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癸巳]〈陳太建五年이요 齊武平四年이요 周建德二年이라〉
十月에 陳吳明徹이 攻壽陽할새 堰肥水以灌城하니 齊行臺右僕射皮景和等이 救壽陽이라가 怯懦不敢前이라
明徹
이 乃躬
甲冑
注+[通鑑要解]擐은 音患이니 貫也라 左傳에 擐甲執兵이라하니라하고 四面疾攻하야 一鼓拔之하고 生擒王琳, 王貴顯, 盧潛等
하야 送建康
하니 景和北遁
하다
齊穆提婆
注+[頭註]尙書左僕射라, 韓長鸞
注+[頭註]領軍大將軍이라이 聞壽陽陷
하고 握槊
注+[頭註]胡中戲니 卽今雙陸也라不輟曰
本是彼物이니 從其取去로다
齊主聞之
하고 頗以爲憂
어늘 提婆等曰
이라한대 齊主卽大喜
하다
○ 十二月
에 陳定州刺史
以江北六州, 七鎭
으로 叛
하야 入于齊
어늘 安州刺史周
이 擊斬之
하고 盡復江北之地
하다
계사(573) - 진陳나라 태건太建 5년이고, 제齊나라 무평武平 4년이고, 주周나라 건덕建德 2년이다. -
10월에 진陳나라 오명철吳明徹이 수양성壽陽城을 공격할 적에 비수肥水를 막아 수양성壽陽城에 물을 대니, 제齊나라 하남행대河南行臺 우복야右僕射 피경화皮景和 등이 수양성壽陽城을 구원하려다가 겁을 먹고 감히 전진하지 못하였다.
오명철吳明徹이 마침내 몸소 갑옷과 투구를 갖추어 입고
注+[通鑑要解]환擐은 음이 환이니 꿰어 입는다는 뜻이다. 《춘추좌전春秋左傳》에 “갑옷을 입고 병기를 잡는 것이다.” 하였다. 사면에서 포위하고 급히 공격하여 한 번의 공격으로
수양성壽陽城을 함락시키고
왕림王琳‧
왕귀현王貴顯‧
노잠盧潛 등을 생포하여
건강建康으로 보내니,
피경화皮景和가 북쪽으로 도망하였다.
제齊나라
목제파穆提婆注+[頭註]목제파穆提婆는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였다. 와
한장란韓長鸞注+[頭註]한장란韓長鸞은 영군대장군領軍大將軍이었다. 이,
수양성壽陽城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악삭握槊(雙六)
注+[頭註]악삭握槊은 북쪽 오랑캐 지역의 놀이이니, 바로 지금의 쌍륙雙六이다. 놀이를 중지하지 않으며 말하기를 “
수양성壽陽城은 본래 저들
남조南朝의 땅이었으니, 저들이 가져가도록 내버려 둘 뿐이다.” 하였다.
제주齊主가 패전했다는 말을 듣고 자못 근심하자, 목제파穆提婆 등이 말하기를 “설사 황하黃河 이남 지역을 다 잃는다 해도 오히려 한 구자국龜玆國이 될 수 있습니다.” 하니, 제주齊主가 크게 기뻐하였다.
○ 12월에 진陳나라 정주자사定州刺史 전용추田龍秋가 강북江北의 여섯 주州와 일곱 진鎭을 가지고 배반하여 제齊나라에 들어가자, 안주자사安州刺史 주경周炅이 그를 공격하여 목을 베고 강북江北의 땅을 모두 수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