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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2)

통감절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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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亥]十四年이라
14년(을해 B.C.166)
匈奴老上單于十四萬騎 入朝那, 蕭關注+[釋義]朝那 縣名이니 屬河西安定郡하니 括地志 故城 在原州百泉縣西七十里 蕭關 秦北關也 在上郡北이라 括地志 今靈武 卽古蕭關也하야 殺北地都尉注+[釋義]北地 本春秋義渠戎國이니 秦置北地郡하고 屬雍州하니 今寧, 涇, 慶三州 皆北地也 都尉 佐郡守하야 典武職甲卒이라 按史 都尉 姓孫, 名卬이라하고 遂至彭陽이어늘
겨울에 흉노匈奴노상선우老上單于가 14만 기병으로 조나朝那소관蕭關注+[釋義]조나朝那현명縣名이니, 하서河西 안정군安定郡에 속하는 바, 《괄지지括地志》에 “옛 원주原州 백천현百泉縣 서쪽 70리에 있다.” 하였다. 소관蕭關나라 북관北關이니, 상군上郡의 북쪽에 있었다. 《괄지지括地志》에 “지금의 영무靈武가 바로 옛날 소관蕭關이다.” 하였다. 침입하여 북지도위北地都尉注+[釋義]북지北地는 본래 춘추시대春秋時代 오랑캐 나라인 의거義渠이니, 나라가 북지군北地郡을 설치하고 옹주雍州에 소속시켰는 바, 지금의 영주寧州, 경주涇州, 경주慶州가 모두 북지北地이다. 도위都尉는 군수를 보좌하여 무관직武官職갑졸甲卒을 주관하였다. 역사책을 살펴보면 이때의 북지도위北地都尉는 성이 이고 이름이 이다. 살해하고 마침내 팽양彭陽에 이르렀다.
親勞軍하고 自欲征匈奴러니 皇太后固要注+[釋義] 劫也 如淳曰 固要必不得自征也한대 乃止하다
이 친히 군대를 위로하고 직접 흉노匈奴를 정벌하고자 하였는데, 황태후皇太后가 굳이 만류하자注+[釋義]는 강요함이다. 여순如淳이 말하였다. “굳이 스스로 정벌하지 말기를 강요한 것이다.” 비로소 중지하였다.
於是 以張相如 爲大將軍하야 擊之하니 逐出塞하고 卽還하다
이에 장상여張相如대장군大將軍으로 삼아 흉노匈奴를 공격하게 하니, 흉노匈奴를 축출하여 변경으로 내보내고 즉시 돌아왔다.
주보朱黼가 말하였다.
文帝於備邊一事 未嘗少忽이라
문제文帝는 변방을 대비하는 한 가지 일에 있어 소홀히 한 적이 없었다.
雖恬靜玄黙이나 而躬騎射之習하고 雖慈祥淡泊이나 而甘遊畋之娛하며 雖尊禮大臣이나 而方正常侍之士 日與馳逐하고 雖勤恤民隱이나 而六郡注+[頭註]隴西, 天水, 安定, 北地, 上郡, 西河良家之子 悉皆調集하며 雖愛惜財用이나 而繕修城堡하야 未嘗靳費하고 衛軍罷矣 而廣武之兵猶聚也 苑囿弛矣 而上林之射不息也하며
비록 성품이 편안하고 고요하고 조용히 침묵하였으나 말 타고 활쏘는 익힘을 몸소 행하였고, 비록 자상하고 담박하였으나 유람하고 사냥하는 즐김을 좋아하였으며, 대신大臣들을 높이고 예우하였으나 방정方正하여 항상 모시는 선비들과 날로 말을 달려 사냥을 하였고, 비록 백성들의 고통을 지극히 걱정하였으나 육군六郡注+[頭註]육군六郡농서隴西천수天水안정安定북지北地상군上郡서하西河이다. 양가良家 자제들을 모두 징발하여 집합시켰으며, 비록 재물을 아꼈으나 보루堡壘를 수리하여 일찍이 비용을 아끼지 않았고, 호위병을 파하였으나 광무廣武에 군대를 오히려 모았으며, 원유苑囿를 풀어주었으나 상림원上林苑의 활쏘기를 그치지 않았다.
