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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1)

통감절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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陽節潘氏(潘榮)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治天下有道하니 親賢遠姦 明而已矣 治天下有法하니 信賞必罰 斷而已矣 治天下有本하니 禮樂敎化 順而已矣
“천하를 다스림에 가 있으니 현자賢者를 가까이하고 간사한 자를 멀리함을 분명하게 할 뿐이요, 천하를 다스림에 이 있으니 상과 벌을 공정하고 엄중하게 결단할 뿐이요, 천하를 다스림에 근본이 있으니 예악禮樂교화敎化를 순하게 할 뿐이다.
明則君子進而小人退하고 斷則有功勸而有罪懲하고 順則萬事理, 人心悅하야 而天下和
현자賢者를 가까이하고 간사한 자를 멀리함을 분명히 하면 군자가 등용되고 소인이 물러나며, 상과 벌을 공정하고 엄중하게 결단하면 공이 있는 자가 권면되고 죄가 있는 자가 징계되며, 예악禮樂교화敎化를 순하게 하면 만사萬事가 다스려지고 인심人心이 기뻐하여 천하가 화목해진다.
三者之要 在身하니 身端心誠이면 不令而行矣
세 가지의 요점은 군주 자신에게 있으니, 몸이 바르고 마음이 성실하면 명령하지 않아도 행해진다.
唐虞三代之治 純用禮樂하야 敎化大行하야 不言而信하고 不怒而威하야 無爲而治하니 如斯而已러니
그러므로 唐‧虞와 삼대三代의 정치는 순전히 예악禮樂을 써서 교화敎化가 크게 행해져 말하지 않아도 믿고 성내지 않아도 두려워해서 함이 없이 저절로 다스려졌으니, 이와 같이 할 뿐이다.
及其衰也하야는 夏以하고 商以하고 周以褒姒하니 佚欲之亡人하야 而百令不從矣
그런데 나라가 쇠퇴함에 미쳐서 夏나라는 妺喜로, 商나라는 妲己로, 周나라는 褒姒로 인해 망하였으니, 이는 안일함과 욕망이 사람을 망쳐서 모든 명령을 따르지 않게 된 것이다.
周室東遷之後 王政不行하야 諸侯多僭이라
周나라 왕실王室이 동쪽(洛陽)으로 천도遷都한 뒤에는 왕자王者의 정사가 행해지지 못하여 제후諸侯들이 참람한 자가 많았다.
夫子自衛反魯하사 作春秋以正王化러시니 至於戰國하야는 王室陵夷하야 分崩離析이라
그러므로 夫子(孔子)께서 衛나라에서 魯나라로 돌아오셔서 《춘추春秋》를 지어 왕화王化를 바로잡으셨는데,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이르러서는 왕실이 침체하여 국토가 분열되고 군신간君臣間이 이산되었다.
孟子去魏適齊하사 陳王道以正人心하시니 是皆聖賢爲萬世生民而發也
그러므로 孟子께서 魏나라를 떠나 齊나라에 가시어 왕도王道를 말씀해서 인심人心을 바로잡으셨으니, 이는 모두 성현聖賢만세萬世생민生民을 위하여 하신 것이다.
自玆以還으로 迹熄澤竭하야 人私其身하고 士私其學하야 異論蜂起하야 聖學榛蕪
이로부터 이후로 왕자王者의 자취가 종식終熄되고 은택이 다하여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사사로이 하고 선비들은 자신의 학문을 사사로이 해서 이론異論봉기蜂起하여 성학聖學이 황폐해졌다.
秦, 漢而下 安危不一하야 難以悉擧일새 姑取其最關於綱紀者而論之하노라
이후로는 국가의 편안함과 위태로움이 한결같지 않아 다 들기가 어렵기에 우선 기강紀綱에 가장 관계되는 것을 취하여 논하려 한다.
漢高之興 去古未遠하고 豁達大度하야 從諫如流하니 可與有爲之君也
漢나라 高祖가 일어남은 옛날과의 거리가 멀지 않고 성품이 활달하고 도량이 커서 간언諫言을 따르기를 물 흐르듯이 하였으니, 더불어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는 군주였다.
然以輕士嫚罵하고 凌辱大臣하야
그러나 선비를 경시하여 함부로 꾸짖고 대신들을 능욕하였다.
張良 托以辟穀하고何, 參, 平, 勃 以詐以力하니 天下雖安이나 而古禮不復하고 古樂不作 從玆始矣 可勝惜哉
그리하여 張良은 벽곡辟穀을 하여 신선이 된다고 칭탁하고 떠나갔으며 蕭何‧曹參‧陳平‧周勃은 속임수와 힘을 사용하였으니, 천하가 비록 편안하였으나 옛 가 회복되지 못하고 옛 음악이 일어나지 못함이 이로부터 시작되었으니, 애석함을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文帝는 침잠沈潛하였으나 강극剛克하지 못하였고, 武帝는 고명高明하였으나 유극柔克하지 못하였다.
하니 夫何踐祚之初 示民以詐
〈文帝가〉 서향西向하여 세 번 사양하고 남향南向하여 두 번 사양하였으니, 어찌 즉위하는 초기에 백성들에게 거짓을 보인단 말인가.
短喪之制 又安用之리오
부모의 상기喪期를 단축하는 제도를 또 어찌 쓴단 말인가.
民雖富庶 而修己立誠之道 幾乎息矣 窮兵黷武하고 虐民事神하야 而海內虛耗러니하야 天理藹然하니 其悔心之萌乎인저
그러므로 백성들이 비록 풍족하였으나 군주가 몸을 닦아 성실함을 세우는 가 거의 무너지게 되었다. 〈武帝는〉 병난兵難을 궁극히 하여 무력을 함부로 사용하며 백성들을 모질게 대하고 을 섬겨서 해내海內가 텅 비었는데 윤대輪臺조서詔書에 이르러 천리天理가 성하게 일어났으니, 이는 후회하는 마음이 싹튼 것이다.
不然이면 則亦亡秦之續耳리라
그렇지 않다면 또한 망한 秦나라의 연속일 뿐이다.
