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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8)

통감절요(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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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8)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德宗皇帝 下
덕종황제德宗皇帝
[甲子]興元元年이라
흥원興元 원년元年(갑자 784)
春正月朔 赦天下改元하고 制曰
봄 정월 초하루에 천하天下에 대사면령을 내리고 연호를 고치고 다음과 같은 제서制書를 내렸다.
長于深宮之中하야 暗於經國之務注+[通鑑要解] 理也 하고 積習易溺하야 居安忘危하야
은 깊은 궁중에서 생장하여 국가를 경륜하는 사무에注+[通鑑要解]은 다스리는 것이다. 어둡고 습관이 된 지가 이미 오래되어 고치기가 어려워서 편안한 곳에 거하여 천하의 위태로움을 잊었다.
不知稼穡之艱難注+[頭註]種曰稼 斂曰穡이라하고 不恤征戍之勞苦하야 澤靡下究하고 情未上通이라
그리하여 경작하고 수확하는 어려움을注+[頭註]곡식을 심는 것을 라고 하고, 곡식을 거두는 것을 이라 한다. 알지 못하고 출정하여 변경에서 수자리 사는 병사들의 노고를 생각하지 아니하여 은택이 아래로 백성들에게 이르지 못하고 아랫사람의 정이 위로 조정에 도달하지 못하였다.
事旣壅隔 人懷疑阻로되 猶昧省己하야 遂用興戎하야 徵師四方하고 轉餉千里하니 賦車籍馬 遠近 騷然하고 行齎居送 衆庶勞止
그리하여 윗사람과 아랫사람 사이에 일이 이미 막힘에 사람들이 의심하는 마음을 품었으나 오히려 자신을 반성할 줄 모르고 마침내 군대를 일으켜 사방에서 병사를 징집하고 천리 먼 곳에 군량을 수송하니, 백성의 수레를 바치게 하고 백성의 말을 장부에 올려 원근을 소란하게 만들며 출정하는 자는 양식을 휴대하고 집에 남아있는 자는 세금을 바쳐 실어 보냄에 백성들이 수고한다.
天譴於上而朕不寤하고 人怨於下而朕不知하야 馴致亂階注+[頭註]馴致 以漸而致也 하야 變興都邑하니 萬品失序하고 九廟注+[頭註]古者 天子七廟러니 玄宗增爲九廟하니라 震驚이라
하늘이 위에서 견책을 내리는데도 짐은 깨닫지 못하고 백성들이 아래에서 원망하는데도 짐은 알지 못하여, 점점 계제階梯를 이루어注+[頭註]순치馴致는 점점 이루어지는 것이다. 변란이 도읍에서 일어나니, 만사가 순서를 잃고 구묘九廟注+[頭註]옛날에 천자는 칠묘七廟였는데 현종玄宗이 늘려서 구묘九廟로 만들었다. 조종祖宗이 진동하고 놀랐다.
上累于祖宗하고 下負于蒸庶注+[通鑑要解]蒸庶 蒸衆也 하야 痛心注+[釋義] 他典反이니, 面慙也 하니 罪實在予
위로는 조종祖宗에게 누를 끼치고 아래로는 여러 백성들을注+[通鑑要解]증서蒸庶는 백성들이다. 저버려 마음이 아프고 낯이 부끄러우니,注+[釋義]타전반他典反(전)이니, 낯부끄러운 것이다. 죄가 실로 나에게 있다.
永言愧悼하야 若墜泉谷이로니
내가 이 때문에 길이 부끄러워하고 슬퍼하여 마치 깊은 샘물과 골짜기에 떨어진 것처럼 여기노라.
自今으로 中外所上書奏 不得更言聖神文武之號注+[頭註]卽位元年 群臣上尊號曰 聖神文武皇帝라하니라 하라
지금으로부터 중외中外에서 올리는 글과 아뢰는 말에 다시는 ‘성신문무聖神文武’라는 존호尊號를 쓰지 말라.注+[頭註]덕종德宗 즉위 원년(780)에 신하들이 성신문무황제聖神文武皇帝라는 존호를 올렸다.
李希烈, 田悅, 王武俊, 李納注+[頭註]希烈 見下 田悅, 武俊, 李納 竝見上卷壬戌年하니라 武俊 李寶臣裨將也 德宗授恒冀觀察使하니라 咸以勳舊 各守藩維注+[通鑑要解] 어늘 撫馭乖方하야 致其疑懼하니 朕實不君이라
이희열李希烈전열田悅왕무준王武俊이납李納注+[頭註]이희열李希烈은 뒤에 보이고, 전열田悅왕무준王武俊이납李納은 모두 상권의 임술년(782)에 보인다. 왕무준王武俊이보신李寶臣비장裨將이니, 덕종德宗항기관찰사恒冀觀察使에 제수되었다. 등은 모두 대대로 나라를 위하여 공로를 세운 신하로서 각각 번병藩屛을 지키고 있었는데,注+[通鑑要解]사방四方사우四隅이다. 이 제대로 어루만지고 어거하지 못하여 그들로 하여금 의심하고 두려워하게 만들었으니, 이 실로 군주노릇을 못한 것이다.
人則何罪리오
저들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宜幷所管將吏等 一切待之如初하라
마땅히 그들이 관리하고 있는 장수와 관리 등을 일체 처음과 같이 대우해야 할 것이다.
朱滔雖緣朱泚連坐 路遠하야 必不同謀리니 如能效順이면 亦與惟新이니라
주도朱滔는 비록 주체朱泚 때문에 연좌되었으나 둘은 거리가 멀어서 반드시 함께 모의하지는 않았을 것이니, 만약 조정에 귀순하여 나라를 위해 힘을 바친다면 그도 개과천선하도록 허락해 줄 것이다.
朱泚 盜竊名器注+[頭註]上癸亥 稱大秦皇帝하고 改元應天하니라 하고 暴犯陵寢하야 獲罪祖宗하니 朕不敢赦어니와
주체朱泚명기名器를 도둑질하고注+[頭註]앞의 계해년(783)에 주체朱泚대진황제大秦皇帝라 칭하고 연호를 응천應天으로 고쳤다. 능침陵寢을 범하여 조종祖宗에게 죄를 지었으니 이 감히 용서할 수 없다.
其脅從將吏百姓等 去逆效順이면 竝從赦例니라
그러나 그에게 위협당하여 그를 따른 장수와 관리와 백성들은 반군叛軍을 떠나 귀순해 온다면 모두 사면하는 예를 따르겠다.
其所加陌錢,注+[原註] 都念反이니 陷也[通鑑要解] 墊 音店이니 稅間架, 竹木茶漆, 榷鹽之類 悉宜停罷하노라
그동안 백성들에게 부과하던 점맥전墊陌錢,注+[原註]도념반都念反(점)이니, 빠지는 것이다. [通鑑要解]은 음이 점이니, 곧 제맥전除陌錢이다. 간가세間架稅, 대나무와 나무와 차나무와 옻나무에 대한 세금, 소금을 전매하는 따위의 세금은 모두 정지하노라.”
赦下 四方人心大悅이러라
사면령이 내리자, 사방의 인심이 크게 기뻐하였다.
