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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8)

통감절요(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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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未]十四年이라
대력大曆 14년(기미 779)
五月하고 德宗 卽位러니 在諒陰注+[頭註] 古作梁하고 古作闇하니 謂廬也之廬也 在諒陰니라 하야 動遵禮法이러라
5월에 이 죽고 덕종德宗이 즉위하였는데, 양음諒陰(여막) 안에 있으면서注+[頭註]고문古文으로 되어 있고 고문古文으로 되어 있으니, 여막廬幕을 이르니, 즉 의려倚廬이다. 양음諒陰에 있다는 것은 양음諒陰에서 거상居喪함을 말한 것이다. 모든 행동에 예법禮法을 따랐다.
[史略 史評]史斷曰
[史略 사평史評]史斷에 말하였다.
代宗 少遇亂離하고 老於軍旅
대종代宗이 어려서 난리를 만나고 군대에서 늙었다.
即位之初 餘妖未殄이러니 乃能仗郭李之精忠하고 憑諸將之戮力하야 剪除凶醜하고 克復京師하니 厥功懋矣
즉위하던 초기에 남은 재앙이 아직 다 없어지지 않았는데, 마침내 곽자의郭子儀이광필李光弼의 깨끗한 충성에 의지하고 여러 장수들이 힘을 다함에 의뢰해서 흉악한 무리들을 제거하고 능히 경사京師를 수복하였으니, 그 이 크다.
然帝性仁而不勇하고 委靡太過하야 而剛斷不足하야 遂使太阿之柄으로 倒移於下
그러나 황제는 성품이 인자하기만 하고 용감하지 못하며 나약함이 너무 지나쳐서 강단剛斷이 부족하여 마침내 태아太阿의 칼자루[政柄]를 거꾸로 쥐어 아랫사람에 옮겨주었다.
雖能罪하고 誅元載 其初亦由寵任之過 而其末 又皆未得爲盡善焉이라
이 때문에 비록 세 환관宦官을 처벌하고 원재元載를 목베었으나 처음에 또한 이들을 너무 지나치게 총애하고 중용重用하였고, 종말에도 극진히 하게 하지 못하였다.
至於專事姑息하야 逐殺主帥 命爲主帥하야 遂爲後來故事하니 綱目 尤深咎之
그리하여 오로지 고식姑息을 일삼아서 주수主帥를 축출하거나 죽인 자를 명하여 주수主帥로 삼아 마침내 후래後來고사故事가 되게 함에 이르렀으니,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에 더더욱 깊이 이것을 허물하였다.
而當時之所加意者 不過置百高座하고 講仁王經하며 作章敬寺하고 廣度僧尼하며 出盂蘭盆하야 褒贈亡僧하니 唐室大壞 實基於此
당시當時에 유념한 것은 백고좌百高座를 설치하고 《인왕경仁王經》을 하며 장경사章敬寺를 짓고 승려僧侶여승女僧을 널리 도첩度牒하며 우란분盂蘭盆을 내어서 도망해온 승려僧侶를 표창해 줌에 지나지 않았으니, 나라가 크게 무너짐이 실로 여기에 기인하였다.
司馬公論肅代二帝 以爲此兩君者 明不足以燭理하고 武不足以決疑하니
그러므로 사마공司馬公숙종肅宗대종代宗 두 황제에 대하여 논하기를, ‘이 두 군주는 총명聰明은 이치를 밝게 보지 못하고 는 의심을 결단하지 못하였으니,
向微郭子儀之忠 李光弼之智 則天下已非唐有라하니 意謂是夫인저
지난번에 만일 곽자의郭子儀의 충성과 이광필李光弼의 지혜가 없었더라면 천하天下는 이미 나라의 소유가 아니었을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생각건대 이것을 말함일 것이다.”
○ 以崔祐甫 爲門下侍郞同平章事하다
최우보崔祐甫문하시랑門下侍郞 동평장사同平章事로 임명하였다.