漢昭 하니 似可有爲로되 惜霍光不學無術하야 不能以道事君하고光武 有志於治 而輔相亦非其人이라
昭帝는 14세에 上官桀의 속임수를 알았으니 훌륭한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으나 애석하게도 霍光이 배우지 않아 무식해서 로써 군주를 섬기지 못하였고, 後漢의 光武帝는 정치에 뜻을 두었으나 보필하는 자들이 또한 훌륭한 사람이 아니었다.
孔明 有王佐之才로되 而當姦雄僭竊之際하고 董子 雖有大意注+[通鑑要解]董子 蜀漢董和也昭烈 以和爲邑宰러니 以禮樂敎民이라 一說 卽仲舒也 大志 謂王道也 而亦不得其位하며鄧騭(즐), 楊震之徒 不識保身之機하야
諸葛孔明(諸葛亮)은 왕자王者를 보좌할 만한 재주가 있었으나 간웅姦雄(曹操)이 참람하여 도둑질하는 즈음을 당하였고, 董子는 비록 왕도王道를 행하려는 큰 뜻이 있었으나注+[通鑑要解]동자董子촉한蜀漢동화董和이다. 소열황제昭烈皇帝(劉備)가 동화董和읍재邑宰로 삼았는데, 예악禮樂으로 백성을 가르쳤다. 일설一說에는 동중서董仲舒라 한다. 큰 뜻은 왕도王道를 행하는 것이다. 또한 그 지위를 얻지 못하였으며, 鄧騭과 楊震의 무리는 몸을 보존하는 기미를 알지 못하였다.
外戚之禍 內竪(豎)之變으로 中移於王莽하고 卒壞於董卓하고曹操承之하야 以移漢祚하니 又何言哉
그리하여 외척外戚(王莽)의 내수內竪(宦官)의 변고로 중간에 〈천자天子의 자리가〉 王莽에게 옮겨 가고 마침내 董卓에게 파괴되었으며, 曹操가 이를 이어 漢나라의 국운國運을 바꾸었으니, 또다시 무엇을 말하겠는가.
唐之太宗 號爲英主
唐나라 太宗은 영특한 군주로 이름이 났다.
百戰而有天下하야 偃武修文하고 勵精求治하야 身致太平하고 刑措不用하니 亦希世之賢君也
백번 싸워 천하를 소유하고는 를 억제하고 을 닦으며, 정신을 가다듬어 정치를 해서 몸소 태평을 이룩하고 형벌을 폐지하여 사용하지 않았으니, 또한 세상에 드문 현군賢君이다.
然以君德論之하면하고 納巢刺王妃而封子明하니 其謬已甚이라
그러나 군주의 을 가지고 논한다면 사사로이 모시는 궁인宮人을 사용하여 자기 아버지(高祖)를 위협하였고, 소랄왕비巢刺王妃를 받아들여 아들 明을 봉하였으니, 그 잘못이 너무 심하다.
則明母又繼文德而后矣리라
만약 魏徵의 신영辰嬴의 비유가 없었더라면 明의 어미가 또다시 文德皇后를 이어 후비后妃가 되었을 것이다.
閨門如此하니 其子孫 又烏得有正家之法乎
규문閨門이 이와 같으니 그의 자손들이 또 어찌 집안을 바로잡는 법도가 있었겠는가.
是故武氏經事先帝하고 하고明皇 賜洗兒錢於貴妃하야 卒爲天下後世非笑하니 豈不皆由太宗垂統之所致歟
이 때문에 武氏(則天武后)는 선제先帝인 太宗을 섬긴 적이 있었고 太眞(楊貴妃)은 이미 壽王의 배필이었으며, 中宗은 친히 韋皇后를 위하여 주판을 놓아 주었고 明皇(玄宗)은 安祿山의 세아전洗兒錢을 楊貴妃에게 하사하여 마침내 천하天下후세後世의 비웃음거리가 되었으니, 이는 어찌 모두 太宗이 나쁜 전통을 드리운 소치가 아니겠는가.
房, 杜, 王, 魏, 無忌, 遂良, 狄仁傑, 張九齡, 姚崇, 宋璟, 李泌, 裴度之賢으로도 猶不能救其君於蕩敗禮義之際하야 而或以見疎하며張柬之, 桓彦範, 崔玄暐, 袁恕己, 敬暉等 討武氏之亂하고 反正廢主하야 有大功於唐이로되 而凌辱以死하며韓愈, 陸贄 勤勤懇懇於章奏之間이로되 而亦以獲罪하니 它(他)尙何說哉
房玄齡, 杜如晦, 王珪, 魏徵, 長孫無忌, 褚遂良, 狄仁傑, 張九齡, 姚崇, 宋璟, 李泌, 裴度의 어짊으로도 오히려 예의禮義가 무너지는 즈음에 그 군주를 구하지 못하여 혹은 군주에게 소원시 당하였으며, 張柬之, 桓彦範, 崔玄暐, 袁恕己, 敬暉 등은 武氏의 을 토벌하고 반정反正하여 새 군주를 세우고 옛 군주를 폐위하여 唐나라에 큰 공이 있었으나 능욕을 당하여 죽었으며, 韓愈와 陸贄는 글을 올려 아뢰는 사이에 부지런하고 간곡하였으나 또한 죄를 얻었으니, 다른 것이야 오히려 어찌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蓋唐之亂也 始於武, 韋하야 危於貴妃하고 壞於藩鎭하고 亡於宦官이라
唐나라의 은 武氏와 韋后에게서 시작되고 貴妃에게서 위태로워졌으며, 번진藩鎭에게 파괴당하고 환관宦官에게 망하였다.
而李勣, 李義府, 許敬宗, 鄭愔, 崔湜, 武三思, 李林甫, 楊國忠, 李輔國, 盧杞, 元載之流 與后妃宦竪 內外交締하야 始終爲難하니 非一朝一夕之故
李勣, 李義府, 許敬宗, 鄭愔, 崔湜, 武三思, 李林甫, 楊國忠, 李輔國, 盧杞, 元載의 무리가 후비后妃환관宦官들과 안팎으로 결탁하여 시종 을 일으켰으니, 하루아침 하루저녁에 일어난 변고가 아니다.
포악한 秦나라는 呂氏로 嬴氏를 바꾸었으니 이는 嬴氏가 莊襄王의 손에 멸망한 것이요, 약한 晉나라는 牛氏로 司馬氏를 바꾸었으니 이는 司馬氏가 懷帝와 愍帝의 때에 멸망한 것이다.
