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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2)

통감절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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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酉] 〈高后八年〉
신유(B.C.180) - 고후高后 8년 -
秋七月 太后崩하다
가을 7월에 태후太后하였다.
班固贊曰
반고班固의 《한서漢書》 〈고후기高后紀에 말하였다.
孝惠高后時 海內得離戰爭之苦하야 君臣俱欲無爲
효혜제孝惠帝고후高后 때에 온 천하가 전쟁의 고통에서 벗어나 군주와 신하가 모두 무위無爲를 하고자 하였다.
惠帝拱己하고 高后女主制政 不出房闥하야 而天下晏然하고 刑罰罕用하며 民務稼穡하야 衣食滋殖하니라
그러므로 혜제惠帝가 자기 몸을 공손히 하고 고후高后가 여자 군주로서 정사를 함이 규방閨房을 벗어나지 아니하여, 천하가 편안하고 형벌을 적게 썼으며 백성들이 농사를 힘써서 의식이 풍족하였다.”
○ 呂祿, 呂産 欲作亂호되 憚絳侯, 朱虛等하야 猶豫未決이러니 絳侯使 하야 以兵屬太尉한대
여록呂祿여산呂産이 난을 일으키고자 하였으나 강후絳侯주허후朱虛侯 등을 두려워하여 머뭇거리며 결단하지 못하였는데, 강후絳侯역기酈寄로 하여금 여록呂祿을 속여 설득해서 병력을 태위太尉에게 맡기게 하였다.
太尉入軍門하야 行令曰 하라 軍中 皆左袒이어늘
태위太尉군문軍門에 들어가서 명령을 전달하기를 “여씨呂氏를 위하거든 우단右袒을 하고, 유씨劉氏를 위하거든 좌단左袒을 하라.” 하니, 군중軍中이 모두 좌단左袒을 하였다.
太尉遂將北軍注+[附註]宿衛宮門內호되 於周垣下 爲區廬하니 禁軍也 漢書南北軍圖 北軍尉兵三萬人이니 以郡國材官騎士番上者充之하고 又中尉兵掌巡徼京師하니 以三輔兵番上者充之러니 武帝改名執金吾하니라하고 分部하야 悉捕諸呂하야 男女 無少長 皆斬之하다
태위太尉가 마침내 북군北軍注+[附註]북군北軍은 궁문 안을 숙위宿衛하는데 빙 둘러 있는 담장 아래에 구려區廬(초소)를 만드니, 금군禁軍이다. 《한서漢書》의 남북군南北軍 도식圖式에 북군의 위병尉兵이 3만 명이니 군국郡國재관材官기사騎士 중에 번상番上하는 자로 충원하고, 또 중위中尉의 군대는 경사京師를 순찰하는 것을 관장하니 삼보三輔의 병사 중에 번상番上하는 자로 충원하였는 바, 뒤에 무제武帝집금오執金吾라고 이름을 고쳤다. 거느리고 부서를 나누어 여씨呂氏들을 모두 체포해서 남녀를 아이와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목 베었다.
〈出史記呂后紀〉
- 《사기史記 여후본기呂后本紀》에 나옴 -
胡氏管見曰
호씨胡氏의 《독사관견讀史管見》에 말하였다.
太尉此問 非也
태위太尉의 이 물음은 잘못된 것이다.
有如軍士不應하여 或皆右袒이어나 或參半焉이면 則如之何
만일 군사들이 호응하지 아니하여 혹 모두 우단右袒을 하였거나, 혹 반만 참여하였다면 어찌하였겠는가.
先賢謂是時 直當諭以大義하야 率而用之爾라하니라
그러므로 선현先賢이 이르기를 ‘이때에는 다만 의리로 깨우쳐서 거느리고 가서 쓸 뿐이다.’라고 한 것이다.
況太尉已得北軍하니 士卒 固惟舊將之聽이니 非惟不當問이라 蓋亦不必問也니라
하물며 태위太尉가 이미 북군北軍을 얻었으니, 사졸들이 진실로 옛 장수의 명령을 따를 것이니, 단지 묻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굳이 물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新增] 養心吳氏曰
양심오씨養心吳氏가 말하였다.
