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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7)

통감절요(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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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7)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丁酉]十一年이라
정관貞觀 11년(정유 637)
房玄齡等 受詔하야 定律令할새 比古 死刑 除其太半하니 天下稱賴
방현령房玄齡 등이 조명詔命을 받아 율령律令을 정할 적에 옛날에 비해 사형死刑을 반수 이상 없애니, 천하 사람들이 칭찬하고 신뢰하였다.
由是 斷獄 平允이러라
이로 말미암아 옥사를 결단하는 것이 공평하고 진실해졌다.
〈出刑法志〉
- 《신당서新唐書 형법지刑法志》에 나옴 -
○ 三月 宴洛陽宮西苑하고 泛積翠池할새 顧謂侍臣曰
3월에 낙양궁洛陽宮서원西苑에서 연회하고 적취지積翠池에 배를 띄워 놀 적에 모시는 신하를 돌아보고 이르기를
하고 結怨於民하야 今悉爲我有하니 正由宇文述注+[通鑑要解] , 虞世基, 裴蘊之徒 內爲諂諛하고 外蔽聰明故也
양제煬帝가 이 궁궐과 동산을 만들고는 백성들에게 원망을 사서 지금 전부 나의 소유가 되었으니, 이는 바로 우문술宇文述注+[通鑑要解]우문술宇文述술자述字는 마땅히 가 되어야 한다. 虞世基‧배온裴蘊의 무리가 안으로 아첨하고 밖으로 군주君主의 총명을 가렸기 때문이다.
可不戒哉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 魏徵 上疏하야 以爲人主善始者多하고 克終者寡하니
위징魏徵상소上疏하여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인주人主가 시작을 잘하는 자는 많지만 끝을 잘하는 자는 적으니,
豈取之易而守之難乎잇가
어찌 천하를 취하기가 쉽고 지키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겠습니까.
蓋以()注+[頭註] 讀曰隱이니 痛也 則竭誠以盡下하고 安逸則驕恣而輕物이니
이는 측은해 하고 걱정이 심할 때에는注+[頭註]으로 읽으니, 가슴 아파하는 것이다. 정성을 다하여 아랫사람들을 대하고, 안락할 때에는 교만하고 방자하여 사물을 경시하기 때문이니,
盡下則, 越同心하고 輕物則六親注+[頭註]父母兄弟妻子離德하야 雖震之以威怒 亦皆貌從而心不服故也니이다
정성을 다하여 아랫사람을 대하면 북호北胡남월南越이 한마음이 되지만 사물을 경시하면 육친六親들이注+[頭註]육친六親이다. 마음이 떠나서, 비록 위엄과 노여움으로 두려워 떨게 하더라도 모두 겉으로만 따르고 마음속으로는 복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人主誠能見可欲則思知足하고 將興繕則思知止하고 處高危則思謙降하고 臨滿盈則思挹損注+[頭註] 貶也하고 遇逸樂則思注+[釋義] 子本反이니 裁抑也 記曲禮 恭敬撙節退讓以明禮註 라하니라 하고 在宴安則思後患하고 防壅蔽則思延納하고 疾讒邪則思正己하고 行賞爵則思因喜而僭하고 施刑罰則思因怒而濫이니
군주가 진실로 욕심낼 만한 것을 보았을 때에는 만족할 줄 알아야 함을 생각하고, 건물을 새로 짓거나 수리하려 할 때에는 그칠 줄 알아야 함을 생각하고, 높은 자리에 처했을 때에는 겸손하게 낮출 것을 생각하고, 가득함에 임했을 때에는 덜어낼 것을 생각하고,注+[頭註]은 덜어내는 것이다. 안일함과 즐거움을 만났을 때에는 절제할 것을 생각하고,注+[釋義]은 子本反(존)이니 제재하여 억제하는 것이다. 《예기禮記》 〈곡례曲禮〉의 “공경하고 절제하고 겸양하여 를 밝힌다.”는 내용의 에 “와 같다.” 하였다. 안락하고 편안할 때에는 후환後患을 생각하고, 총명이 가려지는 것을 막으려 할 때에는 천하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들일 것을 생각하고, 참소讒訴하는 자와 간사한 자를 미워할 때에는 자기 몸을 바로잡을 것을 생각하고, 관작官爵을 내려 줄 때에는 기쁨으로 인하여 넘칠까 생각하고, 형벌刑罰을 시행할 때에는 노여움으로 인하여 지나칠까 생각해야 합니다.