高祛一言李齊之賢 每飯不忘하고 馮唐一論頗牧之善 拊髀注+[頭註] 音卑 又音陛 股之外也 拊之者 有所激然耳稱嘆하며 晁(鼂)錯一奏邊事 璽書褒美하고 請徙民守塞 則募徙民하고 請入粟實邊이면 則詔入粟하야
고거高祛이제李齊의 어짊을 한번 말하자 밥을 먹을 때마다 이것을 잊지 못하였고, 풍당馮唐염파廉頗이목李牧의 훌륭함을 한번 논하자 무릎을 치며注+[頭註]는 음이 비이고 또 음이 폐이니, 다리의 바깥쪽이다. 다리를 치는 것은 격한 바가 있어 그러한 것이다. 칭찬하였고, 조조晁錯가 변방의 일을 한번 아뢰자 친서親書로 칭찬하였으며, 백성들을 옮겨 변방을 지킬 것을 청하자 즉시 백성들을 모집하여 옮겼고 곡식을 바쳐 변경을 충실히 할 것을 청하자 곡식을 바치도록 명하였다.
凡二十三年之間 其商略區畫 舍(捨)農桑外 所深注意者 獨邊事而已
그리하여 무릇 재위한 23년 동안에 계획하고 조처한 것이 농상農桑(농업과 양잠)을 제외하고는 깊이 유념한 것이 유독 변방의 일 뿐이었다.
이나 其卑辭屈己하야 歲致金繒하야 與犬羊結好者 豈得已哉
그러나 말을 공손히 하고 몸을 굽혀서 해마다 과 비단을 바쳐 흉노匈奴와 우호를 맺는 것을 어찌 그만둘 수 있었겠는가.
帝亦度匈奴桀驁之勢 未可以遽服이요 而瘡痍甫定之民 未可以遽用이라
문제文帝 또한 흉노匈奴의 거만한 형세를 대번에 굴복시킬 수 없고, 전쟁의 상처에서 겨우 진정된 백성들을 대번에 동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雖外爲和親之禮 而實在內 未嘗輕棄自治之策이라
그러므로 비록 밖으로 화친和親하는 를 하였으나 실제로는 안에서 자치自治하는 계책을 한번도 가볍게 버리지 않은 것이다.
帝于是 憤怒激烈하고 銳志雪恥하야 屯兵三郡하고 親御六飛注+[頭註]天子駕六馬하니 六馬之疾若飛 故曰六飛하야 勞軍勒兵注+[頭註] 猶戒嚴也 凡治行李曰戒嚴이라하야 申敎令하고 賜士卒하야 必欲躬自北伐하야
문제文帝가 이에 분노憤怒가 격렬하고 설욕雪辱하려는 마음이 가득하여 삼군三郡에 군대를 주둔시키고는 친히 육마六馬注+[頭註]천자天子의 수레는 여섯 필의 말을 멍에 하니, 말 여섯 마리의 빠르기가 나는 것과 같으므로 육비六飛라 한 것이다. 몰고 가서 군대를 위로하고 군사들을 무장시켜서注+[頭註]계엄戒嚴과 같으니, 무릇 행장을 챙기는 것을 계엄戒嚴이라 한다. 교령敎令을 밝히고 사졸士卒들에게 상을 주어 반드시 직접 북벌北伐을 하고자 하였다.
雖群臣之諫이나 不聽하니 豈非仁者之勇哉
그리하여 비록 여러 신하들이 간하였으나 듣지 않았으니, 이 어찌 인자仁者의 용맹이 아니겠는가.”
○ 上 輦過郞署注+[釋義] 輓車也 駕人以行曰輦이라 郞官 有議郞, 中郞, 侍郞郞(官)[中]이라 府署也 文帝乘輦하고 經過郞署하니 馮唐 爲郞中署長이라할새 問馮唐曰 父家安在 對曰 臣大父 趙人이니이다
을 타고 낭서郎署를 지날 적에注+[釋義]은 끄는 수레이니, 사람을 멍에 하여 가는 것을 이라 한다. 낭관郎官의랑議郞, 중랑中郞, 시랑侍郞, 낭중郎中이 있다. 는 부서이다. 문제文帝을 타고 낭서郎署를 지나갔는데, 이때 풍당馮唐낭중郎中으로 낭서郞署이 되었다. 풍당馮唐에게 묻기를 “그대 아버지의 집은 어디에 있었는가?” 하니, 풍당馮唐이 대답하기를 “신의 대부大父(祖父)는 나라 사람입니다.” 하였다.
