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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5)

통감절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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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甲辰]三年이라 〈燕光始四 秦弘始六이요 魏天賜元年이라
원흥元興 3년(갑진 404) - 나라 광시光始 4년이고, 나라 홍시弘始 6년이고, 나라 천사天賜 원년元年이다. -
劉裕從桓脩注+[頭註]徐兗州刺史, 安成王이라入朝어늘 玄謂王注+[頭註]司徒 爲玄佐命元臣이라曰 裕風骨不常하니 蓋人傑也라하더라
유유劉裕환수桓脩注+[頭註]환수桓脩서주연주자사徐州兗州刺史안성왕安成王으로 있었다. 를 따라 입조入朝하자, 환현桓玄왕밀王謐注+[頭註]왕밀王謐사도司徒이니, 환현桓玄좌명원신佐命元臣이다. 에게 이르기를 “유유劉裕는 풍채와 골격이 비범하니, 인걸이다.” 하였다.
玄后劉氏 有智鑑이라 謂玄曰 劉裕龍行虎步하고 視瞻不凡하니 恐終不爲人下하노니 不如早除之라한대
환현桓玄의 아내인 유씨劉氏지모智謀식감識鑑이 있었는데, 환현桓玄에게 이르기를 “유유劉裕는 걸음을 걷는 모양이 용과 범 같고 눈초리가 비범하여 끝내 남의 아랫자리에 있지 않을 것이니, 일찌감치 제거하는 것만 못합니다.” 하니,
玄曰 我方平蕩注+[頭註] 滌也中原호니 非裕 莫可用者
환현桓玄이 말하기를 “내가 막 중원을 평정注+[頭註]은 씻어내는 것이다. 하려 하니, 유유劉裕가 아니면 쓸 만한 자가 없다.
俟關, 河平定然後 別議之爾라하더라
관중關中황하黃河 지방이 평정되기를 기다린 뒤에 별도로 의논하겠다.” 하였다.
○ 裕與何無忌注+[頭註]琅琊內史 同舟還京口하야 密謀復興晉室하다
유유劉裕하무기何無忌注+[頭註]하무기何無忌낭야내사琅琊內史이다. 와 함께 배를 같이 타고 경구京口로 돌아와 은밀히 나라 황실을 부흥할 것을 모의하였다.
劉毅家於京口하야 亦與無忌 謀討玄이러니 無忌曰 天下草澤之中 非無英雄也니라 毅曰 所見 唯有劉下邳注+[原註]裕爲下邳太守하니라니라
유의劉毅경구京口에 거주하여 또한 하무기何無忌와 함께 환현桓玄을 토벌할 것을 모의하였는데, 하무기何無忌가 말하기를 “천하의 초야 가운데에 영웅이 없지 않다.” 하니, 유의劉毅가 말하기를 “내가 본 바로는 오직 유하비劉下邳(劉裕)注+[原註]유유劉裕가 이때 하비태수下邳太守로 있었다. 가 있을 뿐이다.” 하였다.
無忌笑而不答하고 還以告裕하고 遂與毅定謀하다
하무기何無忌가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고서 돌아가 이것을 유유劉裕에게 고하고 마침내 유의劉毅와 함께 계책을 정하였다.
○ 二月乙卯 裕託以遊獵하고 與無忌 收合徒衆하야 得百餘人하다
○ 2월 을묘일乙卯日(27일)에 유유劉裕가 사냥을 나간다고 칭탁하고서 하무기何無忌와 함께 무리를 수합하여 백여 명을 얻었다.
詰旦注+[頭註]平旦也 京口城開어늘 無忌傳詔服하고 稱勅居前하니 徒衆 隨之齊入하야 卽斬桓脩以注+[釋義]行示也하다
다음 날 이른 아침注+[頭註]힐단詰旦평단平旦(동틀 때)이다. 경구京口의 성문이 열리자, 하무기何無忌전조傳詔(詔令을 전달하는 관원)의 옷을 입고 칙사勅使라 칭하고 앞에 있으니, 무리가 뒤를 따라 일제히 에 들어가서 곧바로 환수桓脩의 목을 베어 여러 사람에게 조리돌려 보였다.注+[釋義]은 다니면서 보이는 것이다.
衆推裕爲盟主하니 憂懼特甚이라
무리가 유유劉裕를 추대하여 맹주로 삼으니, 환현桓玄이 근심하고 두려워함이 특히 심하였다.