隋楊廣 弑其父而自立하야 卽以敗亡하니 又何足與論治天下之道乎
隋나라 楊廣은 그 아버지를 시해하고 스스로 즉위하여 즉시 패망하였으니, 또 어찌 천하를 다스리는 방도를 함께 논할 수 있겠는가.
蓋以趙高, 楊素之姦으로 而致扶蘇, 之死하니 是天所以速秦, 隋之滅也
趙高와 楊素의 간악함으로 扶蘇와 楊勇을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하늘이 秦나라와 隋나라의 멸망을 재촉한 것이다.
且秦政之暴 過於隋堅하고楊廣之惡 浮於胡亥하니 覆宗絶祀 不亦宜乎
또 秦政(始皇帝)의 포악함이 隋나라 楊堅보다 더하고 楊廣의 죄악이 胡亥보다 더하였으니, 종족宗族을 전복시키고 후사後嗣를 끊은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宋, 齊, 梁, 陳으로 至於五季 禍亂相尋하야 戰爭不息하니 名爲君臣이나 實爲仇敵이라
宋‧齊‧梁‧陳으로부터 오계五季(五代)에 이르기까지 화란禍亂이 서로 이어져서 전쟁이 그치지 않았으니, 명색은 군신간이나 실제로는 원수와 적이었다.
世降至此하야 壞亂極矣
세상이 나빠져서 이에 이르러 파괴되고 혼란함이 지극하였다.
惟柴世宗 粗有三代之風이나 而使之不壽하니 豈天將啓宋世之治也歟
오직 周나라 柴世宗은 다소 삼대三代유풍遺風이 있었으나 하늘이 장수를 누리지 못하게 하였으니, 아마도 하늘이 장차 宋나라의 다스림을 열려고 한 것이 아니겠는가.
且自晉武之後惠懷無親하야 骨肉相殘하고 群胡乘釁하야 濁亂中原하니 生民塗炭 未有甚於此時者也
또 晉나라 武帝 이후로 惠帝와 懷帝가 친애함이 없어서 골육간에 서로 해치고 여러 오랑캐들이 틈을 타고서 중원中原을 혼란하게 하니, 생민生民들이 도탄塗炭에 빠짐이 이때보다 더 심한 적이 있지 않았다.
王, 謝, 陶, 阮 富貴風流 節行標致 沛乎有餘하야 之民 亦賴以安이라
王氏‧謝氏‧陶氏‧阮氏의 부귀와 풍류風流, 뛰어난 절행節行표치標致(높은 운치)가 크게 여유가 있으니, 강좌江左의 백성들이 또한 이에 힘입어 편안하였다.
이나 朝廷之得失 姦雄之簒弑 則亦邈乎其不能正也
그러나 조정의 득실得失간웅姦雄찬시簒弑는 또한 아득히 바로잡지 못하였다.
逮拓跋氏興하야 佐以崔浩, 高允之徒하야 旣治且安하고 至於孝文하야 風移俗易하야 庶幾爲禮義之邦矣
〈北朝는〉 拓跋氏가 일어남에 崔浩와 高允의 무리가 보좌해서 이미 다스려지고 또 편안하였으며, 孝文帝에 이르러 풍속이 크게 바뀌어 거의 예의禮義의 나라가 되었다.
宇文高祖完顔世宗 其亦賢乎인저 江左君臣 寧不知愧리오
北周의 宇文高祖와 金나라의 完顔世宗은 또한 어질었으니, 江左(南朝)의 군신君臣이 어찌 부끄러움을 모른단 말인가.
夫三年之喪 自天子 達於庶人이어늘文, 景以後 能行之者 惟晉武帝, 魏孝文, 周高祖數君而已 此夫子所謂不如諸夏之
삼년三年부모상父母喪천자天子로부터 서인庶人에 통용되는데 漢나라 文帝와 景帝 이후로 이것을 행한 자는 오직 晉나라 武帝와 北魏의 孝文帝, 北周의 高祖 등 몇 명의 군주일 뿐이니, 이는 孔子의 이른바 ‘〈이적夷狄에게도 군주君主가 있으니〉 제하諸夏(중국中國의 여러 제후국諸侯國)에 없는 것과는 같지 않다.’는 것이다.
然自晉至隋 南北之君 率多不得其死하야 盡以國亡族滅하니 其故 何也
그러나 晉나라로부터 隋나라에 이르기까지 남북조南北朝의 군주가 대부분 제대로 죽지 못하여 모두 나라가 망하고 종족이 멸망하였으니, 그 까닭은 어째서인가?
蓋得之以不仁하니 上行而下效
불인不仁함으로써 천하를 얻어 윗사람이 이것을 행함에 아랫사람들이 본받았기 때문이다.
身爲天子하야 死無噍類하니 嗚呼哀哉
자신은 천자天子가 되었으나 죽은 뒤에는 후손들이 남은 무리가 없이 다 죽었으니, 아! 애통하다.
至於宋祖하야는 未嘗爲學이러니 晩好讀書 歎曰 堯舜之世 四凶之罪 止於投竄하니 何近代法網之密邪아하고
宋나라 太祖에 이르러서는 일찍이 학문을 하지 않았는데, 말년에 독서하기를 좋아하며 한탄하기를 ‘堯舜의 세대에 사흉四凶의 죄가 귀양가는 데 그쳤는데, 어찌하여 근대에는 법망法網이 이처럼 치밀하단 말인가?’ 하고는
於是立法 鞭扑 不行於殿陛하고 罵辱 不及於公卿이라
이에 법을 제정할 적에 채찍과 매질이 전폐殿陛에서 행해지지 않고 꾸짖음과 욕이 공경公卿에게 미치지 않게 하였다.
故臣下得以有爲하야 而忠君愛國之心 油然而興矣
그러므로 신하들이 훌륭한 일을 할 수 있어서 군주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크게 일어났다.
命曹彬下江南 則戒以切勿暴掠生民이라
曹彬에게 명하여 江南을 정벌할 때에는 절대로 생민生民들을 모질게 대하거나 노략질하지 말라고 경계하였다.