及上 還長安明年 李抱眞 入朝하야 爲上言호되 山東宣布赦書 士卒皆感泣하니 見人情如此하고 知賊不足平也니이다
장안長安으로 돌아온 다음 해에 이포진李抱眞이 들어와 조회하면서 에게 아뢰기를 “산동山東 지방에 사면하는 글을 선포한 뒤에 사졸들이 모두 감격하여 울었으니, 신은 백성들의 마음이 이와 같이 조정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는 적들을 평정하는 것은 족히 염려할 것이 못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였다.
○ 朱泚更國號曰漢이라하다
주체朱泚가 국호를 고쳐 이라 하였다.
王武俊, 田悅, 李納 見赦令하고 皆去王號하고 上表謝罪호되 惟李希烈 自恃兵强財富하야 遂卽皇帝位하고 國號 大楚라하다
왕무준王武俊, 전열田悅, 이납李納은 사면령을 보고는 모두 왕이라는 칭호를 버리고 표문表文을 올려 사죄하였으나 오직 이희열李希烈만은 군대가 강하고 재화가 풍부한 것을 스스로 믿고서 마침내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국호를 대초大楚라 하였다.
○ 上 於行宮廡下注+[原註] 罔撫反이니 堂下周屋也 貯諸道貢獻之物하고 榜曰瓊林大盈庫注+[釋義] 木片이니 題牓也 라하니
행궁行宮의 행랑 아래에注+[原註]망무반罔撫反(무)이니, 당 아래에 빙둘러 있는 집이다. 여러 도에서 공물貢物로 바친 물건을 쌓아 놓고 을 써 붙이기를 ‘경림대영고瓊林大盈庫’라 하였다.注+[釋義]은 나무 조각이니, 글을 써 붙이는 패이다.
陸贄以爲 戰守之功 賞賚未行이어늘 而遽私別庫하시면 則士卒怨望하야 無復鬪志라하고 上疏諫之하니 卽命去其榜하다
육지陸贄가 아뢰기를 “사졸들이 싸우고 수비한 공로에 대해 상을 내리는 것을 아직 시행하지 못하였는데, 대번에 별도의 창고를 사사로이 만드신다면 사졸士卒들이 원망하여 다시는 싸울 뜻이 없을 것입니다.” 하고 상소하여 간하니, 이 즉시 ‘경림대영고瓊林大盈庫’라는 을 떼어내라고 명하였다.
○ 蕭復注+[頭註]吏部尙書同中書門下平章事 嘗言於上曰 陛下踐阼注+[頭註]見二十八卷이라 之初 聖德光被러니 自用楊炎, 盧杞 濁亂朝政하야 以致今日하니
소복蕭復注+[頭註]소복蕭復이부상서吏部尙書 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이다. 일찍이 에게 아뢰기를 “폐하陛下께서 즉위하신 초기에는注+[頭註]천조踐阼는 28권에 보인다. 성덕聖德이 사해에 넘치고 천하에 빛났는데, 양염楊炎노기盧杞를 등용하신 뒤로부터 이들이 조정을 혼탁하게 하고 어지럽혀서 오늘날의 혼란을 초래하였으니,
陛下誠能變更睿志注+[頭註] 深明也 하시면 敢不竭力이리잇고
폐하께서 진실로 뜻을 바꾸신다면注+[頭註]는 매우 밝은 것이다. 신이 감히 힘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儻使臣依阿苟免인댄 臣實不能注+[通鑑要解] 必盧杞貶逐之後 蕭復 方有是言하니라 이니이다
만일 신으로 하여금 아첨하여 따라서 구차히 죄를 면하게 하신다면 신은 실로 이렇게 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注+[通鑑要解]이는 반드시 노기盧杞가 폄축당한 뒤에 소복蕭復이 바야흐로 이러한 말을 한 것이다.
又嘗與盧杞 同奏事할새 杞順上旨어늘 正色曰 盧杞言不正이라하니
소복蕭復이 일찍이 노기盧杞와 함께 일을 아뢸 적에 노기盧杞의 뜻을 따르자, 소복蕭復이 정색하고 말하기를 “노기盧杞의 말이 바르지 못합니다.” 하였다.
愕然하야 退謂左右曰 蕭復 輕朕이로다하고 遂命復하야 充山東西, 荊, 湖等道宣慰安撫使하니 實疏之也러라
이 듣고 깜짝 놀라 조정에 물러가 좌우에게 말하기를 “소복蕭復을 깔본다.” 하고는 마침내 소복蕭復을 임명하여 산남동도山南東道서도西道, , 선위안무사宣慰安撫使에 충원하니, 실로 그를 소원히 한 것이었다.
○ 二月 李懷光 旣脅朝廷하야 逐盧杞等하고 內不自安하야 遂有異志하고 又惡李晟獨當一面하야 恐其成功하야 奏請與晟合軍이라하니 詔許之하다
2월에 이회광李懷光이 조정을 협박하여 노기盧杞 등을 축출한 뒤에 내심 자신의 처지에 불안을 느껴 마침내 딴 마음을 품고 있었으며, 또 이성李晟이 홀로 일면一面을 담당하는 것을 시기하여 그가 성공할까 두려워해서 이성李晟의 군대와 연합할 것을 조정에 주청奏請하니, 이 조서를 내려 허락하였다.
懷光 屯咸陽하야 累日逗留不進하고 密與朱泚通謀라가 事迹頗露
이회광李懷光함양咸陽에 주둔하여 여러 날 머물면서 전진하지 않고 은밀히 주체朱泚와 서로 통하여 공모하다가 이러한 사실이 자못 탄로났다.
李晟 屢奏호되 恐其有變하야 爲所倂하오니 請移軍東渭橋하노이다 從之하다
이성李晟이 자주 아뢰기를 “이회광李懷光이 변고가 있어서 군대가 그에게 합병될까 두려우니, 군대를 동쪽 위교渭橋로 옮길 것을 청합니다.” 하니, 이 그의 말을 따랐다.
○ 丁卯 懷光 遣其將趙昇鸞하야 入奉天하니
정묘일丁卯日(2월 26일)에 이회광李懷光이 그의 장수인 조승난趙昇鸞을 보내어 봉천성奉天城을 침입하였다.
聞之하고 遽上請決幸梁州한대 從之하다
혼감渾瑊이 이러한 사실을 에게 아뢰고 급히 어가御駕양주梁州로 행차하게 할 것을 에게 청하자, 이 그의 말을 따랐다.
○ 除李晟河中同絳節度使하야 加平章事하다
이성李晟하중동강절도사河中同絳節度使에 제수하고 평장사平章事를 가하였다.
得除官制 拜哭受命하고 謂將佐曰 長安 宗廟所在 天下根本이니 若諸將皆從行이면 誰當滅賊者오하고
이성李晟이 관직에 제수되고 제서制書를 받은 뒤에 절하고 통곡하며 명을 받고는 장수와 속관들에게 이르기를 “장안長安종묘宗廟가 있는 곳이고 천하의 근본이니, 만약 제장諸將들이 모두 황제를 따라 가면 누가 적을 섬멸한단 말인가?” 하고는
治城隍注+[頭註] 城池也 有水曰池 無水曰隍이라 하고 繕甲兵하야 爲復京城之計러라
마침내 해자垓子를 수리하고注+[頭註]은 성 주위에 파놓은 해자垓子이니, 물이 있는 것을 라 하고 물이 없는 것을 이라 한다. 갑옷과 병기를 수선하여 경성京城을 수복할 계책을 하였다.
