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通鑑節要(5)

통감절요(5)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통감절요(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庚寅]〈晉泰始六年이요 吳建衡二年이라〉
四月에 吳以鎭軍大將軍陸抗으로 都督西陵, 夷道, 樂鄕, 公安諸軍事하다
抗以吳主政事多闕이라하야 上疏曰 臣은 聞德均則衆者勝寡하고 力侔則安者制危라하니 此는 六國所以幷於秦이요 西楚所以屈於漢也라
今敵之所據는 非關右之地, 鴻溝以西注+[通鑑要解]資治에 非下有特字라어늘 而國家外無連衡之援하고 內非西楚之彊이라
議者所恃는 徒以長江峻山이 限帶封域이어니와 此는 乃守國之末事요 非智者之所先也라
臣이 每念及此에 中夜撫枕하고 臨餐忘食하야 謹陳時宜十七條하야 以聞하노이다 吳主不納하다
○ 吳人刁玄注+[頭註]刁玄은 姓名이라이 詐增讖文하야 云 黃旗紫蓋注+[通鑑要解]時에 吳王不修德政而欲兼幷하야 使術士로 筮取天下한대 對曰 庚子年에 靑蓋當入洛陽이라하니 蓋指之事라 江表傳曰 玄이 使蜀이라가 得하고 因詐增其文以誑吳人이라於東南하니 終有天下者는 荊, 揚之君이라한대
吳主信之하야 大擧兵하야 出華里라가 行遇大雪하야 兵士寒凍殆死라
皆曰 若遇敵이면 便當戈注+[釋義]戈는 平頭戟이니 倒戈는 謂倒以戈(兵)[柄]授人하고 而反自攻其後也라 今喩人自攻其黨曰倒戈라하니 書武成에 前徒倒戈하야 攻于後以라하니라라하야늘 吳主聞之하고 乃還하다


경인(270) - 진晉나라 태시泰始 6년이고, 오吳나라 건형建衡 2년이다. -
4월에 오吳나라가 진군대장군鎭軍大將軍 육항陸抗으로 서릉西陵‧이도夷道‧낙향樂鄕‧공안公安의 여러 군사軍事를 도독都督하게 하였다.
육항陸抗이 오주吳主의 정사가 결함이 많다 하여 상소하기를 “신이 듣건대 ‘덕德이 비슷하면 병력이 많은 자가 적은 자를 이기고, 힘이 대등하면 편안한 자가 위태로운 자를 제압한다.’ 하였으니, 이는 육국六國이 진秦나라에게 겸병당하고 서초西楚가 한漢나라에게 굴복당한 이유입니다.
지금 적이 점거하고 있는 지역은 단지 관우關右(關西) 지역과 홍구鴻溝 이서以西만이 아닌데,注+[通鑑要解]《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비非’자 아래에 ‘특特’자가 있다. 우리 국가는 밖에는 연횡連衡(동맹국)의 원조가 없고 안에는 서초西楚의 강성함이 없습니다.
의논하는 자들이 믿는 것은 단지 장강長江과 험준한 산이 국경을 띠처럼 둘러싸고 있는 것인데, 이는 바로 나라를 지키는 지엽적인 일이요 지혜로운 자가 먼저 할 바가 아닙니다.
신은 매번 이것을 생각하면 한밤중에도 베개를 어루만지며 잠 못 이루고 밥상을 대하고도 밥 먹는 것을 잊어서 시의時宜 17조항을 삼가 진술하여 아룁니다.” 하였으나 오주吳主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 오吳나라 사람 조현刁玄注+[頭註]조현刁玄은 성명姓名이다. 이 참언讖言의 내용을 거짓으로 보태어 이르기를 “황색 깃발과 자주색 일산注+[通鑑要解]당시에 오왕吳王이 덕정德政을 닦지 않고 천하를 겸병兼幷하고자 하여 술사術士로 하여금 천하天下를 취할 수 있을 것인지 점을 치게 하였는데, 술사術士가 대답하기를 “경자년庚子年(280)에 푸른 일산이 마땅히 낙양洛陽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하였으니, 이는 오왕吳王이 함벽銜璧하는 일을 가리킨 것이다. 〈강표전江表傳〉에 이르기를 “조현刁玄이 촉蜀에 사신 갔다가 사마휘司馬徽가 운명運命과 역수歷數에 관해 논한 일을 얻고는 인하여 거짓으로 그 내용을 보태어 오吳나라 사람을 속인 것이다.” 하였다. 이 동남 지방에 나타나니, 끝내 천하를 소유할 자는 형주荊州와 양주揚州 지방의 군주이다.” 하였는데,
오주吳主가 이 말을 믿고 군대를 크게 일으켜 화리華里로 나갔다가 도중에 큰 눈을 만나 병사들이 추위에 거의 얼어 죽을 지경이 되었다.
병사들이 모두 말하기를 “만약 적을 만나면 곧 창을 거꾸로 잡겠다.注+[釋義]과戈는 끝이 평평한 창이니, 도과倒戈는 거꾸로 창 자루를 딴 사람에게 주고 도리어 스스로 후미(자기편)를 공격함을 이른다. 지금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편을 공격하는 것을 비유하여 도과倒戈라고 하니, 《서경書經》 〈무성武成〉에 “앞에 있던 무리들이 창을 거꾸로 들고서 후미를 공격하여 패배했다.” 하였다. ” 하니, 오주吳主가 이 말을 듣고 마침내 돌아왔다.


역주
역주1 關右之地鴻溝以西 : 關右는 函谷關 서쪽 지역을 가리킨다. 鴻溝는 河南省 滎陽縣에 있는 물 이름으로, 楚, 漢 때 홍구를 경계로 하여 서쪽은 漢이, 동쪽은 楚가 관할하기로 하고 강화를 맺었다. 《史記》 〈高祖本紀〉에 “中分天下 割鴻溝而西者爲漢 割鴻溝而東者爲楚”라고 보인다.
역주2 吳人刁玄 : 胡三省의 注에 “《姓譜》에 ‘刁姓은 齊나라 大夫인 豎刁의 후손이다.’라고 하였으니, 내가 살펴보건대 豎刁가 어찌 후손이 있을 수 있겠는가. 《漢書》 〈貨殖傳〉에 刁間이 있다.” 하였다.
역주3 銜璧 : 面縛銜璧의 줄임말로, 군주가 패전하여 항복할 때에 두 손은 등 뒤로 돌려 묶고 얼굴은 사람들에게 보이도록 앞으로 쳐들며, 玉璧을 폐백으로 바치되 손이 묶여 있어 들 수가 없으므로 玉璧을 입에 무는 것을 이르는 바, 후에는 군주가 투항함을 이르는 말로 쓰인다.
역주4 司馬徽論運命歷數事 : 司馬徽가 劉恭嗣에게 보낸 편지에 “황색 깃발과 자주색 일산이 동남쪽에 보이니, 끝내 천하를 소유할 자는 荊州와 揚州의 군주일 것이다.[黃旗紫蓋見於東南 終有天下者 荊揚之君乎]” 하였다.
역주5 見 : 현
역주6 倒 : 도
역주7 北 : 배

통감절요(5)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50 서울시 종로구 삼봉로81, 1332호(두산위브파빌리온)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