彬至城下 焚香約誓하야 一不妄殺하고 之日 行李蕭然하며 遣吳越歸國而使知不留之意
그러므로 曹彬은 성 아래에 이르자 분향焚香하고 맹세하여 한 사람도 함부로 죽이지 않고 개선하는 날에 행장이 초라하였으며, 항복한 吳越王을 본국으로 돌려보내어 억류하지 않겠다는 뜻을 알게 하였다.
處將相之間 則喩以相安之情하고 待諸降主以賓禮하며 易諸節鎭以儒臣하고 使擧德行孝悌之士하야 以隆禮義廉恥之風하니 嗚呼
장상將相들을 대처함에 있어서는 서로 편안한 마음으로 깨우치고 항복한 여러 군주들을 빈객賓客로 대우하였으며, 여러 절진節鎭(鎭의 절도사節度使)들을 유신儒臣으로 바꾸고 덕행德行이 있고 효제孝悌하는 선비들을 천거하여 예의禮義염치廉恥의 기풍을 높이게 하였으니, 아!
人主如是 亦庶乎其知之義哉인저
군주가 이와 같다면 또한 구경九經의 뜻을 거의 알았다고 할 것이다.
且曰 洞開重門하야 正如我心하야 少有邪曲이면 人皆見之라하니 蕩蕩平平之道 不外是矣
그리고 또 말하기를 ‘궁궐문을 크게 열어 바로 내 마음과 같게 해서 조금이라도 간사하거나 굽음이 있으면 사람들이 모두 보게 하라.’ 하였으니, 넓고 공평한 가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太宗 卽位之初 首開崇文館하고 與諸王宰相으로 繙閱書籍하며 次選文章有德之士하야 敎道(導)王子하고
太宗은 즉위하던 초기에 崇文館을 개설하고 여러 왕과 재상들과 함께 서적을 열람하였으며, 다음으로 문장文章덕행德行이 있는 선비를 뽑아 왕자王子들을 가르치고 교도敎導하게 하였고,
且戒之曰 必以忠孝爲先하라하며
또 경계하기를 ‘반드시 충효忠孝를 우선하라.’ 하였으며,
又能作興文學하야 以風四方하니 而人才於是乎出矣
문학文學진작振作하여 사방을 풍동風動하니 인재가 이에 크게 배출되었다.
至於仁宗하야는 力行恭儉하고 正身率人하야 終始如一이라
仁宗에 이르러서는 공손함과 검소함을 힘써 행하고 몸을 바루어 사람들에게 솔선을 보여서 시종여일始終如一하였다.
升(昇)遐之日 雖深山窮谷이라도 亦莫不奔走悲號하야 如喪考妣하니 非有得於人心而能如是乎
그리하여 승하升遐한 날에 비록 깊은 산과 궁벽한 골짜기에 사는 백성들도 모두 분주히 달려와 슬피 울부짖어 부모父母을 당한 듯이 슬퍼하였으니, 인심人心을 얻지 않고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英宗 氣質尤美하야 謙恭以任賢臣하야 而天下無事하고 曁于哲宗之初하야는 寔爲垂簾之政이라
英宗은 기질氣質이 더욱 아름다워 겸손하고 공손하여 현신賢臣에게 국정을 맡겨서 천하天下가 무사하였으며, 哲宗 초년에 이르러서는 실로 수렴청정垂簾聽政하는 시기였다.
宣仁有言曰 苟有利於社稷이면 吾無愛於髮膚라하야 任賢不貳하고 去讒不疑
宣仁皇后가 말씀하기를 ‘만일 사직社稷에 이로움이 있다면 내 털과 살도 아끼지 않겠다.’ 하여, 현자賢者에게 맡김에 두 마음을 품지 않고 참소하는 자를 제거함에 의심하지 않았다.
故自建隆으로 至於元祐 號稱治平之世하고 而人才之盛 亦莫過於宋矣
그러므로 建隆(太祖의 연호) 연간으로부터 元祐(哲宗의 연호) 연간에 이르기까지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태평한 세상이라고 일컬어졌으며, 인재人才의 성함도 또한 나라보다 더한 적이 없다.
初有趙普, 范質, 李沆, 張齊賢, 敏中, 寇準, 蔡襄, 晏殊, 王旦, 王曾, 杜衍, 趙抃, 諸呂之輩하고 復有韓, 范, 富, 歐陽, 蘇, 張, 文, 呂, 司馬之徒하니 俱爲大賢이라
초기에는 趙普‧范質‧李沆‧張齊賢‧向敏中‧寇準‧蔡襄‧晏殊‧王旦‧王曾‧杜衍‧趙抃과 여러 呂氏의 무리가 있었고, 또 韓琦‧范仲淹‧富弼‧歐陽脩‧蘇軾‧張栻‧文彦博‧呂公著‧司馬光의 무리가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대현大賢이었다.
文章德業 前世無比어늘 相繼以興하야 爲之輔相하니
문장文章덕업德業전대前代에서는 비견할 만한 자가 없었는데, 이 분들이 서로 이어 일어나서 보상輔相이 되니,
當此之時하야 君君臣臣父父子子夫夫婦婦하야 百姓謳歌하야 謂之太平天子
이때를 당하여 군주는 군주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우며 남편은 남편답고 아내는 아내다워서 백성들이 구가謳歌하여 태평천자太平天子라 일렀고,
又稱宣仁하야 爲女中堯舜이라하니 嗚呼休哉
또 宣仁皇后를 일컬어 여중女中堯舜이라 하였으니, 아! 아름답다.
神宗 刻意圖治하야 上慕唐虞하고 傾心安石이라
神宗은 뜻을 다하여 훌륭한 정치를 이룩할 것을 도모하여, 위로 唐虞(堯舜)를 사모하고 王安石에게 마음을 쏟았다.
君臣之間 求濟斯道하야 未嘗不以堯舜相期하니 東周以來 未之有也
군신간君臣間에 이 를 이루려 하여 일찍이 堯‧舜으로 기약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東周 이래로 일찍이 없었던 일이다.
世方仰其有爲하야 庶幾復見러니 惜安石之學 旣執而蔽하고 引用凶邪하야 反治爲亂하야
세상에서는 막 훌륭한 정치를 기대하여 행여 다시 도유우불都兪吁咈의 정치를 볼까 하였는데, 애석하게도 王安石의 학문이 이미 고집스러워 가리워졌고, 흉악한 자와 간사한 자들을 등용하여 다스려짐을 뒤집어서 혼란함으로 만들어 놓았다.