兼是十思하야 而選賢任能이면 固可以無爲而治하리니 又何必勞神苦體하야 以代百司之任哉잇가
이 열 가지 생각을 겸하고서 어진 이를 선발하고 유능한 자에게 맡기면 진실로 함이 없이 다스려질 것이니, 또 어찌 굳이 정신을 수고롭게 하고 육체를 괴롭게 하여 백사百司의 직임을 대신할 것이 있겠습니까.”
〈出本傳〉
- 《신당서新唐書 위징전魏徵傳》에 나옴 -
○ 五月 魏徵 上疏하야
5월에 위징魏徵이 상소하여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以爲陛下欲善之志不及於昔時하고 聞過必改 少虧於曩日하며 譴罰積多하고 威怒微厲하시니 乃知貴不期驕, 富不期侈注+[通鑑要解]書曰 位不期驕하고 祿不期侈라한대 孔註 貴不與驕期而驕自至하고 富不與侈期而侈自來라하니라非虛言也니이다
“폐하께서 을 따르고자 하는 의지가 옛날에 미치지 못하고 허물을 들으면 반드시 고치려는 노력도 다소 예전만 못하며, 견책과 형벌이 많이 쌓이고 위엄과 노여움이 점점 엄해지시니, ‘귀하면 교만하기를 기약하지 않아도 교만해지고 부유하면 사치하기를 기약하지 않아도 사치스러워진다.’는注+[通鑑要解]서경書經》 〈주관周官〉에 “지위는 교만함을 기약하지 않아도 교만해지고 祿은 사치함을 기약하지 않아도 사치해진다.” 하였는데, 공영달孔穎達에 “귀함은 교만함과 기약하지 않아도 교만함이 저절로 이르고, 부유함은 사치함과 기약하지 않아도 사치함이 저절로 이른다.” 하였다. 것이 빈 말이 아님을 이제서야 알겠습니다.
昔隋之未亂也 自謂必無亂이라하고 其未亡也 自謂必無亡이라
옛날 나라가 혼란해지기 전에는 스스로 반드시 혼란함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망하기 전에는 스스로 반드시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賦役無窮하고 征伐不息하야 以至禍將及身호되 而尙未之寤也니이다
그러므로 부역이 끝이 없고 정벌을 쉬지 않아서 가 장차 몸에 이르게 되었으나 오히려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 莫如止水 鑒敗 莫如亡國이니
모습을 비춰보는 것은 잔잔한 물만 한 것이 없고 실패를 비춰보는 것은 망한 나라만 한 것이 없습니다.
伏願取鑒於隋하야 去奢從約하고 親忠遠佞하야 以當今之無事 行疇昔之恭儉이면 則盡善盡美 固無得而稱焉이리이다
엎드려 바라건대 나라에서 거울을 취하여 사치를 버리고 검약을 따르시며 충신을 가까이하고 간신을 멀리해서 지금의 태평무사함으로 예전의 공손하고 검소함을 행하신다면 진선진미盡善盡美한 경지에 이를 것임은 진실로 말할 것이 없습니다.
取之實難이요 守之甚易어늘 陛下能得其所難하시니 豈不能保其所易乎잇가
천하를 취하기는 실로 어렵고 천하를 지키기는 매우 쉬운데, 폐하께서는 이미 그 어려운 것을 얻으셨으니, 어찌 그 쉬운 것을 보전하지 못하시겠습니까.”
〈出本傳〉
- 《신당서新唐書 위징전魏徵傳》에 나옴 -
○ 魏徵 上疏하야 以爲文子注+[通鑑要解]老子弟子 范蠡師
위징魏徵이 상소하여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문자文子》에注+[通鑑要解]노자老子의 제자이고 범려范蠡의 스승이다. ‘똑같은 말을 하는데도 믿어주는 것은 믿음이 말하기 전에 있기 때문이요, 똑같은 명령을 하는데도 행해지는 것은 정성이 명령 밖에 있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自王道休明으로 十有餘年이나 然而德化未洽者 由待下之情 未盡誠信故也니이다
왕도王道가 아름답고 밝은 지가 10여 년이 되었지만 덕화德化가 아직 흡족하지 못한 것은 폐하께서 아랫사람을 대하는 심정이 정성과 믿음을 다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立政致治 必委之君子하고 事有得失 或訪之小人하야 其待君子也 敬而疎하고 遇小人也 輕而狎하시니 狎則言無不盡이요 疎則情不上通이니이다
지금 정책을 세우고 다스림을 지극히 하는 것은 반드시 군자에게 맡기고 일에 득실이 있는 것은 간혹 소인에게 물으시어, 군자를 대할 적에는 공경하여 소원하고 소인을 대할 적에는 경시하여 친압하시니, 친압하면 말을 다하지 않음이 없고 소원하면 이 위에 이르지 못합니다.
