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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6)

통감절요(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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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丑]〈陳太建十三年이요 周大象三年이니 二月後 隋高祖文帝楊堅開皇元年이라
○ 是歲 周亡隋代하니 凡三國이라
二月 周主下詔하야 遜位居別宮하고 命奉注+[通鑑要解]音弗이니 印組也하야 禪位于隋하다
歷年圖曰
文帝注+[頭註]宇文泰以關中之衆으로 東迎孝武注+[頭註]魏武帝脩하야 收疲散之兵하고 撫貧困之民하며 任賢使能하야 列官布職하며 明部分하고 務農桑하야 以輔魏室하니 雖以高氏注+[頭註]高歡族黨이라之强으로도 不能陵也
其所爲典法 施於後世하니 可不謂賢乎
武帝注+[頭註]高祖邕이니 文帝第四子 以英傑之資 受制强臣注+[頭註]宇文護 專權이라이러니 恭黙端拱하야 十有餘年 須其罪盈惡熟하야 爲衆所棄하야 一旦除之注+[頭註]壬辰年 周主討殺太師護 若撥注+[頭註] 治也 音豐이니 熬麥也振槁하니 可謂知柔知剛하야 知(智)勇兼備者矣
然後 親統六師하야 以征東夏하니 齊之嶮(險)阻不守하고 士卒不戰하야 數月之間 縛其君臣하야 致之鼓下하야 使有周之境으로 東漸于海하고 南傅于江하니 雖魏室全盛之時라도 不能及也
惜乎
宣帝注+[頭註]이라恣其淫侈하고 逞其苛譎하야 自絶于天하고 結怨于民하야 不及三年 而爲異姓所有하니 悲夫
隋以蘇威 兼納言, 支尙書하다
三月 隋以賀若弼 爲吳州總管하야 鎭廣陵하고 韓擒虎 爲廬州總管하야 鎭廬江하다
隋主有幷呑江南之志하야 問將帥於高한대 熲薦弼與擒虎 置於南邊하야 使潛爲經略하니라
○ 隋高熲, 蘇威同心協贊하니 政刑大小 帝無不與之謀議然後行之
革命數年 天下稱平하니라


신축(581) - 나라 태건太建 13년이고, 나라 대상大象 3년이니, 2월 이후는 나라 고조高祖 문제文帝 양견楊堅개황開皇 원년元年이다.
○ 이해에 나라가 망하고 나라가 대신하니, 모두 세 나라이다. -
2월에 주주周主조서詔書를 내려 황제의 자리를 내놓고 별궁別宮에 거처하였으며, 황제皇帝의 옥새와 인끈注+[通鑑要解]은 음이 불이니, 인끈이다. 을 받들어서 나라에 양위讓位하도록 명하였다.
역년도歷年圖》에 말하였다.
문제文帝(宇文泰)注+[頭註]문제文帝우문태宇文泰이다. 관중關中의 병력을 끌고 동쪽으로 가서 효무제孝武帝(元脩)注+[頭註]효무제孝武帝북위北魏 무제武帝 원수元脩이다. 를 맞이하여 피폐하고 흩어진 군사들을 수습하고 곤궁한 백성들을 어루만지며, 어진 자에게 맡기고 유능한 자를 부려서 관직에 나열하게 하며, 부대를 분명하게 나누고 농사와 양잠養蠶을 힘써서 나라 황실을 보필하였으니, 비록 고씨高氏注+[頭註]고씨高氏고환高歡족당族黨이다. 의 강성함으로도 능멸하지 못하였다.
그가 만든 전법典法이 후세에 시행되었으니, 어질다고 이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무제武帝(宇文邕)注+[頭註]무제武帝고조高祖 우문옹宇文邕이니, 문제文帝의 넷째 아들이다. 는 영웅호걸의 자질을 지녔으면서 강성한 신하(宇文護)注+[頭註]강성한 신하는 우문호宇文護이니, 권력을 전횡하였다. 에게 제재당하였는데, 공손히 침묵하고 단정히 손을 모으고서 십여 년 동안 그의 가 가득 차고 이 무르익어서 무리들에게 버림받기를 기다렸다가 하루아침에 제거하여注+[頭註]임진년壬辰年(572)에 주주周主(宇文邕)가 태사太師 우문호宇文護를 토벌하여 죽였다. 볶은 보리注+[頭註]은 다스림이다. 은 음이 풍이니, 볶은 보리이다. 의 싹을 없애고 낙엽을 흔들어 떨어뜨리듯이 하였으니, 해야 할 때에 할 줄 알고 해야 할 때에 할 줄 알아서 지혜와 용맹을 겸비한 자라고 이를 만하다.
그런 뒤에 직접 육군六軍을 거느리고 동하東夏를 정벌하였는데, 나라의 험한 요새가 지켜지지 못하고 사졸들이 싸우지 않아서 몇 달 만에 나라의 군주와 신하를 포박하여 고하鼓下(軍中)로 끌어와서 나라의 국경이 동쪽으로는 바다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양자강揚子江에 이르게 하였으니, 비록 나라의 세력이 가장 강성했을 때라 해도 이에 미치지는 못하였다.
애석하다.
선제宣帝(宇文贇)注+[頭註]선제宣帝우문빈宇文贇이다. 는 음란함과 사치함을 제멋대로 행하고 가혹함과 속임수를 부려서 스스로 천리天理를 끊고 백성들에게 원한을 맺어 3년이 못 되어 국가가 다른 성씨姓氏의 소유가 되게 하였으니, 슬프다.”
나라가 소위蘇威겸납언兼納言탁지상서度支尙書로 삼았다.
3월에 나라가 하약필賀若弼오주총관吳州總管으로 삼아서 광릉廣陵에 진주하게 하고, 한금호韓擒虎여주총관廬州摠管으로 삼아서 여강廬江에 진주하게 하였다.
수주隋主강남江南(陳나라)을 병탄할 마음을 품고서 고경高熲에게 쓸 만한 장수를 물었는데, 고경高熲하약필賀若弼한금호韓擒虎를 천거하였으므로 이들을 남쪽 변방에 배치하여 은밀히 경략하게 한 것이다.
나라 고경高熲소위蘇威가 한마음으로 함께 보좌하니, 크고 작은 정사와 형벌을 문제文帝가 이들과 함께 도모하고 의논한 뒤에 행하지 않음이 없었다.
그러므로 문제文帝혁명革命하여 나라를 대신한 수년 동안 천하가 태평함을 일컬었다.


역주
역주1 皇帝璽 : 秦‧漢 시대 황제에게는 傳國璽 외에도 六璽가 있었으니, 나라를 봉할 때 사용하는 皇帝行璽, 여러 王侯에게 하사할 때 사용하는 皇帝之璽, 군대를 출동할 때 사용하는 皇帝信璽, 大臣을 부를 때 사용하는 天子行璽, 외국의 군주를 책봉할 때 사용하는 天子之璽, 天地 鬼神에게 제사 지낼 때 사용하는 天子信璽가 이것이다. 그후 唐나라 때에 와서 神璽와 受命璽를 더하여 八璽가 되었으며, 則天武后 때는 璽를 고쳐 寶라 하였다.
역주2 : 풍
역주3 : 빈
역주4 : 탁
역주5 : 경

통감절요(6)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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