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丁卯]太和二年이라 〈秦建元三年이요 燕建熙八年이라〉
燕太原王恪
注+[頭註]皝之第四子라이 疾病
이어늘 暐
注+[頭註]皝之第二子雋之子라親視之
하고 問以後事
한대
恪曰 吳王이 文武兼資하야 管, 蕭之亞니 陛下若任以大政이면 國家可安이어니와
不然
이면 秦, 晉
이 必有窺窬
注+[通鑑要解]窬는 音由니 門邊小竇也라之計
하리이다
태화太和 2년(정묘 367) - 진秦나라 건원建元 3년이고, 연燕나라 건희建熙 8년이다. -
연燕나라
태원왕太原王 모용각慕容恪注+[頭註]태원왕太原王 모용각慕容恪은 모용황慕容皝의 넷째 아들이다. 이 병이 심해지자,
모용위慕容暐注+[頭註]모용위慕容暐는 모용황慕容皝의 둘째 아들인 모용준慕容雋의 아들이다. 가 친히 가서 병을 살펴보고 그가 죽은 뒤의 일을 물었는데,
모용각慕容恪이 말하기를 “오왕吳王이 문무文武를 겸비하여 관중管仲과 소하蕭何에 버금가니, 폐하께서 만약 그에게 큰 정사를 맡기신다면 국가가 평안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진秦나라와
진晉나라가 반드시 틈
注+[通鑑要解]유窬는 음音이 유이니, 문 옆의 작은 구멍이다. 을 엿보아 동하려는 계책이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진왕秦王 부견苻堅이 모용각慕容恪이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은밀히 연燕나라를 도모할 계책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