上曰 昔 有爲我言注+[通鑑要解]上居代時 尙食高祛之言也 每食時 未嘗不在鉅鹿 念高祛之言이라趙將李齊之賢호되 戰於鉅鹿下라하니 今吾每飯注+[釋義] 餐食也 馮唐傳 作每飮食이라 意未嘗不在鉅鹿也로라 對曰 尙不如廉頗, 李牧之爲將也니이다
이 말하기를 “옛날에 나에게 나라 장수 이제李齊의 훌륭함을 말하면서注+[通鑑要解]나라에 있을 때에 상식尙食고거高祛가 한 말이다. 매번 밥을 먹을 때마다 일찍이 거록鉅鹿에 있지 않은 적이 없다는 것은 언제나 고거高祛의 말을 생각한 것이다. 거록鉅鹿의 아래에서 싸우던 일을 이야기한 자가 있으니, 지금 나는 매번 밥을 먹을 때마다注+[釋義]매반每飯은 저녁밥을 먹는 것이다. 《한서漢書》 〈풍당전馮唐傳〉에는 ‘매음식每飮食’으로 되어 있다. 뜻이 일찍이 거록鉅鹿에 있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하니, 풍당馮唐이 대답하기를 “오히려 염파廉頗이목李牧이 장수가 되었던 것만은 못합니다.” 하였다.
曰 嗟乎 吾獨不得廉頗, 李牧爲將이니 吾豈憂匈奴哉리오
상이 넓적다리를 치며 말하기를 “아, 내가 다만 염파廉頗이목李牧 같은 사람을 얻어서 장수를 삼지 못해서이니, 〈만일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내 어찌 흉노匈奴를 걱정하겠는가.” 하였다.
唐曰 陛下雖得廉頗, 李牧이나 弗能用也시리이다
풍당馮唐이 말하기를 “폐하께서는 비록 염파廉頗이목李牧 같은 이를 얻더라도 등용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하였다.
하야 讓唐한대 唐曰
이 노하여 풍당馮唐을 꾸짖으니, 풍당馮唐이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上古王者之遣將也 跪而注+[釋義]言擧薦人 如推車轂之轉運也曰 閫以內注+[釋義] 義與하니 馮唐傳 作闑이라 韋昭曰 闑 門中이니 俗言門限也 以內 謂郭門內也 寡人 制之하고 閫以外 將軍 制之라하고 軍功爵賞 皆決於外
상고시대上古時代왕자王者가 장수를 싸움터로 보낼 적에 무릎을 꿇고서 수레바퀴를 밀며注+[釋義]퇴곡推轂은 사람을 천거하기를 수레바퀴를 밀어 굴러 가게 하는 것과 같이 함을 말한 것이다. 말하기를 ‘도성 안은注+[釋義]은 뜻이 과 같으니, 〈풍당전馮唐傳〉에는 로 되어 있다. 위소韋昭가 말하였다. “은 문 가운데의 말뚝이니, 세속에서 문한門限이라고 말한다. 이내以內는 도성문 안을 이른다.” 과인이 통제하고, 도성 밖은 장군이 통제하라.’ 하고, 군공軍功으로 관작을 주고 상을 내리는 것을 모두 밖에서 〈장군이〉 결정하게 하였습니다.
李牧 是以 北逐單于하고 破東胡하고하고 西抑强秦하고 南支韓, 魏니이다
이목李牧이 이 때문에 북쪽으로 선우單于를 축출하고 동호東胡를 격파하고 담림澹林을 멸하고 서쪽으로 강한 나라를 억제하고 남쪽으로 나라와 나라를 지배하였던 것입니다.
今魏尙 爲雲中守하야 其軍市租注+[釋義]案軍市 謂軍人貨易之地也 市有稅하니 稅卽租也   盡以饗士卒하니 匈奴遠避하야 不敢近塞
지금 위상魏尙운중태수雲中太守가 되어 군대가 있는 시장의 조세를 모두 거두어注+[釋義]군시軍市는 군인들이 화물貨物을 교역하는 곳을 이른다. 시장에는 세금이 있으니, 세금이 바로 이다. 사졸士卒에게 먹이니, 흉노匈奴가 멀리 피하여 감히 변경에 가까이 오지 못했습니다.