○ 初 至德注+[頭註]肅宗年號 以後 天下用兵하니 諸將 競論功賞이라
처음에 지덕至德 연간注+[頭註]지덕至德숙종肅宗연호年號이다. 이래로 천하天下용병用兵을 하니, 제장諸將들이 다투어 을 논하였다.
官爵 不能無濫이러니 及常袞爲相 思革其弊하야 杜絶僥倖하야 四方奏請 一切不與하고 而無所甄別注+[頭註] 察也 하야 賢愚同滯하다
이 때문에 관작官爵이 범람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상곤常袞이 재상이 되자 이 폐단을 개혁할 것을 생각하여 요행으로 승진하는 길을 막아서 사방의 주청奏請을 일체 들어주지 않고 선별하는 바가 없어서注+[頭註]은 살핌이다. 어진 이와 어리석은 이가 함께 적체되었다.
崔祐甫代之 欲收時望하야 推薦引拔 常無虛日하니 作相未二百日 除官八百人이라
그러다가 최우보崔祐甫가 그를 대신하여 재상이 되자, 당시의 명망을 거두고자 하여 어느 날이고 인재를 추천하고 이끌어 발탁하지 않는 날이 없게 하니, 재상이 된 지 200일이 못되어 관직에 제수된 자가 800명이었다.
前後相矯注+[頭註] 之矯也 變改也 終不得其適이러라
그리하여 두 재상이 전후前後로 서로 바로잡음에注+[頭註]교왕과직矯枉過直이니, 바꾸고 고치는 것이다. 끝내 그 마땅함을 얻지 못하였다.
嘗謂祐甫曰 人或謗卿所用 多涉親故라하니 何也
이 일찍이 최우보崔祐甫에게 이르기를 “사람들은 혹 경이 등용한 바가 많이 친고親故(친척과 친구)에 해당된다고 비방하니, 어떠한가?” 하니,
對曰 臣爲陛下하야 選擇百官 不敢不詳愼하오니 苟平生之未識이면 何以諳其才行而用之리잇고
최우보崔祐甫가 대답하기를 “폐하陛下를 위하여 백관百官을 선발할 적에 감히 자세하고 삼가지 않을 수 없으니, 만일 평소 알지 못하는 사람이면 어떻게 그의 재주와 행실을 알아 등용하겠습니까?” 하였다.
以爲然하다
이 그 말을 옳게 여겼다.
溫公曰
온공溫公이 말하였다.
臣聞用人者 無親疎新故之殊 惟賢不肖之爲察이니 其人 未必賢也어늘 以親故而取之 固非公也 苟賢矣어늘 以親故而捨之 亦非公也
“내가 들으니 인재를 등용하는 자는 친소親疎신구新舊의 구별이 없이 오직 어진가, 불초不肖한가를 살펴야 하니, 그 사람이 반드시 어질지는 않은데 친고親故라 하여 취한다면 진실로 공정한 방법이 아니요, 만약 어진데 친고親故라 하여 버리는 것도 공정한 방법이 아니다.
夫天下之賢 固非一人所能盡也 若必待素識熟其才行而用之 所遺亦多矣
천하의 어진 자는 진실로 한 사람이 다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만일 반드시 평소부터 잘 알고 그의 재주와 행실을 익숙히 알기를 기다린 뒤에야 등용한다면 버려지는 자가 또한 많을 것이다.
古之爲相者則不然하야 擧之以衆하고 取之以公하야 衆曰賢矣어든 己雖不知其詳이라도 姑用之하야 待其無功然後 退之하고 有功則進之하며 所擧得其人則賞之하고 非其人則罰之하야 進退賞罰 皆衆人所共然也 己不置毫髮之私於其間하니
옛날에 재상이 된 자들은 그렇지 아니하여, 여러 사람이 천거하고 공정하게 취해서 여러 사람이 어질다고 말하면 비록 자신이 그 상세한 것을 알지 못하더라도 우선 등용해서 그가 이 없기를 기다린 뒤에 물리치고 공이 있으면 승진시키며, 천거한 바가 그 적임자이면 천거한 자에게 상을 주고 적임자가 아니면 천거한 자에게 벌을 주어서 退이 모두 여러 사람들이 함께 옳게 여기는 바이고, 재상 자신은 털끝만한 사사로움도 그 사이에 두지 않았다.
