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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7)

통감절요(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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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巳]二年이라
총장總章 2년(기사 669)
壽張人張公藝 九世同居하니 齊, 隋, 唐 皆旌表其門이러라
수장壽張 사람 장공예張公藝는 9대가 함께 사니, 나라‧나라‧나라 때 모두 그의 문에 정표하였다.
過壽張이라가 幸其宅하야 問所以能共居之故한대 公藝書忍字百餘하야 以進이어늘 善之하야 賜之縑帛注+[頭註] 絹也 하다
수장壽張을 지나다가 그의 집에 행차하여 9대가 함께 잘 사는 연고를 묻자, 장공예張公藝가 백여 개의 인자忍字를 써서 올리니, 이 좋게 여겨 비단을 하사하였다.注+[頭註]은 비단이다.
○ 以雍州長史盧承慶으로 爲司刑太常伯하다
옹주장사雍州長史 노승경盧承慶사형태상백司刑太常伯으로 삼았다.
承慶 嘗考內外官이러니 有一官督運이라가 遭風失米어늘 承慶 考之曰 監運損粮하니 考中下로다
노승경盧承慶이 일찍이 내외의 관원들을 고과考課하였는데, 한 관원이 곡식을 운반하는 일을 감독하다가 풍랑을 만나 쌀을 잃자, 노승경盧承慶이 고과하기를 “곡식 운반을 감독하다가 양식을 잃었으니 고과가 중하中下이다.” 하였다.
其人 容色自若하고 無言而退어늘 承慶 重其雅量하야 改注曰 非力所及이니 考中中이로다
그런데 그 사람이 안색이 태연자약한 채 아무 말 없이 물러가자, 노승경盧承慶이 그 아량을 소중하게 여겨 평하는 말을 고쳐 달기를 “곡식 운반하는 일을 감독하다가 풍랑을 만나 양식을 잃은 것은 자신의 힘으로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니, 고과가 중중中中이다.” 하였다.
旣無喜容하고 亦無愧詞어늘 又改曰 寵辱不驚하니 考中上이로다
이윽고 그가 기뻐하는 기색도 없고 부끄러워하는 말도 없자, 노승경盧承慶이 또다시 고쳐 쓰기를 “영욕에 놀라지 않으니 고과가 중상中上이다.” 하였다.
○ 李勣 寢疾이어늘 子弟爲之迎醫한대 皆不聽曰 吾本山東田夫 遭値聖明하야 致位三公하고 年將八十이니 豈非命耶
이적李勣이 병이 위독해지자 자제들이 그를 위하여 의원을 맞이해 올 것을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으며 말하기를 “나는 본래 산동山東의 농부였는데, 성명聖明한 군주를 만나 삼공三公의 지위에 이르고 나이가 장차 80이 되어 가니, 어찌 천명이 아니겠는가.
脩短有期하니 豈能復就醫工求活이리오
장수하고 단명하는 것은 정해진 기한이 있으니, 어찌 다시 의원에게 나아가 살기를 구하겠는가.” 하였다.
一旦 忽謂其弟弼曰 我見房, 杜平生勤苦하야 僅能立門戶러니 遭不肖子注+[頭註]하야 蕩覆無餘
어느 날 아침에 갑자기 그 아우 이필李弼에게 이르기를 “내가 보니 방현령房玄齡두여회杜如晦는 평생동안 애써서 겨우 문호門戶를 세웠는데, 불초한 자손을注+[頭註]불초자不肖子방유애房遺愛두하杜荷이다. 만나 탕진하고 전복되어 남은 것이 없다.
吾有此子孫하니 謹察視之하야 其有志氣不倫하고 交遊非類어든 皆先撾殺注+[釋義]言擊殺之也 然後以聞하라하고 自是 不復更言하다
내가 이 자손들을 두었으니, 삼가 살펴보아서 지기志氣가 형편없고 나쁜 사람과 교유하는 자가 있거든 모두 먼저 쳐서 죽인注+[釋義]과살撾殺은 쳐서 죽이는 것을 말한다. 후에 아뢰라.” 하고는 이후로는 다시 말하지 않았다.
十二月하니 起冢할새 象陰山, 鐵山, 烏德鞬山하야 以旌其破突厥, 薛延陀之功하다
12월에 이적李勣이 죽으니, 무덤을 조성할 적에 음산陰山철산鐵山오덕건산烏德鞬山을 본떠서 그가 돌궐突厥설연타薛延陀를 격파한 공로를 표하였다.
[新增]范氏曰
[新增]范氏가 말하였다.
房, 杜事君以忠하니 其子孫不肖하야 覆宗絶祀 出於不幸이요 非其積不善也
방현령房玄齡두여회杜如晦는 군주를 충심으로 섬겼으니, 그 자손들이 불초하여 종족이 전복되고 제사가 끊긴 것은 불행함에서 나온 것이요, 불선을 쌓았기 때문이 아니다.
