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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7)

통감절요(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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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7)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癸未]二年이라
春正月에 安祿山이 入朝어늘 上이 寵待甚厚하야 謁見無時러라
〈出本傳〉
○ 李林甫領吏部尙書하야 日在政府注+[頭註]政府는 政事堂이라 하고 選事를 悉委侍郞宋遙, 苗晉卿하다
御史中丞張倚 新得幸於上하니 遙, 晉卿이 欲附之라
時에 選人集者以萬計러니 入等者六十四人에 倚子奭이 爲之首하니 群議이라
祿山이 入言於上한대 上이 悉召入等人하야 面試之하니 奭이 手持試紙하고 終日不成一字라
時人이 謂之이라하니라
〈出本傳〉


천보天寶 2년(계미 743)
봄 정월에 안녹산安祿山이 조정에 들어오자, 상上이 총애하여 매우 후대해서 무시無時로 알현하게 하였다.
- 《당서唐書안녹산전安祿山傳》에 나옴 -
이임보李林甫가 이부상서吏部尙書를 겸임하고는 날마다 정사당政事堂에 있고,注+[頭註]정부政府는 정사당政事堂이다. 선비를 선발하는 일은 시랑侍郞송요宋遙와 묘진경苗晉卿에게 위임하였다.
어사중승御史中丞장의張倚가 상上에게 새로 총애를 받으니, 송요宋遙와 묘진경苗晉卿이 그에게 붙고자 하였다.
이때 선인選人(선발에 응시한 사람)으로 모인 자가 만으로 헤아릴 정도였는데, 급제한 자 64명 중에 장의張倚의 아들 석奭이 수석을 차지하니, 여론이 분분하였다.
안녹산安祿山이 들어와 상上에게 아뢰자, 상上이 급제한 사람들을 불러 면전에서 시험하였는데, 장석張奭이 손에 시험지를 쥐고 종일토록 한 글자도 이루지 못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그를 일러 예백曳白이라 하였다.
- 《당서唐書묘진경전苗晉卿傳》에 나옴 -


역주
역주1 沸騰 : 비등
역주2 曳白 : 시험지를 白紙로 내는 것을 이른다.

통감절요(7) 책은 2022.01.1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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