苟推是心以行之 又何遺賢曠官之足病哉리오
만일 이 마음을 미루어 인재를 등용한다면 어찌 어진 이를 버리고 직무를 태만히 하는 것을 걱정할 것이 있겠는가.”
○ 澤州刺史李 上慶雲圖注+[頭註]慶雲 天官書 若烟非烟이요 若雲非雲이라 郁郁紛紛하고 蕭索輪囷하니 是爲卿雲이라 亦云景雲하니 此喜氣也라하니라 音慶이라 晉天文志 瑞氣 一曰慶雲이니 太平之應也라하니라 어늘 詔曰 朕 以時和年豐으로 爲嘉祥하고 以進賢顯忠으로 爲良瑞하노니
택주자사澤州刺史 이안李鷃경운도慶雲圖注+[頭註]경운慶雲은 《사기史記》 〈천관서天官書〉에 “연기 같으나 연기가 아니고, 구름 같으나 구름도 아니다. 성대하고 분분하고 스산하고 높고 크니, 이것을 경운卿雲이라 한다. 또한 경운景雲이라고도 하니, 이것은 좋은 기운(구름)이다.” 하였다. 은 음이 경이다. 《진서晉書》 〈천문지天文志〉에 “상서로운 기운은 첫 번째가 경운慶雲이니, 세상이 태평해질 응험(징조)이다.” 하였다. 올리자, 이 조서를 내리기를 “짐은 시절(기후)이 순조로워 연사年事가 풍년드는 것을 아름다운 상서로 여기고, 어진 이를 등용하고 충신을 드러내는 것을 좋은 상서로 여기노니,
如慶雲, 靈芝, 珍禽, 奇獸, 怪草, 異木 何益於人이리오
경사스러운 구름과 영지靈芝와 진귀한 새와 기이한 짐승과 기이한 풀과 특이한 나무가 어찌 사람에게 유익하겠는가.
布告天下하야 自今有此어든 無得上獻케하라
이것을 천하에 고해서 지금부터는 이런 것이 있거든 올리지 말게 하라.” 하였다.
○ 內莊宅使上言호되 諸州 有官租萬四千餘斛이라한대 令分給所在하야 充軍儲하다
내장택사內莊宅使가 상언하기를 “여러 에서 거둔 관조官租가 1만 4천여 이 있습니다.” 하니, 은 소재지에 나누어 주어서 군량의 저축에 충당하게 하였다.
先是 諸國 累獻馴象注+[通鑑要解]擾習也 安南出象處曰象山이니 歲一捕之호되 縛欄道傍하고 中爲大穽하야 以雌象前行爲媒하고 遺甘蔗於地하고 傅藥蔗上하면 雄象來食蔗라가 漸引入欄이어늘 閉其中하고 就穽中하야 敎習馴擾之하니 始甚咆哮 穽深不可出이라 牧者以言語喩之하니 久則漸解人意也니라 하니 凡四十有二
이보다 앞서 여러 나라에서 자주 길들인 코끼리를 올리니,注+[通鑑要解]은 길들이는 것이다. 안남安南(越南)에 코끼리가 나오는 곳을 상산象山이라 하니, 해마다 한번 코끼리를 잡되 코끼리 우리를 길옆에 묶어놓고 가운데에 큰 함정을 만든 다음 암코끼리를 앞에 가게 하여 매개물로 삼고 감자甘蔗(사탕수수)를 땅에 버려 놓으며, 감자甘蔗 위에 을 발라놓으면 수코끼리가 와서 감서를 먹다가 점점 유인되어 우리로 들어간다. 그러면 그 가운데를 닫고 함정 속에 넣어 코끼리를 가르치고 길들이니, 처음에는 매우 포효하나 함정이 깊어 나올 수가 없다. 코끼리를 사육하는 자가 말로 가르치니, 시간이 오래되면 점점 사람의 뜻을 알게 된다. 모두 42마리였다.
