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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3)

통감절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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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卯]七年이라
건무建武 7년(신묘 31)
三月晦 日有食之어늘 詔百僚하야 各上封事호되 其上書者 不得言聖하라하다
3월 그믐에 일식日食이 있자 〈황제가〉 백관百官들에게 명하여 각각 봉사封事를 올리게 하였는데, 글을 올리는 자들이 〈황제를〉 이라고 칭하지 못하게 하였다.
〈出本紀〉
- 《후한서後漢書 광무제기光武帝紀》에 나옴 -
[新增]尹氏曰
[新增]尹氏가 말하였다.
人君 莫不憚於聽言이어늘 而詔各上封事하고 人君 莫不喜於好高어늘 而詔不得言聖하야 書之于冊하니 光武於是乎不可及矣로다
인군人君은 신하들의 말을 듣는 것을 꺼리지 않는 이가 없는데 광무제光武帝는 각각 봉사封事를 올리도록 명하였고, 인군人君은 높은 것을 좋아함을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는데 〈황제皇帝를〉 이라고 말하지 못하게 하여 이것을 사책史冊에 썼으니, 광무제光武帝의 훌륭함을 이에 따라갈 수가 없다.”
太中大夫鄭興 上疏曰 頃年日食 每多在晦하야 先時而合注+[釋義] 去聲이니 謂不俟朔日而會合이라[通鑑要解]凡先事而爲曰先 則平聲이니 易先天, 先甲先庚之類 是也 又當後而前曰先 則去聲이니 左傳不先父食 孟子疾行先長之類 是也하니 皆月行 疾也
태중대부太中大夫 정흥鄭興이 상소하기를 “근년近年일식日食이 매번 대부분 그믐에 있어서 시기보다 앞서 해와 달이 합하였으니,注+[釋義]先은 거성去聲이니, 초하룻날을 기다리지 않고 해와 달이 앞서 합하여 일식日蝕이 일어남을 이른다. [通鑑要解]일보다 앞서서 먼저 하는 것을 이라고 할 때의 평성平聲이니 《주역周易》의 선천先天, 선갑先甲 선경先庚 따위가 이것이고, 또 뒤에 있어야 하는데 앞에 가는 것을 이라고 할 때의 거성去聲이니 《춘추좌전春秋左傳》의 ‘불선부식不先父食’과 《맹자孟子》의 ‘질행선장疾行先長’ 따위가 이것이다. 이는 모두 달의 운행이 빠르기 때문입니다.
君象이요 臣象이니 君亢急注+[釋義] 高極也 謂君之行 過於嚴急이라則臣促迫이라
해는 군주의 이고 달은 신하의 이니, 임금이 높고 급하면注+[釋義]은 높음이 지극한 것이니, 군주의 행실이 지나치게 엄하고 급함을 말한 것이다. 신하가 촉박합니다.
月行하나니 今陛下高明하사 而群臣惶促하니 宜留思柔克之政하고 垂意洪範之法注+[釋義]書洪範 高明柔克이라한대 蔡傳曰 高明者 高亢明爽하야 過乎中也 治也 高明柔克 宜以柔治剛也라하니라이니이다
이 때문에 달의 운행이 빠른 것이니, 이제 폐하께서 고명高明하시어 여러 신하들이 황급해 하니, 마땅히 유극柔克의 정사에 유념하고 홍범洪範의 법에 뜻을 두소서.注+[釋義]陛下高明……洪範之法:《서경書經》 〈홍범洪範〉에 “여섯 번째 삼덕三德고명高明한 사람은 로 이겨야 한다.[高明柔克]” 하였는데, 채침蔡沈에 이르기를 “고명高明고항高亢(뜻이 높음)하고 명상明爽(밝음)하여 중도中道를 넘는 것이고 은 다스림이니, 고명유극高明柔克은 마땅히 유순함으로써 강함을 다스려야 함을 이른다.” 하였다. ” 하였다.
帝躬勤政事하야 頗傷嚴急이라
이때 황제가 몸소 정사를 부지런히 하여 자못 지나치게 엄하고 급했다.
興奏及之러라
그러므로 정흥鄭興이 아룀에 이를 언급한 것이었다.
