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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5)

통감절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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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戊子]三年이라 〈趙光初十一年이요 後趙太和元年이라
함화咸和 3년(무자 328) - 나라 광초光初 11년이고, 후조後趙 태화太和 원년元年이다. -
蘇峻 帥衆二萬人하야 濟自橫江하다
소준蘇峻이 병력 2만 명을 거느리고 횡강橫江으로부터 건너왔다.
二月庚戌 至蔣陵覆舟山하니 陶回注+[頭註]司徒司馬也 司徒屬官 有司馬하니라謂庾亮曰
2월 경술일(1일)에 소준蘇峻장산蔣山 구릉丘陵복주산覆舟山에 이르니, 도회陶回注+[頭註]도회陶回사도司徒사마司馬였으니, 사도司徒속관屬官사마司馬가 있다. 유량庾亮에게 이르기를
知石頭有重戍하야 不敢直下하고 必向小丹楊(陽)南道하야 步來하리니
소준蘇峻석두성石頭城중병重兵의 수비가 있음을 알아서 감히 곧바로 동쪽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반드시 소단양성小丹陽城으로 향하여 남쪽 길을 따라 걸어서 올 것이니,
宜伏兵邀之 可一戰擒리이다 不從이러니
마땅히 군대를 매복했다가 맞아서 싸우면 일전一戰에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하였으나 유량庾亮이 따르지 않았다.
果自小丹楊來라가 迷失道하야 夜行 無復部分하니 亮乃悔之러라
소준蘇峻이 과연 소단양성小丹陽城에서 오다가 길을 잃어서 밤에 행군할 때에 부대部隊의 질서가 없으니, 유량庾亮이 비로소 후회하였다.
攻淸溪柵이어늘 卞壼 帥諸軍拒擊이라가 不能禁하니 因風縱火하야 燒臺省及諸營, 寺署注+[頭註]府庭所在 皆謂之寺 官舍曰署
소준蘇峻청계淸溪(建康城 동쪽)의 을 공격하자 변곤卞壼제군諸軍을 거느리고 공격에 맞섰으나 저지하지 못하니, 소준蘇峻이 바람을 타고 불을 놓아 삼대오성三臺五省과 여러 군영軍營사서寺署(官署)注+[頭註]부정府庭(衙門)이 있는 곳을 일러 라 하고, 관사官舍라 한다. 를 불태웠다.
庾亮 帥衆하고 將陳于宜陽門內라가 未及成列하야 士衆 皆棄甲走하니 奔尋陽하다
유량庾亮이 병력을 인솔하고 의양문宜陽門 안에서 을 치려다가 미처 대열을 이루기도 전에 군사들이 모두 갑옷을 버리고 달아나니, 유량庾亮온교溫嶠가 있는 심양尋陽으로 도망하였다.
峻兵 入臺城하야 稱詔大赦호되 惟庾亮兄弟 不在原例注+[頭註]赦罪曰原이라
소준蘇峻의 군대가 대성臺城에 들어와 황제의 조서라고 칭하고 크게 사면하였으나 유량庾亮 형제만은 용서해 주는 注+[頭註]죄를 용서해 주는 것을 이라 한다. 에 들어 있지 않았다.
以王導有德望이라하야 猶使以本官으로 居己之右하고 祖約으로 爲侍中, 太尉, 尙書令하고 自爲驃騎將軍, 錄尙書事하다
왕도王導는 덕망이 있다 하여 오히려 왕도王導로 하여금 본래의 관직을 지닌 채 자신의 윗자리에 있게 하고 조약祖約시중侍中태위太尉상서령尙書令으로 삼았으며, 소준蘇峻 자신은 표기장군驃騎將軍녹상서사錄尙書事가 되었다.
[新增]尹氏曰
[新增]尹氏가 말하였다.
蘇峻 狼子野心이어늘 庾亮 旣不能思所處之注+[頭註]亮嘗言於朝曰 峻 狼子野心하니 終必爲亂이라하니라하고 而乃遽頒召命하야 自速其反이라
소준蘇峻은 이리와 같은 야심을 품고 있었는데, 유량庾亮이 이미 대처注+[頭註]유량庾亮이 일찍이 조정에서 말하기를 “소준蘇峻은 이리와 같은 야심을 품고 있으니, 끝내 반드시 난을 일으킬 것이다.” 하였다. 할 방법을 생각하지 않고 갑자기 소환하는 명령을 반포하여 스스로 반란을 재촉하였다.
