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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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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戊戌]〈西楚四年이요 漢四年이라
무술(B.C.203) - 서초西楚 4이고 나라 4이다. -
襲破齊歷下軍하고 遂至臨淄하니 齊王 以酈生爲賣己라하야 乃烹之하고 引兵東走高密注+[釋義]齊地 北海郡高密縣 在臨淄之東하니 密州是 屬益都路하다
한신韓信나라 역하歷下의 군대를 기습 격파하고 마침내 임치臨淄에 이르니, 제왕齊王역생酈生이 자신을 속였다 하여 마침내 삶아 죽이고 군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고밀高密注+[釋義]고밀高密나라 땅이니, 북해군北海郡 고밀현高密縣임치臨淄의 동쪽에 있으니, 밀주密州가 이곳이다. 익도로益都路에 속하였다. 도망하였다.
〈出史記信本傳〉
- 《사기史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 나옴 -
○ 楚大司馬咎 守成皐할새 項王 令謹守勿戰하니
나라 대사마大司馬 조구曹咎성고成皐를 지킬 적에 항왕項王이 삼가 지키고 싸우지 말도록 명령하였다.
數挑戰注+[釋義]挑身獨戰하고 不復須衆也 如古之致師 鄭氏曰 致師者 致其必戰之志也 古者 將戰 必先使勇力之士犯敵이라호되 楚軍 不出이라
그리하여 나라가 여러 번 싸움을 걸어도注+[釋義]도전挑戰은 몸소 도발하여 혼자 싸우고 다시 무리를 기다리지 않는 것이니, 옛날의 치사致師와 같다. 정씨鄭氏(鄭玄)가 말하였다. “치사致師는 적으로 하여금 반드시 싸우려는 각오를 지극하게 하는 것이다. 옛날에 장차 싸우려 할 적에는 반드시 먼저 용력勇力있는 병사로 하여금 적을 침범하게 하였다.” 나라 군대가 나오지 않았다.
使人辱之數日한대 咎怒하야 渡兵汜注+[原註] 舊讀作凡이러니 顔師古音祀[釋義]今成皐城東汜水是也 汜水 源出洛州汜水縣東南三十二里方山이라어늘
이에 사람을 시켜 수일 동안 욕하니, 조구曹咎가 노하여 군대를 이끌고 사수汜水注+[原註]汜는 옛날에는 범으로 읽었는데, 안사고顔師古는 음이 사라고 하였다. [釋義]汜水는 지금 성고성成皐城 동쪽 사수汜水가 이것이다. 사수汜水원천源泉낙주洛州 사수현汜水縣 동남쪽 32리 방산方山에서 나온다. 건너려 하였다.
士卒半渡 擊之하야 大破楚軍하고 盡得楚國寶貨하니 咎及司馬欣 自剄하다
사졸이 반쯤 건넜을 때에 나라가 공격하여 초군楚軍을 대파하고 나라의 보화를 모두 얻으니, 조구曹咎사마흔司馬欣이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漢王 引兵渡河하야 復取成皐하고 軍廣武하야 就敖倉食注+[釋義]〈於〉滎陽縣西二十里 築兩城相對하고 爲廣武하니 在敖倉西三皇山이라 山有二城하니 東曰東廣武 西曰西廣武 各在一山頭하야 相去百步 汴水從廣間中東南流러니 今涸이라하다
한왕漢王이 병력을 인솔하고 황하黃河를 건너 다시 성고成皐를 점령하고 광무廣武에 군을 주둔하여 오창敖倉의 곡식을 갖다 먹었다.注+[釋義]형양현滎陽縣 서쪽 20리에 두 성을 쌓아 서로 마주하게 하고 광무廣武라고 하였으니, 오창敖倉 서쪽 삼황산三皇山에 있다. 산에 두 성이 있으니, 동쪽은 동광무東廣武라 하고 서쪽은 서광무西廣武라 한다. 각각 한 산의 위에 있어 거리가 100보이고 변수汴水광무廣武 가운데를 따라 동남쪽으로 흐르는데 지금은 물이 말랐다.