是時 懷光, 朱泚連兵하야 聲勢甚盛이라
이때 이회광李懷光주체朱泚가 병력을 연합하여 성세聲勢가 매우 성하였다.
車駕南幸하야 人情擾擾러니 以孤軍으로 處二强寇之間하야 內無資糧하고 外無救援호되 徒以忠義 感激將士
거가車駕가 남쪽으로 행차하여 인심이 소란스러웠는데, 이성李晟이 외로운 군대로써 두 강한 적의 사이에 처하여 안으로는 물자와 군량이 없고 밖으로는 구원하는 세력이 없었으나 단지 충의忠義로써 장병들을 감동시키고 격려하였다.
其衆 雖單弱이나 而銳氣不衰러라
그러므로 그의 군대가 비록 형세가 고단하고 힘이 약하였으나 예기銳氣가 쇠하지 않았다.
[史略 史評]胡氏曰
[史略 사평史評]胡氏(胡寅)가 말하였다.
非特良將이요 乃賢相也어늘 德宗 置之閑處하야 七年而死하니 向使陪侍廟堂하야 參斷國政 至於七年이런들 其有益於國 可勝數哉
이성李晟은 비단 훌륭한 장수일 뿐만이 아니라 바로 어진 재상이었는데, 덕종德宗이 그를 한가한 자리에 두어 7년 만에 죽었으니, 그때 만일 이성李晟으로 하여금 묘당廟堂(조정)에서 모시면서 국정國政에 참여하여 결단함이 7년에 이르게 했다면 나라에 유익함을 어찌 다 셀 수 있겠는가.”
○ 三月 田悅 爲其姪緖所殺하다
3월에 전열田悅이 그의 조카인 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緖權知軍府事하고 使使奉表하야 詣行在하고 城守以俟命하다
전서田緖는 임시로 군부軍府의 일을 대리하고 사자使者로 하여금 표문表文을 받들어 행재소行在所에 나아가 올리게 하고는 성을 지키면서 명령을 기다렸다.
○ 始 李懷光 方强하니 朱泚畏之하야 與懷光書 以兄事之러니 及懷光決反하야 逼乘輿南幸하야는 其下多叛之하야 勢益弱이라
처음에 이회광李懷光이 한창 강성하니, 주체朱泚가 그를 두려워하여 이회광李懷光에게 보내주는 편지에 형이라 칭하여 섬겼는데, 이회광李懷光이 반란을 결심하여 황제의 승여乘輿를 핍박해서 남쪽(梁州)으로 파천하게 하자, 이회광李懷光의 부하들이 대부분 그를 배반하여 세력이 더욱 약해졌다.
泚乃賜懷光詔書하야 以臣禮待之하고 且徵其兵하다
주체朱泚가 마침내 이회광李懷光에게 조서詔書를 내려 신하의 예로 대하고 또 그의 군대를 징발하였다.
懷光 慚怒하야 內憂麾下爲變하고 外恐李晟襲之하야 遂燒營하고 東走河中하니 將士在道 散亡相繼러라
이회광李懷光은 부끄러워하고 노여워하여 안으로는 휘하들이 변란을 일으킬까 걱정하고 밖으로는 이성李晟이 습격할까 염려하여, 마침내 군영을 불태우고 동쪽으로 하중河中으로 도망하니, 장병들이 도중에 흩어지고 도망하는 자가 서로 이어졌다.
○ 上在道 民有獻瓜果者어늘 欲以散試官注+[通鑑要解]有文散階, 武散階也 試官者 始見於武后 三十九卷壬辰年 武后引見存撫使所擧人하야 無問賢愚하고 特加試官이라 授之하야 訪於陸贄한대 贄上奏하니 其略曰
이 도중에 있을 적에 백성 중에 오이와 과일을 올린 자가 있었는데, 이 그에게 산시관散試官注+[通鑑要解]산시관散試官문산계文散階무산계武散階가 있다. 시관試官무후武后 때에 처음으로 보인다. 《통감절요通鑑節要》 39권 임진년(692)에 무후武后존무사存撫使(各地를 안무按撫하러 보낸 사신)가 천거한 사람들을 인견해서 어질고 어리석음을 따지지 않고 특별히 시관試官을 가하였다. 직임을 제수하고자 하여 육지陸贄에게 묻자, 육지陸贄상주上奏한 내용에 대략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自兵興以來 財賦不足以供賜하야 而職官之賞 興焉이라
“군대가 일어난 이래로 징수한 부세賦稅가 병사들에게 하사하는 물자를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여 직관職官으로 상을 주는 방법이 시작되었습니다.
靑朱雜沓注+[釋義] 徒合反이니 混雜之稱이라 於胥徒注+[頭註]胥讀曰諝 有才智之稱이라 謂其有才智爲什長이라 一胥十徒 하고 金紫普施於輿注+[通鑑要解] 同皁 하니 當今所病 方在爵輕이라
그리하여 푸른색과 붉은색 관복을 입은 사람이注+[釋義]도합반徒合反(답)이니, 뒤섞인 것의 명칭이다. 서도胥徒注+[頭註]라고 읽으니, 재지才智가 있는 자의 칭호이다. 재지才智가 있는 자를 일러 십장什長(열 명의 우두머리)이라 한다. 그러므로 1명에 10명이다. 뒤섞이고 금장金章(金印)과 자수紫綬가 하인들에게까지注+[通鑑要解]와 같다. 널리 베풀어지니, 현재 병폐로 여길 것은 바로 관작이 너무 가벼운 데에 있습니다.
設法貴之라도 猶恐不重이어늘 若又自棄 將何勸人이리잇고
법을 만들어 관작을 귀하게 하더라도 오히려 관작이 중하지 않을까 두려운데, 만약 조정에서 또다시 스스로 작위를 경시한다면 장차 어떻게 사람들을 권면하겠습니까?
若獻瓜果者 亦授試官이면 則彼必相謂曰
만약 오이와 과일을 바친 자에게 또 시관試官을 제수하신다면 저들은 반드시 서로 말하기를
吾以忘軀命而獲官이어늘 此以進瓜果而獲官하니 是乃國家以吾之軀命으로 同於瓜果矣라하리니
‘우리들은 몸과 생명을 잊고 싸워서 관직을 얻었는데 이 사람을 오이와 과일을 올려서 관직을 얻었으니, 이는 바로 국가가 우리들의 몸과 목숨을 오이와 과일과 똑같이 여기는 것이다.’라고 할 것이니,
視人如草木이면 誰復爲用哉리잇고
사람을 보기를 초목과 같이 한다면 누가 다시 국가를 위해 쓰여지겠습니까?”
○ 陸贄在翰林하야 爲上所親信이라
육지陸贄한림원翰林院에 있으면서 에게 친애와 신임을 받았다.
居艱難中하야 雖有宰相이나 大小之事 必與贄謀之
황제의 거가車駕가 유리하는 어려운 상황에 있으면서 비록 재상이 있었으나 은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반드시 육지陸贄에게 상의하였다.