李勣 하야 罪不容誅하니 幸矣어늘
이적李勣은 한 마디 말로 나라를 망하게 하여 죄가 주벌당해도 용서받을 수가 없으니, 창문 아래에서 편안히 죽은 것만 해도 다행이다.
乃以房, 杜爲戒하니 可謂不能省己者矣
그런데 도리어 방현령房玄齡두여회杜如晦를 경계로 삼았으니, 자신을 살피지 못한 자라고 이를 만하다.
하야 骨肉之親無絶也어늘 而使殺之 何異於夷貊이리오
부자간은 으로 책하지 아니하여 골육간骨肉間의 친함이 끊어지지 않게 하는 법인데, 사람을 시켜 자식을 죽이게 한다면 어찌 오랑캐와 다르겠는가.
豈所以爲訓乎
어찌 교훈이 될 수 있겠는가.”
爲將 有謀善斷하고 與人議事 從善如流하고 戰勝則歸功於下하야 所得金帛 悉散之將士
이적李勣이 장수였을 때에 지모智謀가 있고 결단을 잘하였으며, 사람들과 일을 의논할 적에 다른 사람의 선언善言을 따르기를 물 흐르듯이 하였으며, 전쟁에서 이기면 공로를 아랫사람에게 돌려서 얻은 과 비단을 모두 장병들에게 나누어주었다.
人思致死하야 所向克捷이러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사력死力을 다할 것을 생각하여 향하는 곳마다 승리하였다.
臨事選將 必訾相注+[頭註] 量也 視也 其狀貌豐厚者하야 遣之어늘
일에 임하여 장수를 선발할 적에 반드시 그 장모狀貌(용모)가注+[頭註]는 헤아림이요, 은 살핌이다. 살이 쪄서 풍만한 자를 살펴보아 보내었다.
或問其故한대 勣曰 薄命之人 不足與成功名이라하니라
혹자가 그 이유를 묻자, 이적李勣이 말하기를 “운명이 기박한 사람은 더불어 공명功名을 이룰 수가 없다.” 하였다.
閨門 雍睦而嚴注+[通鑑要解]雍睦 雍和也 이라
이적李勣규문閨門이 화목하고 엄격하였다.注+[通鑑要解]옹목雍睦은 화목함이다.
其姊嘗病 已爲僕射로되 親爲之煮粥이라가 風回注+[釋義]燒也 하니
그 누이가 일찍이 병을 앓자, 이적李勣이 이미 복야僕射가 되었으나 직접 누이를 위하여 죽을 끓이다가 바람이 불어 그의 수염과 귀밑머리를 태웠다.注+[釋義]은 태움이다.
姊曰 僕妾 幸多어늘 何自苦如是 勣曰 非爲無人使令也
누이가 말하기를 “종과 첩이 다행히 많은데, 어찌하여 스스로 고생하기를 이와 같이 하는가?” 하니, 이적李勣이 말하기를 “시킬 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注+[頭註]念也 姊老하고 勣亦老하니 雖欲久爲姊煮粥이나 其可得乎
생각해보건대注+[頭註]는 생각함이다. 누님이 늙었고 나 또한 늙었으니, 내 비록 오래도록 누님을 위하여 죽을 끓이고자 하나 어찌 될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嘗謂人호되 我十二三時 爲無賴注+[附註]小兒多詐狡曰無賴 又賴 利也 謂無利入於家曰 無賴 又俚語 奪攘苟得하야 無愧恥者 爲無賴 又賴 恃也 하야 逢人則殺하고
이적李勣은 일찍이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십이 삼 세 때에는 무뢰無賴한 도적이 되어서注+[附註]소아小兒가 속임수와 교활한 술수가 많은 것을 무뢰無賴라 한다. 또 는 이로움이니, 이로움이 집에 들어옴이 없는 것을 무뢰無賴라 한다. 또 속담에 남의 것을 빼앗아 구차히 얻고서 부끄러워함이 없는 자를 무뢰無賴라 한다. 또 는 믿음이다. 사람을 만나면 죽이곤 하였고,
十四五 爲難當賊하야 有不愜意則殺之하고
십사 오 세 때에는 상대하기 어려운 도적이 되어서 마음에 만족스럽지 않은 일이 있으면 사람을 죽였고,
十七八 爲佳賊하야 臨陳乃殺人하고
십칠 팔 세 때에는 좋은 도적이 되어서 적진에 임해야 비로소 사람을 죽였고,
二十 爲大將하야 用兵以救人이로라
이십 세 때에는 대장이 되어서 군대를 운용하여 사람을 구원했노라.” 하였다.