項羽聞成皐破하고 引兵軍廣武하야 與漢相守하다
항우項羽성고成皐가 격파되었다는 말을 듣고는 군대를 이끌고 광무廣武에 주둔하여 나라와 서로 대치하였다.
〈出本紀〉
- 《사기史記 고조본기高祖本紀》에 나옴 -
○ 楚軍 食少 項王 患之하야 爲高俎하야 置太公其上注+[釋義]高俎 俎机之類 王氏曰 按左氏컨대 楚子登巢車以望晉軍이라한대 杜預謂車上櫓也 故謂俎爲軍〈中〉巢櫓 括地志 東廣武城 有高壇하니 卽項羽坐太公俎上者 今名項羽堆 亦名太公亭이라 師古曰 俎 所以薦肉이니 示欲烹之 故置俎之上이라하고 告漢王曰 今不急下 吾烹太公호리라
나라 군대가 식량이 부족하니, 항왕項王이 이를 염려하여 높은 도마를 만들어서 태공太公을 그 위에 올려놓고注+[釋義]고조高俎조궤俎机(다리가 달린 도마)의 종류이다. 왕씨王氏가 말하였다. “살펴보건대 《춘추좌전春秋左傳》에 ‘초자楚子소거巢車에 올라가 진군晉軍을 바라보았다.’ 하였는데, 두예杜預가 이르기를 ‘수레 위의 망루이다.’ 하였다. 그러므로 를 일러 군중軍中소로巢櫓라고 한다. 《괄지지括地志》에 ‘동광무성東廣武城에 높은 이 있으니, 바로 항우項羽태공太公 위에 앉혔던 곳이니, 지금 항우퇴項羽堆라고 이름하고 또한 태공정太公亭이라고 이름한다.’ 하였다. 안사고顔師古가 말하기를 ‘는 고기를 올려놓는 것이니, 삶아 죽이고자 함을 보인 것이다. 그러므로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하였다.” 한왕漢王에게 통고하기를 “이제 빨리 항복하지 않으면 내가 태공太公을 삶아 죽이겠다.” 하였다.
漢王曰 吾與羽 俱北面受命懷王하야約爲兄弟하니 吾翁 卽若翁이라
한왕漢王이 말하기를 “내가 항우項羽와 함께 북면北面하여 회왕懷王에게 명령을 받아 형제兄弟가 되기로 약속하였으니, 내 아버지는 바로 너의 아버지이다.
必欲烹而翁注+[釋義]必欲烹而翁 若 猶爾也 猶汝也 後皆倣此인댄 幸分我一杯羹하라
반드시 아버지를 삶아 죽이고자 한다면注+[釋義]와 같고 와 같으니, 뒤도 모두 이와 같다. 부디 나에게도 한 잔의 국을 나누어 달라.” 하였다.
項王하야 欲殺之러니 項伯曰 爲天下者 不顧家하나니 雖殺之라도 無益也니라
항왕項王이 노하여 죽이려 하였는데, 항백項伯이 말하기를 “천하를 위하는 자는 집안을 돌아보지 않는 법이니, 비록 죽이더라도 유익함이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 項王 謂漢王曰 願與王挑戰하야 決雌雄하야 毋徒苦天下之民父子爲也하노라
항왕項王한왕漢王에게 이르기를 “왕과 도전하여 자웅雌雄(승부)을 결단해서 한갓 천하의 백성 중에 부자간父子間이 된 자를 고생시키지 말기를 원한다.” 하였다.