使天下之人으로 囂然喪其樂生之心하고 卒之群姦繼進하야 하니 用人 可不謹哉
그리하여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소란스러워 사는 것을 좋아하는 마음을 잃게 하였으며, 마침내 여러 간신姦臣들이 뒤이어 등용되어서 정강靖康를 빚어냈으니, 인물을 등용함을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當此之時하야 上有好治之君하고 下有慕治之民이어늘 曾無一人登相臣之位者하니 是宋不得與於斯文也
이때를 당하여 위에는 훌륭한 정치를 좋아하는 군주가 있었고 아래에는 훌륭한 정치를 사모하는 백성이 있었으나, 濂洛의 여러 현철賢哲들이 일찍이 한 사람도 상신相臣의 지위에 오른 자가 없었으니, 이것이 宋나라가 사문斯文에 참여하지 못한 이유이다.
豈天未欲使玆世躋堯舜之域歟
아마도 하늘이 이 세상으로 하여금 堯‧舜의 경지에 오르기를 바라지 않았는가 보다.
何道之不行也
어찌하여 가 이처럼 행해지지 않았단 말인가.
嗚呼
아!
眞儒輩出 悉皆王佐之才어늘哲宗以後寧宗以前 하야 竄逐禁錮 殆無虛日이라
배출된 진유眞儒들이 모두 왕자王者를 보좌할 만한 재주였는데, 哲宗 이후와 寧宗 이전에는 이들을 붕당朋黨이라고 지목하고 위학僞學이라고 배척하여, 귀양보내고 금고禁錮함이 없는 날이 거의 없었다.
姦邪疊興하야 爲國大蠹하야 始於呂惠卿하고 終於賈似道하야 互爲汲引하야 相繼升于廟堂하니 用舍如此 安得不亡乎
간사한 자들이 거듭 나와서 국가의 큰 좀이 되어 呂惠卿에서 시작되고 賈似道에서 끝마쳐, 서로 끌어들여 계속해서 묘당廟堂에 올랐으니, 인물을 쓰고 버림이 이와 같다면 어찌 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蓋宋之人君 仁厚有餘而剛斷不足하고 宋之人臣 德業有加而道則未盡이요 明乎之道하야 以接夫孟氏之傳者 又謹其進退之義
宋나라의 임금은 인후仁厚함은 유여하였으나 강단剛斷이 부족하였고, 宋나라의 신하는 덕업德業은 유여하였으나 가 미진하였으며, 이제二帝 삼왕三王에 밝아서 孟氏(孟軻)의 전함을 이은 자들은 또 진퇴進退하는 의리義理를 삼갔다.
終宋之世토록 亦只如此而已하니 使學者 不能無遺恨於斯世也
그러므로 宋나라를 마치도록 또한 다만 이와 같았을 뿐이니, 배우는 자들로 하여금 宋나라 시대에 유한遺恨이 없지 못하게 하였다.
且眞宗 不知寇準之貶하고神宗 不識惠卿之姦하니 又豈不爲明君之累邪
또 眞宗은 구준寇準이 좌천됨을 알지 못하였고 神宗은 呂惠卿의 간악함을 알지 못하였으니, 또 어찌 현명한 군주의 가 되지 않겠는가.
至於哲宗하야는 昏庸尤甚하야 信任姦慝하고 屛逐忠賢이라
哲宗에 이르러서는 어둡고 용렬함이 더욱 심하여 간사한 자들을 신임하고 충현忠賢들을 쫓아내었다.
却問 大防 何以至虔州오한대 左右不對하니 亦可羞也
그리고는 도리어 ‘呂大防이 어찌하여 虔州에 귀양을 갔는가?’ 하고 묻자, 좌우左右의 신하들이 대답하지 못하였으니, 또한 수치스러울 만하다.
岳飛破虜하야 幾還兩宮이어늘秦檜矯詔하야 班師而殺之로되高宗 若不聞也하니 通天之罪 尙忍言哉
岳飛가 오랑캐인 金나라를 격파하여 거의 두 (휘종徽宗흠종欽宗)을 돌아오게 하였는데, 간신인 秦檜가 조칙詔勅을 위조해서 회군回軍하게 하여 죽였으나 高宗은 마치 못 들은 것처럼 하였으니, 하늘에 통하는 죄를 오히려 차마 말할 수 있겠는가.
張浚, 趙鼎, 眞德秀, 魏了翁之賢 立朝未久하야 非惟不能以正群邪之罪 而反有貶責竄逐之寃이라
張浚, 趙鼎, 眞德秀, 魏了翁의 현자賢者들은 조정에서 벼슬한 지가 얼마되지 않아, 간신姦臣들의 죄를 바로잡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폄하되고 견책당하여 쫓겨나고 유배가는 억울함이 있었다.
秦檜, 韓冑, 史彌遠, 賈似道 以元凶으로 居首相하야 登進同類하야 布滿朝廷하야 祗爲身謀하야 卒以誤國이어늘 而人主方以爲忠하니 豈復望其有三代之治乎
秦檜, 韓侂冑, 史彌遠, 賈似道는 원흉元兇으로서 수상首相의 지위에 있으면서 동류同類들을 등용하여 온 조정에 가득 채우고는 다만 자기 한 몸의 계책만 세워 끝내 나라를 망쳤는데도 군주는 이들을 충신忠臣이라고 여겼으니, 어찌 다시 삼대三代의 훌륭한 정치를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文天祥 拜相於國事旣去之餘하야 而能以身任三百年綱常之重하야 從容就義於顚沛流離之際하야 爲國之光하니 是亦豈非祖宗尊賢敬士之報歟
文天祥은 국사國事가 이미 틀려버린 뒤에 정승에 임명되어 자기 한 몸으로 3백년 강상綱常의 무거운 책임을 맡아서 전패顚沛하고 유리流離하는 즈음에 조용히 의리義理를 따라 죽어서 국가의 광채가 되었으니, 이 또한 어찌 조종조祖宗朝에 현자를 높이고 선비를 공경한 보답이 아니겠는가.
