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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3)

통감절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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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庚戌]二十六年이라
건무建武 26년(경술 50)
初作壽陵注+[釋義]壽陵 卽原陵也 去洛陽十五里 帝生前 豫作陵墓 故曰壽陵이라하니라[頭註]初作陵하야 未有名故 號壽陵이라하니 蓋取長久義 壽陵 始於文帝하니라할새 帝曰 古者帝王之葬 皆陶人注+[釋義]謂陶瓦爲人之形也瓦器하고 하야 使後世之人으로 不知其處하니
처음에 수릉壽陵을 만들 때에注+[釋義]壽陵은 바로 원릉原陵이니, 낙양洛陽에서 15리 떨어져 있다. 황제가 생전에 미리 능묘陵墓를 만들었으므로 수릉壽陵이라 한 것이다.[頭註]처음 을 만들어 아직 명칭이 없으므로 수릉壽陵이라 이름한 것이니, 는 장구하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 수릉壽陵을 만든 것은 문제文帝 때에 비롯되었다. 황제가 말하기를 “옛날에 제왕帝王을 장례할 때에 모두 진흙으로 사람을 만들고注+[釋義]도인陶人은 진흙으로 사람의 형상을 만듦을 이른다. 질그릇을 쓰며 나무로 수레를 만들고 띠풀로 말을 만들어서 후세 사람으로 하여금 장례 지낸 곳을 알지 못하게 하였으니,
今所制 地不過二三頃하고 無爲山陵波(陂)池하야 裁(纔)令流水而已注+[釋義]顔之推曰 波(陂)池 當讀如 猶言 言不須高作山陵하고 但令小隆起坡陀然하야 裁得流泄水潦耳 今讀者謂爲波(陂)池하야 令得流水라하니 誤矣 裁令 僅令也하야 使迭興之後 與丘隴同體注+[釋義]王氏曰 丘 小山也 大阪也 謂異時易姓受命之後 庶使陵墓與丘隴之形體無別也케하라
지금 만드는 은 땅은 2, 3을 넘지 않게 하고 산릉山陵과 언덕을 만들지 말아서 겨우 물만 흘러가게 할 뿐이어서注+[釋義]無爲山陵波池 재령류수이이裁令流水而已:안지추顔之推가 말하기를 “파지波池는 마땅히 파타坡陀와 같이 읽어야 하니, 미이靡迤라는 말과 같다. 굳이 높게 산릉山陵을 만들지 말고 다만 조금 융기隆起하여 언덕과 같게 해서 겨우 장마물이 흘러 빠지게 할 뿐임을 말한 것이다. 지금 독자讀者들은 ‘파지波池를 만들어서 물이 그리로 흘러가게 한 것이다.’라고 하니, 잘못이다.” 하였다. 재령裁令은 겨우 하여금이다. 역성혁명易姓革命하여〉 다음 왕조王朝가 일어난 뒤에 구롱丘隴과 일체가 되게 하라.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는 작은 산이고 은 큰 언덕이니, 후일에 역성易姓하여 천명天命을 받은 뒤에 능묘陵墓로 하여금 구롱丘隴의 형체와 거의 구별이 없게 함을 이른다.” ” 하였다.
〈出本紀〉
- 《후한서後漢書 광무제기光武帝紀》에 나옴 -
역주
역주1 壽陵 : 漢나라는 文帝 이후로 황제가 살아 있을 때에 모두 미리 능을 만들었으니, 이제 옛 제도를 따른 것이다.
역주2 木車茅馬 : 木車는 옻칠이나 꾸밈을 가하지 않은 수레이고, 茅馬는 띠풀을 묶어서 말 모양을 만든 것으로 古代에 帝王을 殉葬할 때에 사용한 물건이다.
역주3 坡陀 : 비스듬히 기울어져 평평하지 않음을 이른다.
역주4 靡迤 : 비스듬한 모양을 이른다.

통감절요(3)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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