或曰 劉裕等 烏合注+[頭註]如烏之聚散이니 言無定也微弱하야 勢必無成하리니 陛下何慮之深이니잇고
혹자가 말하기를 “유유劉裕 등은 오합지졸烏合之卒注+[頭註]오합烏合은 까마귀가 모이고 흩어지는 것과 같은 것이니, 일정함이 없음을 말한다. 이라 역량이 미약하여 형세를 살펴보건대 반드시 성공하지 못할 것이니, 폐하께서는 어찌 깊이 염려하십니까?” 하니,
玄曰 劉裕 足爲一世之雄이요 劉毅 家無石之注+[釋義] 齊人 名小爲襜이라 斗石也로되 樗蒲 百萬하고 何無忌 酷似其舅注+[頭註] 甚也 謂劉牢之어늘
환현桓玄이 말하기를 “유유劉裕는 한 시대의 영웅이 될 만하고, 유의劉毅는 집안에 한 말과 한 섬의 저축注+[釋義]나라 사람들이 작은 술단지를 이름하여 이라 한다. 은 말[斗]과 섬[石]이다. 도 없었으나 저포樗蒲 놀이할 때에 한 번에 백만 전을 걸었으며, 하무기何無忌는 모습이 그의 외삼촌(劉牢之)과 매우 흡사한데,注+[頭註]은 매우이다. 외숙外叔유뇌지劉牢之를 이른다.
共擧大事하니 何謂無成
이들이 함께 대사大事를 일으켰으니, 어찌 성공하지 못한다고 말하는가.” 하였다.
○ 三月 裕與劉毅等으로 分爲數隊하야 竝進할새 裕以身先之하니 將士皆殊死戰하야 無不一當百이요 呼聲 動天地
○ 3월에 유유劉裕유의劉毅 등과 몇 개의 부대로 나누어 함께 진군할 적에 유유劉裕가 앞장서서 솔선하니, 장병들이 모두 결사적으로 싸워서 일당백一當百의 기세로 싸우지 않는 자가 없었고 고함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였다.
東北風이어늘 因縱火焚之하니 煙火注+[釋義]火飛也하고 鼓譟之音 震動京邑하니 諸軍 大潰
이때 동북풍이 맹렬히 불자, 이 틈을 타서 불을 놓아 불태우니, 연기와 화염이 하늘까지 치솟고注+[釋義]는 불똥이 튀는 것이다. 북소리와 고함 소리가 경읍京邑을 진동하여 〈환겸桓謙 등의〉 여러 군대가 크게 무너졌다.
帥親信數千人하고 走趨石頭하니 裕入建康하야 帥百官하야 奉迎乘輿하고 誅玄宗族在建康者하다
환현桓玄이 친애하고 신임하는 자 수천 명을 거느리고 달아나 석두성石頭城으로 향하니, 유유劉裕건강建康에 들어가 백관을 거느리고 심양尋陽에서 승여乘輿(황제)를 맞이하고 건강建康에 있는 환현桓玄종족宗族들을 죽였다.
○ 裕始至建康하야 諸大處分注+[釋義] 區處也 分別也 皆委於劉穆之注+[頭註]裕召爲主簿하니 倉猝立定 無不允이라
유유劉裕가 처음 건강建康에 이르러서 모든 중대사의 처분注+[釋義]는 구분하여 처리하는 것이고, 분별分別이다. 유목지劉穆之注+[頭註]유목지劉穆之유유劉裕가 불러서 주부主簿를 삼았다. 에게 다 맡기니, 창졸간에 신속하게 결정함에 사람들이 지당하게 생각하고 흡족해하지 않음이 없었다.
裕遂託以心腹하야 動止 諮焉하니 穆之亦竭節盡誠하야 無所遺隱이러라
유유劉裕가 마침내 그를 심복心腹으로 삼아 어떤 일이든 막론하고 그에게 자문하니, 유목지劉穆之 또한 충절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서 빠뜨리거나 숨기는 바가 없었다.
