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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9)

통감절요(9)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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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9)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甲申]〈後唐同光二年이라
갑신(924) - 후당後唐 동광同光 2년이다.
○ 是歲 岐降後唐하니 凡四國, 四鎭이라
○ 이해에 기왕岐王후당後唐에 항복하니, 모두 네 나라이고 네 이다. -
正月 唐以岐王注+[頭註]李茂貞이라 으로 改封秦王하다
정월에 당주唐主기왕岐王注+[頭註]기왕岐王이무정李茂貞이다. 진왕秦王으로 고쳐 봉하였다.
○ 二月 唐主祀南郊하고 大赦러니 郭崇韜首獻勞軍錢注+[附註]唐分天下財賦하야 爲內外府하야 州縣上供者 入外府하야 充經費하고 方鎭貢獻者 入內府하야 充宴賜 於是 外府虛竭하고 內府山積이러니 及是 乏勞軍錢이어늘 崇韜言於上曰 臣已傾家所有하야 以助大禮하니 願陛下亦出內府財하야 以賜有司하소서 唐主黙然久之라가 曰 吾晉陽 自有儲積하니 可令輦取以相助라하니라 十萬緡하다
2월에 당주唐主남교南郊에 제사 지내고 크게 사면령을 내렸는데, 곽숭도郭崇韜가 첫 번째로 노군전勞軍錢(군사들을 위로하는 돈)注+[附註]나라가 천하의 재물을 내부內府외부外府로 나누어 주현州縣에서 상공上供한 것은 외부外府에 넣어 국가의 경비經費에 충당하고, 방진方鎭에서 공물貢物로 바친 것은 내부內府에 넣어 임금의 연회宴會상사賞賜에 충당하였다. 이에 외부外府는 텅 비어 고갈되고 내부內府는 물건이 산처럼 쌓여있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노군전勞軍錢이 부족하자, 곽숭도郭崇韜에게 아뢰기를 “이 이미 소유한 가산家産을 모두 기울여 교사郊祀의 큰 를 도왔으니, 바라건대 폐하께서도 내부內府의 재물을 내어 유사有司에게 내리소서.”라고 하였다. 당주唐主가 묵묵히 한참 있다가 말하기를 “내가 진양晉陽에 따로 저축한 재물이 있으니, 조용사租庸使로 하여금 으로 실어와서 경비를 돕게 하겠다.” 하였다. 10만 을 바쳤다.
唐主內府之財山積호되 不肯給賜하고 曰 吾晉陽 自有儲積하니 可令租庸注+[頭註]租庸使 主運輸하니라 輦取以相助라하니
당주唐主내부內府의 재물이 산처럼 쌓였으나 군사들에게 내려주려고 하지 않으면서 말하기를 “내가 진양晉陽에 따로 저축한 재물이 있으니, 조용사租庸使로 하여금注+[頭註]조용사租庸使는 실어 나르는 것을 주관한다. 으로 실어와서 경비를 돕게 하겠다.”라고 하였다.
於是 軍士皆不滿望하야 始怨恨有離心矣러라
이에 군사들이 모두 자신들이 기대했던 것에 차지 못하여 비로소 원망하고 한하여 배반할 마음이 있었다.
○ 唐郭崇韜位兼將相注+[通鑑要解]崇鞱爲樞密使하고 加侍中領成德節樞密使하니 天下事無所不關이라 하고 復領節旄하야 以天下爲己任하니 權侔人主
나라 곽숭도郭崇韜가 장수와 재상의 지위를 겸하고注+[通鑑要解]곽숭도郭崇鞱추밀사樞密使로 임명하고 시중侍中 영성덕절도사領成德節度使 추밀사樞密使를 더하니, 천하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 바가 없었다. 다시 절도사의 절모節旄(符節)를 겸하여 천하를 자신의 임무로 삼으니, 권력이 인주人主와 대등하였다.
由是 嬖倖 疾之於內하고 勳舊怨之於外하니라
이 때문에 총애하는 환관들은 안에서 미워하고 훈구대신들은 밖에서 원망하였다.
○ 四月 秦忠敬王李茂貞卒할새 遺奏하야 以其子繼으로 權知鳳翔軍府事하다
4월에 나라 충경왕忠敬王 이무정李茂貞이 죽을 적에 유표遺表를 올려 아들 계엄繼曮권지봉상군부사權知鳳翔軍府事로 삼게 하였다.
○ 契丹 〈肖阿古只 寇唐幽蔚州하니라〉唐遣李嗣源하야 鎭成德禦之하다
거란契丹 - 초아고지肖阿古只나라 유주幽州울주蔚州를 침략하였다. - 나라가 이사원李嗣源을 보내어 성덕成德에 주둔하여 막게 하였다.
역주
역주1 : 엄

통감절요(9)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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