令軍中左右袒하니 設使右袒이런들 其可已乎
주발周勃군중軍中으로 하여금 좌단左袒을 하고 우단右袒을 하게 하였으니, 설사 우단右袒을 했더라도 이 일을 그만둘 수 있었겠는가.
伊川先生以爲此屬 盡爲身謀 非眞爲國家也라하니라
이천선생伊川先生이 말씀하기를 ‘이러한 등속은 모두 자신을 위하여 도모한 것이요, 참으로 국가國家를 위한 것이 아니다.’ 하였다.”
[史略 史評] 南宮氏史斷曰
남궁씨南宮氏(南宮靖一)의 《소학사단小學史斷》에 말하였다.
惠帝仁柔之資 內修親親하고 外禮宰相하고 優寵兄弟하여 恩敬 篤矣
혜제惠帝는 인자하고 유순한 자질로 안으로는 친친親親을 닦고 밖으로는 재상宰相들을 예우하였으며, 형제들을 우대하여 은혜와 공경이 돈독하였다.
當時 海內息戰爭之苦하야 君臣拱手하야 俱欲無爲
당시에 온 천하가 전쟁의 고통이 종식되어 군주와 신하가 팔짱을 끼고 모두 무위無爲를 하고자 하였다.
是以 天下晏然하고 刑罰罕用하며 民務稼穡하야 衣食滋殖이러니 不幸遭母后하야 虧損至德하니 惜哉
이 때문에 천하가 편안하고 형벌을 적게 썼으며 백성들이 농사를 힘써서 의식이 풍족하였는데, 불행히 모후母后를 만나 지극한 덕을 훼손하였으니 애석하다.
呂后以婦人臨朝하여 背高帝之約하고 欲王諸呂호되 當時 面折廷爭 僅見王陵一人이요 而波流風靡하야 阿附呂后者 雖平勃이라도 不免也
여후呂后는 부인으로서 조정에 임하여 고제高帝의 약속을 저버리고 여씨呂氏들을 왕 노릇 시키고자 하였으나 당시에 대면하여 꺾고 조정에서 간쟁한 자는 겨우 왕릉王陵 한 사람뿐이었고, 물결치는 대로 휩쓸리고 바람부는 대로 쏠려서 여후呂后에게 아부한 것은 비록 진평陳平주발周勃이라도 면하지 못하였다.
自是 權歸呂氏하야 漢祚之危 如一髮引千鈞하니 이면 則漢亦殆矣리니 其能成功 豈非天邪
이로부터 권세가 여씨呂氏에게 돌아가서 나라 국운國運의 위태로움이 마치 한 올의 머리털로 천균千鈞을 끌어당기는 것과 같았으니, 그때 만일 역기酈寄를 위협할 수 없고 여록呂祿을 속일 수 없고 기통紀通의 부절을 황명皇命이라고 사칭할 수 없고 북군北軍주발周勃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여수呂須의 계책이 행해졌다면 나라가 또한 위태로웠을 것이니,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어찌 천운天運이 아니겠는가.
夫以呂后仇陷戚姬하고 鴆殺趙王하며 駭沒嗣君하고 幽殺少主하며 擅王呂氏하고 誅鋤高帝諸子하며 居位僭竊 自有天地以來 所謂非常之變이니 不可言也
여후呂后척희戚姬를 원수로 여겨 죽임에 빠뜨리고 조왕趙王짐독鴆毒으로 죽였으며, 사군嗣君을 놀라서 죽게 하고 소주少主를 유폐하여 죽였으며, 제멋대로 여씨呂氏를 왕 노릇 시키고 고제高帝의 여러 아들들을 죽였으며, 지위에 있으면서 참람하고 도둑질하였으니, 이는 천지가 생겨난 이래로 이른바 비상한 변고라는 것이니 말할 수가 없다.
