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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5)

통감절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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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酉]〈魏咸熙二年이요 晉世祖司馬炎泰始元年이요 吳甘露元年이라
을유(265) - 나라 함희咸熙 2년이고, 나라 세조世祖 사마염司馬炎태시泰始 원년元年이고, 나라 감로甘露 원년元年이다.
○ 是歲 魏亡晉代하니 凡二國이라
○ 이해에 나라가 망하고 나라가 대신하니, 모두 두 나라이다.〉
八月 魏晉王昭卒하고 太子炎 嗣爲相國, 晉王하다
8월에 나라 진왕晉王 사마소司馬昭가 죽고, 태자太子 사마염司馬炎이 뒤를 이어 상국相國진왕晉王이 되었다.
○ 冬 吳主徙都武昌하다
○ 겨울에 오주吳主가 도읍을 무창武昌으로 옮겼다.
○ 十二月 魏主禪位于晉王하니 卽皇帝位하고 奉魏主爲陳留王하다
○ 12월에 위주魏主진왕晉王에게 선위禪位하니, 진왕晉王이 황제의 지위에 오르고 위주魏主를 받들어 진류왕陳留王으로 삼았다.
右魏 五主 共四十六年이라
이상 나라는 다섯 군주에 모두 46년이다.
歷年圖曰
역년도歷年圖》에 말하였다.
漢室不綱 群雄糜擾하야 乘輿播蕩하야 莫之收省이어늘 太祖獨奉迎而相之하야 披荊棘注+[頭註]喩難也以立朝廷하니 則其名義固足以結民心矣
나라 황실皇室이 기강을 잃자 여러 영웅들이 어지럽게 소요해서 승여乘輿(황제)가 파천하여 거두고 살피는 이가 없었는데, 태조太祖(曹操)가 홀로 받들어 황제를 맞이하여 도와서 고난苦難注+[頭註]형극荊棘은 어려움을 비유한 것이다. 을 헤치고 조정朝廷을 세우니, 그 명분과 의리가 진실로 민심民心을 결속시킬 수가 있었다.
加之英威明略 過絶於人하야 驅策賢豪하야 糞除注+[通鑑要解] 掃除也奸宄
게다가 영명英明한 위엄과 지략이 보통 사람보다 크게 뛰어나서, 현자와 호걸들을 몰고 부려서 간사한 자들을 제거注+[通鑑要解]은 소제하는 것이다. 하였다.
於是 張綉屈膝注+[附註]張綉 祖厲人이라 麴勝 殺祖厲長하니 綉爲縣吏라가 間伺殺勝이라 郡內義之하니 遂招合少年하야 爲邑中豪傑이라 屯宛하야 與劉表合이러니 魏太祖南征하니 綉擧衆降하니라하고 呂布注+[頭註]見上二十二卷丙子年이라授首하고 公路注+[頭註]袁術字野死하고 本初注+[頭註]袁紹字覆亡하고 劉琮獻地하고 韓, 馬注+[頭註]韓遂, 馬超 漢獻帝辛卯年 魏祖擊破하니라 超奔備하고 遂爲下所殺이라遁逃하야 中原肅淸하고 戎狄請服하니 然則魏取天下於群盜 非取之於漢室也
이에 장수張綉가 무릎을 꿇고注+[附註]장수張綉조려祖厲 사람이다. 국승麴勝조려祖厲을 죽이자, 장수張綉가 이때 의 아전으로 있다가 틈을 엿보아 국승麴勝을 죽였다. 안의 사람들이 이를 의롭게 여기니, 장수張綉가 마침내 소년少年들을 불러 모아 안의 호걸이라 하였다. 〈무리를 이끌고〉 땅에 주둔해서 유표劉表와 연합하였는데, 태조太祖(曹操)가 남쪽을 정벌하니 장수張綉가 무리를 데리고 항복하였다. 여포呂布注+[頭註]여포呂布는 앞의 22권 병자년조丙子年條(196)에 보인다. 가 머리를 내주었으며, 공로公路(袁術)注+[頭註]공로公路원술袁術이다. 가 들에서 죽고 본초本初(袁紹)注+[頭註]본초本初원소袁紹이다. 가 패망하였으며, 유종劉琮이 땅을 바치고 한수韓遂마초馬超注+[頭註]한수韓遂마초馬超이니, 나라 헌제獻帝 신묘년(211)에 태조太祖가 격파하였다. 뒤에 마초馬超유비劉備에게 망명하였고, 한수韓遂는 아랫사람에게 살해당하였다. 가 도망하여 중원中原이 깨끗해지고 오랑캐들이 복종하기를 청하였으니, 그렇다면 나라는 천하天下를 여러 도둑들에게서 취한 것이요, 나라 황실에서 취한 것이 아니다.
