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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8)

통감절요(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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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丑]長慶元年이라
장경長慶 원년元年(신축 821)
翰林學士李德裕 吉甫之子也
한림학사翰林學士 이덕유李德裕길보吉甫의 아들이다.
以中書舍人李宗閔 譏切其父라하야 恨之하고 宗閔 又與翰林學士元稹으로 爭進取有隙하니 自是 德裕, 宗閔 各分朋黨하야 相傾軋注+[釋義] 陷也 乙黠反이니 以勢相傾也 垂四十年이러라
중서사인中書舍人 이종민李宗閔이 일찍이 대책對策할 적에 그의 아버지를 비난했다 하여 그에게 원한을 품었고, 이종민李宗閔은 또 한림학사翰林學士 원진元稹진취進取를 다투어 틈이 생기니, 이로부터 이덕유李德裕이종민李宗閔이 각각 붕당朋黨을 나누어서 번갈아 서로 모함하고 알력을 빚은 지가注+[釋義]은 함정에 빠뜨리는 것이고, 을힐반乙黠反(알)이니 세력으로 서로 넘어뜨리는 것이다. 40년이나 되었다.
○ 幽州軍士作亂하야 囚節度使張弘靖하고 推朱克融하야 爲留後하다
유주幽州군사軍士가 난을 일으켜 절도사節度使 장홍정張弘靖을 가두고 주극융朱克融유후留後로 추대하였다.
○ 成德兵馬使殺節度使田弘正하고 自稱留後하다
성덕병마사成德兵馬使 왕정주王庭湊절도사節度使 전홍정田弘正을 죽이고 스스로 유후留後라 칭하였다.
○ 自定兩稅法注+[頭註]見四十四卷庚申年이라 以來 錢日重하고 物日輕하야 民所輸三倍其初
양세법兩稅法을 제정하여注+[頭註]양세법兩稅法은 44 경신년(780)에 보인다. 시행한 이후로부터 돈의 가치는 날로 높아지고 물건의 가치는 날로 낮아져서 백성들이 바치는 세금이 처음의 3배가 되었다.
詔百官하야 議革其弊하니 戶部尙書楊 以爲 錢者 所以權百貨하야 貿遷有無하니 所宜流散이요 不應蓄聚
황제가 백관百官들에게 명하여 이러한 폐단을 개혁할 것을 의논하게 하니, 호부상서戶部尙書 양오릉楊於陵이 말하기를 “돈이라는 것은 온갖 재화를 저울질하여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교역하는 것이니, 마땅히 유통시켜 분산시켜야 하지 한 곳에 쌓아 두어서는 안 됩니다.
今宜使天下輸稅課者 皆用穀帛하고 廣鑄錢而禁滯積及出塞者注+[頭註]言積於富家어나 流入四夷이라 하면 則錢日滋矣리이다
지금 마땅히 천하의 부세賦稅를 바치는 자들로 하여금 모두 곡식과 비단을 사용하게 하고, 돈을 더 많이 주조하되 돈이 적체되거나 변방으로 흘러 나가는 것을 금지한다면注+[頭註]돈이 적체되거나 변방으로 흘러나간다는 것은 돈이 부잣집에 쌓여 있거나 사방의 오랑캐 지역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돈이 날로 불어날 것입니다.” 하였다.
朝廷 從之하야 始令兩稅 皆輸布絲纊하고 獨鹽酒課用錢하니라
조정에서 그의 말을 따라 비로소 양세兩稅를 모두 삼베와 생사와 솜으로 바치도록 명하고, 오직 소금과 술에 대한 세금에만 돈을 사용하게 하였다.
역주
역주1 對策 : 시험 과목의 일종으로 策文을 내어 對策을 바치게 하였는데, 내용은 經學과 時務에 대한 것이었다.
역주2 : 경
역주3 王庭湊 : 선조가 回鶻 사람이다. 王武俊이 그의 曾祖인 五哥之를 거두어 기르고 양자로 삼았다. 그러므로 姓을 王으로 고쳤다.
역주4 : 오

통감절요(8)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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