上曰 象 費豢養注+[通鑑要解]穀食曰豢이니 音宦이라 以穀食獸于圈中이니 牛馬曰芻 犬豕曰豢이라 而違物性하니 將安用之리오하고 命縱於荊山之陽하고
은 말하기를 “코끼리는 기르는 비용이 들고注+[通鑑要解]곡식穀食을 먹는 가축(개와 돼지)을 이라 하니, 음은 환이다. 곡식을 가지고 우리 가운데에서 짐승을 먹이는 것이니, 소와 말을 라 하고 개와 돼지를 이라 한다. 〈가두어 두면〉동물의 천성을 어기는 것이니, 장차 어디에 쓰겠는가.” 하고는 형산荊山의 남쪽에 놓아주게 하였으며,
及豹注+[釋義]豹, 貀 竝獸名이라 花如錢黑而小於虎文이요 女猾反이니 爾雅註 似狗豹文이라 或云 似虎而黑이라하니라 鬪鷄獵犬之類 悉縱之하고 又出宮女數百人하니 於是 中外皆悅이라
표범과 注+[釋義]은 모두 짐승의 이름이다. 는 무늬가 돈[錢]과 같고 검은데 범의 무늬보다 작다. 녀활반女猾反(눌)이니, 《이아爾雅》의 에 “개와 비슷하고 표범의 무늬이다.” 하였다. 혹자는 말하기를 “호랑이와 비슷한데 검다.” 하였다. 투계鬪鷄와 사냥개 따위를 모두 놓아주고 또 궁녀 수백 명을 내보내니, 이에 중외中外가 모두 기뻐하였다.
淄靑注+[頭註]李正己 軍士 至投兵相顧曰 明主出矣시니 吾屬 猶反乎아하니라
치청淄靑注+[頭註]치청군淄靑軍절도사節度使이정기李正己이다. 군사들은 심지어 병기를 버리고 서로 돌아보며 말하기를 “명주明主가 나오셨으니, 우리들이 아직도 배반한단 말인가?” 하였다.
○ 先是 劉晏, 韓滉 分掌天下財賦하야 掌河南, 山南, 江淮, 嶺南하고 掌關內, 河東, 劍南이러니 至是하야 始兼之하니라
이보다 앞서 유안劉晏한황韓滉천하天下재부財賦를 나누어 관장하여, 유안劉晏하남河南, 산남山南, 강회江淮, 영남嶺南을 관장하고, 한황韓滉관내關內, 하동河東, 검남劍南을 관장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유안劉晏이 처음으로 겸하였다.
素聞滉注+[通鑑要解]詩曰 曾是掊克이라하니 謂聚斂也 過甚이라 罷其利權하야 出爲晉州刺史하다
은 평소 한황韓滉이 가렴주구가注+[通鑑要解]부극掊克은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일찍이 부극掊克(苛斂誅求)하는 자들”이라고 하였으니, 백성에게서 취렴聚斂함을 이른다. 너무 심하다는 말을 들었으므로 그의 이권을 파하여 진주자사晉州刺史로 내보냈다.
至德初 第五琦 榷鹽以佐軍用이러니 及劉晏代之 法益精密하야
지덕至德 초년에 제오기第五琦가 소금을 전매하여 군대의 비용을 보충하였는데, 유안劉晏이 대신하게 되자 전매하는 법이 더욱 정밀하였다.