〈出本傳 無末三句〉
- 《후한서後漢書 정흥전鄭興傳》에 나오는데 끝의 세 가 없다. -
○ 大司農江馮 上言호되 宜令司隷校尉 督察三公이니이다 司空掾陳元 上疏曰
대사농大司農 강풍江馮상언上言하기를 “마땅히 사례교위司隷校尉로 하여금 삼공三公을 감독하게 하여야 합니다.” 하니, 사공연司空掾으로 있는 진원陳元이 다음과 같이 상소하였다.
臣聞호니 師臣者 하고 賓臣者
“신이 들으니, 신하를 스승으로 삼는 자는 황제皇帝가 되고 신하를 손님으로 예우하는 자는 패자霸者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武王 以太公爲師하고 齊桓 以夷吾爲仲父하고 近則하고 하니
이 때문에 무왕武王태공太公을 스승으로 삼았고 나라 환공桓公관이오管夷吾(管仲)를 중부仲父로 삼았으며, 근래에 고제高帝상국相國로 우대하고 태종太宗(文帝)은 재보宰輔에게 권한을 빌려 주었으니,
陛下宜修文武之聖典하고 襲祖宗之遺德하야 勞心下士하고 屈節待賢이요 誠不可使有司察公輔之罪니이다 帝從之하다
폐하께서는 마땅히 문왕文王무왕武王의 성스러운 법을 닦고 조종祖宗이 남기신 을 따라서 마음을 수고롭게 하여 선비에게 몸을 낮추고 절개를 굽혀 현자를 대해야 할 것이요, 진실로 유사有司들로 하여금 공보公輔의 죄를 살피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하니, 황제가 그 말을 따랐다.
○ 帝好圖讖이라 與鄭興으로 議郊祀事할새 帝曰 吾欲以讖斷之하노니 何如 對曰 臣 不爲讖이니이다
○ 황제가 도참설圖讖說을 좋아하였으므로 정흥鄭興과 함께 교사郊祀의 일을 의논할 때에 황제가 말하기를 “나는 도참圖讖으로 결단하고자 하는데 어떠한가?” 하니, 정흥鄭興이 대답하기를 “신은 도참圖讖을 하지 않습니다.” 하였다.
帝怒曰 卿不爲讖 非之耶 皇(惶)恐曰 臣 於書 有所未學이요 而無所非也니이다 帝意乃解하다
황제가 노하여 말하기를 “도참圖讖을 하지 않는 것은 도참설圖讖說을 그르다고 여겨서인가?” 하니, 정흥鄭興이 황공하여 아뢰기를 “신은 도참서圖讖書에 대해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요, 그르다고 여기는 것은 없습니다.” 하니, 황제의 노여움이 비로소 풀렸다.
〈出興傳〉
- 《후한서後漢書 정흥전鄭興傳》에 나옴 -
[新增]胡氏曰
[新增]胡氏가 말하였다.
知道者 以義處命하야 理行則行하고 理止則止하니 術數之學 蓋不取也
를 아는 자는 의리義理로써 천명天命에 대처하여 이치가 행할 만하면 행하고 이치가 그만둘 만하면 그만두어서 술수術數의 학문을 취하지 않았다.
鄭興 身遇明君하니 當極論以解主惑이어늘 一被詰責 遽出孫(遜)言하니 君子非之하니라
정흥鄭興이 몸소 명군明君을 만났으니, 마땅히 지극히 의논해서 군주의 의혹을 풀어 주어야 할 터인데 한 번 힐책을 당하자 갑자기 공손한 말을 내었으니, 군자가 이것을 그르다 하였다.”
通鑑筆義曰
대계戴溪의 《통감필의通鑑筆義》에 말하였다.
讖記之說 果孰爲之初乎
도참설圖讖說은 과연 누가 처음 만들었는가?