漢王曰 吾寧鬪智언정 不鬪力이라하고 相與臨하야 漢王 數羽十罪注+[釋義]按十罪 曰 羽負約하고 王我於漢 罪一이요 矯殺卿子冠軍 罪二 救趙不報하고 而擅劫諸侯入關 罪三이요 燒秦宮室하고 掘始皇塚하야 私其財 罪四 殺秦降王子嬰 罪五 詐坑秦子弟新安二十萬 罪六이요 王諸將善地하고 而徙逐故主 罪七이요 出逐義帝하고 自都彭城하고 奪韓梁地 罪八이요 使人陰殺(弑)義帝江南 罪九 爲政不平하고 主約不信하야 天下所不容하야 大逆無道 罪十이라한대 羽大怒하야 伏弩하야 射中漢王하니
한왕漢王은 말하기를 “내 차라리 지혜로 싸울지언정 힘으로 싸우지는 않겠다.” 하고 서로 광무廣武의 사이에 대치하였는데, 한왕漢王항우項羽의 열 가지 죄를注+[釋義]살펴보건대 열 가지 죄는, 항우項羽가 약속을 저버리고 자신을 한중漢中에 왕 노릇 시킨 것이 첫 번째 죄이고, 회왕懷王을 사칭하여 경자관군卿子冠軍(宋義)을 죽인 것이 두 번째 죄이고, 나라를 구원한 다음 회왕懷王에게 보고하지 않고 제멋대로 제후諸侯들을 협박하여 관중關中에 들어가게 한 것이 세 번째 죄이고, 나라 궁실宮室을 불태우고 시황始皇의 무덤을 파내어 그 재물을 사사로이 소유한 것이 네 번째 죄이고, 나라의 항복한 왕 자영子嬰을 죽인 것이 다섯 번째 죄이고, 나라 자제 20만 명을 신안新安에 묻어 죽인 것이 여섯 번째 죄이고, 제장諸將들은 좋은 땅에 왕 노릇 시키고 옛 군주를 딴 지역으로 옮겨 축출한 것이 일곱 번째 죄이고, 의제義帝를 축출하고 스스로 팽성彭城에 도읍하였으며 나라와 나라의 땅을 빼앗은 것이 여덟 번째 죄이고, 사람을 시켜 의제義帝강남江南에서 몰래 시해하게 한 것이 아홉 번째 죄이고, 정사를 함이 공평하지 못하고 맹약을 주관함이 신의가 없어 천하에 용납되지 못하여 대역무도大逆無道함이 열 번째 죄이다. 열거하자 항우項羽가 크게 노하여 노수弩手를 매복시켜 한왕漢王을 쏘아 맞혔다.
漢王 傷胸이라 乃捫足注+[原註] 音門이니 摸也 傷胸而捫足者 以安衆也曰 虜中吾指라하더라
한왕漢王이 가슴을 다쳤으나 마침내 발을 어루만지며注+[原註]은 음이 문이니, 어루만지는 것이다. 가슴을 다쳤으나 발을 어루만진 것은 무리(군사)들을 안심시키려 한 것이다. 말하기를 “오랑캐가 내 발가락을 맞혔다.” 하였다.
漢王 病創臥注+[釋義] 讀作瘡하니 傷也어늘 張良 彊請漢王하야 起行勞軍하야 以安士卒하고 毋令楚乘勝이라한대
한왕漢王이 상처로 앓아눕자注+[釋義]으로 읽으니, 상처이다. 장량張良이 억지로 한왕漢王에게 청하여 일어나 순행하며 군사들을 위로하여 사졸들을 안심하게 하고, 나라로 하여금 승세를 타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다.
漢王 出行軍이라가 疾甚하야 因馳入成皐하다
한왕漢王이 나와 군영을 순행하다가 병이 심해져서 인하여 성고成皐로 달려 들어갔다.
〈以上 出史記本紀〉
- 이상은 《사기史記 고조본기高祖本紀》에 나옴 -
○ 韓信 已定臨淄하고 遂東追齊王한대 項王 使龍 將兵救齊러니
한신韓信이 이미 임치臨淄를 평정하고 마침내 동쪽으로 제왕齊王을 추격하니, 항왕項王용차龍且로 하여금 병력을 거느리고 가서 나라를 구원하게 하였다.
龍且曰 吾平生 知韓信爲人易與耳로라
용차龍且가 말하기를 “내 평소 한신韓信의 사람됨이 상대하기 쉬운 줄을 아노라.
寄食於漂母하니 無資身之策이요 受辱於胯(袴)下하니 無兼人之勇이라
표모漂母에게 밥을 얻어 먹었으니 자생資生할 만한 계책이 없는 것이요, 바짓가랑이 아래에서 욕을 받았으니 남보다 뛰어난 용맹이 없는 것이다.