方其下詔之初 擧朝以爲不可어늘 亮乃愎諫自用하니 其失 一也 溫嶠欲帥衆入衛하고 三吳注+[頭註]蘇潤湖三州是欲起兵赴難이어늘 亮皆拒之注+[附註]徵峻호되 峻不應命이어늘 溫嶠欲入衛建康하고 三吳亦欲起義兵이러니 亮報嶠書曰 吾憂西陲 過於歷陽하니 足下無過雷池一步라하니라하니 其失 二也 孔坦注+[頭註]尙書左丞이라 請斷阜陵하고 守當利注+[頭註]地名이니 一云 當利便處諸江口라하니라諸口어늘 而亮不從하니 其失 三也 陶回請伏兵小丹陽南道어늘 亮又不許하니 其失 四也
조서를 내리던 초기에 온 조정이 불가하다고 말하였으나 유량庾亮이 마침내 고집을 부려 간언諫言을 듣지 않고 자기 의견을 썼으니 그 잘못이 하나요, 온교溫嶠가 군대를 거느리고 들어와 호위하고자 하고 삼오三吳注+[頭註]삼오三吳소주蘇州윤주潤州호주湖州의 세 가 바로 이것이다. 지방에서 군대를 일으켜 난을 구하러 달려오고자 하였으나 유량庾亮이 모두 거절하였으니注+[附註]소준蘇峻을 불렀으나 소준蘇峻이 명에 응하지 않자 온교溫嶠가 들어가 건강建康을 호위하고자 하였고, 삼오三吳 또한 의병義兵을 일으키고자 하였는데, 유량庾亮온교溫嶠에게 답한 편지에 이르기를 “내 서쪽 변방을 우려하기를 역양歷陽보다 더하게 하니, 족하足下뇌지雷池에서 한 걸음도 떼지 말라.” 하였다. 그 잘못이 둘이요, 공탄孔坦注+[頭註]공탄孔坦상서좌승尙書左丞이다. 부릉阜陵을 차단하고 당리當利注+[頭註]당리當利는 지명이니, 일설一說에 이르기를 “마땅히 강어귀에 처하게 하는 것이 편리한 것이다.” 하였다. 의 여러 어구를 지킬 것을 청하였는데 유량庾亮이 따르지 않았으니 그 잘못이 셋이요, 도회陶回소단양小丹陽의 남쪽 길에 군대를 매복할 것을 청하였는데 유량庾亮이 또 허락하지 않았으니 그 잘못이 넷이다.
由是而觀하면 召釁稔禍 誰其尸之
이로 말미암아 본다면 재앙을 부르고 화를 키움을 누가 주장하였는가.
至於國破君危하야 宗社不守어늘 亮不能於此灰身以謝天下하고 方且奉頭鼠竄하야 草間求活하니
국가가 망하고 군주가 위태로워서 종사宗社를 지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유량庾亮이 이때에 몸을 죽여서 천하에 사죄하지 못하고 또 머리를 받들고 쥐처럼 숨어서 풀숲에서 구차히 살기를 바랐다.
向非溫嶠諸賢 戮力討賊이면 則晉氏必不血食이리니 亮雖萬死 猶爲無補
그때 만일 온교溫嶠 등 여러 현자賢者가 힘을 합쳐서 역적을 토벌하지 않았다면 나라는 반드시 나라를 보전하지 못했을 것이니, 유량庾亮이 비록 만 번 죽더라도 오히려 보탬이 없었을 것이다.
誤國如此어늘 尙可不加誅責注+[頭註]誅亦責也
나라를 이와 같이 그르쳤는데, 오히려 주벌注+[頭註] 또한 꾸짖음이다. 을 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四月 庾亮, 溫嶠 將起兵討峻할새 遣督護王愆期하야 詣荊州邀陶侃注+[頭註]邀與要通하니 求也하야 與之同赴國難이러니 卽戎服登舟하야 晝夜而進하다
4월에 유량庾亮온교溫嶠가 장차 군대를 일으켜 소준蘇峻을 토벌하려 할 적에 독호督護 왕건기王愆期를 보내어 형주荊州에 나아가 도간陶侃을 맞이해서注+[頭註]와 통하니, 구하는 것이다. 함께 국난國難에 달려가자 하니, 도간陶侃이 즉시 군복을 입고 배에 올라서 밤낮으로 진군하였다.
溫嶠有衆七千이러니 洒(灑)泣登舟하고 注+[頭註] 晉書 作郗하니 音絺 姓名也 在廣陵하야 城孤糧少하고 逼近胡寇하야 人無固志러니 得詔書하고 卽流涕하야 誓衆入赴國難하니 將士爭奮이러라
온교溫嶠는 7천 명의 병력이 있었는데 〈소준蘇峻의 죄상을 열거하자 7천 명의 군사가〉 눈물을 흘리면서 배에 올랐고, 극감郄鑒注+[頭註]는 《진서晉書》에 로 되어 있다. 이 치이니 성명姓名이다. 광릉廣陵에서 이 고립되고 양식이 부족하며 오랑캐들(後趙)과 가까이 있어서 사람들이 견고히 지킬 뜻이 없었으나 조서를 읽고는 금방 눈물을 흘리면서 군사들에게 국난國難에 달려갈 것을 맹세하니, 장병들이 다투어 분발하였다.
