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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9)

통감절요(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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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庚戌]〈漢乾祐三年이라
경술(950) - 나라 건우乾祐 3년이다.
○ 是歲 四國, 三鎭이러니 漢亡하니라
○ 이해에 네 나라이고 세 이었는데, 나라가 망하였다. -
夏四月 漢朝以契丹近入寇橫行호되 河北諸藩鎭 各自守하고 無扞禦之者라하야하야 以郭威 爲鄴都留守天雄節度使하야 樞密使 如故注+[頭註]漢主卽位하야 以威 仍爲樞密使同平章事하니라 하고 以左監門衛將軍郭榮으로 爲天雄衙內都指揮使하다
여름 4월에 나라 조정에서는 거란契丹이 가까이 침입하여 횡행하였으나 하북河北의 여러 번진藩鎭들이 각각 자신만 지키고 거란을 막는 자가 없다 하여, 제서制書를 내려 곽위郭威업도유수鄴都留守 천웅절도사天雄節度使로 임명하여 추밀사樞密使는 예전처럼 맡게 하고,注+[頭註]한주漢主(劉承祐)가 즉위하여 곽위郭威추밀사樞密使 동평장사同平章事에 그대로 임명하였다. 좌감문위장군左監門衛將軍 곽영郭榮천웅아내도지휘사天雄衙內都指揮使로 임명하였다.
本姓 父守禮 郭威之妻兄也
곽영郭榮본성本姓이니, 아버지 수례守禮곽위郭威처형妻兄이었다.
威未有子時 養以爲子하니라
곽위郭威가 아들이 없었을 때에 길러서 양자로 삼았다.
〈威微時 刺其頂上하야 爲雀兒하니 人皆稱爲郭雀兒러니 後爲周高祖하고 榮爲世宗하니라
- 곽위郭威가 미천했을 때 이마 위에 작아雀兒라고 자자刺字하니, 사람들이 모두 곽작아郭雀兒라고 칭하였는데, 뒤에 곽위郭威나라 고조高祖가 되고 곽영郭榮세종世宗이 되었다. -
○ 漢主自卽位以來 楊邠 總機政하고 郭威 主征伐하고 史弘肇 典宿衛하고 王章注+[頭註]三司使同平章事 掌財賦하니 以是 國家粗安이러라
한주漢主(劉承祐)가 즉위한 이래로 양빈楊邠기무機務와 정사를 총괄하고 곽위郭威는 정벌을 주관하고 사홍조史弘肇숙위宿衛를 맡고 왕장王章注+[頭註]왕장王章삼사사三司使 동평장사同平章事이다. 재부財賦를 맡으니, 이 때문에 국가가 다소 편안하였다.
聚斂刻急하야 有犯鹽礬注+[頭註] 藥石也 有白靑黃黑赤五種이라 或染者 借以成色하니라 酒麯之禁者 錙銖涓滴이라도 罪皆死하다
왕장王章은 재정을 거두어들일 적에 각박하고 급박해서 소금과 백반과注+[頭註]약석藥石이니, 백색‧청색‧황색‧흑색‧적색 다섯 종류가 있다. 염색하는 자가 이를 이용하여 색(물감)을 만들기도 한다. 술과 누룩에 대한 금령을 범한 자가 있으면 저울눈만한 것과 물방울만한 것이라도 모두 사형에 처하였다.
尤不喜文臣하야 嘗曰 此輩 授之握算이면 不知縱橫注+[通鑑要解]算之橫豎 王章爲三司使하야 寔掌財賦故 云然也 이니 何益於用이리오
왕장王章은 더욱이 문신文臣들을 좋아하지 아니하여 일찍이 말하기를 “이들은 악산握算(주판)을 주면 다룰 줄 모르니,注+[通鑑要解]종횡縱橫은 주판의 가로와 세로이니, 왕장王章삼사사三司使가 되어 실로 재부財賦를 맡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등용한들 무엇이 유익하겠는가.” 하였다.
