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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5)

통감절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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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己未]延熙二年이라 〈魏景初三年이요 吳赤烏二年이라
연희延熙 2년(기미 239) - 나라 경초景初 3년이고, 나라 적오赤烏 2년이다. -
春正月 魏主叡寢疾注+[頭註] 益也이어늘 司馬懿入見한대 魏主執其手하고 曰 吾以後事屬君하노니 君與曹爽으로 輔少子하라
봄 정월에 위주魏主 조예曹叡가 병이 위독하자注+[頭註]은 병이 더 심해지는 것이다. 사마의司馬懿가 들어가 뵈니, 위주魏主가 그의 손을 잡고 말하기를 “내 뒷일을 그대에게 부탁하노니, 그대는 조상曹爽과 함께 소자少子를 보필하라.” 하였다.
是日 立齊王芳注+[頭註]明帝無子하여 養爲太子하니 不知所來 或曰 任城王楷之子하야 爲皇太子하고 叡尋殂하다
이날 제왕齊王 조방曹芳注+[頭註]명제明帝가 아들이 없으므로 제왕齊王 조방曹芳을 길러 태자太子로 삼으니, 누구의 소생인지 알 수 없다. 혹자는 이르기를 “임성왕任城王 조해曹楷의 아들이다.” 한다. 을 세워 황태자皇太子로 삼고 조예曹叡가 얼마 후 죽었다.
孫盛論曰
손성孫盛에 말하였다.
魏明帝沈毅注+[通鑑要解] 果敢也好斷하고 優禮大臣하며 開容善直하야 雖犯顔極諫이나 無所摧戮하니 其君人之量 如此之偉也
나라 명제明帝는 침착하고 과감하고注+[通鑑要解]는 과감한 것이다. 결단하기를 좋아하였으며, 대신大臣들을 예우하고 선한 사람과 정직한 사람을 관대하게 포용해서 비록 안색을 범하면서 지극히 간하더라도 박해迫害하거나 죽이는 바가 없었으니, 인군人君 노릇 하는 도량이 이와 같이 컸다.
이나 不思建德垂風注+[頭註]建其德이요 垂其風이라하야 不固維城之基注+[頭註] 宗子維城이라하니 同姓也 言猜忌宗室以亡魏하야 至使大權偏據하고 社稷無衛하니 悲夫
그러나 을 세우고 훌륭한 풍교風敎를 드리울 것注+[頭註]건덕수풍建德垂風을 세우고 풍교風敎를 드리우는 것이다.을 생각하지 않아서 유성維城(宗室)의 기틀을 공고하게 하지 못하여注+[頭註]시경詩經》 〈대아大雅 〉에 “종자宗子는 나라의 이다.” 하였다. 유성維城동성同姓이니, 종실宗室을 시기하여 나라를 망하게 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대권大權을 다른 사람의 수중에 떨어지게 하고 사직社稷을 호위할 사람이 없게 하였으니, 슬프다.”
魏主芳 嗣位하니 年八歲
위주魏主 조방曹芳이 지위를 이으니, 나이가 8세였다.
加曹爽, 司馬懿侍中하야 都督中外諸軍하고 錄尙書事注+[頭註]旣督中外諸軍하고 又錄尙書事하니 則文武大權 盡歸之矣하다
조상曹爽사마의司馬懿에게 시중侍中을 가하여 중외中外제군諸軍도독都督하게 하고 상서성尙書省의 일까지 겸하여 관장하게 하였다.注+[頭註]都督中外諸軍 녹상서사錄尙書事:이미 중외中外제군諸軍도독都督하고 또 상서성尙書省의 일까지 겸하여 관장하니, 문무文武대권大權이 모두 조상曹爽사마의司馬懿에게 돌아갔다.

통감절요(5)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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