嶠等 同趣(趨)建康하니 戎卒四萬이요 旌旗七百餘里 注+[通鑑要解] 音正이니 鐃也, 鐲也 似小鍾이요 似鈴也之聲 震於遠近이러라
온교溫嶠 등이 건강建康으로 함께 달려오니 병력이 4만 명이요 정기旌旗가 7백여 리에 뻗쳤으며 징注+[通鑑要解]이 정이니, 징이며 방울이다. 은 작은 과 비슷하고 는 방울과 비슷하다. 소리와 북소리가 원근遠近에 진동하였다.
蘇峻 聞西方兵起하고 乙未 逼遷帝於石頭어늘 侃督水軍하야 向石頭하고 庾亮, 溫嶠, 趙胤 帥步兵萬人하야 從白石南上하야 欲挑戰하다
소준蘇峻서방西方에서 군대가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 을미일(5월 18일)에 황제를 위협하여 석두성石頭城으로 옮기자, 도간陶侃수군水軍을 독려하여 석두성石頭城으로 향하고 유량庾亮온교溫嶠조윤趙胤보병步兵 만 명을 거느리고 백석白石 남쪽에서 올라가서 도전하고자 하였다.
將八千人逆戰이라가
소준蘇峻이 8천 명을 거느리고 이들을 맞아 싸웠다.
어늘 部將彭世, 李千等 投之以矛하니 峻墜馬한대 斬首注+[頭註]力轉切이니 切肉也割之하고 焚其骨하다
싸우다가 말이 넘어지자, 도간陶侃부장部將 팽세彭世이천李千 등이 창을 던지니, 소준蘇峻이 말에서 떨어졌는데, 목을 베고 살점을 저미고注+[頭註]은 力轉切(련)이니 저민 고기이다. 뼈를 불태웠다.
三軍 皆稱萬歲注+[通鑑要解]七國時 衆所喜慶于君者 皆呼萬歲러니 秦漢以下 臣下對見于君하야 拜恩慶賀 率以爲常이라하니 餘衆 大潰러라
삼군三軍이 모두 만세를 부르니,注+[通鑑要解]전국戰國 시대에는 뭇 백성들이 임금에게 기쁜 경사가 있을 때에 모두 만세萬歲를 불렀는데, 진한秦漢 이후로는 신하臣下가 임금을 대면하여 사은숙배謝恩肅拜하고 경하慶賀할 때에 대체로 만세를 부르는 것을 일상적인 것으로 여겼다. 나머지 무리가 크게 무너졌다.
司馬任(護)[讓]等 共立峻弟逸하야 爲主하고 閉城自守
소준蘇峻사마司馬 임양任讓 등이 함께 소준蘇峻의 아우 소일蘇逸을 세워서 군주로 삼고 성문을 닫고 스스로 지켰다.
趙胤 遣將擊祖約于歷陽하니 奔後趙하다
조윤趙胤이 장수를 보내어 조약祖約역양歷陽에서 공격하니, 조약祖約후조後趙로 도망하였다.
○ 後趙中山公虎注+[頭註]字季龍이니 石勒之從子 擊趙어늘 趙主曜 大敗之하다
후조後趙 중산공中山公 석호石虎注+[頭註]중산공中山公 석호石虎계룡季龍이니, 석륵石勒의 조카이다. 나라를 공격하자, 조주趙主 유요劉曜가 대패시켰다.
曜濟自大陽하야 圍石生注+[頭註]後趙將이라於金墉하니 襄國注+[釋義]石勒所據之地也 大震이러라
유요劉曜대양大陽으로부터 건너가서 석생石生注+[頭註]석생石生후조後趙의 장수이다. 금용金墉에서 포위하니, 양국襄國注+[釋義]양국襄國석륵石勒이 점거한 곳이다. 이 크게 진동하였다.
○ 十一月 後趙王勒 自將救洛陽하야 大破趙兵하고 斬首五萬餘級하고 遂殺曜하다
○ 11월에 후조왕後趙王 석륵石勒이 스스로 군대를 거느리고 낙양洛陽을 구원하여 조병趙兵을 대파하고 5만여 명의 수급首級을 베고 마침내 유요劉曜를 죽였다.
역주
역주1 : 치
역주2 : 정
역주3 : 지
역주4 : 련

통감절요(5)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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