不足畏也라하더라
두려워할 것이 못된다.” 하였다.
齊楚與漢으로 夾濰水注+[釋義]地志 濰水出琅邪箕屋山東北하야 經臺昌入海 括地志 密州莒縣山 濰水所出이라而陣이러니
나라와 나라가 나라와 유수濰水注+[釋義]유수濰水는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유수濰水낭야琅邪 기옥산箕屋山 동북東北에서 나와 대창臺昌을 경유하여 바다로 들어간다.” 하였고, 《괄지지括地志》에 “밀주密州 거현산莒縣山에서 유수濰水가 나온다.” 하였다. 끼고 대진對陣하였다.
韓信 夜令人爲萬餘囊하야 盛沙하야 壅水上流하고 引軍半渡하야 擊龍且라가 佯不勝還走한대
한신韓信이 밤에 사람을 시켜 만여 개의 주머니(포대)를 만들어서 모래를 담아 물의 상류를 막게 하고는 군대를 이끌고 반쯤 건너가 용차龍且를 공격하다가 거짓으로 이기지 못하는 체하고 다시 달아났다.
龍且果喜曰 固知信怯也라하고 遂追信이어늘
용차龍且가 과연 기뻐하여 말하기를 “진실로 한신韓信이 겁이 많은 줄을 알았다.” 하고 마침내 한신韓信을 추격하였다.
使人決壅囊하니 水大至하야 龍且軍 太半注+[釋義]太音泰 凡數 三分有二 爲太半이라不得渡 卽急擊하야 殺龍且하고 虜齊王하고 盡定齊地하다
한신韓信이 사람을 시켜 막아놓았던 주머니를 터놓게 하니, 물이 크게 몰려와서 용차龍且의 군대가 태반이나注+[釋義]는 음이 태이니, 무릇 수에서 3분의 2를 차지하는 것을 태반太半이라 한다. 건너지 못하였다. 〈한신韓信은〉 즉시 맹공을 가하여 용차龍且를 죽이고 제왕齊王을 사로잡고 나라 땅을 모두 평정하였다.
○ 立張耳하야爲趙王하다
장이張耳를 세워 조왕趙王으로 삼았다.
〈出漢書本傳〉○
- 《한서漢書 장이전張耳傳》에 나옴 -
韓信 使人言漢王曰 齊 僞詐多變하야 反覆之國也 南邊楚하니 請爲假王以鎭之하노이다
한신韓信이 사람을 시켜 한왕漢王에게 말하기를 “나라는 속이기를 잘하고 변화가 많아 자주 번복하는 나라이고, 남쪽으로 나라와 국경이 접해 있으니, 청컨대 가왕假王(임시 왕)이 되어 이를 진정시켰으면 합니다.” 하였다.
漢王 大怒어늘 張良, 陳平 躡漢王足하고 因附耳語曰 漢方不利하니 寧能禁信之自王乎잇가
한왕漢王이 크게 노하자, 장량張良진평陳平한왕漢王의 발을 밟아 제지하고 인하여 귀에 대고 말하기를 “나라가 현재 불리하니, 어찌 한신韓信이 스스로 왕이 되는 것을 금할 수 있겠습니까?
不如因而立之하야 使自爲守니이다
인하여 으로 세워서 스스로 지키게 하는 것만 못합니다.” 하였다.
漢王 亦悟하고 因復罵曰 大丈夫定諸侯 卽爲眞王耳 何以假爲리오하고 遣張良하야 操印立信하야 爲齊王하고 徵其兵하야 擊楚하다
한왕漢王이 또한 깨닫고 인하여 다시 꾸짖기를 “대장부가 제후를 평정했으면 즉시 진왕眞王(진짜 왕)이 될 것이지, 어찌 가왕假王이 된단 말인가?” 하고 장량張良을 보내어 을 가지고 가서 한신韓信을 세워 제왕齊王을 삼고 그 군대를 징발하여 나라를 공격하였다.