初歲 入錢 六十萬緡이러니 末年所入 逾十倍호되人不厭苦하고 大曆注+[頭註]代宗年號 計一歲征賦注+[通鑑要解] 取也 孟子有布縷之征 粟米之征 力役之征也니라 所入하니 總一千二百萬緡 而鹽利居其太半이라
그리하여 초년에는 수입한 돈이 60만 이었는데 말년에는 수입이 열 배를 넘었으나 백성들이 싫어하고 괴로워하지 않았으며, 대력大曆注+[頭註]대력大曆대종代宗연호年號이다. 말년에는 1년에 부세로 징수한注+[通鑑要解]은 취함이다. 《맹자孟子》 〈진심盡心 〉에 “삼베와 실에 대한 세금과 곡식에 대한 세금과 힘으로 부역하는 세금이 있다.” 하였다. 수입을 계산해 보니, 총 1천 2백만 이었는데 그 중 소금의 이익이 태반을 차지하였다.
以鹽爲漕傭注+[釋義]水運曰漕 雇直(値)曰傭이라 하니 自江淮 至渭橋 率萬斛 傭七千緡이라
유안劉晏은 소금을 가지고 조운漕運하는 품삯으로 삼으니,注+[釋義]물길로 운반하는 것을 라 하고, 품삯을 이라 한다. 로부터 위교渭橋에 이르기까지 대략 소금 1만 에 품삯이 7천 이었다.
自淮以北 列置巡院하고 擇能吏主之하니 不煩州縣而集事注+[頭註] 成也 하니라
회수淮水로부터 이북에는 연로沿路순원巡院을 설치하고 유능한 관리를 선발하여 주관하게 하니, 주현州縣을 번거롭게 하지 않고도 일이 잘 이루어졌다.注+[頭註]은 이룸이다.
○ 李正己畏上威名하야 表獻錢三十萬緡이어늘
이정기李正己의 위엄과 명성을 두려워하고 표문을 올려 돈 30만 을 바쳤다.
上欲受之로되 恐見欺하고 却之則無辭
상은 이것을 받고자 하였으나 기만당할까 두렵고, 이것을 물리치자니 명분이 없었다.
崔祐甫請遣使하야 慰勞淄靑將士하고 因以正己所獻錢賜之하야 使將士 人人戴上恩하고
최우보崔祐甫가 청하기를 “사자를 보내어 치청淄靑의 장병들을 위로하고 인하여 이정기李正己가 바친 돈을 그들에게 하사해서 장병들로 하여금 사람마다 의 은혜를 추앙하게 하고,
又諸道聞之하면 知朝廷不重貨財하리이다
또 여러 도에서 이 소식을 들으면 조정朝廷에서 재화를 중히 여기지 않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였다.
悅從之하다 正己大慙服하니
이 기뻐하여 따르니, 이정기李正己가 크게 부끄러워하여 복종하였다.
天下以爲太平之治 庶幾可望이라하니라
천하에서는 태평太平의 정치를 거의 바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 上之在東宮也 國子博士河中張涉 爲侍讀이러니 卽位之夕 召涉入禁中하야 事無大小 皆咨之하고 明日 置於翰林하야 爲學士하니 親重無比러라
동궁東宮에 있을 적에 국자박사國子博士 하중河中 장섭張涉시독관侍讀官이 되었었는데, 즉위卽位하는 날 저녁에 장섭張涉을 불러 금중禁中으로 들어오게 하여 크고 작은 정사 할 것 없이 모두 자문하고 다음날에 한림원翰林院에 두어 학사學士로 삼으니, 친애하고 소중히 여김이 견줄 자가 없었다.
○ 八月 以道州司馬楊炎으로 爲門下侍郞하고 懷州刺史喬琳으로 爲御史大夫하야 竝同平章事하다
8월에 도주사마道州司馬 양염楊炎문하시랑門下侍郞으로 삼고 회주자사懷州刺史 교림喬琳어사대부御史大夫로 삼아서 함께 동평장사同平章事에 임명하였다.