史弘肇曰 安定國家 在長搶大劍이니 安用毛錐注+[通鑑要解]筆也 以束毛爲筆하니 形如錐也 리오
사홍조史弘肇가 말하기를 “국가를 안정시키는 것은 긴 창과 큰 검에 달려 있으니, 모추毛錐(붓)를注+[通鑑要解]모추毛錐는 붓이다. 털을 묶어서 붓을 만드니, 모양이 송곳과 같다. 어디다 쓰겠는가.” 하였다.
章曰 無毛錐 則財賦何從可出고하니
왕장王章이 말하기를 “모추毛錐가 없다면 재부財賦가 어디로부터 나오겠는가?” 하였다.
於是 將相 始有隙하니라
이에 장수와 정승이 서로 틈이 생기게 되었다.
○ 漢主年益壯 厭爲大臣所制하야 積不能平이어늘
한주漢主(劉承祐)는 나이가 더욱 장성하자 대신大臣들에게 제재받는 것을 싫어하여 불평하는 마음이 쌓여갔다.
左右因乘間하야 譖之於漢主호되 云 邠等 專恣하니 終當爲亂이라한대 漢主信之하야 遂謀誅邠等하다
좌우의 신하들이 이를 틈타서 한주漢主에게 참소하기를 “양빈楊邠 등이 전횡하고 방자하니, 끝내 난을 일으킬 것입니다.” 하니, 한주漢主가 그 말을 믿고 마침내 양빈楊邠 등을 죽일 것을 모의하였다.
十一月丙子 邠等 入朝할새 有甲士數十 自廣政殿出하야 殺邠, 弘肇, 章於東廡下하다
11월 병자일丙子日(13일)에 양빈楊邠 등이 들어와 조회할 적에 갑사甲士 수십 명이 광정전廣政殿으로부터 뛰쳐나와서 양빈楊邠사홍조史弘肇왕장王章을 동쪽 행랑채 아래에서 죽였다.
漢主遣供奉官孟業하야 齎密詔하고 詣澶州及鄴都하야 殺王殷注+[頭註]侍衛步軍都指揮使 時在澶州하니라 , 郭威, 王峻注+[頭註]監軍宣徽殿使 時與郭威 在鄴都하니라 하니
한주漢主공봉관供奉官 맹업孟業을 보내어 밀조密詔를 가지고 전주澶州업도鄴都로 가서 왕은王殷注+[頭註]왕은王殷시위보군侍衛步軍 도지휘사都指揮使이니, 이때 전주澶州에 있었다. 郭威‧왕준王峻注+[頭註]왕준王峻감군선휘전사監軍宣徽殿使이니, 이때 곽위郭威와 함께 업도鄴都에 있었다. 죽이게 하니,
郭威召郭崇威注+[頭註]行營馬軍都指揮使 , 曹威注+[頭註]行營步軍都指揮使 及諸將하야 告以楊邠等寃死 及有密詔之狀하고
곽위郭威곽숭위郭崇威注+[頭註]곽숭위郭崇威행영마군行營馬軍 도지휘사都指揮使이다. 조위曹威注+[頭註]조위曹威행영보군行營步軍 도지휘사都指揮使이다. 및 여러 장수들을 불러 양빈楊邠 등이 억울하게 죽은 사실과 황제가 밀조密詔를 내린 실상을 말하고,
且曰 吾與諸公으로 披荊棘注+[頭註]荊棘 喩亂也 하고 從先帝하야 取天下하야 受託孤之任하야 竭力以衛國家러니 今諸公已死하니何心獨生이리오
또 말하기를 “내가 제공諸公들과 온갖 고난을 헤치고注+[頭註]형극荊棘은 난리를 비유한 것이다. 선제先帝(劉知遠)를 따라 천하를 차지하여 고아孤兒(나이 어린 군주)를 부탁하는 중임을 받고 힘을 다해 국가를 보위하였는데, 이제 제공諸公들이 이미 죽었으니, 내 무슨 마음으로 홀로 살겠는가.” 하였다.
郭崇威等 皆泣曰 天子幼沖하니 此必左右群小所爲리니
곽숭위郭崇威 등이 모두 울면서 말하기를 “천자天子의 나이가 어리니, 이는 반드시 좌우에 있는 여러 소인들이 한 짓일 것입니다.