當時 謂之內相이라
그러므로 당시에 그를 일러 내상內相이라 하였다.
然贄直諫하야 迕上意하고 盧杞雖貶官이나 心庇之
그러나 육지陸贄는 자주 직간을 하여 의 뜻을 거역하였고, 노기盧杞가 비록 재상의 직책에서 좌천되었으나 은 내심 그를 비호하였다.
贄極言杞奸邪致亂이라하니 上雖貌從이나 心頗不悅이라
육지陸贄가 ‘노기盧杞가 간사하여 난을 이루었다.’고 지극히 말하니, 이 비록 겉으로는 따랐으나 내심 자못 기뻐하지 않았다.
劉從一, 姜公輔 皆自下僚登用호되 恩遇雖隆이나 未得爲相하니라
그러므로 유종일劉從一강공보姜公輔는 모두 하급 관료로서 재상에 등용되었지만 육지陸贄는 황제에게 받는 은혜와 대우는 비록 높았지만 재상이 되지 못하였다.
○ 李晟家百口及神策軍士家屬 皆在長安이러니 朱泚善遇之하다
이성李晟의 집안 식구 백 명과 신책군사神策軍士들의 가솔들이 모두 장안長安에 있었는데, 주체朱泚가 그들을 잘 대우하였다.
軍中 有言及家者어늘 泣曰 天子何在완대 敢言家乎
이성李晟군중軍中 병사 중에 집안일을 언급하는 자가 있자, 이성李晟이 울면서 말하기를 “천자가 지금 어디에 계시는데, 너희들이 감히 집안일을 언급하는가?” 하였다.
泚使晟親近하야 以家書遺晟하고公家無恙注+[頭註] 憂也 又噬人蟲也 入人腹하야 食人心이라 上古之世 草居露宿하야 多被此毒하니 俗悉患之 人相見及通書問 相勞云 無恙乎아하니라 이라한대 怒曰 爾敢爲賊間注+[頭註] 去聲이라 左傳 謂之游偩 又反間也라하니라 伺也 謂詐爲敵國之人入其軍中하야 伺候間隙하야 以反報其主 이라하고 立斬之하다
주체朱泚이성李晟과 친근한 사람을 보내어 그의 가서家書이성李晟에게 전달하게 하고 말하기를 “의 집에 아무 탈이 없습니다.”라고 하자,注+[頭註]은 근심이고 또 사람을 무는 벌레이니, 사람의 뱃속에 들어가서 사람의 심장을 먹는다. 상고 시대에는 초야에서 거처하고 노숙을 하여 이 벌레의 독에 중독된 이들이 많으니, 세속에서 모두 이를 걱정하였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서로 만나거나 서신을 왕래하여 문안할 때에 서로 위로하기를 “무양한가?”라고 하였다. 이성李晟이 노하여 말하기를 “네가 감히 적의 간첩이 되었구나.” 하고는注+[頭註]거성去聲이다. 《춘추좌전春秋左傳》에 이를 일러 유부游偩라 하고, 또 반간反間이라 하였다. 은 엿보는 것이니, 거짓으로 적국 사람인 체하고 군중軍中으로 들어가서 틈을 엿보아 도리어 자기 군주에게 보고하는 것을 이른다. 즉시 그를 목베게 하였다.
軍士未授春衣하야 盛夏 猶衣裘褐호되 終無叛志러라
이때 이성李晟의 군사들에게 아직 봄옷을 만들어 주지 못해서 무더운 여름철에도 그대로 갖옷과 갈옷을 입었으나 군사들이 끝내 배반할 뜻이 없었다.
渾瑊 諸軍하고 屯奉天하야 與李晟으로 東西相應하야 以逼長安하다
혼감渾瑊이 여러 군대를 거느리고 봉천奉天에 주둔하여 이성李晟과 함께 동서東西로 서로 호응하여 장안長安을 핍박하였다.
○ 上 欲爲唐安公主注+[頭註]上之長女也 하야 造塔厚葬之한대 姜公輔注+[頭註]諫議大夫以爲 山南非久安之地 公主之葬 要歸하고 此宜儉薄하야 以副軍需之急이라하니라 表諫이어늘
당안공주唐安公主注+[頭註]당안공주唐安公主(德宗)의 장녀이다. 위하여 탑을 만들어 후히 장례하고자 하자, 강공보姜公輔注+[頭註]간의대부諫議大夫(姜公輔)가 아뢰기를 “산남山南 지방은 장구하게 편안한 곳이 아니니, 공주公主의 장례를 요컨대 상도上都귀장歸葬하고, 이에 장례를 검소하게 하여 비용을 절약해서 시급한 군사 비용을 도와야 합니다.” 하였다. 표문을 올려 간하였다.
使謂陸贄曰 唐安造塔 其費甚微하니 非宰相所宜論이어늘 公輔正欲指朕過失하야 自求名耳
이 사람을 시켜 육지陸贄에게 말하기를 “당안唐安공주를 위해 탑을 만드는 것은 그 비용이 매우 적으니 재상이 마땅히 논할 바가 아닌데, 강공보姜公輔가 짐의 과실을 곧바로 지적하여 스스로 명예를 구하고자 하였을 뿐이다.
相負如此하니 當如何處之 贄上奏하야 以爲 公輔任居宰相하야 遇事論諫하니 不當罪之니이다
재상이 되어 짐을 저버림이 이와 같으니, 마땅히 어떻게 대처해야 하겠는가?” 하니, 육지陸贄가 황제에게 상주上奏하여 말하기를 “강공보姜公輔는 재상의 지위에 거하여 일을 만나면 의논하고 간쟁해야 하니, 마땅히 죄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하였다.
上意猶怒하야 罷公輔爲左庶子注+[頭註]太子官屬이니 左庶子 爲之長이라 掌侍從贊相駁正啓奏하니 秩四百石이라 하다
그러나 의 뜻이 오히려 노여워하여 강공보姜公輔를 파직하여 좌서자左庶子로 삼았다.注+[頭註]태자太子에게 소속된 관원이니, 좌서자左庶子이다. 시종侍從, 찬상贊相, 박정駁正, 계주啓奏하는 일을 관장하니, 녹봉이 400이다.
問陸贄호되 近有卑官自山北來者 率非良士
육지陸贄에게 묻기를 “근래에 산북山北에서 온 낮은 관원들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훌륭한 선비가 아니다.
有邢建者論說賊勢호되 語最張皇注+[頭註] 大也 일새 察其事情하니 頗似窺覘注+[原註] 敕廉反이니 視也 이라
형건邢建이라는 자가 적의 형세를 말하는데 말이 매우 과장되므로注+[頭註]은 큼이다. 그의 속사정을 살펴보니, 자못 정탐하러 온 듯하였다.注+[原註]칙렴반敕廉反(첨)이니, 보는 것이다.
今已於一所安置하니 如此之類 更有數人이라
이제 이미 그를 한 곳에 안치하였으니, 이와 같은 무리가 몇 명 더 있다.
若不追尋이면 恐成奸計하니 試思之하라
만약 그들을 찾아내지 않는다면 간사한 꾀를 이룰까 두려우니, 경은 한번 생각해보라.
