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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5)

통감절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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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庚辰]三年이라 〈魏元帝曹奐景元元年이요 吳永安三年이라
경요景耀 3년(경진 260) - 나라 원제元帝 조환曹奐경원景元 원년元年이고, 나라 영안永安 3년이다. -
正月 魏主髦 見威權日去하고 不勝其忿하야 曰 司馬昭之心 路人所知
정월에 위주魏主 조모曹髦가 위엄과 권력이 날로 떠나가는 것을 보고는 그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말하기를 “사마소司馬昭의 마음은 길 가는 사람도 아는 바이다.
吾不能坐受廢辱이니 今日 當自出討之하리라하고
내 가만히 앉아서 폐출당하고 모욕을 받을 수 없으니, 금일에 마땅히 스스로 궁을 나가 사마소司馬昭를 토벌하겠다.” 하였다.
遂拔劍升輦하야 率殿中宿衛蒼頭注+[頭註]長大有膂力者之號 又魏兵卒之號 漢名奴爲蒼頭者 服純墨而別於良人也官僮하고 鼓譟而出하니 中護軍賈充注+[頭註]惠帝賈后父也 自外入하야 逆與髦戰於南闕下러니
마침내 검을 뽑아 들고 에 올라 전중殿中숙위宿衛하는 창두蒼頭注+[頭註]창두蒼頭는 체격이 장대長大하고 완력이 강한 자의 호칭이요, 또 나라 병졸의 호칭이다. 나라 때에 종을 이름하여 창두蒼頭라고 한 것은 옷이 순흑색이어서 양인良人과 다르기 때문이다. 관동官僮(노복)들을 거느리고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며 나가니, 중호군中護軍 가충賈充注+[頭註]가충賈充혜제惠帝후비后妃가후賈后의 아버지이다. 이 밖으로부터 들어와 조모曹髦를 맞아 남쪽 대궐문 아래에서 싸웠다.
太子舍人成濟 抽戈刺髦注+[通鑑要解]髦自用劍하니 衆欲退어늘 成濟問於充而抽戈前斬하니라하야 殞于車下하다
태자사인太子舍人 성제成濟가 창을 뽑아 조모曹髦를 찔러서注+[通鑑要解]太子舍人成濟 추과자모抽戈刺髦:조모曹髦가 본래 칼을 잘 쓰니 군사들이 물러나려고 하였는데, 성제成濟가충賈充에게 묻고는 창을 뽑아 면전에서 조모曹髦를 목 베었다. 조모曹髦가 수레 아래에서 죽었다.
太后下令하야 罪狀高貴鄕公하야 廢爲庶人하고 使中護軍司馬炎으로 迎常道鄕公璜注+[頭註]武帝孫燕王宇之子也於鄴하야 以爲明帝嗣하니 昭之子也
태후太后가 명령을 내려 고귀향공高貴鄕公의 죄상을 공포하고 폐위하여 서인庶人으로 삼고서 중호군中護軍 사마염司馬炎으로 하여금 상도향공常道鄕公 조황曹璜注+[頭註]상도향공常道鄕公 조황曹璜무제武帝(曹操)의 손자孫子연왕燕王 조우曹宇의 아들이다.에서 맞이하여 명제明帝후사後嗣로 삼게 하니, 사마염司馬炎사마소司馬昭의 아들이다.
六月 常道鄕公 卽皇帝位하다
6월에 상도향공常道鄕公이 황제에 즉위하였다.
역주
역주1 常道鄕公璜 : 甘露 2년에 安次縣 常道鄕公에 봉해졌다. 曹璜이 즉위한 뒤에 이름을 奐으로 고쳤다.

통감절요(5)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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