惜其狹中多詐하야 猜忌賢能하니 此海內所以不盡服也
애석하게도 마음이 좁고 속임수가 많아서 덕이 있는 자와 유능한 자를 시기하였으니, 이것이 온 천하가 다 복종하지는 않았던 이유이다.
及文帝注+[頭註]曹丕受禪하고 明帝注+[頭註]曹叡繼業하야 內綏外禦하야 不廢前功이러니 而明帝於彌留注+[頭註]病彌甚而留連也 之際 爲奸臣注+[頭註]司馬懿牽率이라
문제文帝(曹丕)注+[頭註]문제文帝조비曹丕이다. 선위禪位를 받고 명제明帝(曹叡)注+[頭註]명제明帝조예曹叡이다. 가 기업을 잇게 되자, 안으로는 백성들을 편안히 하고 밖으로는 적을 막아서 예전의 공을 실추시키지 않았는데, 명제明帝가 병이 오래 낫지 않을注+[頭註]미류彌留는 병이 갈수록 심해지고 낫지 않는 것이다. 때에 간신(司馬懿)注+[頭註]간신奸臣사마의司馬懿이다.에게 제재를 당하였다.
嗣子幼弱하고 寄託非人하며 曹爽驕戇하고 黨(友)[與]輕佻注+[頭註] 薄也하야 禍自內興하야 遂衰微不振하야 하니 悲夫
사자嗣子(曹芳)는 어리고 국정을 나쁜 사람(司馬懿)에게 맡겼으며, 조상曹爽은 교만하고 어리석으며 당여黨與는 경솔注+[頭註]는 경박함이다. 해서, 가 안으로부터 일어나 마침내 쇠미하고 떨치지 못해서 왕조가 바뀌는 데에 이르렀으니, 슬프다.”
[史略 史評]愚按 有魏之興 實自操始
[史略 사평史評]내(劉剡)가 살펴보건대 나라가 일어남은 실로 조조曹操로부터 시작되었다.
曹丕 因而簒漢 如拾芥然하고 明帝 性雖明敏이나 而好土功하니 其衰微之兆 已見矣 邵陵孤幼 寄托非人하야 陵遲至陳留하야 而晉人取之亦不難 何歟
조비曹丕는 인하여 나라를 찬탈하는 것을 지푸라기를 줍듯이 쉽게 하였고, 명제明帝는 비록 성품이 명민하였으나 토목공사를 좋아하여 쇠미할 조짐이 이미 나타났으며, 소릉여공邵陵厲公(曹芳)은 어린 고아로 국정을 나쁜 사람(司馬懿)에게 맡겨서 침체하여 진류왕陳留王(曹奐)에 이르러서는 나라 사람이 또한 쉽게 차지하였으니, 이는 어째서인가?
曹操以亂世之奸雄으로 乘漢室之衰弱하야 欺人孤兒寡婦하야 狐媚以取天下하니 原情定罪하면 直巨盜耳
조조曹操난세亂世간웅奸雄으로 나라 황실이 쇠약함을 틈타서 남의 고아와 과부들을 속여 여우처럼 간사하게 천하를 취하였으니, 그 실정을 따져 죄를 정한다면 단지 큰 도둑일 뿐이다.
以此創業하야 亦以此亡하니 豈無天道哉
이로써 창업創業하여 또한 이로써 망하였으니, 어찌 천도天道가 없겠는가.
傳曰 라하니 爲人臣而懷姦幸釁하야 竊人宗社者 尙鑒于玆어다
옛 책에 이르기를 “너에게서 나온 것이 너에게로 돌아간다.” 하였으니, 신하가 되어 간사한 마음을 품고 나라에 가 있는 것을 요행으로 여겨서 남의 종묘사직을 도둑질하는 자들은 부디 이것을 거울로 삼을지어다.
