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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1)

통감절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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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辛卯]三十七年이라
37년(신묘 B.C.210)
冬十月 始皇 出遊할새 左丞相斯從하고 少子胡亥最愛러니 請從이어늘 許之하다
겨울 10월에 시황始皇이 나가 유람할 적에 좌승상左丞相 이사李斯가 수행하고, 소자少子호해胡亥가 가장 총애를 받았는데 수행할 것을 청하자 이 이를 허락하였다.
西至平原津注+[釋義]平原 地名이라 水經云 濁河東北過高唐이라하니 按高唐卽平原이니 在河西 漢置平原郡하야 屬靑州하니 今德州是而病하야 秋七月丙寅 始皇 崩於하다
서쪽으로 평원진平原津注+[釋義]평원平原은 지명이다. 《수경水經》에 이르기를 “탁하濁河가 동북쪽으로 고당高唐을 지난다.” 하였으니, 살펴보건대 고당高唐이 바로 평원平原이니 하서河西에 있다. 나라 때 평원군平原郡을 두어 청주靑州에 속하였으니, 지금의 덕주德州가 이곳이다. 에 이르러 병이 들어 가을 7월 병인일에 시황始皇사구沙丘평대平臺에서 하였다.
丞相斯爲上崩在外하니 恐諸公子及天下有變이라하야 乃秘之하야 不發喪하고 獨胡亥, 趙高及幸宦者五六人 知之러라
승상丞相 이사李斯의 승하가 밖에 있으니 여러 공자公子와 천하에 변란이 있을까 두렵다 하여, 마침내 이를 숨겨 을 발표하지 않고 다만 호해胡亥조고趙高 및 총애하는 환관宦官 5, 6명만이 이것을 알았다.
趙高乃與丞相斯謀하고 詐爲受始皇詔라하야 立胡亥爲太子하고
조고趙高가 마침내 승상 이사李斯와 모의하고 거짓으로 시황始皇조명詔命을 받았다 하여 호해胡亥를 세워 태자太子로 삼고,
爲書注+[通鑑要解] 改也 始皇至平原津而病하니 始皇惡言死하야 群臣莫敢言死 病益甚한대 迺令中書府令으로 行符璽事하다 趙高爲書하야 賜扶蘇曰 與喪하야 會咸陽而葬하라하더니 未付使者하야 始皇崩이라 趙高迺言斯曰 上賜長子書及符璽 皆在胡亥所하니 定太子皆在君侯與高之口耳 事將何爲 斯曰 安得亡國之言 非人臣所當議也니라 趙高固請하니 斯許之하야 更爲書하니라하야 賜扶蘇하야 注+[釋義]謂以一二而記之以不能闢地立功하고 上書誹謗하며 將軍恬 不矯正하니 知其謀라하야 皆賜死한대 扶蘇自殺이라
다시 편지를 조작해서注+[通鑑要解]은 고침이다. 시황始皇평원진平原津에 이르러 병이 드니, 시황始皇은 죽음에 대해 말하기 싫어하여 신하들이 감히 죽음을 말하지 못하였다. 병이 더욱 심해지자 중서부령中書府令조고趙高로 하여금 부새符璽의 일을 맡게 하였다. 조고趙高시황始皇의 편지를 만들어 부소扶蘇에게 내리기를 “에 참여하여 함양咸陽에서 모여 장례하라.” 하였는데, 이 편지를 사자使者에게 주기 전에 시황始皇이 죽었다. 뒤에 조고趙高이사李斯에게 말하기를 “께서 장자長子에게 내리신 편지와 부새符璽가 모두 호해胡亥의 처소에 있으니, 태자太子를 정하는 것은 군후君侯와 이 조고趙高의 입에 모두 달려 있습니다. 이 일을 장차 어떻게 하겠습니까?”라고 하자, 이사李斯는 말하기를 “어찌 나라를 망칠 말을 한단 말인가. 이는 신하가 의논할 바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조고趙高가 굳이 청하자, 이사李斯가 이를 허락하여 편지를 고쳐서 만든 것이다. 부소扶蘇에게 내려 ‘땅을 개척하여 공을 세우지 못하고 글을 올려 비방하였다.’고 수죄數罪하였으며,注+[釋義]는 〈죄목을〉 하나, 둘 세어서 열거함을 이른다. 장군 몽념蒙恬은 이것을 바로잡지 않았으니 그 계모計謀를 알았을 것이라 하여 모두 사사賜死하니, 부소扶蘇가 자살하였다.