子朱子綱目 於呂氏制朝之後 分註其年하야 特以變例書之하니 所以著女后僭亂之原하야 爲萬世鑑戒 宜哉
주자朱子의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에 여씨呂氏가 조정에 임하여 를 칭한 뒤에 그 연도(干支) 아래에 분주分注하여 특별히 변례變例로 썼으니, 이는 여후女后가 참람하고 어지럽힌 근원을 드러내어 만세의 감계鑑戒를 삼은 것이니, 당연하다.”
○ 諸大臣 相與謀曰 及梁, 淮陽, 皆非眞孝惠子注+[附註]張皇后 帝娣魯元公主之女 呂太后欲爲重親이라 故以配帝하고 張后無子어늘 太后命張后하야 取他人子하야 殺其母而養之하고 令孝惠子之러니 諸大臣 迎代王爲帝 而有司分部하야 皆滅之하니라라하야 乃使人으로한대
여러 대신들이 서로 모의하기를 “소제少帝양왕梁王, 회양왕淮陽王, 항산왕恒山王이 모두 진짜 효혜황제孝惠皇帝의 아들이 아니다.”注+[附註]장황후張皇后혜제惠帝의 여동생인 노원공주魯元公主의 딸이니, 여태후呂太后중친重親(겹사돈)을 맺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그녀를 혜제惠帝의 배필로 삼았으며, 장후張后가 자식이 없자, 여태후呂太后장후張后에게 명하여 딴 사람의 자식(少帝)을 데려다가 그 어미를 죽이고 기르게 하고는 혜제惠帝로 하여금 자식으로 삼게 하였는데, 여러 대신들이 대왕代王을 맞이하여 황제로 삼자 유사有司가 부서를 나누어 공격해서 이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하여, 이에 사람을 시켜 대왕代王을 맞이하였다.
張武等호되 皆曰 漢大臣 皆故高帝時將으로 習兵事하고 多謀詐 今已誅諸呂하고 以迎大王爲名하니 實不可信이라
장무張武 등이 의논을 올릴 적에 모두 말하기를 “나라 대신들은 다 옛날 고제高帝 때의 장수로 병사兵事에 숙달하고 속임수가 많습니다. 이제 이미 여씨呂氏들을 주벌하고 대왕代王을 맞이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삼으니, 실제로 믿을 수가 없습니다.
願稱疾無往하야 以觀其變하소서
원컨대 병을 칭탁하고 가지 마시고 그 변화를 관찰하소서.” 하였다.
中尉 進曰 夫秦失其政 豪傑竝起하야 人人 自以爲得之者 以萬數 然卒踐天子位者 劉氏也 天下絶望 一矣
중위中尉 송창宋昌이 나아가 아뢰기를 “나라가 왕권을 잃자, 호걸豪傑들이 함께 일어나서 사람마다 각자 왕권을 얻을 것이라고 여긴 자가 만으로 헤아려졌으나 끝내 천자의 지위에 오른 자는 유씨劉氏이니, 천하의 호걸들이 절망한 것이 첫 번째입니다.
高帝王子弟하야 地犬牙相制注+[釋義]言封子弟 其境(土)[上]交接 若犬牙하야 不正相當而相銜入也하니 所謂磐石之宗注+[釋義]此語見太公六韜 又荀子國富篇曰 國安于磐石이라한대 固也 國之安彊 如磐踞之大石하야 不可拔이라 天下服其彊 二矣
고제高帝자제子弟를 왕으로 봉하여 땅이 개 이빨처럼 맞물려 서로 견제하니,注+[釋義]견아상제犬牙相制자제子弟를 봉할 적에 그 국경이 서로 맞물려 마치 개의 이빨과 같아서 바르게 서로 맞지 않고 서로 맞물려 들어감을 이른다. 이른바 반석처럼 편안한 종친宗親이라는 것이어서注+[釋義]이 내용은 태공太公의 《육도六韜》에 보인다. 또 《순자荀子》 〈국부편國富篇〉에 이르기를 “나라가 반석磐石처럼 편안하다.” 하였는데, 에 “은 견고함이니, 나라의 편안하고 강함이 널려 있는 큰 바위와 같아서 뽑을 수 없는 것이다.” 하였다. 천하가 그 강함에 복종함이 두 번째입니다.