勵精求治하야 不次用人이라
은 이때 막 정신을 가다듬어 나라를 잘 다스리려고 해서 관계官階의 차례를 따르지 않고 인물을 등용하였다.
卜相於崔祐甫한대 祐甫薦炎器業注+[釋義]器局功業也 하고 上亦素聞其名이라 自遷謫中注+[頭註]元載待炎親重無比러니 載敗 坐貶道州司馬하니라 用之하다
재상감을 최우보崔祐甫에게 묻자, 최우보崔祐甫양염楊炎의 기국과 공업을注+[釋義]기업器業기국器局공업功業이다. 천거하였고 또한 평소 그의 명성을 들었으므로 좌천되어 있던 그를 등용하였다.注+[頭註]원재元載양염楊炎을 친애하고 소중히 여김이 견줄 자가 없었는데, 원재元載가 패하자 양염楊炎도주사마道州司馬로 좌천되었다.
太原人이니 性粗率注+[釋義]猶言疎略이라 하야 喜詼諧注+[釋義] 悅也 悅爲詼諧也 譏戲也 和韻之言이라하고 無他長이로되 與張涉善이라
교림喬琳태원太原 사람이니, 성품이 거칠고 소략하여注+[釋義]조솔粗率소략疎略이라는 말과 같다. 회해詼諧(詼謔)를 좋아하고注+[釋義]는 좋아함이니, 회해詼諧를 좋아하는 것이다. 는 기롱하고 놀림이요, 에 맞는 말이다. 다른 장점이 없었으나 장섭張涉과 친하였다.
稱其才可大用이라한대 信涉言而用之하니 聞者無不駭愕注+[頭註] 驚也 이러라
장섭張涉은 그의 재주가 크게 쓸 만하다고 칭찬하였는데, 장섭張涉의 말을 믿고 그를 등용하니, 듣는 자들이 놀라지 않는 이가 없었다.注+[頭註]은 놀람이다.
○ 舊制 天下金帛 皆貯於左藏大府注+[釋義]左藏庫 蓋起於周하니 職內 主賦入하고 職歲 主賦出하고 而邦布之入出 則外府又主之하니 皆其職也[頭註] 大府 唐制 掌廩藏財貨出納이라 하고 四時 上其數하야 比部覆其出入注+[頭註]比部 掌句會內外賦斂經費俸祿之物하니라 審也 이러니 及第五琦爲度支鹽鐵使하니 京師 多豪將하야 求取無節이라
옛 제도에 천하天下의 금과 비단을 모두 좌장左藏의 큰 창고에注+[釋義]좌장고左藏庫나라 때 시작되었으니, 직내職內는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것을 주관하고 직세職歲는 지출하는 것을 주관하였으며, 나라의 삼베의 출입은 외부外府가 또 주관하였으니, 모두 그 직책이다. [頭註]대부大府나라 제도에 창고에 보관된 재화財貨출납出納을 관장하였다. 보관하고, 사시四時로 그 숫자를 올려서 비부比部에서 그 출납을 구복句覆(조사)하였는데,注+[頭註]비부比部내외內外의 세금과 경비經費봉록俸祿의 물건을 조사하고 계산하는 일을 관장하였다. 은 살핌이다. 제오기第五琦탁지염철사度支鹽鐵使가 되니 이때 경사京師에 호걸스러운 장수가 많아서 요구하고 취하는 것이 절도가 없었다.
琦不能制하야 乃奏盡貯於大盈注+[頭註]庫名이니 始於玄宗하니라 內庫하고 使宦官掌之하니 天子亦以取給爲便이라
제오기第五琦는 이들을 제재하지 못하여 마침내 아뢰어 이것을 대영大盈注+[頭註]대영大盈은 창고 이름이니, 현종玄宗 때에 시작되었다. 내고內庫에 모두 보관하고 환관을 시켜 관장하게 하니, 천자 또한 취하고 공급하는 것을 편하게 여겼다.