左氏傳春秋할새 雜取神怪卜筮注+[附註]龜曰卜이요 蓍曰筮[蓍]草名이니 用之以筮 左僖四年 筮短龜長이라한대 物生而後有象하고 有象而後有數하니 象也 數也 象在先하고 數在後 故以先爲長하고 以後爲短이라하니라하야 論說禍福 皆有據依로되 有童謠而無讖語注+[頭註]徒歌曰謠 童穉未有念慮之感而會成嬉戲之言 似若有憑者러니
좌구명左丘明이 《춘추春秋》의 을 지을 때에 신기하고 괴상한 말과 복서卜筮注+[附註]거북점을 이라 하고 시초점을 라 하니, 는 풀 이름인데 이것을 사용하여 《주역周易》점을 친다. 《춘추좌전春秋左傳희공僖公 4년조年條에 “시초점은 짧고 거북점은 길다.” 하였는데, 에 “물건이 생겨난 뒤에 이 있고 이 있은 뒤에 가 있으니, 거북점은 이고 시초점은 이니, 은 앞에 있고 는 뒤에 있다. 그러므로 앞의 것을 이라 하고, 뒤의 것을 이라 한다.” 하였다. 를 이것저것 취하여 화복禍福을 설명함에 모두 근거가 있었으나 동요童謠는 있고 참어讖語는 없었다.注+[頭註]주악奏樂은 없이 노래만 부르는 것을 라고 하니, 어린아이는 생각하는 마음이 없이 마침 장난하고 희롱하는 말이 믿을 만한 예언이 되는 듯한 것이다.
至司馬遷作史記하야 言秦人築長城以備胡 謂亡秦者胡也 曾不知爲胡亥하고
그러다가 사마천司馬遷이 《사기史記》를 지음에 이르러서는 말하기를 ‘나라 사람들이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쌓아 오랑캐를 대비한 것은 도참서圖讖書에 「秦나라를 망칠 자가 이다.」라고 한 말 때문이었으나 일찍이 이것이 호해胡亥인 줄을 알지 못하였으며,
陳涉起事 託鬼以威衆注+[附註]陳涉, 吳廣起事 卜者曰 事皆成이나 然卜之鬼乎인저 勝, 廣喜曰 此敎我先威衆耳라하고 乃以丹書帛十四卷하니라하고 取帛書하야 置魚腹中하니 世之姦人 始假文書以惑衆矣
진섭陳涉이 일을 일으키자 귀신에게 가탁하여 사람들을 위협하고注+[附註]진섭陳涉오광吳廣이 거사할 때에 점치는 자가 말하기를 “일이 모두 이루어질 것이나 귀신에게 점을 쳐서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하였다. 진승陳勝오광吳廣이 기뻐하며 말하기를 “이는 우리들로 하여금 먼저 군사들에게 위엄을 보이도록 가르쳐 준 것이다.” 하고는 마침내 붉은 글씨로 백서帛書 14권을 써서 사람들에게 보였다. 백서帛書를 취하여 물고기의 뱃속에 넣어 두어 세상의 간사한 사람들이 비로소 문서文書를 빌어 사람들을 의혹하게 했다.’ 하였다.
漢宣帝未卽位時 眭弘 推說災異注+[附註]昭帝元鳳三年 泰山石起하고 上林僵柳復起生하며 有蟲食葉成字曰 公孫病已立이라하니 病已 宣帝少字也 弘乃上言호되 當有匹庶爲天子라하니 弘坐說妖言惑衆伏誅하니라하야 以爲漢當再受命이라하고 至成帝하야 齊人甘忠可 詐造天官等書하야 以授其徒하니 而後 讖記注+[頭註] 纖也 其義纖微也盛矣
나라 선제宣帝는 아직 즉위하지 않았을 때에 휴홍眭弘재이災異를 유추하여 말해서注+[附註]소제昭帝 원봉元鳳 3년에 태산泰山에 돌이 우뚝 일어나고, 상림원上林苑에 쓰러졌던 버드나무가 다시 일어나 살아났으며, 벌레가 나뭇잎을 먹어 글자를 만들었는데, 그 내용에 “공손公孫병이病已가 즉위한다.” 하였으니, 병이病已선제宣帝의 어렸을 적 이다. 휴홍眭弘이 이에 상언上言하기를 “마땅히 서인庶人천자天子가 될 것이다.” 하였는데, 휴홍眭弘은 요망한 말을 하여 무리를 미혹시킨 죄에 걸려 죽임을 당하였다. 나라가 마땅히 다시 천명天命을 받을 것이라 하였고, 성제成帝에 이르러서 나라 사람 감충가甘忠可는 거짓으로 《천관天官》 등의 책을 만들어서 그 무리에게 전수하니 이후에 도참서圖讖書注+[頭註]은 섬세함이니, 그 뜻이 섬세하고 은미한 것이다. 가 성행하였다.