胡亥至咸陽하야 發喪襲位하고 九月 葬始皇於驪山下하다
호해胡亥함양咸陽에 이르러 을 발표하고 황제皇帝의 지위를 세습하고, 9월에 시황始皇여산驪山 아래에 장례하였다.
蘇東坡曰
소동파蘇東坡가 말하였다.
李斯佐始皇하야 定天下하니 不可謂不智
이사李斯시황始皇을 보좌하여 천하를 평정하였으니, 지혜롭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扶蘇 親始皇子 秦人戴之久矣
부소扶蘇진시황秦始皇의 친자식이니, 나라 사람들이 떠받든 지가 오래되었다.
陳勝 假其名하야도 猶足以亂天下하고 而蒙恬 持重兵在外하니 使扶蘇不卽受誅而復請之 則斯高無遺類矣어늘
진승陳勝이 그 이름만 빌리고서도 오히려 천하를 어지럽힐 수 있었고, 몽념蒙恬이 막강한 군대를 보유하고 밖에 있었으니, 만일 부소扶蘇가 죽임을 즉시 받아들이지 않고 다시 청했더라면 이사李斯조고趙高는 남은 무리가 없었을 것이다.
以斯之智 而不慮此 何哉
그런데 이사李斯의 지혜로 이것을 염려하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
曰 嗚呼
아!
秦之失道 有自來矣 豈獨始皇之罪리오
나라가 를 잃은 것은 유래가 있으니, 이 어찌 다만 시황始皇의 죄이겠는가.
自商鞅變法으로 以誅死爲輕典하고 以參夷爲常法하야 人臣 狼顧脅息注+[頭註] 性㤼하야 走善回顧하니 言恐也 脅息 言不能息이라하야 以得死爲幸하니 何暇復請이리오
상앙商鞅이 법을 변경한 뒤로부터 사람을 죽이는 것을 가벼운 법으로 여기고 삼족三族을 멸하는 것을 일상적인 법으로 여겨서, 신하들이 경계하고 두려워하여 이리처럼 돌아보고 숨을 죽여注+[頭註]이리는 성질이 겁이 많아 달리면서 뒤를 잘 돌아보니, 낭고狼顧는 두려움을 말한 것이고, 협식脅息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제대로 죽는 것을 요행으로 여겼으니, 어느 겨를에 다시 청하였겠는가.
方其法之行也 求無不獲하고 禁無不止하니 鞅自以爲軼堯舜而駕湯武矣러니 及其出亡而無所舍然後 知爲法之弊하니 夫豈獨鞅悔之리오
그 법이 행해질 때에는 바라는 바를 얻지 못함이 없고 금령禁令이 그치지 않음이 없었으니, 상앙商鞅은 스스로 을 능가하고 를 능가한다고 여겼는데, 도망하여 달아나서 머물 곳이 없음에 이른 뒤에야 자신이 만든 법의 폐단을 알았으니, 어찌 다만 상앙商鞅만 후회하였겠는가.
秦亦悔之矣리라
나라 또한 후회했을 것이다.
荊軻之變 持兵者熟視始皇環柱而走하고 莫之救者 以秦法重故也
형가荊軻의 변고에 병기를 잡고 있는 자가 진시황秦始皇이 기둥을 잡고 빙빙 도는 것을 눈여겨 보고도 구원하는 자가 없었던 것은 나라의 법이 무거웠기 때문이다.