漢興 除秦煩苛하야 約法令, 施德惠하야 人人自安하니 難動擾 三矣
나라가 일어나자 나라의 번거롭고 까다로운 것을 제거하여 법령法令을 줄이고 은덕을 베풀어서 사람마다 스스로 편안해 하니, 동요시키기 어려운 것이 세 번째입니다.
夫以呂太后之嚴으로 擅權專制 然而太尉以一節入北軍하야 一呼 士皆左袒하야 爲劉氏하고 畔諸呂하야 卒以滅之하니 此乃天授 非人力也니이다
여태후呂太后의 위엄으로써 권력을 독단하고 제멋대로 전제專制하였으나 태위太尉가 한 부절을 가지고 북군北軍에 들어가서 한 번 호령하자 군사들이 모두 좌단左袒을 하여 유씨劉氏를 위하고 여러 여씨呂氏를 배반해서 끝내 여씨呂氏를 멸망시켰으니, 이는 바로 하늘이 준 것이요 인력人力이 아닙니다.
大王賢聖仁孝 聞於天下 大臣 因天下之心而迎立大王하나니 大王 勿疑也하소서
대왕大王의 어질고 성스럽고 인자하고 효성스러움이 천하에 알려졌기 때문에 대신大臣이 천하 사람들의 마음을 인하여 대왕大王을 맞이해 세우려는 것이니, 대왕大王께서는 의심하지 마소서.” 하였다.
代王 至長安하니 太尉勃 請間(閒)注+[釋義]索隱注 音閑이니 言欲向空閑處語이어늘 宋昌曰 所言인댄 公言之하고 所言인댄 王者 無私니이다
대왕代王장안長安에 이르자, 태위 주발周勃이 한가한 틈을 내주기를 청하니,注+[釋義]사기색은史記索隱》의 에 “이 한이니, 비고 한가로운 곳을 향하여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였다. 송창宋昌이 말하기를 “말할 내용이 공적公的인 것이면 공적公的으로 말하고, 말할 내용이 사적私的이면 왕자王者는 사사로움이 없습니다.” 하였다.
太尉乃跪上天子璽符어늘
태위太尉가 마침내 무릎을 꿇고 천자天子옥새玉璽부절符節를 올렸다.
代王 西鄕(向)讓者三이요 南鄕讓者再注+[附註]賓主 位東西面이요 君臣 位南北面이라 王入代邸 群臣繼至어늘 王以賓主禮接之하야 西向三讓하고 群臣扶王하야 正南面之位 又再讓하니라 遂卽天子位하다
대왕代王이 서쪽을 향하여 사양하기를 세 번 하고 남쪽을 향하여 사양하기를 두 번 하고는,注+[附註]西鄕讓者三 남향양자재南鄕讓者再:손님과 주인은 동면東面서면西面에 자리하고, 군주君主신하臣下남면南面북면北面에 자리한다. 대왕代王대저代邸(代王의 저택)로 들어옴에 여러 신하들이 뒤따르자, 대왕代王이 손님과 주인의 로 접견하여 서쪽을 향하여 세 번 사양하였고, 여러 신하들이 왕을 부축하여 남면南面의 자리에 앉게 하자, 또다시 두 번 사양한 것이다. 마침내 천자天子의 지위에 올랐다.
夜拜宋昌하야 爲衛將軍하야 領南北軍하고 以張武 爲郞中令하야 行殿中하다
밤에 송창宋昌을 임명하여 위장군衛將軍으로 삼아 남군南軍북군北軍을 거느리게 하고, 장무張武낭중령郎中令으로 삼아서 궁전 안을 순찰하게 하였다.
〈出漢書文帝紀〉
- 《한서漢書 문제기文帝紀》에 나옴 -
[新增] 胡氏曰
호씨胡氏가 말하였다.
太尉此請 非也
태위太尉의 이 요청은 잘못되었다.
不過欲敍討諸呂迎代王之功하야 以伸私欵耳
여씨呂氏들을 토벌하고 대왕代王을 맞이한 공로를 서술하여 사사로운 정성을 펴고자 함에 불과하였을 뿐이다.