夫中智之人 豈無小慧리오
중등中等의 지혜를 가진 사람인들 어찌 작은 지혜가 없겠습니까.
이나 才非經國이요 慮不及遠이면 雖竭力盡誠이라도 猶未免有敗어든 況內懷姦 其禍豈不深乎잇가
그러나 재주가 국가를 경영할 만하지 못하고 생각이 심원한 데에 미치지 못하면 비록 힘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더라도 실패함을 면치 못하는데, 더구나 안에 간사한 마음을 품는다면 그 화가 어찌 깊지 않겠습니까.
夫雖君子라도 不能無小過 苟不害於正道 斯可略矣니이다
비록 군자라도 작은 허물이 없을 수 없으니, 만일 정도正道에 해롭지 않다면 생략하고 따지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旣謂之君子하고 而復疑其不信이면 何異立直木而疑其影之曲乎잇가
그런데 이미 그를 일러 군자라 칭하고서 다시 진실하지 않음을 의심한다면 곧은 나무를 세워놓고 그 그림자가 굽었다고 의심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陛下誠能愼選君子하야 以禮信用之하시면 何憂不治릿고
폐하께서 진실로 군자를 신중히 선발해서 그들을 로써 믿고 등용하신다면 어찌 다스려지지 않음을 걱정할 것이 있겠습니까.
不然이면 危亡之期 未可保也니이다
그렇지 않으면 위태롭고 멸망하는 시기를 보증할 수 없을 것입니다.”
賜手詔褒美曰 昔 晉武帝平吳之後 志意驕怠한대 何曾 位極台司注+[附註]漢天文志 兩兩而居하니 在人 爲三公이요 在天 爲三台 三台色齊하면 君臣和라하고 大宗伯疏 上台司命爲太尉 中台司中爲司徒 下台司祿爲司空이라하니라 하야 不能直諫하고
이 손수 쓴 조서詔書를 내리고 칭찬하기를 “옛날 나라 무제武帝나라를 평정한 뒤에 의지가 교만하고 태만해지자, 하증何曾은 지위가 태사台司의 최고 자리에 이르렀으면서도注+[附註]전한서前漢書》 〈천문지天文志〉에 “북두성의 두괴斗魁 아래에 삼태성三台星이 둘씩 짝지어 있으니, 사람에 있어서는 삼공三公이 되고 하늘에 있어서는 삼태성三台星이 된다. 삼태성三台星의 색깔이 같으면 군신간君臣間이 화목하다.” 하였고, 《주례周禮》 〈대종백大宗伯〉의 에 “상태上台사명司命으로 태위太尉가 되고, 중태中台사중司中으로 사도司徒가 되고, 하태下台사록司祿으로 사공司空이 된다.” 하였다. 직간하지 못하고,
乃私語子孫하야 自矜明智하니 不忠之大者
도리어 자손들에게 은밀히 말하여 스스로 밝은 지혜를 자랑하였으니, 이는 크게 불충한 것이다.
得公之諫하니 朕知過矣置之几案하야 以比弦韋注+[釋義]三國魏劉曰 韋弦 非能言之物이나 而聖賢 引以自匡하니 臣願自比於韋弦하리이다 韓子曰 西門豹性急이라 故佩韋以自緩하고 董安于性緩이라 故佩弦以自急이라하니라 호리라
의 간언을 얻고 은 나의 잘못을 알았으니, 마땅히 이것을 와 책상 위에 두어서 가죽과 활줄에 견주겠다.” 하였다.注+[釋義]삼국시대三國時代 나라 유이劉廙가 말하기를 “부드러운 가죽과 활줄은 말할 만한 물건은 아니지만 성현聖賢이 이것을 끌어다 자신을 바로잡았으니, 신은 저를 부드러운 가죽과 활줄에 견주기를 바랍니다.” 하였고, 《한비자韓非子》에 말하기를 “서문표西門豹는 성질이 급하였으므로 부드러운 가죽을 몸에 차서 스스로 느긋해지게 하였고, 동안우董安于는 성질이 느긋하였으므로 활줄을 차서 스스로 급해지게 했다.” 하였다.