〈出史記本傳〉
- 《사기史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 나옴 -
○ 項王 聞龍且死하고 大懼하야 使人武涉으로 往說齊王信曰 當今 二王之事 權在足下
항왕項王용차龍且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크게 두려워하여 우태盱台 사람 무섭武涉으로 하여금 나라에 가서 제왕齊王 한신韓信을 설득하게 하기를 “당금에 두 왕의 일은 권세가 족하足下에게 달려 있습니다.
足下右投則漢王勝하고 左投則項王勝하리니 項王 今日亡이면 則次取足下하리이다
족하足下가 오른쪽으로 기울면 한왕漢王이 이기고 왼쪽으로 기울면 항왕項王이 이길 것이니, 항왕項王이 오늘 망하면 다음은 족하足下를 취할 것입니다.
足下與項王有故하니 何不反漢하고 與楚連和하야 三分天下王之닛고
족하足下항왕項王과 옛 정분이 있으니, 어찌하여 나라를 배반하고 나라와 연화連和하여 천하를 셋으로 나누어 왕 노릇 하지 않습니까?” 하니,
謝曰 臣事項王 官不過郞中注+[釋義]宿衛執戟之人也이요 位不過執戟이요 言不聽, 畫不用이라 倍楚而歸漢이러니
한신韓信이 사양하기를 “신이 항왕項王을 섬길 때에 벼슬은 낭중郎中注+[釋義]낭중郞中은 숙직하면서 호위하여 창을 잡고 있는 사람이다. 지나지 않았고 지위는 창을 잡는 데 지나지 않았으며, 말이 먹혀들지 않고 계책이 쓰이지 않았기 때문에 나라를 배반하고 나라에 돌아왔는데,
漢王 授我上將軍印하고 予我數萬衆하고 解衣衣我注+[釋義]下衣字하고 하고 言聽計用이라 吾得以至於此로라
한왕漢王은 나에게 상장군上將軍을 주고 나에게 수만 명의 병력을 주고, 옷을 벗어 나에게 입혀주고注+[釋義]아래의 의자衣字는 입힘이다. 밥을 밀어 나에게 먹여 주고 말이 먹혀들고 계책이 쓰였기 때문에 내가 여기에 이를 수가 있었던 것이다.
夫人深親信我어늘 我倍之不祥이니 幸爲信謝項王하라
저 사람(漢王)이 나를 깊이 친애하고 믿는데 내가 배반하는 것은 상서롭지 못하니, 부디 나(信)를 위하여 항왕項王에게 사절하라.” 하였다.
武涉 已去 蒯徹 以相人之術 說信曰 僕 相君之面注+[通鑑要解]雖相面與背 其實則面 伏也 面伏於漢王也 反也 背反漢王也하니 不過封侯 相君之背하니 貴不可言注+[頭註]以微言動信이니 言背漢則大貴也이로이다
무섭武涉이 이미 떠나가자, 괴철蒯徹이 사람을 관상 보는 방법을 가지고 한신韓信을 설득하기를 “제가 군주의 얼굴을 상 보니注+[通鑑要解]비록 얼굴과 등을 상 본다고 하였으나, 실제는 은 굴복함이니 한왕漢王에게 굴복하는 것이요, 는 배반함이니 한왕漢王을 배반하는 것이다. 에 봉해짐에 불과하고, 군주의 등을 상 보니 귀함을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注+[頭註]은미한 말로 한신韓信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니, 나라를 배반하면 크게 귀해짐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韓信曰 何謂也 蒯徹曰
한신韓信이 “무슨 말인가?” 하고 물으니, 이에 괴철蒯徹이 대답하였다.
楚, 漢分爭智勇俱困이라
나라와 나라가 나뉘어 다툼에 지혜와 용맹이 모두 곤궁합니다.
當今兩主之命 縣(懸)於足下하니 爲漢則漢勝이요 與楚則楚勝이라
당금 두 군주의 운명이 족하足下에게 달려 있으니, 족하足下나라를 위하면 나라가 이기고 나라를 편들면 나라가 이깁니다.
