하되 동서에는 각각 3개, 남북에는 각각 2개씩 하니 모두 길이가 5, 너비가 3, 두께가 7이다. 가운데에 세 곳을 새기되 깊이가 4, 사방 5으로 하며, 뚜껑이 있으니 금사金絲로 다섯 번 두르고 수은水銀을 합하여 개어서 봉함한다.” 하였다. 을 봉함하였다.
〈出郊祀志〉
- 《후한서後漢書 교사지郊祀志》에 나옴 -
[新增]胡氏曰
[新增]胡氏가 말하였다.
七十二君之編錄 詩書禮典 略不經見하니 審有是事인댄 乃天下國家之盛擧
봉선封禪한 72명의 군주의 편록編錄시서詩書예전禮典에 조금도 보이지 않으니, 참으로 이런 일이 있었다면 바로 천하와 국가의 거룩한 일이다.
堯舜禹湯周武成康昭宣 皆身致太平하니 安得闕而不講이리오
우왕禹王탕왕湯王나라의 무왕武王성왕成王강왕康王소왕昭王선왕宣王이 모두 몸소 태평을 이루었으니, 어찌 이것을 빼놓고 하지 않았겠는가.
前世論登封者 莫善於許懋注+[原註]按梁武帝時 有請封會稽禪國山者러니 許懋諫之而止하니라어늘 惜乎
그러므로 전대前代태산泰山에 올라 봉선封禪함을 논한 것은 허무許懋보다 더 훌륭한 자가 없는데,注+[原註]前世論登封者 막선어허무莫善於許懋:살펴보건대 나라 무제武帝 때에 회계산會稽山하고 국산國山에서 할 것을 청한 자가 있었는데, 허무許懋가 간하여 저지하였다. 애석하다!
世祖注+[頭註]光武也之臣 智不及此하야 陷其君於過擧而不得聞也
세조世祖(光武帝)注+[頭註]세조世祖광무제光武帝이다. 의 신하들이 지혜가 여기에 미치지 못하여 군주를 지나친 행동에 빠지게 하고 아뢰지 못하였다.”
延平陳氏曰
연평진씨延平陳氏가 말하였다.
三十年 群臣 請封禪한대 詔引欺天林放之語하야 以止之
건무建武 30년에 신하들이 봉선封禪할 것을 청하자, 황제가 조서詔書를 내려 ‘하늘을 속인단 말인가. 임방林放만 못하겠는가.’라는 말을 인용하여 저지하였다.
然而信聖人之言 不如信圖讖之篤也로다
그러나 성인聖人의 말씀을 믿음이 도참설圖讖說을 믿는 것처럼 돈독하지 못하였다.”
京師 醴泉注+[釋義]言泉之味甘如醴 涌出하고 又有赤草注+[釋義]朱草也[通鑑要解]日生一葉이라가 至十五日以後 日落一葉하야 周以復始하니라生於水涯하며 郡國 頻上甘露
경사京師예천醴泉注+[釋義]예천醴泉은 샘물의 맛이 단술처럼 닮을 말한 것이다. 이 솟아나오고 또 상서로운 풀인 적초赤草注+[釋義]赤草는 주초朱草이다. [通鑑要解]하루에 한 잎씩 나오다가 보름이 지난 뒤에는 하루에 한 잎씩 떨어져서, 한 바퀴 돌면 다시 시작된다. 가 물가에서 자랐으며, 군국郡國에서 감로수甘露水가 자주 나온 사실을 올렸다.
群臣 奏言호되 靈物 仍降하니 宜令太史撰集하야 以傳來世라하야늘 帝不納하고 하고 郡國所上 輒抑而不當이라
여러 신하들이 상주上奏하기를 “신령스러운 물건이 거듭 내려오니, 마땅히 태사太史로 하여금 이것을 찬집撰集해서 내세來世에 전해야 합니다.” 하였으나 황제는 받아들이지 않고 항상 스스로 이 없다고 겸손해 하고, 군국郡國에서 올린 상서로운 일을 번번이 억제하고 자신에게 해당시키지 않았다.
史官 罕得記焉이러라
그러므로 사관史官이 기록한 것이 드물다.
〈出本紀〉
- 《후한서後漢書 광무제기光武帝紀》에 나옴 -
○ 是歲하고 宣布圖讖於天下하다
○ 이 해에 영대靈臺명당明堂벽옹辟雍을 일으키고, 도참설圖讖說을 천하에 선포하였다.
〈出本紀〉
- 《후한서後漢書 광무제기光武帝紀》에 나옴 -
帝以赤伏符 卽位라하야 由是 信用讖文하고 多以決定嫌疑
황제가 적복부赤伏符로 즉위했다고 하여 이로 말미암아 도참圖讖의 내용을 신용하고 대부분 이로써 의심스러운 일을 결정하였다.
桓譚 上疏하야 極言讖之非經注+[釋義]言讖文 不合經典이라하니 帝大怒曰 桓譚 非聖無法하니 將下斬之하라
환담桓譚이 글을 올려 도참圖讖경전經典의 뜻에 부합하지 않음注+[釋義]도참圖讖의 내용이 경전經典에 부합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을 지극히 말하니, 황제가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환담桓譚성인聖人을 비난하여 법도가 없으니, 장차 끌어내려서 목을 베라.” 하였다.
叩頭流血이어늘 良久 乃得解하야 出爲六安丞하다
환담桓譚이 머리를 찧어 피가 흐르자, 한참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풀려나서 외직으로 나가 육안현六安縣이 되었다.
〈出本紀〉
- 《후한서後漢書 광무제기光武帝紀》에 나옴 -
역주
역주1 常自謙無德 : 底本과 《資治通鑑》 및 《後漢書》에는 常字가 帝字로 표기되었으나 春坊本에는 常字로 되었고, 딴 本에도 常字로 표기된 곳이 있으며, 또한 해석에 편리하므로 春坊本을 따랐음을 밝혀 둔다.
역주2 靈臺明堂辟雍 : 靈臺는 天氣의 요망함과 상서로움을 관찰하는 樓臺이고, 明堂은 古代에 帝王이 政敎를 펴던 곳으로 朝會‧祭祀‧慶賞‧選士‧養老‧敎學 등의 의식을 모두 여기에서 거행하였으며, 辟雍은 天子國에 설치한 太學이다.

통감절요(3)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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