王莽因之하야 造作符命하야 代漢天下하니 殆勝廣之遺智也
왕망王莽이 이로 인하여 부명符命을 조작해서 나라의 천하를 대신하니, 아마도 진승陳勝오광吳廣의 남은 지혜인 것이다.
光武明智有餘하니 當懲莽欺罔하야 絶其端倪하야 勿使遺禍後世어늘 卽位之初 首從事焉이라
광무제光武帝는 밝고 지혜로움이 유여有餘하였으니, 마땅히 왕망王莽의 속임수를 징계해서 그 단서를 끊어 후세에 를 남기지 말았어야 했는데, 즉위 초에 첫 번째로 이에 종사하였다.
彼其崎嶇南陽新野間할새 聞劉秀當爲天子舊矣注+[附註]光武 南陽蔡陽人이라 王莽時 天下連歲災蝗하니 南陽尤飢 光武避吏新野하야 因賣穀於宛이러니 宛人李通 以圖讖說光武호되 劉氏復起라하니 乃市兵弩하야 起於宛하니라러니
남양南陽신야新野 사이에서 역경逆境에 처했을 때에 ‘유수劉秀가 마땅히 천자가 된다.’는 말을 예전부터 들었다.注+[附註]광무光武남양南陽 채양蔡陽 사람이다. 왕망王莽 때에 천하에 매년 충해蟲害가 있었는데, 남양南陽은 흉년이 더욱 심하였다. 광무제光武帝신야新野로 관리를 피하여 에서 곡식을 팔았는데, 땅 사람 이통李通도참설圖讖說을 가지고 광무제光武帝를 설득하기를 “유씨劉氏가 다시 일어난다.” 하니, 이에 병기兵器궁노弓弩를 사서 에서 기병起兵하였다.
一旦 以赤伏符卽位하니 意者以謂天誠有是書하야 天人之秘 眞不可誣邪
그러다가 하루아침에 적복부赤伏符로 즉위하게 되자, 생각하기를 ‘하늘에 진실로 이러한 서책이 있어서 천인天人의 비밀을 참으로 속일 수 없다.’고 여겼을 것이다.
王莽 假符命以欺衆하고 光武 信讖記以自欺하니 是孰爲愚智乎
왕망王莽부명符命을 빌어서 여러 사람들을 속이고 광무제光武帝도참서圖讖書를 믿어서 자신을 속였으니, 이는 누가 어리석고 지혜로움이 되는가?
且王氏殘虐하야 百姓思漢 久矣
왕씨王氏는 잔인하고 포학해서 백성들이 나라를 생각한 지가 오래였다.
光武之爲民望也하니 向使無赤符說이면 當不有天下乎
그리하여 광무제光武帝가 백성들이 바라는 바가 되었으니, 그때 만약 적복부赤伏符의 말이 없었더라면 마땅히 천하를 소유하지 못했겠는가?
彼彊華者 果安從得此書
강화彊華라는 자는 과연 어디에서 이런 책을 얻었는가?
{以}不過哀章注+[附註]哀章 作銅匱할새 爲兩檢하고 署其一曰 天帝行璽金匱圖라하고 其一署曰 赤帝璽 邦傳與皇帝金策書라하다 日昏時 衣黃衣하고 持匱至高廟하야 以付僕射한대 僕射以聞이어늘 莽至高廟하야 拜受金櫃하고 下書曰 皇天上帝降顯大祐하야 屬予以天下兆民이라 赤帝漢氏高皇帝之靈 承天命하야 傳國金策之書하니 敢不欽受리오 乃御王冠하고 卽眞天子位하야 建有天下之號曰新이라하다 高帝名이니 廟有令僕射하니라之類耳어늘 舍人事而托符讖하니 是何不自信 若此也
이는 애장哀章注+[附註]애장哀章이 구리궤짝을 만들 때에 두 개의 옥검玉檢을 만들고, 그중 하나에는 “천제행새금궤도天帝行璽金匱圖”라 쓰고, 또 하나에는 “적제새赤帝璽이니, 유방劉邦이 황제에게 금책서金策書를 전해 준다.” 고 썼다. 날이 저물 때에 애장哀章황의黃衣를 입고 궤짝을 가지고 고조高祖의 사당에 이르러서 복야僕射에게 주니, 복야僕射가 이것을 보고하였다. 왕망王莽고조高祖의 사당에 이르러서 절하고 금궤金櫃를 받고는 글을 내리기를 “황천상제皇天上帝가 큰 을 내리시어 나에게 천하와 억조의 백성을 맡기셨다. 적제赤帝나라 고황제高皇帝신령神靈천명天命을 받들어서 금책서金策書전국傳國하니, 감히 공경히 받지 않겠는가.” 하였다. 이에 왕관王冠을 쓰고 진짜 천자天子에 즉위하여 천하를 소유한 국호國號이라 하였다. 고제高帝의 이름이니, 사당에는 복야僕射가 있었다. 의 부류에 지나지 않는 것인데, 사람의 일을 버려두고 부서符書에 의탁하였으니, 스스로 믿지 않음이 어찌 이와 같단 말인가?