虜曾一入 率車騎擊之하야 所殺 甚衆이어늘 上功幕府注+[原註]師出無常處하야 所在 張幕居之 故曰幕府[釋義] 上功 謂尺籍所上斬首捕虜之數也 尺籍者 謂書其斬捕之功於一尺之版이라 幕府者 以軍幕爲義하니 古者出征 以幕帳爲府署也 一言不相應注+[釋義]謂斬捕之數不同也이라하야 文吏以法繩之注+[釋義] 索也 所以彈畫而取直者 言文法之吏 正治其事 亦猶繩也하야 其賞 不行하니 陛下賞太輕하고 罰太重이라
오랑캐가 일찍이 한 번 침입하자, 위상魏尙이 전차와 기병을 거느리고 이들을 공격하여 죽인 자가 매우 많았는데, 막부幕府에 공을 보고할 적에注+[原註] 군대가 출동하는 곳이 일정하지 않아서 있는 곳에 장막을 펴고 거처하므로 막부幕府라 한다. [釋義]상공上功은 한 자 되는 문서[尺籍]에 적의 수급首級을 벤 것과 포로의 숫자를 적어 올림을 이른다. 척적尺籍은 적의 수급을 베고 포로로 잡은 을 한 자 되는 판자에 씀을 이른다. 막부幕府군막軍幕을 뜻으로 삼으니, 옛날 출정할 때에 장막帳幕으로 부서를 만들었다. 한 마디 말이 서로 맞지 않는다 하여注+[釋義]일언불상응一言不相應은 수급을 베고 포로로 잡은 숫자가 똑같지 않음을 이른다. 법을 맡은 관리가 법으로 다스려서注+[釋義]은 먹줄이니, 먹줄을 튕겨 획을 그어서 곧게 만드는 것이다. 문법文法을 맡은 관리가 그 일을 바르게 다스리기를 또한 먹줄과 같이 함을 말한다. 이 시행되지 못하였으니, 폐하께서는 은 너무 가볍고 은 너무 무겁습니다.
魏尙 坐上功首虜差六級注+[釋義]秦法 以斬敵一首하면 拜爵一級이라 故因謂一首爲一級이라 今魏尙 差上首虜六級而坐以罪이어늘 陛下下之吏하사 削其爵하고 罰及之하시니
위상魏尙전공戰功을 보고할 때에 적의 수급首級과 포로가 6급이 차이가 났는데,注+[釋義]나라 법에 적 한 명의 목을 베면 관작 한 계급을 제수하였다. 그러므로 인하여 한 사람의 머리를 한 이라 한 것이다. 지금 위상魏尙이 적의 수급과 포로를 올려 보고할 적에 6이 차이가 나서 죄를 받은 것이다. 폐하께서 그를 옥리獄吏에게 내리시어 그 관작을 삭탈하고 형벌이 미치게 하셨습니다.
由此言之컨대 陛下雖得廉頗, 李牧이나 弗能用也시리이다
이로 말미암아 말하건대, 폐하께서는 비록 염파廉頗이목李牧을 얻더라도 등용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하야 是日 令唐持節赦魏尙하야 復以爲雲中守하고 而拜唐爲車騎都尉하다
이 기뻐하여 이날 당장 풍당馮唐으로 하여금 을 가지고 가서 위상魏尙을 사면하여 다시 운중태수雲中太守로 삼게 하고 풍당馮唐거기도위車騎都尉로 임명하였다.
〈出本傳〉
- 《한서漢書 풍당전馮唐傳》에 나옴 -
○ 春하야 廣增諸祀壇場珪幣注+[釋義]謂祭神之玉帛이라하고 且曰 吾聞祠官祝注+[釋義]祠官 謂攝行祀事者 音僖 福也 皆歸福於朕躬하고 不爲百姓이라하니 朕甚愧之하노라
봄에 조서를 내려 여러 제사의 과 마당과 규폐珪幣注+[釋義]규폐珪幣에게 제사하는 옥과 폐백을 이른다. 더 늘리게 하고, 또 말하기를 “내 들으니, 사관祠官이 복을 빌 적에注+[釋義]사관祠官은 제사의 일을 대행하는 자를 이른다. 는 음이 희이니, 이다. 모두 짐의 몸에 을 돌리고 백성을 위하지 않는다 하니, 짐이 매우 부끄러워하노라.
夫以朕之不德으로 而專饗獨美其福하고 百姓不하니 重吾不德也
부덕한 짐이 그 복을 오로지 누리고 홀로 차지하고 백성들은 참여되지 못하니, 이는 나의 부덕함을 가중시키는 것이다.
其令祠官致敬하고 無有所祈하라하다
사관祠官으로 하여금 공경만 지극히 하고 을 기원하는 바가 없게 하라.” 하였다.
〈出本紀〉
- 《한서漢書 문제기文帝紀》에 나옴 -
역주
역주1 朱黼 : 字가 文昭이니 平陽 사람으로 永嘉先生이라 칭하였는 바, 저서로 《紀年備遺》가 있다.
역주2 拊髀 : 부폐
역주3 推轂 : 퇴곡
역주4 推轂 : 사람을 천거함을 이르기도 하나 여기서는 그러한 뜻이 아니고, 단지 帝王이 장군의 수레바퀴를 밀어 경의를 표한 것으로 보인다.
역주5 : 얼
역주6 : 궐
역주7 : 담
역주8 : 희
역주9 :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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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을해] 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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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을해] 14년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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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을해] 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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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을해] 14년 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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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을해] 14년 157

통감절요(2)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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