願從公入朝自訴하야 盪滌鼠輩하야 以淸朝廷이요 不可爲單使所殺이니이다
바라건대 을 따라 조정에 들어가서 스스로 황제에게 하소연하고 쥐새끼 같은 무리들을 소탕하여 조정을 깨끗이 청소해야 할 것이요, 일개 사자使者에게 죽임을 당해서는 안 됩니다.” 하였다.
郭威乃留其養子榮하야 鎭鄴都하고 命郭崇威하야 將騎兵前驅하고 自將大軍繼之하야 至封丘하니 人情恟懼러라
곽위郭威가 마침내 그의 양자養子곽영郭榮을 남겨두어 업도鄴都진주鎭駐하게 하고, 곽숭위郭崇威에게 명하여 기병을 거느려 선봉先鋒이 되게 하고 자신은 대군大軍을 거느리고 그 뒤를 이어서 봉구현封丘縣에 이르니, 인심이 흉흉하고 두려워하였다.
漢主遣慕容彦超注+[頭註]奉寧節度使 時徵諸帥하야 以從兵衛宮闕하니라 하야 將兵拒之러니 彦超等 戰敗遂還이어늘
한주漢主모용언초慕容彦超注+[頭註]모용언초慕容彦超봉녕절도사奉寧節度使이니, 이때 여러 장수들을 불러서 병사를 거느리고 궁궐을 호위하였다. 등을 보내어 군대를 거느리고 이들을 막게 하였는데, 모용언초慕容彦超 등이 싸움에 패하고 마침내 돌아왔다.
是日 漢主出勞軍이라가 兵敗하야 爲亂兵所弑하다
이날 한주漢主가 친히 나가 군사를 위로하다가 군사들이 패하여 난병亂兵에게 시해당하였다.
郭威自迎春門入하야 丁亥 帥百官하고 起居太后하고 具奏稱호되 軍國事殷注+[頭註] 盛也 하니 請早立嗣君이니이다
곽위郭威영춘문迎春門으로 들어와 정해일丁亥日(24일)에 백관百官을 거느리고 태후太后의 안부를 물었으며, 글을 갖추어 상주上奏하기를 “군국軍國의 일이 많으니注+[頭註]은 많은 것이다. 뒤를 이을 군주를 일찍 세우소서.” 하였다.
太后誥迎漢主弟河東節度使注+[頭註]니라 하야 卽皇帝位하다
태후太后고명誥命을 내려 한주漢主의 아우(從弟) 하동절도사河東節度使 유빈劉贇注+[頭註]유빈劉贇한주漢主(劉承祐)의 아우이고, 하동절도사河東節度使 유숭劉崇의 아들이며, 고조高祖 유고劉暠(劉知遠의 개명改名)의 조카이다. 맞이하여 황제에 즉위하게 하였다.
○ 武平節度使馬希萼注+[頭註]希廣之兄이라 攻楚王希廣殺之하고 自稱武安, 靜江, 寧遠等軍節度使하다
무평절도사武平節度使 마희악馬希萼注+[頭註]마희악馬希萼마희광馬希廣의 형이다. 초왕楚王 마희광馬希廣을 공격하여 죽이고, 스스로 무안군武安軍정강군靜江軍영원군寧遠軍 등의 절도사節度使를 칭하였다.
入寇어늘 漢太后命郭威하야 將大軍擊之하다
요주遼主가 들어와 침략하자 나라 태후太后곽위郭威에게 명하여 대군大軍을 거느리고 공격하게 하였다.
十二月 威發大梁하야 館于澶州러니 癸丑旦 將發할새 將士數千人 忽大譟어늘
12월에 곽위郭威대량大梁을 출발하여 전주澶州에 머물러 있었는데, 계축일癸丑日(20일) 아침 장차 출발하려 할 즈음에 장병 수천 명이 갑자기 크게 고함을 치며 시끄럽게 떠들었다.