三代之王 固嘗受命이나 其符安在
삼대三代의 왕이 진실로 일찍이 천명天命을 받았으나 그 부서符書가 어디에 있었는가?
夫亦卜諸人心而已矣
또한 사람의 마음에 점쳤을 뿐이었다.
雖然이나 神器至重이라
그러나 신기神器(天子의 지위)는 지극히 소중하다.
一旦而得之 誠非偶然者 萬一有前世博物道術之士 察見興亡하고 形諸讖記 或未可知也
하루아침에 이것을 얻은 것이 진실로 우연이 아니니, 만일 전대前代에 온갖 사물을 널리 알고 도술道術에 능한 선비가 있어서 흥망성쇠興亡盛衰의 이치를 살펴보고 이것을 도참서圖讖書에 나타냈는지는 혹 알 수 없다.
然亦不足盡信矣어늘 彼進用人材하고 興建禮樂 何與讖記완대 而拳拳若此
그러나 또한 다 믿을 것이 못 되는데, 저 인재人材를 등용하고 예악禮樂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 도참서圖讖書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이와 같이 연연해 한단 말인가?
是殆蔽溺過甚하야 不自知義理所在乎인저
이는 자못 가리고 빠짐이 너무 심해서 스스로 의리義理가 있는 바를 알지 못한 것이다.
吾觀光武컨대 不特自信而已 又將移之群臣하야 至附於聖人之經하고 以此明示百官하야 則而象之하야 妄說符命하니 其患 何所不至哉
내가 살펴보건대 광무제光武帝는 스스로 믿었을 뿐만 아니라 또 이것을 여러 신하들에게 옮겨서 성인聖人경서經書에 붙이기까지 하였고, 이것을 백관百官들에게 분명히 보여서 본받아 따르게 하여 부명符命을 함부로 말하게 하였으니, 그 폐해가 어찌 이르지 못하는 바가 있겠는가.
流弊旣廣 餘孽日深이라
폐해가 이미 넓어짐에 남은 싹이 날로 깊어졌다.
以唐太宗之明智로도 猶以秘記 殺功臣注+[附註]左武衛將軍武連縣公 李君羨 直玄武門時 太白 屢晝見하니 太史占云 女主昌이라하고 民間 又傳秘記云 唐三世之後 女主武王 代有天下라하니 上惡之하다 與諸武臣으로 宴宮中行酒할새 令實言少名하니 君羨自言 名五娘이라하야늘 上笑曰 何物女子 乃爾勇健고하다 又以君羨官稱邑封 皆有武字라하야 深惡之하다 出爲華州刺史러니 有布衣員道信 自言 能絶粟, 曉佛法이라하니 君羨 深敬信之하야 數相從屛人語 御史奏 君羨 與妖人交通하야 謀不軌라하야 坐誅하니라하고 亂臣賊子 私自譔(撰)述하야 欺天罔人하야 行盜竊之計多矣 孰謂光武之明智而慮不及此哉
나라 태종太宗의 밝음과 지혜로도 오히려 비기秘記 때문에 공신功臣을 죽였고,注+[附註]좌무위장군左武衛將軍 무련현공武連縣公 이군선李君羨현무문玄武門에서 숙직할 때에 태백성太白星이 여러 번 낮에 나타나니, 태사太史가 점을 치기를 “여주女主가 창성할 조짐이다.” 하였으며, 민간에 또 비기秘記를 전하기를 “나라는 3대가 지난 뒤에 여주女主무왕武王이 대신하여 천하를 소유한다.” 하니, (太宗)이 이를 싫어하였다. 마침 이 여러 무신武臣들과 궁중에서 잔치하여 술잔을 돌릴 적에 신하들로 하여금 어렸을 때의 이름을 사실대로 말하게 하였는데, 이군선李君羨이 자신의 이름이 오랑五娘이라고 말하자, 이 웃으며 말하기를 “무슨 놈의 여자가 이와 같이 용맹하고 건장하단 말인가.” 하였으며, 또 이군선李君羨관명官名식읍食邑봉호封號에 모두 무자武字가 들어있다 하여 매우 그를 미워하였다. 