久不出이라
그러므로 오랫동안 이것을 내놓지 않았다.
由是 以天下公賦 爲人君私藏하야 有司不復得窺其多少, 校其贏縮注+[頭註] 益也 殆二十年이요 宦官領其事者 三百餘員이라
이로 말미암아 천하의 공적인 세금을 가지고 인군의 사사로운 창고로 삼아서 유사有司가 다시는 그 많고 적음을 엿보고 그 남고 부족함을 따지지 못한 것이注+[頭註]은 더함(남음)이다. 거의 20년이었고, 환관宦官으로서 이 일을 맡은 자가 300여 명이었다.
皆蠶食其中하야 蟠結根據하야 牢不可動이라
이들이 모두 이 가운데에서 잠식하여 또아리를 틀고 뿌리를 내려서 견고하여 움직일 수가 없었다.
楊炎 頓首於上前曰 財賦者 國之大本이요 生民之命이니 重輕安危 靡不由之니이다
양염楊炎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기를 “재부財賦라는 것은 나라의 큰 근본이요 생민生民의 목숨이니, 국가의 경중輕重안위安危가 여기에 말미암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是以 前世皆使重臣掌其事호되 猶或耗亂不集이어늘 今獨使中人으로 出入盈虛하고 大臣 皆不得知하니 政之蠹敝(弊) 莫甚於此
이 때문에 전대前代에는 모두 중신으로 하여금 이 일을 관장하게 하였으나 오히려 혹 소모되고 혼란하여 제대로 모이지 못하였는데, 지금은 홀로 환관으로 하여금 내고 들이고 채우고 비우게 하며 대신大臣은 전혀 알지 못하니, 정사의 폐단이 이보다 더 심한 것이 없습니다.
請出之하야 以歸有司하고 (官)[宮]中歲用幾何하야 量數奉入이면 不敢有乏이니 如此然後 可以爲政이리이다
청컨대 이것을 내놓아서 유사有司에게 돌리고, 궁중에서 해마다 쓰는 것이 얼마인가를 헤아려서 숫자를 헤아려 받들어 들이면 감히 궁핍함이 있지 않을 것이니, 이와 같이 한 뒤에야 제대로 된 정사를 할 수 있습니다.” 하였다.
卽日下詔하야 凡財賦 皆歸左藏하야 一用舊式하고 歲於數中 擇精好者三五千匹하야 進入大盈庫하다
은 당일로 조칙을 내려 모든 재부財賦를 다 좌장고左藏庫로 돌려서 한결같이 옛 법식을 따르고, 해마다 그 숫자 안에서 정교하고 좋은 비단 3천 필 내지 5천 필을 가려서 대영고大盈庫로 받들어 올리게 하였다.
炎以片言으로 移人主意하니 議者稱之러라
양염楊炎이 한 마디 말로써 군주의 뜻을 바꾸니, 의논하는 자들이 칭찬하였다.
역주
역주1 倚廬 : 喪主가 있는 여막으로, 《儀禮》 〈旣夕禮〉에 ‘居倚廬’라고 보인다.
역주2 居喪於諒陰 : 居喪은 상주노릇함을 이르며 諒陰은 양암으로 읽는데, 《儀禮》 〈喪服四制〉에 ‘高宗諒陰三年’이라고 보인다.
역주3 三宦 : 세 환관은 李輔國, 程元振, 魯朝恩을 가리킨다.
역주4 矯枉過直 : 굽은 것을 바로잡으려다가 너무 곧게 함을 이른다. 곧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다가 너무 지나쳐서 오히려 나쁘게 되는 것이다.
역주5 : 갈
역주6 : 눌
역주7 淄靑 : 당나라의 方鎭 이름이다.
역주8 : 부
역주9 : 탁

통감절요(8)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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