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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8)

통감절요(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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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子]四年이라
회창會昌 4년(갑자 844)
八月 鎭魏奏邢, 洺, 磁三州降이어늘 宰相入賀
8월에 진기진鎭冀鎭위박진魏博鎭의 두 절도사節度使형주邢州명주洺州자주磁州가 항복했다고 아뢰자, 재상들이 들어와 축하하였다.
李德裕曰 昭義根本 盡在山東하니 三州降이면 則上黨注+[頭註]卽昭義也 不日有變리이다
이덕유李德裕가 말하기를 “소의昭義(澤潞)의 근본根本은 모두 산동山東에 있으니, 세 가 항복했으면 상당上黨注+[頭註]상당上黨은 바로 소의군昭義軍이다. 하루가 못되어 변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하였다.
上曰 郭誼 稹謀主也 必梟劉稹하야 以自贖하리라 德裕曰 誠如聖料니이다
이 말하기를 “곽의郭誼유진劉稹모주謀主이니, 반드시 유진劉稹을 효시하여 스스로 속죄하려 할 것이다.” 하니, 이덕유李德裕가 말하기를 “진실로 성상의 예측과 같을 것입니다.” 하였다.
未幾 誼果斬稹하고 收稹宗族하야 盡殺之하고 函稹首하야하다
얼마 안 되어 곽의郭誼가 과연 유진劉稹을 목베고 유진劉稹의 종족을 거두어서 모두 죽이고는 유진劉稹의 머리를 함에 넣어 가지고 와서 항복하였다.
宰相入賀한대 上曰 郭誼 宜如何處之 德裕對曰 劉稹 孺子注+[頭註] 癡也
재상들이 들어와 축하하자, 이 말하기를 “곽의郭誼를 마땅히 어떻게 처리해야 하겠는가?” 하니, 이덕유李德裕가 대답하기를 “유진劉稹은 미련한 어린 아이일 뿐입니다.注+[頭註]는 어리석음이다.
阻兵拒命 皆誼爲之謀主러니勢孤力屈하야는 又賣稹以求賞하니 此而不誅 何以懲惡이리잇고
군대를 믿고 조정의 명령을 거역한 것은 모두 곽의郭誼모주謀主가 되어 지시한 것이었는데, 세력이 고단하여 굽히게 되자 또다시 유진劉稹을 팔아 을 내려주기를 바라니, 이러한데도 그를 죽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사악한 사람을 징계하겠습니까.
宜及諸軍在境하야 幷誼等誅之니이다
마땅히 여러 군대가 택로澤潞의 경내에 있을 때에 곽의郭誼 등과 함께 죽여야 할 것입니다.” 하였다.
上曰 朕意亦以爲然이로라
이 말하기를 “의 생각도 그러하다.” 하였다.
郭誼等 至京師어늘 皆斬之하다
곽의郭誼 등이 경사京師에 이르자, 모두 목을 베었다.
溫公曰
온공溫公이 말하였다.
董重質之在淮西 郭誼之在昭義 吳元濟, 劉稹 如木偶人注+[頭註] 對也 以土木爲人호되 對象於人形者也 在伎兒之手耳
동중질董重質회서淮西에 있어서와 곽의郭誼소의군昭義軍에 있어서는 오원제吳元濟유진劉稹은 나무로 만든 허수아비가注+[頭註]는 상대함이니, 흙과 나무로 사람을 만들되 사람 모양을 상대하여 본딴 것이다. 재주부리는 아이의 손에 있는 것과 같을 뿐이었다.
彼二人者 始則勸人爲亂하고 終則賣主規利注+[頭註] 圖也 하니 其死固有餘罪
저 두 사람이 처음에는 남에게 반란을 하도록 권하였고 끝에는 주인을 팔아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였으니,注+[頭註]는 도모하는 것이다. 그들의 죽음은 진실로 죽어도 남은 죄가 있다.
이나 憲宗 用之於前하고 武宗 誅之於後하니 臣愚 以爲皆失之라하노라
그러나 헌종憲宗은 앞에서 동중질董重質을 등용하였고 무종武宗은 뒤에서 곽의郭誼를 죽였으니, 나의 어리석은 생각에는 둘다 모두 잘못이라고 여겨진다.
何則
어째서인가?
賞奸 非義也 殺降 非信也 失義與信이면 何以爲國이리오
간사한 자에게 상을 주는 것은 가 아니고 항복한 자를 죽이는 것은 이 아니니, 을 잃는다면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겠는가.
漢光武待王郞注+[頭註]邯鄲卜者 王霸斬之어늘 今云不死 未詳이라 , 劉盆子 止於不死하니 知其非力竭則不降故也
옛날 나라 광무제光武帝왕랑王郞注+[頭註]왕랑王郞한단邯鄲의 점쟁이이다. 왕패王霸가 그를 목베어 죽였는데, 지금 죽지 않았다고 말한 것은 미상이다. 유분자劉盆子를 대할 적에 그들을 죽이지 않음에 그쳤으니, 그들의 힘이 다하지 않으면 항복하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樊崇, 徐宣, 王元, 牛之徒注+[頭註]王元, 牛邯 皆隗囂將也 王元奔蜀하고 又以其衆來降하니라 見十六卷하니라 豈非助亂之人乎리오마는 而光武弗殺하니 盖以旣受其降이면 則不可復誅故也
번숭樊崇, 서선徐宣, 왕원王元, 우한牛邯의 무리가注+[頭註]왕원王元우한牛邯은 모두 외효隗囂의 장수이다. 왕원王元으로 달아났고 또 그 무리를 데리고 와서 항복하였다. 우한牛邯의 일은 16권에 보인다. 어찌 반란을 조장한 사람이 아니겠는가마는 광무제光武帝가 이들을 죽이지 않았으니, 이는 이미 그들의 항복을 받아들였으면 다시 죽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若旣赦而復逃亡叛亂이면 則其死固無辭矣
만약 이미 그들을 사면하였는데 다시 도망하여 반란을 일으킨다면 그들은 죽어도 진실로 할 말이 없을 것이다.
如誼等 免死하고 流之遠方하야 沒齒不還 可矣 殺之 非也니라
곽의郭誼 등과 같은 자들은 죽이지 않고 먼 지방으로 유배보내어 종신토록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옳고, 그들을 죽이는 것은 잘못이다.”
역주
역주1 : 애
역주2 王郞 : 王莽 때에 成帝의 아들 子輿라고 자칭하는 자가 있으므로 王莽이 그를 죽였는데, 更始 元年(23)에 邯鄲의 점치는 자인 王郞이 자신이 진짜 子輿라고 사칭하자 백성들이 이를 많이 믿었다. 劉林과 李育 등이 王郞을 세워 천자로 삼으니, 趙 지방 以北과 遼東 이서 지방이 모두 풍문을 듣고 호응하였다. 光武帝 劉秀가 邯鄲으로 진격해서 王郞을 패주시키니, 光武帝의 장수인 王霸가 추격하여 그를 목베어 죽였다.
역주3 : 한
역주4 牛邯事 : 隗囂는 王莽의 新나라 말기에 隴西에서 기병하여 漢나라에 호응하였다. 그 뒤 光武帝가 耿弇 등 7명의 장수를 파견하여 公孫述을 칠 때에 漢나라 군사를 가로막고는 公孫述에게 사신을 보내어 稱臣하였다. 얼마 뒤에 그의 부장인 牛邯 등이 10여 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光武帝에게 투항하여 형세가 궁해지자, 분을 못 이겨 죽고 말았다.

통감절요(8)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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