六月
에 秦淸河武侯王猛
이 寢疾
注+[頭註]寢은 浸也, 臥也라하야 上疏曰
伏惟陛下
는 威烈震乎八荒하고 聲敎注+[頭註]風聲敎化也니 振聲於此而遠者聞焉故로 謂之聲이요 軌範于此而遠者效焉故로 謂之敎라光乎六合하야 九州百郡
에 十居其七
이라 平燕定蜀
注+[頭註]平燕은 在庚午年이요 定蜀은 在癸酉年이라을 有如拾芥
注+[頭註]草芥之橫在地上者를 俯而拾之니 言易而必得也라하니이다
是以
로 古先哲王
이 知功業之不易
하고 戰戰兢兢
注+[通鑑要解]戰戰은 恐懼貌요 兢兢은 音京이니 戒愼貌라하야 如臨深谷
하니 伏惟陛下 追蹤前聖
하시면 天下幸甚
이리이다 堅
이 覽之悲慟
이러라
○ 七月에 堅이 親至猛第하야 視疾하고 訪以後事한대
猛曰 晉雖僻處江南
이나 然正朔相承
注+[釋義]正者는 歲之首也요 朔者는 說文에 月一日也라하고 上下安和
하니 臣沒之後
에 願勿以晉爲圖
하시고
鮮卑, 西羌
注+[頭註]西羌은 謂姚萇也니 其後에 秦地果爲二族所據하니라은 我之仇敵
이라 終爲人患하리니 宜漸除之
하소서 言終而卒
하니
영강寧康 3년(을해 375) - 진秦나라 건원建元 11년이다 -
6월에
진秦나라
청하무후淸河武侯 왕맹王猛이 병이 중해지자,
注+[頭註]침寢은 점점 더해지는 것이요, 눕는 것이다. 상소하기를
“엎드려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위엄과 공렬이
팔방八方의 먼 곳에까지 떨쳐지고
성위聲威와
교화敎化注+[頭註]성교聲敎는 풍성風聲과 교화敎化이니, 여기에서 소리를 울리면 먼 곳에 있는 자가 들으므로 이를 일러 성聲이라 하고, 여기에서 본보기가 되면 먼 곳에 있는 자가 본받으므로 이를 일러 교敎라 한다. 가 천지와 사방에 빛나서
구주九州의 백 개
군郡 가운데 10분의 7을 차지하였으며,
연燕나라를 평정하고
촉蜀 지방을 평정하기
注+[頭註]연燕나라를 평정한 것은 경오년조庚午年條(370)에 있고, 촉蜀 지방을 평정한 것은 계유년조癸酉年條(373)에 있다. 를 땅 위의 지푸라기를 줍듯이 쉽게 하셨습니다.
注+[頭註]습개拾芥는 땅 위에 제멋대로 흩어져 있는 지푸라기를 허리를 굽혀 줍는 것이니, 쉬워서 반드시 얻을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창업創業을 잘한 자가 반드시 수성守成을 잘하지는 못하고, 시작을 잘한 자가 반드시 끝을 잘하지는 못합니다.
이 때문에 옛날 명철한
왕王들은
공업功業을 세움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깊은 골짝에 임하듯이 전전긍긍
注+[通鑑要解]전전戰戰은 두려워하는 모양이고 긍긍兢兢은 음音이 경(긍)이니, 경계하고 삼가는 모양이다. 한 것이니, 엎드려 생각하건대 폐하께서 예전의
성명聖明한
왕王을 뒤따르신다면 천하가 매우 다행일 것입니다.” 하니,
부견苻堅이 이것을 보고 비통해하였다.
○ 7월에 부견苻堅이 친히 왕맹王猛의 집에 이르러서 병을 살펴보고 차후의 일을 물었는데, 왕맹王猛이 답하기를
“
진晉나라가 비록 궁벽하게
강남江南에 있으나
정삭正朔(正統)이 서로 이어지고
注+[釋義]정正은 한 해의 처음이요, 삭朔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매월 1일이다.” 하였다. 상하가 편안하고 화목하니 바라건대 신이 죽은 뒤에
진晉나라를 도모하지 마시고,
선비鮮卑와
서강西羌注+[頭註]서강西羌은 요장姚萇을 이르니, 그 뒤에 진秦나라 지역이 과연 선비족鮮卑族과 강족羌族 두 종족에게 점거당하였다. 은 우리의 원수이고 적이어서 끝내 우리의 폐해가 될 것이니 마땅히 점차 제거하소서.” 하고는 말을 마치자 죽었다.
부견苻堅이 태자太子 부굉苻宏에게 이르기를 “하늘이 나로 하여금 육합六合(천하)을 통일하게 하고자 하지 않는가.
어찌하여 우리
경략景略(王猛)
注+[釋義]경략景略은 왕맹王猛의 자字이다. 을 이렇게 빨리 빼앗아 가는가.”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