誠能聽臣之計인댄 莫若兩利而俱存之 參分天下하야鼎足而居하면 其勢莫敢先動이라
진실로 신의 계책을 따른다면 둘 다 이롭고 모두 보존하는 것만 못하니, 천하를 셋으로 나누어 솥발처럼 거하면 그 형세가 감히 먼저 하지 못할 것입니다.
案齊之故하야 有膠, 泗之地하고 深拱揖讓이면 則天下之君王 相率而朝於齊矣리이다
나라의 옛 땅을 점거하여 의 땅을 소유하고는 깊이 팔짱 끼고서 읍하고 사양하면 천하의 군왕들이 서로 거느리고 와서 나라에 조회할 것입니다.
天與弗取 反受其咎 時至不行이면 反受其殃이니 願足下 熟慮之하소서
하늘이 주는 데 취하지 않으면 도리어 그 허물을 받고 때가 이르렀는데 행하지 않으면 도리어 그 앙화를 받는 법이니, 원컨대 족하足下는 깊이 생각하소서.”
信曰 漢王 遇我甚厚하니 吾豈可以鄕(向)利而倍義乎 蒯生曰
한신韓信이 말하기를 “한왕漢王이 나를 매우 후하게 대우하니, 내 어찌 이로움을 향하여 의리를 배반할 수 있겠는가?” 하니, 괴생蒯生이 말하였다.
勇略震主者 身危하고功蓋天下者 不賞하나니
“용맹과 지략이 임금을 두렵게 하는 자는 몸이 위태롭고, 공이 천하를 뒤덮는 자는 상을 줄 수 없습니다.
今足下戴震主之威하고 挾不賞之功하야 歸楚 楚人 不信하고 歸漢이면 漢人 震恐하리니 足下安歸乎잇가
지금 족하足下가 임금을 두렵게 하는 위엄을 이고 상줄 수 없는 공을 가지고서 나라로 돌아가면 나라 사람이 믿지 않을 것이고, 나라에 돌아가면 나라 사람이 두려워할 것이니, 족하足下는 어디로 돌아가시겠습니까?”
信曰 先生 且休矣어다 蒯徹 復說曰 夫功者 難成而易敗하고 時者 難得而易失也 時乎時乎
한신韓信이 말하기를 “선생은 우선 쉬시오.” 하니, 괴철蒯徹이 다시 설득하기를 “은 이루기는 어렵고 무너지기는 쉬우며 때는 얻기는 어렵고 잃기는 쉬우니, 시기여! 시기여!
不再來니이다 猶豫注+[釋義] 獸名이니 性多疑하야 聞有聲이면 則豫登木하야 下上不一이라 故謂不一曰猶豫하야 不忍倍漢하고 遂謝蒯徹하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습니다.” 하였으나 한신韓信은 망설여注+[釋義]는 짐승의 이름이니, 성질이 의심이 많아서 소리가 들리면 미리 나무로 올라가 오르락내리락 하기를 되풀이한다. 그러므로 한 가지로 결정하지 않고 망설이는 것을 일러 유예猶豫라고 한다. 차마 나라를 배반하지 못하고 마침내 괴철蒯徹을 사절하였다.
〈出史記本傳〉
- 《사기史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 나옴 -
○ 秋 立黥布하야 爲淮南王하다
가을에 경포黥布를 세워 회남왕淮南王을 삼았다.
○ 項羽自知少助食盡하고 韓信 又進兵擊楚하니 羽患之
항우項羽는 도와주는 이가 적고 식량이 다한 줄을 스스로 알았으며, 한신韓信이 또 진군進軍하여 나라를 공격하니, 항우項羽는 이를 걱정하였다.