蓋其興也 以大臣之賢이요 其亡也 以大臣之姦이라
宋나라가 일어난 것은 대신大臣의 어짊 때문이었고, 宋나라가 망한 것은 대신大臣의 간악함 때문이었다.
雖有大臣之誤 而亦有大臣之報하니 爲人君者 可不辨其邪正而端其本原哉
그러므로 비록 대신大臣이 나라를 그르침이 있었으나 또한 대신大臣의 보답이 있었던 것이니, 인군人君이 된 자가 을 분별하여 그 근본을 바르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夫正身以正朝廷하고 正朝廷以正百官이니 百官正이면 則萬民莫敢不正이요 萬民正이면 則四夷賓服하야 而天下安矣리라
몸을 바루어 조정朝廷을 바로잡고 조정朝廷을 바루어 백관百官을 바로잡으니, 백관百官이 바루어지면 만민萬民이 감히 바르지 않을 수 없고 만민萬民이 바루어지면 사방 오랑캐들이 공물을 바치고 복종하여 천하天下가 평안해지는 것이다.
東夷, 西戎, 南蠻, 北狄 自古有之
東夷, 西戎, 南蠻, 北狄은 예로부터 있었다.
生於諸馮하시니 東夷之人也文王 生於岐周하시니 西夷之人也
舜임금은 諸馮에서 출생하시니 東夷의 사람이었고, 文王은 岐周에서 출생하시니 西夷의 사람이었다.
匈奴, 突厥, 五胡, 北魏, 契丹, 女眞 世有位號하니 若使吾無間而可入이면 則幽王 不死於犬戎이요明皇 不敗於祿山이며呼延晏, 劉曜不能以陷晉都하야 而懷, 愍 不辱於强虜矣幹离不粘罕 不能以犯宋京하야 而徽, 欽 不死於漠北矣리라
匈奴, 突厥, 五胡, 北魏, 契丹, 女眞이 대대로 지위와 칭호가 있었으니, 만약 우리 中華에 들어올 만한 틈이 없었다면 周나라 幽王이 犬戎에게 죽지 않았을 것이고, 唐나라 明皇(玄宗)이 安祿山에게 패하지 않았을 것이며, 呼延晏과 劉曜가 晉나라 도성을 함락시키지 못하여 懷帝와 愍帝가 강한 오랑캐에게 욕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고, 金나라의 幹离不粘罕이 宋나라의 汴京을 침범하지 못하여 徽宗과 欽宗이 사막의 북쪽에서 죽지 않았을 것이다.
蓋天下有道 則四夷來王하야 萬邦咸休하고 天下無道 則干戈之禍 不特在於四夷 而且在蕭墻之內矣
천하에 가 있으면 사방의 오랑캐들이 와서 복종하여 만방萬邦이 모두 아름답고, 천하에 가 없으면 병란兵亂가 다만 사이四夷에게 있을 뿐만 아니라 소장蕭墻(집안의 병풍)의 안에 있는 것이다.
得其道則治하고 失其道則亂하나니堯舜之道 孝悌而已矣
그러므로 그 를 얻으면 다스려지고 그 를 잃으면 혼란한 것이니, 堯舜의 효제孝悌일 뿐이다.
修己以安百姓唐虞之治也 勞身而焦思夏禹之治也 成湯之治也 文, 武, 成, 康之治也 除秦苛法하야 與民自新하고 偃武修文하고 勵精求治하야 擧德行, 興孝悌하고 隆禮義, 尙廉恥 此漢祖, 唐宗, 宋祖之所以興也
자기 몸을 닦아 백성을 편안히 함은 唐虞의 다스림이요, 몸을 수고롭게 하여 노심초사한 것은 夏禹의 다스림이요, 육사六事로써 자책함은 成湯의 다스림이요, 〈무일無逸〉을 짓고 〈빈풍豳風 七月〉을 진열함은 文王‧武王‧成王‧康王의 다스림이며, 秦나라의 까다로운 법을 제거하여 백성들과 함께 스스로 새로워지고, 를 억제하고 을 닦으며 정신을 가다듬어 훌륭한 정치를 이룩하고자 하여 덕행德行이 있는 사람을 등용하고 효제孝悌를 일으키며 예의禮義를 높이고 염치廉恥를 숭상함은 漢나라 高祖와 唐나라 太宗과 宋나라 太祖가 흥성한 이유이다.
至於末世하야는 崇尙虛無하고 信誘邪說하야 垂及敗亡호되 猶不能悟
말세末世에 이르러서는 老莊의 허무함을 숭상하고 간사한 말을 믿어 패망함에 이르렀으나 오히려 깨닫지 못하였다.
齊元 爲周師所圍로되 尙講老子하고梁武 爲侯景所迫이로되 惟談苦空이라
齊元(北齊의 후주後主고위高緯)은 周나라 군대에게 포위당했으면서도 오히려 《노자老子》를 하였고, 梁나라 武帝는 侯景에게 압박받으면서도 오직 불학佛學고행苦行을 말하였다.
事佛之謹 舍施之多 無以逾於梁武 奉道之勤 設醮之厚 又何以加於道君이리오
삼가 부처를 섬김과 보시의 많음이 梁나라 武帝보다 더한 사람이 없었고, 를 부지런히 받듦과 초제醮祭를 후하게 베풂이 또 어찌 도군道君(송나라 휘종徽宗)보다 더하였겠는가.
然(則)[而]餓死臺城호되 而佛不之救하고 受辱漠北호되 而道亦不聞이라
그런데도 梁나라 武帝는 臺城에서 굶어 죽었으나 부처가 구원해 주지 않았고, 도군道君은 사막의 북쪽에서 욕을 당하였으나 를 또한 듣지 못하였다.
秦皇, 漢武 窮極以求神仙이로되 了無證驗하고 이로되 卒以誅夷하며 契丹入寇王欽若 出守天雄軍이러니 束手無策하야 閉門而已하니 用此數者하야 曾何補於治道哉
秦나라 始皇과 漢나라 武帝는 신선神仙을 끝까지 구하였으나 끝내 징험이 없었고, 楚王 사문沙門을 공경하고 믿었으나 끝내 죽임을 당하였으며, 契丹이 쳐들어오자 宋나라의 王欽若은 나가 천웅군天雄軍을 지키면서 속수무책束手無策으로 문을 닫고 를 올리며 불경佛經만 외울 뿐이었으니, 이 몇 가지를 사용하여 일찍이 정치하는 에 무슨 보탬이 있었는가.