如何爲便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가?” 하였다.
贄上奏하니 其略曰
육지陸贄가 황제에게 상주上奏하니,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以一人之聽覽而欲窮宇宙注+[頭註]天地四方曰宇 往古來今曰宙 之變態하고 以一人之防慮而欲勝億兆之奸欺 役智彌精이나 失道彌遠이라
“군주 한 사람의 보고 들은 것을 가지고 우주의注+[頭註]천지와 사방을 라 하고, 지나간 옛날과 앞으로 올 지금을 라 한다. 변화하는 태도를 다하고자 하고, 한 사람의 방비하고 염려하는 것을 가지고 억조 만백성의 간사함과 속임수를 이기고자 한다면 지혜를 씀이 더욱 정밀하나 올바른 도리를 잃음이 더욱 멉니다.
項籍 納秦卒二十萬하고 慮其懷詐復叛하야 一擧而盡坑之하니 其於防虞 亦已甚矣 漢高 豁達注+[釋義] 謂豁然開大之貌 大度하야 天下之士至者 納用不疑하니 其於備慮 可謂疏矣니이다
항적項籍나라의 항복한 병졸 20만 명을 받아들이고는 그들이 속임수를 품고 다시 배반할까 염려하여 일거에 다 묻어 죽였으니 방비하고 헤아림에 또한 너무 심하였고, 나라 고조高祖는 활달하고注+[釋義]활연豁然히 탁트인 모양을 이른다. 도량이 커서 천하에서 온 선비들을 받아들이고 의심하지 않았으니 대비하고 염려함에 소략하다고 이를 만하였습니다.
然而項氏以滅하고 劉氏以昌하니 蓄疑之與推誠 其效固不同也니이다
그러나 항씨項氏는 이 때문에 멸망하였고 유씨劉氏는 이 때문에 창성하였으니, 의심을 쌓는 것과 정성을 미루는 것은 그 효험이 진실로 똑같지 않습니다.
秦皇 嚴肅雄猜어늘 而荊軻奮其陰計하고 光武 寬容博厚어늘 而馬援輸其款誠하니 豈不以虛懷待人이면 人亦思附하고 任數注+[頭註] 計也 御物이면 物終不親이니잇고
진시황秦始皇은 엄숙하고 의심이 많았는데 형가荊軻가 분격하여 은밀히 살해할 계책을 행하였고, 광무제光武帝관용寬容하고 넓고 후덕하였는데 마원馬援이 그 정성을 바쳤으니, 어찌 겸허한 회포로 남을 대하면 남이 또한 따를 것을 생각하고, 술수를 부려注+[頭註]는 헤아리는 것이다. 남을 어거하면 남이 끝내 친해지지 않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又曰
육지陸贄가 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陛下智出庶物하야 有輕待人臣之心하고 思周萬機하야 有獨馭區㝢(宇)注+[釋義] 主矩反이니 猶言宇宙[通鑑要解] 㝢 同宇 之意하고 謀呑衆略하야 有過愼之防하고 明照群情하야 有先事之察하고 嚴束百辟하야 有任刑致理之規하고 威制四方하야 有以力勝殘注+[頭註] 賊也 之志하시니 由是 才能者怨於不任하고 注+[釋義] 才刃反이니 王之藎臣이라하니라 進也 忠愛之篤 進進無已也 憂於見疑하고 著勳業者懼於不容하고 懷反側者迫於及討하야 馴致離叛하야 構成禍災하니 願陛下以覆車之轍爲戒하시면 實宗社無疆之休리이다
폐하陛下께서 지혜는 여러 사람 중에 뛰어나시어 신하를 가벼이 대하는 마음이 있으시고, 생각은 만기萬機에 두루 미쳐 홀로 천하를注+[釋義] 㝢는 주구반主矩反(우)이니, 우주宇宙라는 말과 같다. [通鑑要解] 㝢는 와 같다. 어거하려는 뜻이 있으시며, 계책은 여러 신하들의 지략을 포용하여 지나치게 삼가는 방비가 있으시고, 영명함은 여러 실정을 환하게 비추어서 일에 앞서 살핌이 있으시며, 백관들을 엄하게 단속하여 형벌에 맡겨 정치를 이룩하려는 계획이 있으시고, 위엄으로 사방을 제압해서 힘으로 잔악한 자들을注+[頭註]은 해치는 것이다. 이기려는 뜻이 있으시니, 이로 말미암아 재능이 있는 자가 임무를 맡기지 않는 것을 원망하고, 충성스러운 자가注+[釋義]재인반才刃反(진)이니, 《시경詩經》에 “신신藎臣이다.”라고 하였다. 은 나아감이니, 충성과 사랑의 돈독함이 나아가고 나아가 그치지 않는 것이다. 의심을 받는 것을 걱정하고, 공훈이 드러난 자가 용납받지 못할까 두려워하고, 반복무상한 자가 토벌을 당하는데 쫓겨서, 점점 조정을 이반하여 화와 재앙을 이루고 있으니, 바라건대 폐하께서 전복된 수레바퀴 자국(앞서 가던 사람의 실패한 자취)을 경계로 삼으신다면 실로 종묘 사직에 끝없는 아름다움이 될 것입니다.”
○ 上謂陸贄曰 渾瑊, 李晟諸軍 當議規注+[頭註] 圖也 하야 令其進取호리라
육지陸贄에게 이르기를 “혼감渾瑊이성李晟의 여러 군대는 마땅히 의논하고 규획規畫(按排)해서注+[頭註]는 도모하는 것이다. 이들로 하여금 장안長安으로 진공進攻하게 하겠다.” 하였다.
