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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9)

통감절요(9)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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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辰]四年이라
중화中和 4년(갑진 884)
春二月 克用 追及巢於中牟하야 奮擊大破之하니 尙讓 帥其衆降하다
봄 2월에 이극용李克用중모中牟에서 황소黃巢를 추격하여 따라잡고 분격하여 크게 쳐부수니, 상양尙讓이 그의 무리를 거느리고 항복하였다.
○ 六月 武寧將李師悅 與尙讓으로 追黃巢至瑕丘하야 敗之하니 巢衆殆盡이라
6월에 무령군武寧軍의 장수 이사열李師悅상양尙讓과 함께 황소黃巢를 추격하여 하구瑕丘에 이르러서 패퇴시키니, 황소黃巢의 무리가 거의 다 없어졌다.
走至狼虎谷이어늘 巢甥林言 斬巢兄弟妻子首하야 以降하다
황소黃巢가 도망하여 낭호곡狼虎谷에 이르자, 황소黃巢의 생질인 임언林言황소黃巢와 그의 형제兄弟처자妻子의 목을 베어 항복하였다.
○ 秋七月 李克用 至晉陽하야 大治甲兵하고 遣使하야 奉表詣行在하야 自陳호되
가을 7월에 이극용李克用진양晉陽에 이르러 갑옷과 병기를 크게 수선하고, 사자使者를 보내어 표문表文을 받들고 행재소에 이르러서 스스로 아뢰기를
有破黃巢大功이나 爲朱全忠所圖注+[附註]克用 至汴州하야 營於城外러니 全忠 固請館驛하고 置酒甚恭하다 克用 乘酒使氣하야 語頗侵之한대 全忠 不平하고 罷酒하다 從者皆醉러니 宣武將楊彦洪 密與全忠謀하야 圍驛攻之호되 克用醉하야 不之聞이라 親兵薛志勤, 史敬思等 格鬪할새 侍者扶克用하야 匿床下하고 以水沃其面告之하다 夜大雨震雷하야 天地晦冥이라 克用 帥左右數人하고 踰垣突圍하야 縋城得出하다 語頗侵之者 全忠 嘗從黃巢爲寇 觸其實也 하야 僅能自免하니 乞遣使按問하고 發兵誅討하소서
황소黃巢를 격파한 큰 공이 있으나 주전충朱全忠에게 도모당하여注+[附註]이극용李克用변주汴州에 이르러 성 밖에서 진영을 쳤는데, 주전충朱全忠이 굳이 관역館驛으로 올 것을 청하고 술자리를 베풀어 매우 공손히 대하였다. 이극용李克用이 술김에 객기를 부려 자못 주전충朱全忠을 침해하는 말을 하자, 주전충朱全忠이 불편해하고 술자리를 파하였다. 시종하는 자가 모두 취하자, 선무군宣武軍의 장수인 양언홍楊彦洪이 은밀히 주전충朱全忠과 함께 관역館驛을 포위하여 이극용李克用을 공격할 것을 모의하였으나 이극용李克用은 술에 취하여 이를 듣지 못하였다. 친위병親衛兵설지근薛志勤사경사史敬思 등이 격투할 즈음에 모시는 자가 이극용李克用을 부축하여 침상 아래에 숨기고 찬물을 그의 얼굴에 부어 정신을 차리게 하여 이러한 사실을 고하였다. 마침 밤에 큰 비가 내리고 천둥과 벼락이 쳐서 천지가 캄캄하였는데, 이극용李克用이 좌우의 측근 몇 사람을 거느리고 담장을 뛰어넘어서 포위망을 뚫고 성에 밧줄을 매달아 탈출하였다. 자못 주전충朱全忠을 침해하는 말을 하였다는 것은 주전충朱全忠이 일찍이 황소黃巢를 따라 도적이 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사실을 언급한 것이다. 겨우 스스로 죽음을 면하였으니, 바라건대 사자使者를 보내어 조사하고 군대를 동원하여 토벌해주소서.” 하였다.
朝廷 以大寇初平이라하야 方務姑息이라 得克用表하고 大恐하야 但遣中使하야 賜優詔和解之하니라
이때 조정은 큰 도둑(黃巢)이 처음으로 평정되었다 하여 우선 당장 눈앞의 편안함만 힘썼는데, 이극용李克用표문表文을 얻고는 크게 두려워하여 다만 중사中使를 보내어 우대하는 조서를 내려 화해하게 하였다.
[史略 史評]范氏曰
[史略 사평史評]范氏(范祖禹)가 말하였다.
天子所以制御天下者 賞善罰惡하며 辨是非枉直하야 使人各當其所하고 物各安其分하야 而不相侵暴也
천자天子가 천하를 제어하는 것은 선한 사람에게 상을 주고 악한 사람에게 벌을 주며 옳고 그름과 굽고 곧음을 분별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각각 제자리에 마땅하게 하고 물건으로 하여금 각각 분수에 편안하게 해서 서로 침략하고 포악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克用 有復唐室大功이어늘 而全忠輒欲殺之호되 克用 不敢專兵復仇하고 而赴訴於朝廷하니 諸侯有猶尊王室之心也
이극용李克用나라 황실을 수복한 큰 이 있었으나 주전충朱全忠이 번번이 그를 죽이고자 하였는데, 이극용李克用이 감히 자기 마음대로 군대를 동원하여 보복하지 않고 조정에 달려와 하소연하였으니, 이는 제후諸侯들이 아직도 왕실王室을 높이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爲天子者 詰其孰是孰非하야 使征伐號令으로 出於天子 則誅一鎭 而天下莫敢不從矣리라
천자天子 된 자가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를 따져서 정벌과 호령이 천자天子에게서 나오게 하였다면, 한 번진藩鎭을 주벌함에 천하에 감히 따르지 않는 자가 없었을 것이다.
僖宗則不然하야 知其直者而不恤하고 置其不直者而不問하니 不惟全忠無所忌憚이요 而克用心亦不服하니
그런데 희종僖宗은 이렇게 하지 않아서 정직한 자인 줄을 알면서도 구휼하지 않았고 정직하지 않은 자를 내버려두고 문책하지 않았으니, 주전충朱全忠이 기탄하는 바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극용李克用도 심복하지 않았다.
欲兩存之 乃兩失之
그리하여 둘 다 보존하고자 하다가 마침내 둘 다 잃게 되었다.
自是 藩鎭 喜相征伐하야 不復稟命하니 以天子不足訴也일새라
이로부터 번진藩鎭이 서로 정벌하기를 좋아하여 다시는 황제에게 명령을 받지 않았으니, 이는 천자天子가 나약하여 천자天子에게 하소연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書曰 有罪無罪 惟我在어니 曷敢有越厥志리오하니 刑罰者 所以爲天討也
서경書經》 〈태서泰誓〉에 이르기를 ‘죄가 있든 죄가 없든 내가 있으니, 천하天下에 어찌 감히 그 마음을 지나치게 하여 난을 일으키는 자가 있겠는가.’라고 하였으니, 형벌은 하늘의 토벌을 시행하는 것이다.
王者之於天下 懲勸 可不明哉
왕자王者가 천하를 다스림에 있어 권선징악을 분명히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田令孜益驕橫하야 禁制天子하야 不得有所主斷하니 患其專하야 時語左右而流涕러라
전령자田令孜가 더욱 교만하고 전횡하여 천자天子금제禁制(제재)하여 천자天子가 주장하고 결단하는 바가 있지 못하니, 이 그의 전횡專橫을 근심하여 때때로 좌우 사람들에게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통감절요(9)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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