巡撫河南할새 奏毁吳楚淫祠千七百所하야 所存 惟夏禹, 太伯, 季子, 伍員四祠而已胡穎 經略廣東할새 毁佛像而殺妖蛇하고 杖僧人以脫愚俗하며 所過淫祀(祠)則必焚之하니 此萬代之所瞻仰也
狄仁傑은 河南 지방을 순무巡撫할 적에 임금께 아뢰어 吳‧楚 지방의 음사淫祠 1,700곳을 부수고 남겨 둔 곳은 오직 夏禹와 太伯‧季子(季札)‧伍員의 네 사당뿐이었으며, 胡穎은 廣東을 경략經略할 적에 불상佛像을 부수고 요망한 뱀을 죽이고 중을 곤장을 쳐서 어리석은 풍속에서 벗어나게 하였으며 지나는 곳마다 음사淫祠가 있으면 반드시 불태웠으니, 이는 만대萬代에 우러러보는 바이다.
嗚呼
아!
自漢以來 不能紹述三王之道하고 而佛老之敎 反自明帝始
漢나라 이래로 삼왕三王를 계승하지 못하고 佛老의 가르침이 도리어 明帝로부터 시작되었다.
永平之間 遣使之天竺하야 得佛經四十二章하야 緘之하고 以佛像으로 繪之淸凉臺, 顯節陵하며靈帝始立 祠于宮中以奉之하고
永平年間에 天竺國에 사신을 보내어 불경佛經 42을 얻어 와서 이것을 난대석실蘭臺石室에 봉함하여 보관하였고, 불상佛像을 淸凉臺와 현릉顯陵절릉節陵에 그렸으며, 靈帝는 처음 즉위하자 궁중에서 제사하여 받들었다.
又有飛仙變化之術 丹藥符籙之技 禱祠醮祭之法 沈淪鬼獄之論하니 皆以老氏爲宗하고 而名曰道
그리고 또 하늘을 날아다녀 신선으로 변화하는 방법과 단약丹藥부록符籙의 방술과 신사神祠에 기도하는 초제醮祭의 법과 아귀餓鬼 지옥地獄에 빠진다는 의논이 있었으니, 이는 모두 老氏를 종주로 삼고 도교道敎라 이름한다.
晉, 魏以來 其法漸盛하야 僧尼道士 日以益衆이라
晉‧魏 이래로 이 법이 점점 성하여 승니僧尼도사道士가 날로 더욱 많아졌다.
元魏孝文 號爲賢主로되 亦幸其寺하야 修齋聽講이라
元魏(北魏)의 孝文帝는 어진 군주라고 이름났으나 또한 사찰에 가서 를 올리고 을 들었다.
至如石勒之於佛圖澄苻堅之於沙門道安姚興之於鳩摩羅什拓跋太武之於寇謙之唐武宗之於趙歸眞宋道君之於林靈素 往往事以師禮로되 不聞有福利之報하고 而皆得奇異之禍하야 覆轍相尋호되 迷而不悟하야 流弊千有餘載하니漢明 烏得以逃其責哉
後趙의 石勒이 佛圖澄에 있어서와 先秦의 苻堅이 사문沙門道安에 있어서와 後秦의 姚興이 鳩摩羅什에 있어서와 後魏의 拓跋太武(拓跋燾)가 寇謙之에 있어서와 唐나라 武宗이 趙歸眞에 있어서와 宋나라 道君(徽宗)이 林靈素에 있어서는 왕왕 스승의 로 섬겼으나 복리福利의 보답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고, 모두 기이한 를 만나서 실패한 자취가 서로 이어졌으나 미혹하여 깨닫지 못해서 천여 년 동안 폐단을 남겼으니, 漢나라 明帝가 어떻게 그 책임을 피할 수 있겠는가.
先儒有言호되佛老之害 甚於楊墨이라하니 況復有鬼怪人妖 邪說暴行 雜然竝興하야 以惑世誣民者乎
선유先儒가 말씀하기를 ‘佛老의 폐해가 楊朱와 墨翟보다 심하다.’ 하였는데, 더구나 다시 귀신의 괴이함과 사람의 요망함, 부정한 학설과 포악한 행실이 뒤섞여 함께 일어나서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속임에 있어서이겠는가.
孟子曰 楊墨之道不息이면孔子之道不著라하고韓愈之說曰 人其人, 火其書, 廬其居하고 明先王之道以道(導)之라하니 嗚呼
孟子가 말씀하기를 ‘楊朱와 墨翟의 가 종식되지 않으면 孔子의 가 드러나지 못한다.’ 하였고, 韓愈의 말에 이르기를 ‘그 사람(승려와 도사)을 평민平民으로 만들고 그들의 책을 불태우고 그들의 거처(寺刹과 도관道觀)를 일반 사람들의 집으로 만들고 선왕先王를 밝혀 인도하여야 한다.’ 하였으니, 아!
其要固在於明先王之道耳 此盛彼衰 自然之理也
그 요점은 진실로 선왕先王를 밝힘에 있을 뿐이니, 이것이 성하면 저것이 쇠함은 자연의 이치이다.
辨人才, 審治體, 美敎化, 厚人倫 此明道之實也
인재人才를 분별하고 정치하는 체통體統을 살피고 교화敎化를 아름답게 하고 인륜人倫을 두터이 함은 이는 를 밝히는 실제이다.
武帝好儒術하야董仲舒進修己治人之策이로되 而帝之所與論者公孫弘, 東方朔, 司馬相如之徒
漢나라 武帝는 유술儒術을 좋아하여 董仲舒가 수기치인修己治人의 계책을 올렸으나 武帝가 더불어 논의한 상대는 公孫弘‧東方朔‧司馬相如의 무리들이었다.