이군선李君羨화주자사華州刺史로 나갔는데, 포의布衣운도신員道信이 스스로 말하기를 “곡식을 먹지 않고 살 수 있고 불법佛法을 안다.” 하니, 이군선李君羨이 그를 깊이 존경하고 믿어 자주 따라서 놀며 사람을 물리치고 둘이서만 말하곤 하였다. 어사御史가 아뢰기를 “이군선李君羨이 요망한 사람과 교통交通하여 불궤不軌(반역)를 도모합니다.”라고 하여 마침내 죄에 걸려 죽임을 당하였다. 난신적자亂臣賊子들이 사사로이 스스로 글을 지어 하늘을 속이고 사람을 속여서 도적질하는 계책을 행한 자가 많으니, 누가 광무제光武帝의 밝음과 지혜로도 사려가 여기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겠는가.”
南陽太守杜詩 政治淸平하니 百姓 便之하고 又修治陂池하야土田하니 郡內比室殷足하야 時人 以方召信臣注+[釋義]字翁卿이니 元帝時人이라이라
남양태수南陽太守 두시杜詩의 정치가 깨끗하고 공평하니 백성들이 편리하게 여겼고, 또 제방과 못을 다스려 전지田地를 널리 개척하니 안에 즐비한 집들이 풍족하여 당시 사람들이 소신신召信臣注+[釋義]소신신召信臣옹경翁卿이니, 원제元帝 때 사람이다. 에게 비교하였다.
南陽 爲之語曰 前有召父러니 後有杜母라하더라
남양南陽 사람들이 이 때문에 말하기를 “전에는 소부召父(召信臣)가 있었는데, 뒤에는 두모杜母가 있다.” 하였다.
〈出本傳〉
- 《후한서後漢書 두시전杜詩傳》에 나옴 -
역주
역주1 六三德 : 《書經》 〈洪範〉에 “여섯 번째 三德은 첫 번째는 정직함이요, 두 번째는 剛으로 다스림이요, 세 번째는 柔로 다스림이니, 平康은 正直이고, 彊하여 순하지 않은 자는 剛으로 다스리고, 和하여 순한 자는 柔로 다스리며, 沈潛한 자는 剛으로 다스리고, 高明한 자는 柔로 다스린다.[六三德 一曰正直 二曰剛克 三曰柔克 平康正直 彊弗友剛克 燮友柔克 沈潛剛克 高明柔克]”라고 보인다. 正直과 剛‧柔의 三德은 군주의 입장에서는 모두 백성을 다스림을 위주로 하고 백성의 입장에서는 각기 군주의 다스림을 따르는 것인바, 백성들의 習俗이 剛하거나 타고난 기품이 柔하면 군주가 모두 剛으로 다스리고, 백성들의 습속이 柔하거나 기품이 剛하면 군주가 모두 柔로 다스리는 것이다.
역주2 高帝優相國之禮 : 高帝가 蕭何를 相國으로 삼고, 蕭何에게 검을 차고 武官이 신는 신을 신고 大殿에 올라오며 조정에 들어와 종종걸음으로 달리지 않도록 하는 恩典을 내렸다.
역주3 太宗假宰輔之權 : 太宗은 孝文帝이다. 申屠嘉를 宰相으로 삼았는데, 이때 鄧通이 군주의 총애를 믿고 태만한 禮가 있자, 申屠嘉가 丞相府에 앉아서 檄文을 만들어 鄧通을 불러 목을 베려 하였다. 이에 孝文帝가 使者를 시켜 節을 가지고 가서 鄧通을 부르고, 승상에게 사례하기를 “이는 내가 희롱하는 신하이니, 그대는 풀어 주라.”고 한 일이 있으므로 宰輔에게 권한을 빌려 주었다고 한 것이다.
역주4 : 탁

통감절요(3)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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