○ 侍御史馬周上疏하야
시어사侍御史 마주馬周가 상소하여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以爲三代及漢 歷年 多者八百이요 少者不減四百 良以恩結人心하야 人不能忘故也니이다
삼대三代나라가 역년歷年이 많은 경우에는 800년이었고 적은 경우에도 400년보다 적지 않았던 것은 진실로 은혜가 사람들 마음에 맺혀서 사람들이 잊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自是以降으로 多者六十年이요 少者纔二十餘年 皆無恩於人하야 本根不固故也니이다
이 이후로는 역년歷年이 많은 경우에는 60년이었고 적은 경우에는 겨우 20여 년이었으니, 이는 모두 백성들에게 은혜가 없어서 국가의 근본이 견고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陛下當隆禹, 湯, 文, 武之業하야 爲子孫하야 立萬代之基 豈得但恃當年而已릿가
폐하께서는 마땅히 우왕禹王탕왕湯王문왕文王무왕武王공업功業을 높여서 자손을 위하여 만대萬代기업基業을 세우셔야 할 것이니, 어찌 단지 당년當年공업功業만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今之戶口 不及隋之什一이어늘 而給役注+[頭註] 謂供給이라 者 兄去弟還하야 道路相繼
지금의 호구戶口나라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부역賦役을 하는 자들이注+[頭註]은 공급함을 이른다. 형이 떠나면 아우가 돌아와서 도로에 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陛下雖加恩詔하야 使之裁損이나 然營繕不休하니 民安得息이릿가
폐하께서 비록 은혜로운 조명詔命을 내려 부역賦役을 줄이게 하시나 영선營繕하는 일이 그치지 않으니 백성들이 어떻게 편안히 쉴 수 있겠습니까.
臣觀自古以來 百姓愁怨하야 聚爲盜賊이면 其國 未有不亡者하니
신이 보건대 예로부터 백성들이 근심하고 원망하여 모여서 도적이 되면 그 나라가 망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蓋幽, 厲嘗笑桀, 紂矣 煬帝亦笑周, 齊注+[頭註] 宇文氏 高氏이니 皆北朝 不可使後之笑今 如今之笑煬帝也니이다
유왕幽王여왕厲王은 일찍이 걸왕桀王주왕紂王을 비웃었고 나라 양제煬帝 또한 북주北周북제北齊注+[頭註]우문씨宇文氏이고 고씨高氏이니, 모두 북조北朝이다. 군주를 비웃었으니, 후대後代로 하여금 지금의 우리를 비웃기를 지금의 우리가 양제煬帝를 비웃는 것과 같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貞觀之初 天下飢注+[釋義] 苦簟反이니 食不滿也 하야 斗米直(値)匹絹이로되 而百姓不怨者 知陛下憂念不忘故也
정관貞觀 초기에 천하에 흉년이 들어서注+[釋義]은 苦簟反(겸)이니, 음식이 양에 차지 않는 것이다. 쌀 한 말 값이 비단 한 필이었는데도 백성들이 원망하지 않았던 것은 폐하께서 백성들을 근심하고 염려하여 잊지 않으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比年豐穰注+[釋義] 如羊反이니 豐也 하야 匹絹 得粟十餘斛이로되 而百姓怨咨者 知陛下不復念之하고 多營不急之務故也니이다
지금은 해마다 풍년이 들어서注+[釋義]은 如羊反(양)이니, 풍년이다. 비단 한 필에 곡식 10여 을 얻을 수 있는데도 백성들이 원망하는 것은 폐하께서 다시는 그들을 염려하지 않고 급하지 않은 일을 많이 경영하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自古以來 國之興亡 不以畜積多少하고 在於百姓苦樂하니이다
예로부터 국가의 흥망은 저축의 많고 적음을 따르지 않고 백성들의 괴로움과 즐거움에 달려 있었습니다.
且以近事驗之컨대 隋貯洛口倉而李密因之하고 東都積布帛而世充資之하고 西京府庫 亦爲國家之用하야 至今未盡하니
또 근래의 일을 가지고 징험하건대, 나라가 낙구창洛口倉에 곡식을 많이 저축하였으나 이밀李密이 이것을 이용하였고, 동도東都에 베와 비단을 많이 쌓아두었으나 왕세충王世充이 이용하였고, 서경西京부고府庫 역시 우리나라에 이용당하여 지금까지도 다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夫畜積 固不可無 要當人有餘力然後 收之 不可彊斂以資寇敵也니이다
저축은 진실로 없을 수 없으나 요컨대 백성들이 여력餘力이 있은 뒤에 거두어야 할 것이요, 강제로 거두어서 구적寇敵에게 이용당하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夫儉以息人 陛下已於貞觀之初 親所履行하시니 在於今日하야 爲之固不難也니이다
절약하여 백성들을 쉬게 하는 것은 폐하께서 이미 정관貞觀 초기에 몸소 실천하셨으니, 오늘날에 행하시는 것은 진실로 어렵지 않습니다.