威命閉門하니 將士踰垣登屋而入曰 天子 須侍中自爲之 將士已與劉氏注+[頭註]漢姓이라 爲仇하니 不可立也라하고
곽위郭威가 성문을 닫도록 명하니, 장병들이 담장을 뛰어넘어 지붕 위로 올라와 궁중 안으로 들어와서 말하기를 “천자는 모름지기 곽시중郭侍中(郭威)께서 스스로 해야 할 것이요, 장병들은 이미 유씨劉氏注+[頭註]유씨劉氏나라의 이다. 원수가 되었으니, 그를 세워서는 안 됩니다.” 하였고,
或裂黃旗하야 以被威體하고 共扶抱之하야 呼萬歲震地하고 因擁威南行이라
혹자는 황색 깃발을 찢어 곽위郭威의 몸에 입혀주고 함께 부둥켜 안고서 만세를 불러 만세소리가 천지에 진동하였으며, 인하여 곽위郭威를 옹위하고 남쪽으로 갔다.
威乃上太后牋호되 請奉漢宗廟하고 事太后爲母라하다
곽위郭威가 마침내 태후에게 전문牋文을 올려 “나라 종묘를 받들고 태후를 섬겨 어머니로 삼겠다.”고 청하였다.
己未 太后誥廢贇하야 爲湘陰公하고 以侍中威 監國하니 百官藩鎭 相繼上表勸進하다
기미일己未日(26일)에 태후太后고명誥命을 내려 유빈劉贇을 폐하여 상음공湘陰公으로 삼고 시중侍中 곽위郭威감국監國으로 삼으니, 백관百官번진藩鎭이 서로 이어 곽위郭威에게 표문을 올려 황제에 오를 것을 권하였다.
歷年圖曰
역년도歷年圖》에 말하였다.
高祖擁精銳之兵하고 居形便之地러니 屬胡騎北旋하고 中州乏主
고조高祖(劉知遠)는 정예한 병력을 보유하고 지형이 유리한 지역에 있었는데, 마침 오랑캐의 기병이 북쪽으로 돌아가고 중원中原에 주인이 없었다.
雍容南面而天下歸之하니 豈其材德之首出哉
그러므로 온화하게 남면南面하여 천하가 그에게 귀부歸附하였으니, 어찌 그의 재주와 덕이 크게 뛰어났기 때문이겠는가.
乃會其時之可爲也
바로 큰일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났기 때문이다.
夫根疏者不固하고 基薄者易危
뿌리가 엉성한 자는 견고하지 못하고, 기반이 약한 자는 위태롭기가 쉽다.
隱帝 雖有南面之號 而政非己出하야 民不知君하고 輕信群小之謀하야 欲除跋扈之臣이라가 禍不旋踵하니 自然之勢也
은제隱帝(劉承祐)는 비록 남면南面(제왕)의 칭호를 소유하였으나 정사가 자신에게서 나오지 아니하여 백성들이 군주를 알지 못하였고, 여러 소인들의 계책을 가볍게 믿어서 발호하는 신하를 제거하고자 하다가 발걸음을 돌리기도 전에 가 미쳤으니, 이는 자연의 형세이다.
父子相繼四年而滅하니 自古享國之短 未有若玆也니라
부자父子가 서로 계승해서 4년 만에 멸망하였으니, 예로부터 나라를 누린 것이 이와 같이 짧은 경우는 있지 않았다.”
右後漢 二主 共四年이라
이상 후한後漢은 두 군주에 모두 4년이다.
역주
역주1 : 빈
역주2 贇……高祖暠之猶子 : 後漢의 世系를 살펴보면 隱帝 劉承祐는 高祖 劉知遠의 아들이고, 劉贇은 北漢의 世祖인 劉崇의 아들이며, 劉崇은 劉知遠의 아우이므로, 劉贇은 劉知遠의 조카이고 劉承祐의 從弟이다.
역주3 遼主 : 耶律阮을 가리킨다. 遼나라 太祖 耶律阿保機는 耶律德光이 遼나라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 원래 皇太子였던 耶律倍 대신 耶律德光이 즉위하게 하니, 耶律倍가 耶律德光을 피하여 後唐으로 달아났다. 그후 耶律德光이 죽은 뒤에 耶律倍의 아들 耶律阮이 스스로 즉위하여 황제가 되었다.

통감절요(9)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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