李斯之立胡亥 不復忌扶蘇者 知威令之素行하야 而臣子不敢復請也 扶蘇之不敢請 亦知始皇之鷙悍而不可回也 豈料其僞也哉
이사李斯호해胡亥를 세울 적에 다시 부소扶蘇를 꺼리지 않았던 것은 위엄 있는 명령이 평소에 행해져서 신자臣子가 감히 다시 청하지 못할 줄을 알았기 때문이요, 부소扶蘇가 감히 다시 청하지 못한 것도 시황始皇이 사나워서 되돌릴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니, 어찌 거짓임을 헤아릴 수 있었겠는가.
周公曰 平易近民이면 民必歸之라하시고 孔子曰 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 其恕矣乎인저하시니
주공周公이 말씀하기를 ‘평이하게 하여 백성을 가까이하면 백성들이 반드시 돌아온다.’ 하였고, 공자孔子가 말씀하기를 ‘한 마디 말로써 종신토록 행할 수 있는 것은 일 것이다.’ 하였으니,
夫以忠恕爲心하고 而以平易爲政이면 則上易知而下易達하야 雖有賣國之姦이라도 無所投其隙하야 倉卒之變 無自發焉이라
충서忠恕를 마음으로 삼고 평이하게 정사를 한다면 윗사람이 알기 쉽고 아랫사람이 통달하기 쉬워서 비록 나라를 팔아먹는 간신奸臣이 있더라도 그 틈에 낄 곳이 없어서 창졸간의 변란이 말미암아 생길 수가 없는 것이다.
이나 其令行禁止 蓋有不及商鞅者矣어늘 而聖人 終不以彼易此
그러나 명령이 행해지고 금령禁令이 그쳐짐은 상앙商鞅에게 미치지 못함이 있었으나 그런데도 성인聖人이 끝내 저것을 가지고 이것과 바꾸지 않았다.
商鞅 立信於徙木하고 하고 刑其親戚師傅하야 積威信之極하니 以及始皇하야는 秦人 視其君 如雷電鬼神하야 不可測也
상앙商鞅이 나무를 옮기는 데에서 신의를 세우고 재[灰]를 버리는 데에서 위엄을 세우며 군주의 친척과 사부를 형벌하여 위엄과 신의를 지극히 쌓았는데, 시황始皇에 이르러서는 나라 사람들이 군주를 보기를 우레와 벼락과 귀신처럼 여겨서 측량할 수가 없었다.
古者 公族有罪 三宥然後制刑이어늘 今至使人矯殺其太子而不忌하고 太子亦不敢請하니 則威信之過也
옛날에는 공족公族이 죄를 저지르면 세 번 용서해 준 뒤에 형벌하였는데, 지금은 사람으로 하여금 황제의 명령을 사칭하여 태자를 죽이면서도 꺼리지 않고 태자 또한 감히 다시 청하지 못하게 하였으니, 이는 위엄과 신의가 지나친 것이다.
夫以法毒天下者 未有不反中其身, 及其子孫者也니라
그러므로 법으로써 천하에 해독을 끼치는 자는 해독이 도리어 자기 몸에 적중되고 그 자손에게 미치지 않는 자가 있지 않은 것이다.”
역주
역주1 [譯註]沙丘平臺 : 《史記正義》에 이르기를 “始皇이 沙丘의 궁궐 平臺의 가운데에서 崩하였다.[始皇崩在沙丘之宮平臺之中]”라고 하였는 바, 沙丘는 원래 지명인데 인하여 궁궐의 이름으로 사용한 것이다.
역주2 : 경
역주3 [譯註]立威於棄灰 : 商鞅은 재를 길바닥에 버리는 자에게 棄市刑을 가하였으므로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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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묘] 37년 385

통감절요(1)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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