宋昌一折之 其情立見하야 遽上璽符하니 夫渭橋注+[頭註]漢書 於渭橋 群臣拜上璽符라하니라 非邸殿所在 王若何而受之리오
송창宋昌이 한 마디 말로 꺾자 그 이 즉시 드러나서 황급히 옥새玉璽부절符節을 올렸으니, 위수渭水注+[頭註]한서漢書》에 “위수渭水 다리에서 신하들이 절하고 옥새玉璽부절符節을 올렸다.” 하였다. 다리는 대왕代王저전邸殿이 있는 곳이 아니니, 대왕代王이 어떻게 이것을 받는단 말인가.
一擧而三失焉이니 不學之過也니라
한 번 행동함에 세 가지가 잘못되었으니, 이는 배우지 않은 잘못이다.”
역주
역주1 : 역
역주2 紿說呂祿 : 陳平과 周勃이 酈寄를 보내어 설득하기를 “高帝가 呂后와 함께 천하를 평정하여 劉氏가 세운 것이 아홉 왕이고 呂氏가 세운 것이 세 왕입니다. 지금 太后가 돌아가시고 少帝가 어린데 그대가 급히 나라로 가지 않고 마침내 병력을 거느리고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 사람들에게 의심을 받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자, 呂祿이 그의 계책을 따라 兵權을 내놓고 떠나간 것이다.
역주3 爲呂氏……左袒 : 袒은 윗옷의 한쪽 소매를 벗어 上體의 일부를 드러내는 것으로, 禮로 섬길 때에는 左袒을 하고 죄를 청하거나 형벌을 기다릴 때에는 右袒을 한다.
역주4 向使酈寄……呂須謀行 : 酈寄는 酈商의 아들로 呂祿과 친하였으며, 呂祿은 呂后의 친정 조카로 趙王에 봉해졌는데 아우인 梁王 呂産과 함께 南北軍을 통솔하여 군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紀通은 황제의 符節을 관장하고 있었으며, 呂須는 呂后의 여동생으로 樊噲의 아내이다. 呂后가 죽자, 呂氏 一族은 반란을 일으켜 자신들이 황제가 되려 하였다. 酈商과 친한 周勃과 陳平은 서로 모의하고 酈寄를 위협하여 呂祿에게 軍權을 내놓고 趙나라에 가 있으면 황제로 추대하겠다고 속이게 하였다. 周勃이 北軍에 들어가려 하였으나 저지당하여 들어갈 수 없자, 紀通으로 하여금 符節을 내어 皇命이라 사칭하고 北軍에 들어가 결국 이들을 데리고 呂氏 一族을 토벌한 것이다. 처음 呂祿이 병권을 내놓으려 하자 呂須가 크게 노하고 반대하였으므로 그녀의 계책이 행해졌다면 漢나라가 또한 위태로웠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역주5 少帝 : 孝惠皇后는 본래 아들이 없었으므로 거짓으로 임신한 것처럼 꾸며 남의 아들을 취하여 길렀는데, 그 어미를 죽이고 태자로 삼았다. 孝惠帝가 죽자 즉위하니, 이가 少帝이다. 점점 장성하여 자신이 황후의 진짜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마침내 말하기를 “皇后가 내 어머니를 죽였으니, 내가 장성하기만 하면 변고가 있을 것이다.” 하니, 呂太后가 이를 듣고 근심하여 그를 永巷에 유폐시키고는 병이 심해서 정사를 볼 수 없다 하여 폐위시키고 죽였다.
역주6 恒山王 : 高皇后 4년 5월에 恒山王 劉義를 세워 황제로 삼고 이름을 고쳐 弘이라 하였다. 少帝를 이어 황제에 즉위하였으나 周勃 등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역주7 代王 : 高帝의 둘째 아들로 뒤에 孝文帝가 되었다.
역주8 宋昌 : 宋義의 아들이다.
역주9 渭橋 : 長安 북쪽으로 3리 되는 지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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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유] 고후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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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유] 고후8년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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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신유] 고후8년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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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신유] 고후8년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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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신유] 고후8년 459

통감절요(2)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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