贄以爲 賢君選將 委任責成이라 能有功이라하야 乃上奏하니
육지陸贄는 생각하기를 ‘어진 군주가 장수를 선발함에 임무를 맡기고 성공을 책임지우므로 능히 공을 이루는 것이다.”라고 하여 마침내 상주上奏하니,
其略曰 鋒鏑注+[釋義] 戈戟刃也 箭鏃也 交於原野어늘 而決策於九重之中하고 機會變於斯須어늘 而定計於千里之外하면
그 대략에 말하기를 “언덕과 들에서 칼날과 화살촉이注+[釋義]은 창의 칼날이고, 은 화살촉이다. 교차하며 전투하는데 구중九重의 궁궐에서 계책을 결정하고, 기회가 잠깐 사이에 변하는데 천리 밖에서 계책을 정한다면,
用捨相礙하고 臧皆凶하야 上有之譏注+[釋義] 昌逝反이요 昌列反이니 曳也 掣肘 言爲人所牽制也 掣肘 語出家語屈節解篇하니라 [附註] 肘 臂節也 說苑 魯使宓子賤으로한대 子賤 恐魯君聽讒하야 不得行其政이라 請君之近吏善書者하야 與俱至官하야 使書之하고 從旁引其肘하야 書醜則怒之하고 欲好書則又引之하니 書者辭歸하야 以告魯君이어늘 以問孔子한대 孔子曰 宓不齊 君子也 意者컨대 以此爲諫乎인저 公寤曰 寡人 亂宓子之政而責其善者數矣라하고 使人告之曰 從子之制하리라하더니 未幾 單父治하니라 하고 下無死綏之志注+[釋義] 車中所把索也 如今騎馬者 必執韁繩이라 死綏 謂執綏而殊死戰하야 不棄之而奔亡이라 니이다
장수가 조정의 명을 쓰고 버리는 것이 서로 막히고 궁중에서 계책을 잘하고 못하는 자가 모두 흉하여, 위로는 조정에서 장수를 간섭한다는 비난이 있고注+[釋義]창서반昌逝反(처)이요 창렬반昌列反(철)이니 끌어당기는 것이다. 철주掣肘는 남에게 견제당함을 말한다. 철주掣肘라는 말은 《가어家語》 〈굴절해屈節解〉篇에 보인다. [附註] 는 팔의 관절이다. 《설원說苑》에 나라가 복자천宓子賤으로 하여금 선보單父의 읍재가 되게 하였는데, 자천子賤나라 군주가 참소하는 말을 따라서 자신이 선보單父에서 정사를 행할 수 없을까 염려하였다. 이에 임금의 가까운 관리 중에 글씨를 잘 쓰는 자를 청하여 그와 함께 관청에 이르러서 그로 하여금 글씨를 쓰게 하고는 옆에서 그의 팔뚝을 잡아당겨 글씨가 삐뚤어지면 성을 내고, 글씨를 잘 쓰고자 하면 또다시 팔뚝을 당기곤 하였다. 글씨를 쓰는 자가 하직하고 돌아가서 이 사실을 나라 군주에게 아뢰었다. 나라 군주가 공자孔子에게 묻자, 공자孔子가 말씀하기를 “복부제宓不齊는 군자입니다. 생각건대 이것을 가지고 임금께 간한 듯합니다.” 하였다. 나라 군주가 깨닫고 말하기를 “과인이 복자宓子의 정사를 어지럽히고는 그에게 잘하도록 요구한 것이 여러 번이었다.” 하고 사람을 시켜 복자천宓子賤에게 고하기를 “그대의 제재를 따르겠다.” 하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선보單父가 잘 다스려졌다. 아래로는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결사적으로 싸우려는 뜻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注+[釋義]는 수레 안에서 잡는 끈이니, 지금 말을 타는 자가 반드시 말고삐의 끈을 잡는 것과 같다. 사수死綏는 끈을 잡고 매우 결사적으로 싸워서 버리고 도망하지 않음을 이른다.
又曰 君上之權 特異臣下하니 惟不自用이라사 乃能用人이니이다
또 말하기를 “군상君上의 권세는 신하와 특히 다르니, 오직 스스로 자신의 의견을 쓰지 않아야 비로소 사람을 쓸 수 있습니다.” 하였다.
○ 庚寅 李晟 大陳兵하야 諭以收復京城하고 遂引兵하야 至通化門外하니 泚兵大至어늘
경인일庚寅日(5월 20일)에 이성李晟열병식閱兵式을 거행하여 병사들에게 경성京城을 수복할 것을 타이르고 마침내 군대를 이끌고 통화문通化門 밖에 이르니, 주체朱泚의 군대가 크게 몰려왔다.
縱兵擊之하니 賊敗走하다
이성李晟이 군대를 풀어 공격하니 적이 패주敗走하였다.
再戰又破之하니 賊衆大潰
다시 싸워 또 격파하니 적의 무리가 크게 궤멸되었다.
姚令言 餘衆西走하다
요영언姚令言이 남은 군대를 거느리고 서쪽으로 도망하였다.
屯於含元殿前하고 令諸軍曰 晟賴將士之力하야 克淸宮禁하니 長安士庶 久陷賊庭注+[釋義]賊庭 謂朱泚 이라 若小有震驚이면弔民伐罪之意니라
이성李晟함원전含元殿 앞에 주둔하고 제군諸軍들에게 명령하기를 “내가 장병들의 힘을 의뢰하여 깨끗이 궁궐 안의 적들을 청소하였는데, 장안長安사서인士庶人들이 오랫동안 적의 통치하에 있었으니,注+[釋義]의 조정은 주체朱泚를 이른다. 만약 우리들이 조금이라도 진동하고 놀라게 함이 있으면 백성들을 위로하고 죄 있는 자를 정벌하는 뜻이 아니다.” 하였다.
大將高明曜 取賊妓하고 尙可孤注+[頭註]晟之裨將이라 軍士 擅取賊馬어늘 皆斬之하니 軍中股慄注+[頭註]股慄 股戰而慄이니 言恐懼之甚也 하고 公私安堵注+[釋義]人情 安如墻堵하야 乃不動이라 하야 秋毫無犯이러라
이성李晟대장大將고명요高明曜가 적의 기생을 데려 오고 상가고尙可孤注+[頭註]상가고尙可孤이성李晟비장裨將이다. 군사軍士가 멋대로 적의 말을 갖자 이성李晟이 모두 목을 베니, 군중軍中이 두려워하여 다리를 떨고注+[頭註]다리를 떨면서 두려워하는 것이니, 매우 두려워함을 말한다. 공사公私가 안도하여注+[釋義]안도安堵는 사람들의 마음이 담장처럼 편안히 여겨서 마침내 동요하지 않는 것이다. 추호도 범함이 없었다.
六月 遣掌書記于公異하야 作露布注+[釋義]軍中露布 皆書於帛하야 建於漆竿이라하니라 하야 上行在하고 曰 臣已肅淸宮禁하고 祗謁寢園하니 注+[釋義] 音巨 說文 鍾鼓之跗 以猛獸爲飾이라 不移하고 廟貌如故라하니
6월에 이성李晟장서기掌書記공이公異로 보내어 노포露布를 만들어서注+[釋義]군중軍中노포露布는 모두 비단에 써서 옻칠한 장대에 꽂는다. 행재소行在所에 올려 말하기를 “신이 이미 궁금宮禁의 적들을 깨끗이 청소하고 공경히 선제先帝침원寢園을 배알하였는데, 종묘에 설치한 종과 종틀이注+[釋義]는 음이 거이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 “과 북의 받침이니, 맹수의 모양으로 꾸민다.” 하였다. 여전하며 사당의 모습도 예전과 같습니다.” 하니,
泣下曰 天生李晟 以爲社稷이요 非爲朕也로다
이 눈물을 떨구고 말하기를 “하늘이 이성李晟을 내신 것은 사직社稷을 위해서이고, 짐을 위해서가 아니다.” 하였다.
○ 朱泚將奔吐蕃하니 其衆 隨道散亡이라
주체朱泚가 장차 토번吐蕃으로 달아나려 하니, 그의 무리들이 길을 따라 흩어지고 도망하였다.
至彭原西城이어늘 其將梁庭芬等 斬之하야 傳首行在하다
주체朱泚팽원彭原서성西城에 이르자, 그의 장수인 양정분梁庭芬 등이 주체朱泚의 목을 베어 수급首級행재소行在所로 전달하였다.
○ 車駕至長安하니 李晟 謁見上於三橋할새 先賀平賊하고 後謝收復之晩하다
황제의 거가車駕장안長安에 이르니, 이성李晟삼교三橋에서 알현할 적에 황제에게 먼저 역적 주체朱泚를 평정한 것을 축하하고 나중에 장안長安을 수복함이 늦음을 사죄하였다.