晉政寬弛하야 綱紀不立하고 豪族陵縱하야 小民窮蹙하며 重以司馬元顯 政令違注+[釋義] 錯謬也하니 桓玄 雖欲釐整이나 而科條繁密하야 衆莫之從이러니
이때 나라의 정사가 해이해져 기강紀綱이 서지 않고 호족豪族들이 교만하고 방자해서 서민庶民들이 곤궁하였으며 여기에 사마원현司馬元顯의 정사와 명령이 서로 모순되기까지 하니,注+[釋義]重以司馬元顯 정령위천政令違舛:은 어그러지고 잘못됨이다. 환현桓玄이 비록 정리하여 바로잡고자 하였으나 법조문法條文이 번거롭고 세밀하여 사람들이 따르지 않았었다.
穆之斟酌時宜하야 隨方矯正注+[頭註]揉曲爲矯 言隨事矯揉하야 使歸於正이라하고以身範物하야 先以威禁하니 內外百官 皆肅然奉職하야 不盈旬日 風俗 頓改러라
유목지劉穆之시의時宜를 참작해서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바로잡고注+[頭註]휘어서 구부리는 것을 라 하니, 일에 따라 바로잡아서 바른 데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유유劉裕가 앞장서서 남들에게 모범이 되어 먼저 위엄으로 금지시키니, 내외의 백관들이 모두 숙연히 직책에 종사해서 열흘이 못 되어 풍속이 크게 바뀌었다.
○ 四月 劉毅, 何無忌等 襲破尋陽城하다
○ 4월에 유의劉毅하무기何無忌 등이 심양성尋陽城을 습격하여 격파하였다.
桓玄 挾帝하고 單舸西走하야 入江陵이어늘 遂斬之하다
환현桓玄이 황제를 끼고 한 척의 배를 타고 서쪽으로 도망하여 강릉江陵으로 들어가자, 〈익주독호益州督護 풍천馮遷이〉 마침내 환현桓玄을 목 베었다.
乘輿反正於江陵하다
승여乘輿(황제)가 강릉에서 반정反正(復位)하였다.
○ 魏主珪 置六謁官하니 準古六卿이요 又官名 多不用漢, 魏之舊하고 倣上古龍官, 鳥官注+[附註]伏羲氏受命時 有龍瑞故 以龍紀事하야 百官師長 皆以龍爲名號하고 少昊氏之時 鳳鳥適至故 以鳥紀事하야 百官師長 皆以鳥爲名號하니라하야 謂諸曹之使하야 爲鳧鴨이라하니 取其飛之迅疾也 謂候官伺察者하야 爲白鷺라하니 取其延頸遠望也
위주魏主 탁발규拓跋珪가 여섯 명의 알관謁官을 두니 옛날의 육경六卿을 따른 것이요, 또 관직명에 나라와 나라 때의 옛 명칭을 대부분 사용하지 않고 상고시대上古時代용관龍官조관鳥官注+[附註]복희씨伏羲氏천명天命을 받았을 때에 의 상서가 있었으므로 으로써 일을 기록하여 백관百官사장師長을 모두 으로써 명칭을 삼았고, 소호씨少昊氏 때에 봉조鳳鳥가 마침 이르렀으므로 새로써 일을 기록하여 백관百官사장師長을 모두 새로써 명칭을 삼았다. 을 따라서 여러 사자使者를 일러 부압鳧鴨(오리)이라 하였으니 부압鳧鴨은 나는 것이 신속한 뜻을 취한 것이요, 척후斥候사찰伺察을 맡은 자를 일러 백로白鷺라 하였으니 백로白鷺는 목을 늘여 멀리 바라보는 뜻을 취한 것이다.
餘皆類此러라
나머지도 모두 이와 같았다.
역주
역주1 : 밀
역주2 : 착
역주3 : 순
역주4 : 담
역주5 : 저
역주6 襜石 : 《資治通鑑》에는 ‘擔石’으로 되어 있다. 擔은 2石으로 ‘擔石의 저축도 없다’는 것은 매우 가난함을 이른다.
역주7 : 앵
역주8 : 척
역주9 : 표
역주10 : 협
역주11 : 천
역주12 重以司馬元顯 政令違舛 : 397년에 安帝가 즉위하자 會稽王 司馬道子가 執政하였는데, 政刑이 어지러워 백성들의 원망이 들끓었다. 隆安 3年(399)에 정사를 아들 司馬元顯에게 맡겼는데 세금을 가혹하게 징수하고 사치를 과도하게 부림으로써 결국 孫恩의 변란을 초래하였다.

통감절요(5)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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