漢遣侯公하야 說羽請太公한대 羽乃與漢約하고 中分天下하야 割鴻溝注+[釋義]王氏曰 於滎陽下 引河하야 東南爲鴻溝하야 以通宋鄭(東)[陳]蔡曹衛하야 與濟汝淮泗 會於楚하니 卽今官渡水也 張氏云 大梁城 在浚儀縣北하며 縣西北渠水 東經此城南하고 又北屈하야 分爲二渠하니 其一渠 東南流 始皇 鑿引河水하야 以灌大梁하고 謂之鴻溝하니 今之汴河 是漢楚會〈此〉處 其一渠 東經陽武縣南하야 爲官渡水以西爲漢하고 以東爲楚하다
그런데 나라가 후공侯公을 보내어 항우項羽를 설득해서 태공太公을 보내줄 것을 청하니, 항우項羽가 마침내 나라와 약속하고 천하를 반으로 나누어 홍구鴻溝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형양滎陽 아래에 황하黃河를 끌어다가 동남쪽에 홍구鴻溝를 만들어서 , , , , , 와 통하여 제수濟水, 여수汝水, 회수淮水, 사수泗水와 함께 나라에서 모이니, 곧 지금의 관도수官渡水이다. 장씨張氏(張華)는 말하기를 ‘대량성大梁城준의현浚儀縣 북쪽에 있으며, 서북쪽의 거수渠水가 동쪽으로 이 의 남쪽을 경유하고 또 북쪽으로 굽어서 나누어져 두 도랑이 되니, 그중 한 도랑은 동남쪽으로 흐르므로 시황始皇이 땅을 파서 하수河水를 끌어다가 대량大梁에 대고 이를 일러 홍구鴻溝라 하였는 바, 지금의 변하汴河이니 나라와 나라가 이곳에서 만난다. 그중 한 도랑은 동쪽으로 양무현陽武縣 남쪽을 경유하여 관도수官渡水가 된다.’ 하였다.” 분할해서 이서以西나라 영토가 되고 이동以東나라의 영토가 되게 하였다.
九月 楚歸太公, 呂后하고 引兵解而東歸하다
9월에 나라가 태공太公여후呂后를 돌려보내고 병력을 인솔하여 포위를 풀고 동쪽으로 돌아갔다.
漢王 欲西歸러니 張良, 陳平 說曰 漢 有天下太半하고 而諸侯皆附하며 兵疲食盡하니 天亡之時也
한왕漢王이 서쪽으로 돌아가려 하자, 장량張良진평陳平이 설득하기를 “나라는 천하의 태반을 소유하였고 제후가 모두 따르며, 나라는 병사들이 피로하고 식량이 다하였으니, 이는 하늘이 멸망하게 하는 때입니다.
今釋弗擊이면 所謂養虎自遺患也니이다 漢王 從之하다
이제 놓아 주고 공격하지 않으면 이른바 범을 길러 스스로 화를 남긴다는 것입니다.” 하니, 한왕漢王이 그 말을 따랐다.
[新增]程子曰
[新增]程子가 말씀하였다.
張良 才識高遠하야 有儒者氣象이로되 而亦以此說漢王하니 則其不義甚矣로다
장량張良의 재주와 식견이 고원高遠하여 유자儒者의 기상이 있었으나 또한 이것으로 한왕漢王을 설득하였으니, 의롭지 못함이 심하다.”
[史略 史評]陳氏曰
[史略 사평史評]陳氏가 말하였다.
程子謂 張良此謀非義라하시니 固是
정자程子장량張良의 이 계책이 의롭지 못하다고 말씀하였으니, 참으로 옳다.
이나 項羽旣殺韓王成하야 而張良 欲報君父之仇하니 奚暇惜其他耳리오
그러나 항우項羽가 이미 한왕韓王 을 죽였으므로 장량張良이 〈나라를 위하여〉 군부君父의 원수를 갚고자 하였으니, 어느 겨를에 다른 것을 돌아보겠는가.”
역주
역주1 : 사
역주2 [譯註]廣武間 : 間자가 혹은 澗자로 되어 있다.
역주3 : 저
역주4 盱台 : 우태
역주5 : 착
역주6 推食食我 : 퇴식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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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술] 서초4년, 한4년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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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무술] 서초4년, 한4년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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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무술] 서초4년, 한4년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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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무술] 서초4년, 한4년 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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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무술] 서초4년, 한4년 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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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무술] 서초4년, 한4년 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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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무술] 서초4년, 한4년 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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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무술] 서초4년, 한4년 262

통감절요(1)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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