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之制名은 必由象類하야 遠取諸物하고 近取諸身이라
故로 經謂君爲元首하고 臣爲股肱이라하니 明其一體相待而成也라
近觀漢相
하면 高祖開基
에 蕭曹爲冠
하고 孝宣中興
에 丙魏有聲
하니 是時
에 黜陟有序
하야 衆職修理
하며 公卿
이 多稱其位
하고 海內興於禮讓
하니 아
霸材長於治民이러니 及爲丞相하얀 功名이 損於治郡이러라
時
에 京兆尹張敞舍
雀
注+[釋義]本作鳻雀하니 大而色靑하니 出羌中이라 今俗謂鶡鷄者是라이 飛集丞相府
어늘 霸以爲神雀(爵)
이라하야 議欲以聞
이러니 後
에 知從敞舍來
하고 乃止
라
漢宣帝綜核名實하야 惡臣下欺己로되 而夷攷其行事하면 有名亡實이 尤甚하여 卒不免爲臣下所欺는 何哉오
夫人主嗜好를 不可偏也니 發於心術甚微로되 而趨和意旨하여 以相彌縫者多矣라
宣帝酷好祥瑞
하여 幾成僻(癖)
注+[頭註]僻은 癖通하니 嗜好之病也라矣
라
今宣帝之時
에 逆賊
注+[頭註]宣帝之時에 天地變異하고 刑殺過差하며 一歲之間에 子弟殺父兄하고 妻殺夫 至二百餘人하니라風雨災變
이 擾擾不已
하니 符瑞何從來哉
아
吾觀黃霸鶡雀事하면 知神爵五鳳黃龍間에 曰祥瑞云者는 大抵皆鶡雀類也니라
반고班固의 《한서漢書》 〈위상병길전魏相丙吉傳〉 찬贊에 말하였다.
“옛날에 이름을 지을 때에는 반드시 비슷한 상象을 따라서, 멀리는 물건에서 취하고 가까이는 자신에게서 취하였다.
그러므로 《서경書經》에 임금을 일러 원수元首라 하고 신하를 일러 고굉股肱이라 하였으니, 서로 한 몸처럼 필요로 하여(도와) 이룸을 밝힌 것이다.
이 때문에 군주와 신하가 서로 배합하는 것은 예와 지금의 변치 않는 떳떳한 도道이니, 자연自然의 형세이다.
근래에 한漢나라 정승을 살펴보면 고조高祖가 개국開國했을 때에 소하蕭何와 조참曹參이 으뜸이 되었고, 효선제孝宣帝가 중흥中興했을 때에 병길丙吉과 위상魏相이 명성을 남겼으니, 이때에는 관리들을 내치고 올리는 것이 순서가 있어서 여러 직책이 다스려졌으며, 공경公卿들이 그 지위에 걸맞는 자가 많았고 해내海內가 예의禮義와 겸양謙讓을 흥기하였으니, 그 행한 일을 보면 어찌 공연히 그렇게 된 것이겠는가.”
황패黃霸는 백성을 다스리는 데에 재주가 뛰어났는데, 승상丞相이 되어서는 공명功名이 군郡을 다스릴 때보다 못하였다.
이때
경조윤京兆尹 장창張敞의 집에 있는
분작鶡雀注+[釋義]분작鶡雀은 본래 반작鳻雀으로 쓰니 크고 색깔이 푸른 바, 강중羌中에서 나온다. 지금 세속에서 할계鶡鷄라고 이르는 것이 이것이다. 이 날아와
승상부丞相府에 앉자,
황패黃霸가
신작神爵이라고 여겨서 의논하여
천자天子에게 아뢰고자 하였는데, 뒤에
장창張敞의 집으로부터 날아온 것임을 알고는 이에 중지하였다.
그러나 한漢나라가 일어난 뒤로 백성을 잘 다스린 관리(지방관)를 말할 때에는 황패黃霸를 으뜸으로 삼았다.
“한漢나라 선제宣帝가 명名과 실實을 자세히 살펴서 신하들이 자신을 속이는 것을 미워하였으나 평소에 행한 일을 살펴보면 유명무실함이 더욱 심해서 끝내 신하들에게 기만당함을 면치 못하였으니, 이는 어째서인가?
군주는 기호嗜好를 편벽되게 해서는 안 되니,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매우 은미하나 군주의 뜻에 부화附和하여 서로 미봉彌縫하는 자가 많다.
선제宣帝는
상서祥瑞를 매우 좋아하여 거의
벽癖을 이루었다.
注+[頭註]벽僻은 벽癖과 통하니, 기호嗜好하는 병통이다.
소부少府인 송주宋疇가 봉황鳳凰이 경사京師에 내려오지 않았다고 비판한 일에 연좌되어 좌천左遷되었는데, 후일에 봉황鳳凰이 왕왕 모두 경사京師에 모여들었다.
신작神爵과 봉황鳳凰, 지초芝草와 감로甘露가 분분하게 어쩌면 이렇게도 많았는가.
생각건대 하늘이 도道를 아끼지 않고 땅이 보물을 아끼지 않은 것인가?
이제
선제宣帝 때에
역적逆賊과
풍우風雨의
재변災變이 분분히 일어나 그치지 않았으니,
注+[頭註]선제宣帝 때에 천지天地에 재변災變이 일어나고 형벌이 지나쳤으며, 1년 사이에 자제子弟가 부형父兄을 죽이고 아내가 남편을 죽인 것이 2백여 명에 이르렀다. 부서符瑞가 어디로부터 오겠는가.
내가 황패黃霸의 분작鶡雀의 일을 보면 신작神爵‧오봉五鳳‧황룡黃龍 연간에 상서祥瑞라고 말한 것은 대부분 모두 분작鶡雀과 같은 따위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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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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