朱黼曰
주보朱黼가 말하였다.
德宗 以飢羸之卒 守一縣之地하야 當朱泚十萬之師할새 內則朱滔, 李希烈 締結交亂하고 外則李懷光 觀望圖逆하고 回紇 馳騖於河北하고 吐蕃 伺變於關外하야 唐之不亡 僅毫髮爾 所恃者 人心未去也
덕종德宗이 굶주리고 피폐한 병졸을 데리고 한 의 땅을 지키면서 주체朱泚의 십만대군에게 대항할 적에, 안으로는 주도朱滔이희열李希烈이 깊이 결탁하여 서로 어지럽히고 밖으로는 이회광李懷光이 관망하면서 반역을 도모하며, 회흘回紇하북河北 지방에서 이리저리 치달리고 토번吐蕃은 관문 밖에서 변란을 엿보아서, 나라가 멸망하지 않은 것은 겨우 실오라기처럼 미세하였는데, 믿는 것은 인심이 아직 떠나지 않은 것 뿐이었다.
李晟以孤軍으로 處二强寇之間注+[頭註]二强寇 朱泚與李懷光이라 하야 內無資粮(糧)하고 外無救援이요 徒以忠義 感激將士
그러므로 이성李晟이 외로운 군대를 거느리고 두 강한 적 사이에注+[頭註]두 강한 적은 주체朱泚이회광李懷光이다. 처하여, 안으로는 물자와 식량이 없고 밖으로는 구원하는 세력이 없었으나 다만 충의심으로 장병들을 감동시키고 격려하였다.
其衆雖單弱이나 而銳氣不衰하야 卒能克復宗社하야 不失舊物注+[頭註]左傳不失舊物注 事也라하니 不失先祖治天下之舊事하니 而況以天下之大 億兆之衆으로 守之以道德하고 用之以仁義하면 其誰能敵之리오
그러므로 그 무리가 비록 고단하고 약하였으나 예기銳氣가 쇠하지 아니하여 끝내 종묘 사직을 회복해서 예전에 천하를 다스리던 일을 잃지 않았으니,注+[頭註]춘추좌전春秋左傳애공哀公 원년元年불실구물不失舊物’의 에 “은 일이다.”라고 하였으니, 선조先祖가 천하를 다스리던 옛일을 잃지 않는 것이다. 하물며 천하의 큼과 억조 만백성의 많음으로써 도덕道德으로써 지키고 인의仁義로써 사용한다면 그 누가 대적하겠는가.
人君 苟得民心이면 則不在地之廣狹 兵之衆寡 王天下注+[頭註] 去聲이니 興也 猶反掌也
그러므로 임금이 진실로 민심을 얻으면 땅의 넓고 좁음과 병력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천하에 왕노릇 하는 것을注+[頭註]거성去聲이니, 흥기하는 것이다.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쉽게 할 수가 있다.
湯以七十里하시고 文王以百里 豈不信哉리오
탕왕湯王은 70리로써 왕노릇 하였고 문왕文王은 100리로써 왕노릇 한 것이 어찌 진실이 아니겠는가.
肅宗在靈武 上爲奉節王하야 學文於李하고 代宗之世 泌居蓬萊書院하니 上爲太子하야 亦與之遊
처음에 숙종肅宗영무靈武에 있을 적에 봉절왕奉節王이 되어 이필李泌에게 글을 배웠고, 대종代宗 때에 이필李泌봉래서원蓬萊書院에 머무니 이 태자가 된 뒤에 또한 그와 교유하였다.
及上在興元注+[頭註]興元 卽漢中이라 泌爲杭州刺史한대 急詔徵之하니 與睦州刺史杜亞 俱詣行在어늘
흥원부興元府注+[頭註]흥원부興元府는 바로 한중漢中이다. 있을 때에 이필李泌항주자사杭州刺史가 되었는데, 이 급히 조서를 내려 이필李泌를 부르니, 이필李泌목주자사睦州刺史 두아杜亞와 함께 행재소行在所(興元府)로 나왔다.
以泌爲左散騎常侍하야 日直西省注+[頭註]門下省 謂之東省이요 中書省 謂之西省이라 하다
이필李泌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로 삼아 날마다 서성西省에서 숙직하게 하였다. 注+[頭註]문하성門下省동성東省이라 하고, 중서성中書省서성西省이라 한다.
○ 上問李泌호되 河中 密邇京城하고 朔方兵 素稱精銳
이필李泌에게 묻기를 “이회광李懷光이 점거하고 있는 하중河中경성京城과 가깝고 삭방진朔方鎭의 군대는 평소 정예롭기로 알려져 있다.
晝夕憂之하노니 奈何 對曰
짐이 밤낮으로 이것을 걱정하노니, 어찌 해야 하는가?” 하고 묻자, 이필李泌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天下事 甚有可憂者하니 若惟河中 不足憂也니이다
천하天下에 심히 우려할 만한 일이 있으니, 하중河中으로 말하면 족히 근심할 것이 못됩니다.
懷光 旣解奉天之圍 視朱泚垂亡之虜호되 不能取하고 乃與之連和하야 使李晟得取以爲功하니이다
이회광李懷光이 이미 봉천성奉天城의 포위를 푼 뒤에 망해가는 오랑캐인 주체朱泚를 보고도 취하지 않고 도리어 그와 더불어 연합하여 이성李晟으로 하여금 취하여 공으로 삼게 하였습니다.
今陛下已還宮闕이어시늘 懷光束身歸罪하고 乃虐殺使臣하고 鼠伏河中하니 如夢之人注+[頭註] 音厭이니 驚夢也 氣虛心懼而神亂則魘이라
이제 폐하께서 이미 궁궐로 돌아오셨는데, 이회광李懷光이 스스로 손발을 묶고 조정으로 돌아와 죄를 청하지 않고 마침내 조정의 사신을 잔인하게 죽이고 하중河中에 쥐처럼 몸을 숨기고 있으니, 마치 악몽을 꾸다가 가위에 눌린 사람과注+[頭註]은 음이 염이니, 악몽을 꾸고 놀라서 가위에 눌리는 것이다. 기가 허하고 마음이 두려워 정신이 어지러우면 가위에 눌린다. 같습니다.
但恐不日爲帳下所梟하야 使諸將으로 無以藉手也리이다
다만 며칠 못 가서 그의 부하에게 효수梟首당하여 조정의 제장諸將들로 하여금 손을 빌릴 것이 없을 듯합니다.”
○ 初 魚朝恩旣誅 代宗 不復使宦官典兵이러니
처음에 환관인 어조은魚朝恩이 죽임을 당한 뒤에 대종代宗이 다시는 환관으로 하여금 병권을 맡게 하지 않았다.
卽位 悉以禁兵委白志貞이라가 志貞得罪어늘 復以宦官竇文場代之하야 從幸山南하니 兩軍漸集注+[頭註]兩軍 左右神策軍이라 이러라
이 즉위한 뒤에 금군禁軍을 모두 백지정白志貞에게 맡겼다가 백지정白志貞이 죄를 얻자, 이 다시 환관인 두문장竇文場으로 백지정白志貞을 대신하게 하여 황제를 따라 산남山南으로 파천하니, 두 군대(左神策軍과 우신책군右神策軍)가 점차 모였다.注+[頭註]양군兩軍좌신책군左神策軍우신책군右神策軍이다.