陛下必欲爲長久之計인댄 不必遠求上古 但如貞觀之初 則天下幸甚이리이다
폐하께서 반드시 장구한 계책을 세우고자 하신다면 굳이 멀리 상고시대上古時代에서 찾을 것 없이 다만 정관貞觀의 초기처럼만 하신다면 천하가 매우 다행일 것입니다.
又百姓所以治安 唯在刺史, 縣令하니 苟選用得人이면 則陛下可以端拱無爲하리이다
또 백성들이 다스려지고 편안함은 오직 자사刺史현령縣令에게 달려 있으니, 만일 자사刺史현령縣令을 선발하여 등용할 때에 적임자를 얻는다면 폐하께서는 단정히 앉아서 팔짱을 끼고 함이 없어도 천하가 다스려짐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今朝廷 唯重內官하고 而輕州縣之選하야 刺史 多用武人하고 或京官不稱職이면 始補外任하며 邊遠之處 用人更輕하니 所以百姓未安 殆由於此니이다
그런데 지금 조정에서는 오직 내관內官의 선발을 중히 여기고 주현州縣의 선발을 가볍게 여겨서, 자사刺史에 대부분 무인武人들을 등용하고 혹 경관京官이 직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비로소 외임外任을 맡기며, 변방의 먼 곳에는 사람을 등용하는 것을 더욱 가볍게 여기니, 백성들이 편안하지 않은 것은 거의 이 때문입니다.”
疏奏 上稱善久之하고 謂侍臣曰 刺史 朕當自選이요 縣令 宜詔京官五品已上하야 各擧一人하라
마주馬周가 상소를 아뢰자, 이 칭찬하기를 마지않고 시신侍臣에게 이르기를 “자사刺史이 직접 선발할 것이요, 현령縣令경관京官 5품 이상에게 명해서 각각 한 사람씩 천거하게 하도록 하라.” 하였다.
〈出周本傳〉
- 《신당서新唐書 마주전馬周傳》에 나옴 -
역주
역주1 煬帝作此宮苑 : 西苑은 隋나라 煬帝 大業 元年(605)에 만든 동산으로 둘레가 300리나 되며, 이 안에 둘레 10여 리의 연못을 파서 蓬萊‧方丈‧瀛洲 등의 산을 만들었는데 높이가 백여 尺이나 되었으며, 산 위에는 臺觀과 殿閣을 화려하게 세우고 온갖 花木을 심었다. 그리고 가을이 되어 꽃이 지면 사람들을 시켜서 채색 비단을 잘라 꽃과 잎을 만들어서 나뭇가지에 붙이게 하였다.
역주2 述字當作愷也 : 이는 胡三省의 註에 근거한 것으로, 宇文述과 宇文愷는 모두 隋나라의 대신이다. 宇文述은 탐욕스러웠으며, 宇文愷는 당시 工部尙書로서 궁궐을 화려하게 짓고 황제가 순행할 때 의식을 사치스럽게 하여 황제의 환심을 산 인물이다.
역주3 : 준
역주4 撙猶趨也 : 孔穎達의 疏에 “撙은 따름이요 節은 법도이니, 撙節은 항상 法度를 따름을 말한다.” 하였다.
역주5 文子 : 老聃의 제자라고 하며 혹자는 이름이 計然이라고 한다. 《文子》는 老子의 《道德經》을 부연한 책으로 周나라 辛釿이 지었다고 전해오며 唐나라 때에는 《通玄眞經》으로 존칭되었다.
역주6 同言而信……誠在令外 : 이 내용은 《文子》 〈道原〉에 보인다.
역주7 : 궤
역주8 斗魁 : 북두칠성 가운데 첫 번째에서 네 번째까지의 별인 天樞‧天璇‧天璣‧天權을 가리킨다.
역주9 三台 : 上台‧中台‧下台의 세 별로 삼정승을 의미한다. 서쪽으로 文昌星과 가까운 두 개의 별을 上台라 하니 司命으로 수명을 주관하고, 가운데 두 개를 中台라 하니 司中으로 宗室을 주관하고, 동쪽으로 있는 두 개를 下台라 하니 司祿으로 군대를 주관한다.
역주10 : 이
역주11 : 겸

통감절요(7)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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