晉主承魏氏刻薄奢侈之後하야 欲矯以仁儉注+[釋義] 以{謂}正其曲也이러니 有司言御牛靑絲注+[釋義]王氏曰 紖 著牛鼻繩이니 所以牽牛者 以靑絲爲之[頭註]記祭統 迎牲하여 君執紖〈注 所以牽牲也〉라하니라 이라하야늘 詔以靑麻代之하다
이때 진주晉主나라의 각박하고 사치한 정사의 뒤를 이어서 인자함과 검소함으로 바로잡고자注+[釋義]는 굽은 것을 바로잡는 것이다. 하였는데, 유사有司가 황제의 제사에 사용하는 소인 어우御牛의 청색 명주실로 만든 코뚜레 끈注+[釋義]王氏가 말하기를 “은 소의 코에 꿰는 끈이니, 소를 끄는 것인 바, 청색 명주실로 만든다.” 하였다.[頭註]《예기禮記》 〈제통祭統〉의 ‘희생犧牲을 맞이하여 군주가 희생犧牲의 고삐를 잡는다.’는 경문經文에 “희생犧牲을 끌어당기는 것이다.” 하였다. 이 끊어졌다고 말하자 청색 삼끈으로 대신하라고 명하였다.
○ 晉 初置諫官하고 以傅玄爲之하니 以魏末士風頹敝라하야 上疏曰
나라가 처음에 간관諫官을 두고 부현傅玄간관諫官으로 삼으니, 부현傅玄나라 말기에 선비들의 기풍이 무너졌다 하여 상소하기를
聞先王之御天下 敎化隆於上하고 淸議行於下러니
“신은 들으니, 선왕先王이 천하를 다스릴 때에는 교화敎化가 위에 높고 깨끗한 의논이 아래에 행해졌는데,
近者 魏武好法術하야 而天下貴刑名하고 魏文 慕通達하야 而天下賤守節하니
근자에는 나라 무제武帝법술法術을 좋아하여 천하 사람들이 형명刑名을 귀하게 여기고 나라 문제文帝통달通達함을 사모하여 천하 사람들이 절개를 지키는 것을 천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其後 綱維不攝注+[頭註] 整也하고 放誕盈朝注+[頭註]放誕 謂何晏, 阮籍輩也하야 遂使天下 無復淸議니이다
그 뒤로 강유綱維(紀綱)가 제대로 잡히지 않고注+[頭註]은 가지런함이다. 방탄放誕한 자들이 조정에 가득하여注+[頭註]방탄放誕하안何晏완적阮籍 같은 무리를 이른다. 마침내 천하로 하여금 다시는 깨끗한 의논이 없게 하였습니다.
陛下龍興受禪하사 弘堯, 舜之化하시되 惟未擧淸遠有禮之臣하야 以敦風節하시고 未退虛鄙之士하야 以懲不恪하시니
폐하께서는 왕업王業을 일으켜 선양禪讓을 받으셔서 의 교화를 넓히셨으나 오직 식견이 깨끗하고 원대하며 가 있는 신하를 천거해서 풍절風節을 돈독히 하지 못하시고 허황하고 비루한 선비를 물리쳐서 삼가지 않는 자를 징계하지 못하시니,
是以 猶敢有言하노이다
신이 이 때문에 오히려 감히 말씀을 올리는 것입니다.” 하였다.
晉主嘉納其言이나 然亦不能革이러라
진주晉主가 그 말을 가상히 여겨 받아들였으나 또한 개혁하지 못하였다.
역주
역주1 嗣子幼弱……以至易姓 : 嗣子 曹芳은 魏나라 明帝의 養子로서 8세에 즉위하였다. 曹爽과 司馬懿로 하여금 輔政하게 하였는데, 뒤에 司馬懿는 군대를 일으켜 曹爽 등을 죽이고 국정을 전횡하다가 손자 司馬炎에 이르러 晉을 건립하였다.
역주2 出乎爾者 反乎爾者 : 이 내용은 《孟子》 〈梁惠王 下〉에 보인다.
역주3 : 뒤틀린 활을 바로잡는 도구인 도지개를 이른다.
역주4 : 진

통감절요(5)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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