○ 時 承平旣久하야 選人益多
이때 태평한 지가 이미 오래되어 과거에 응시하는 자가 더욱 많았다.
是歲 司(刑)[列]少常伯注+[通鑑要解]目則刑字作列하니 司列少常伯 卽吏部侍郞이라 裴行儉 始與員外郞張仁禕 設長名姓歷榜하고 引銓注之法하며 又定州縣升降, 官資高下하니 其後 遂爲永制하야 無能革之者러라
이해에 사열소상백司列少常伯注+[通鑑要解](刑)[列]少常伯司列少常伯:《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에는 ‘’자가 ‘’자로 되어 있으니 사열소상백司列少常伯은 곧 이부시랑吏部侍郞이다. 배행검裴行儉이 처음으로 원외랑員外郞 장인의張仁禕와 함께 장명성력방長名姓歷榜을 만들고 전주銓注하는 법을 인용하였으며, 또 주현州縣의 관리를 올리고 내리며 품계를 높이고 낮추는 기준을 정하니, 이후로 마침내 영원한 제도가 되어서 이것을 개혁하는 자가 없었다.
大略 唐之選法 取人身言書判注+[釋義]唐制 擇人之法 有四하니 一曰身이니 體貌豐偉 二曰言이니 言辭辨正이요 三曰書 楷法(適)[遒]美 四曰判이니 文理優長이라 四事皆可取하면 則先德行하니 見選擧志하니라 으로 計資量勞而擬官호되 始集而試하야 觀其書判하고 已試而銓하야 察其身言하고 已銓而注하야 詢其便利하고 已注而唱하며 集衆告之하야 各給以符하고 謂之告身이라하니라
당나라에서 인재를 선거하는 방법은 대략 사람을 뽑을 적에 (체모)‧(언사)‧(서법)‧(문리)으로注+[釋義]당지선법唐之選法 취인이신언서판取人以身言書判:나라의 제도에 인재를 선발하는 방법이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이니 체모가 풍후하고 큰 것이요, 두 번째는 이니 말이 분명하고 바른 것이요, 세 번째는 해서楷書를 쓰는 법이 굳세고 아름다운 것이요, 네 번째는 이니 문리文理가 뛰어난 것이다. 네 가지 일이 다 취할 만하면 덕행을 우선하였으니, 이는 《신당서新唐書》 〈선거지選擧志〉에 보인다. 품계의 고저를 계산하고 공로를 헤아려 관직에 의망하되 처음에는 모집하여 시험해서 그의 을 관찰하고, 시험한 뒤에는 전형銓衡하여 그의 을 관찰하고, 전형銓衡한 뒤에는 적당한 자리에 의망擬望하여 그의 특장特長을 물어보고 이미 의망한 뒤에는 이름을 부르며, 사람들을 모아서 전형의 결과를 말해준 다음 각각 부첩符牒(증명서)을 발급하고 이를 일러 고신告身이라 하였다.
역주
역주1 房遺愛 杜荷 : 房遺愛는 房玄齡의 次子로 高陽公主에게 장가들었는데, 뒤에 공주와 함께 반역을 도모하다가 주벌당하였다. 杜荷는 杜如晦의 아들로 城陽公主에게 장가들었는데, 太宗 貞觀 연간에 태자 李承乾과 함께 반역을 도모하다가 주벌당하였다.
역주2 一言喪邦 : 高宗 永徽 5년(654)에 武昭儀를 황후로 세우는 문제로 인해 褚̌遂良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히자, 高宗은 이 일을 李勣에게 물었는데, 李勣은 “이는 폐하의 집안일이니 외부 사람에게 물을 것이 없다.”고 대답함으로써 마침내 武氏가 황후가 된 일을 말한다.
역주3 得死牖下 : 《儀禮》 〈士喪禮〉에 “適寢의 방에서 죽으면 시신을 斂衾으로 덮는다.[死于適室 幠用斂衾]” 하였는데, 鄭玄의 注에 “앓을 때에는 방의 북쪽 벽 아래에 처하고 죽은 뒤에는 창 아래로 옮긴다.[疾時處北庸下 死而遷之當牖下]” 하였다. 뒤에 牖下는 임종하는 正寢을 가리키는데, 여기에서는 천수를 누리고 죽은 것을 말한다.
역주4 父子不責善 : 《孟子》 〈離婁 上〉에 “부자간에는 선으로 책하지 않는 것이니, 선으로 책하면 정이 떨어지게 된다. 정이 떨어지면 상서롭지 못함이 이보다 더 큼이 없다.[父子之間不責善 責善則離 離則不祥莫大焉]”는 내용이 보인다.
역주5 : 설
역주6 司列少常伯 : 司刑少常伯은 刑部侍郞이며, 司列은 吏部로 太常伯은 尙書(判書)이고 少常伯은 侍郞이다.

통감절요(7)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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