還長安하야 頗忌宿將注+[頭註]久將也 握兵多者하야 稍稍罷之하고 以文場으로 監神策軍左廂注+[通鑑要解] 廡也 廊也 東西室也 兵馬使하고 王希 遷監右廂兵馬使하야 始令宦官으로 典禁旅하니라
장안長安으로 돌아온 뒤에 자못 노장老將들이注+[頭註]숙장宿將노장老將이다. 병권을 많이 보유한 것을 시기하여 차츰 파면하고, 두문장竇文場감신책군좌상監神策軍左廂注+[通鑑要解]행각行閣이고 회랑回廊이니, 집의 동쪽과 서쪽에 붙은 방이다. 兵馬使로 삼고 왕희王希감신책군우상병마사監神策軍右廂兵馬使로 승진시켜서 처음으로 환관으로 하여금 금군禁軍을 맡게 하였다.
○ 時 連年旱蝗하니 度支資糧 匱竭이라
이때에 해마다 가뭄이 들고 황재蝗災가 있으니 탁지부度支部의 물자와 식량이 고갈되었다.
言事者多請赦李懷光한대 李晟 上言호되
조정에서 정사를 의논하는 대신이 대부분 이회광李懷光을 사면할 것을 청하자, 이성李晟이 황제에게 상언上言하기를
라하고 馬燧自行營入朝하야 奏稱호되 懷光 凶逆尤甚하니 赦之 無以令天下
이회광李懷光을 사면하는 것이 다섯 가지 불가한 점이 있습니다.” 하였고, 마수馬燧행영行營으로부터 들어와 조회하여 아뢰기를 “이회광李懷光은 흉악함과 반역함이 특히 심하니, 그를 사면하면 천하를 호령할 수가 없습니다.
願更得一月糧하야 必爲陛下平之라한대 許之하다
바라건대 다시 한 달 분의 군량을 얻어서 반드시 폐하를 위하여 그를 평정하겠습니다.”라고 하자, 이 이를 허락하였다.
八月諸軍하고 至河西하니 河中軍士 自相驚亂이라
8월에 마수馬燧제군諸軍을 거느리고 하서河西에 이르니, 하중河中의 군사들이 자기들끼리 서로 놀라고 혼란하였다.
懷光 不知所爲하고而死하니 燧自辭行으로 至河中平 凡二十七日이러라
이회광李懷光이 어찌 할 바를 몰라 마침내 목을 매어 죽으니, 마수馬燧가 황제를 하직하고 길을 떠난 뒤로부터 하중河中을 평정하기까지 모두 27일이 걸렸다.
역주
역주1 : 전
역주2 方隅 : 四方과 四隅로 藩屛을 가리킨다. 四方은 네 正方인 동‧서‧남‧북이고, 四隅는 네 間方인 동남간방‧서남간방‧서북간방‧동북간방이다.
역주3 : 점
역주4 除陌錢 : 물건을 매매할 때 거래량에 따라 관아에 납부하는 세금으로, 처음에는 1000전당 20文(전)을 납부하였는데 50文까지 증가하였다.
역주5 踐阼 : 《禮記》 〈文王世子〉에 “成王이 어려서 帝位에 오를 수가 없자, 周公이 재상이 되어 踐祚하여 다스렸다.”라고 하였는데, 註에 이르기를 “涖는 帝位에 임하여 살펴보는 것이고 踐은 밟음이니, 成王이 동쪽 섬돌을 밟고서 人君의 일을 행할 수가 없기에 周公이 대신 동쪽 섬돌을 밟고서 王位를 대리하여 천하를 다스린 것이다.” 하였다.
역주6 睿志 : 임금의 뜻을 이른다.
역주7 : 감
역주8 散試官 : 試는 아직 정식으로 임명받지 않은 것으로, 중요하지 않은 관직이나 임시로 임명하는 관직을 이른다.
역주9 胥徒 : 하급 관원, 즉 胥吏의 별칭이다.
역주10 : 조
역주11 輿皂 : 각 관서의 賤役에 종사하는 자들을 이른다.
역주12 : 삭
역주13 : 솔
역주14 上都 : 옛날에 下都와 상대하여 이르는 말로, 首都를 칭하여 上都라고 하였는바, 여기서는 長安을 가리킨다.
역주15 : 신
역주16 : 획
역주17 : 비
역주18 掣肘 : 철주
역주19 單父 : 선보
역주20 : 솔
역주21 : 거
역주22 : 비
역주23 : 염
역주24 左廂 : 左翼에 소속된 군대, 또는 그 군영을 이른다.
역주25 赦懷光 有五不可 : 李晟은 李懷光을 사면해서는 안 되는 다섯 가지 이유를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河中은 長安과의 거리가 겨우 300리이고 節度使의 治所가 있는 同州는 長安의 동북쪽에 위치한 요충지이니, 병력을 많이 주둔시키면 李懷光을 불신하는 것이 되고 병력이 적으면 충분히 방어하지 못하여 갑자기 동쪽 지방을 놀라게 할 것이니, 이렇게 되면 어떻게 제압하겠습니까. 이것이 첫 번째 불가한 이유입니다. 이제 李懷光을 사면한다면 반드시 그에게 晉州‧絳州‧慈州‧隰州를 돌려주어야 하는데, 폐하께서 渾瑊을 蒲絳節度使로, 康日知를 晉慈隰節度使로 임명하셨습니다. 이렇게 되면 渾瑊은 부임할 곳이 없게 되고 康日知는 다른 지역으로 바꾸어야 해서 장병들이 불안해 할 것이니, 장병들을 어떻게 장려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두 번째 불가한 이유입니다. 陛下께서 1년 동안 藩鎭들을 토벌하여 작은 무리들을 제거하시니 병력이 아직 곤궁하지 않은데, 대번에 李懷光의 반역한 죄를 사면하실 경우 이제 서쪽에는 吐蕃이 있고 북쪽에는 回紇이 있고 남쪽에는 淮西 지방을 점거하여 발호하는 李希烈이 있는데, 이들이 모두 우리 국가의 강함과 약함을 관망하려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李懷光을 사면할 경우 이들은 폐하께서 은덕을 베풀고 백성들을 사랑한다고 하지 않고 마침내 병력이 약하여 스스로 토벌을 중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니, 이것이 세 번째 불가한 이유입니다. 李懷光을 사면하면 奉天의 포위를 푸는데 공을 세운 朔方의 장병들에게 공훈의 등급에 따라 賞을 주어야 할 터인데 지금 국고가 텅비어 賞이 그들의 기대에 차지 않을 것이니, 이는 그들을 격노하여 배반하게 만드는 것으로, 이것이 네 번째 불가한 이유입니다. 이미 河中의 공격을 중지하고 諸道의 군대를 해산하면서 토벌에 동원된 장병들에게 賞典을 내리지 않는다면 원망하는 말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니, 이것이 다섯 번째 불가한 이유입니다.”
역주26 : 솔
역주27 : 의

통감절요(8)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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