卒事封禪하야 以蕩其志하고神宗 慕王道하야程伯子上稽古正學定志之論이로되 而上之所與謀者王安石, 呂惠卿, 章惇, 蔡卞之流
그리하여 끝내 봉선封禪을 일삼아 그 뜻을 방탕하게 하였으며, 宋나라 神宗은 왕도王道를 사모하여 程伯子(程明道)가 옛날을 상고하고 학문을 바로잡고 뜻을 정하는 의논을 올렸으나 황제가 더불어 모의한 자는 王安石, 呂惠卿, 章惇, 蔡卞의 무리였다.
創置新法하야 以擾其民하니 用舍之間 安危所繫
그리하여 이들이 신법新法을 창건하여 백성들을 소란하게 하였으니, 인물을 등용하고 버리는 사이에 국가國家안위安危가 달려 있는 것이다.
袁紹不起劉裕不興이면 則藩鎭强臣之禍不息이요朱溫不來 則宦官宮妾之亂不止리라
後漢 말엽에 袁紹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오족五族충현忠賢금고禁錮가 없어지지 않았을 것이요, 東晉 때에 劉裕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번진藩鎭의 강성한 신하들의 화가 그치지 않았을 것이요, 唐나라 말기에 朱溫이 오지 않았으면 환관宦官궁첩宮妾이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然癰疽旣潰 而大命隨之하니
그러나 큰 종기가 이미 터지자 큰 운명運命이 뒤따라 끊겼다.
蓋人君之喜用姦邪者 冀得以從己之欲而已 人臣之欺罔其君者 亦欲以固其寵祿而已
인군人君이 간사한 자를 등용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자신의 욕망을 따르기를 바라서일 뿐이요, 신하가 군주를 속이는 것은 또한 자신의 총록寵祿을 견고히 하고자 해서일 뿐이다.
然君以逸欲滅國하고 臣以寵祿殺身하야 前車旣覆호되 後車不戒하야 及至君亡國滅이면 其臣 又安得以獨存哉
그러나 군주는 안일과 욕심으로 나라를 멸망하게 하고 신하는 총록寵祿으로 자기 몸을 죽여서, 앞수레가 이미 전복되었는데도 뒷수레가 경계하지 아니하여, 군주가 죽고 나라가 멸망함에 이르면 그 신하가 또 어떻게 홀로 보존될 수 있겠는가.
是故 秦未亡 而李斯, 趙高 先夷三族하고 漢未滅 而宦官張讓等二千餘人 已就誅夷하고王莽 盜竊神器로되 而傳首詣宛하고梁冀七侯, , 六貴人, 二大將軍, 卿將尹校五十七人이로되 無少長 皆棄市하고 收其財貨하니 合三十餘萬萬이어늘 以充王府之用이라
이러한 까닭에 秦나라가 망하기 전에 李斯와 趙高가 먼저 삼족三族이 멸망하는 화를 당하였고, 後漢이 멸망하기 전에 환관宦官인 張讓 등 2천여 명이 이미 죽임을 당하였고, 王莽이 신기神器(황제의 지위)를 도둑질하였으나 참형斬刑을 당하여 수급首級 땅에 이르렀고, 後漢 때에 梁冀는 가 7명, 가 3명, 귀인貴人이 6명, 대장군大將軍이 2명, 가 57명에 이르렀으나 어린아이와 어른을 구별하지 않고 모두 기시棄市를 당하였고, 그 재화를 몰수하자 모두 30여 만만萬萬이었는데 이것을 왕부王府(國庫)의 재용財用에 충당하였다.
明皇幸蜀李林甫斲棺鞭尸하고楊國忠斷頭注槊하며 唐祚未終 而先斬韓全誨等一百六十二人하고 復殺第五可範以下數百하야 寃號之聲 徹于內外하며崔胤之徒 亦隨授首
唐나라 明皇(玄宗)이 蜀 지방으로 파천播遷할 적에 李林甫는 이 쪼개어져 시신이 채찍질 당하였고 楊國忠은 머리가 잘려 창끝에 매달렸으며, 唐나라의 국운國運이 끝나기 전에 환관宦官인 韓全誨 등 162명을 먼저 참형斬刑하였고 다시 제오가범第五可範 이하 수백 명을 죽여서 원망하고 울부짖는 소리가 내외內外에 통하였으며, 이들을 죽인 崔胤의 무리 또한 따라서 목을 내놓았다.
徽, 欽未亡 而蔡京, 童貫, 王黼, 梁師成 已先就戮하고 南宋未滅 而賈似道先死于鄭虎臣之手하며秦檜削奪官爵하고韓侂冑梟首淮濱하니 由此觀之컨대 昔之壅蔽聰明하야 以圖利己者 皆所以自滅而已 可不戒哉
徽宗과 欽宗이 망하기 전에 蔡京‧童貫‧王黼‧梁師成이 이미 먼저 주륙을 당하였고, 南宋이 멸망하기 전에 賈似道가 먼저 鄭虎臣의 손에 죽었으며, 秦檜는 삭탈관작削奪官爵을 당하였고 韓侂冑는 淮水 가에서 효수梟首되었으니, 이로써 살펴보건대 옛날에 군주의 총명을 가려 자기 몸을 이롭게 할 것을 도모한 자들은 모두 스스로 멸망하였을 뿐이니, 어찌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爲君難이요 爲臣不易 治亂興亡之所由也 可不愼哉
그러므로 군주 노릇 하기가 어렵고 신하 노릇 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니, 치란治亂흥망興亡이 말미암는 바를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嗚呼
아!
觀人才之吉凶이면 知邦家之休戚이라
인재의 길흉吉凶(善惡)을 보면 국가의 좋고 나쁨을 알 수 있다.
漢儒有言曰 正其誼하고 不謀其利하며 明其道하고 不計其功이라하니 蓋人品不同하고 而事業亦異하니 是不可以成敗論英雄也
漢나라 유자儒者(董仲舒)가 말하기를 ‘그 의리義理를 바루고 그 이익을 도모하지 않으며, 그 를 밝히고 그 을 계산하지 않는다.’ 하였으니, 인품人品이 같지 않고 사업事業이 또한 다르니, 이는 성패成敗를 가지고 영웅英雄을 논할 수 없는 것이다.
諸葛亮 輔漢於蜀하고狄仁傑 反周爲唐하니 其心一也郭汾陽 克復二京而終身富貴하고岳武穆 志存雪恥而身死權姦하니 其道同也
諸葛亮은 蜀에서 漢나라를 보필하였고 狄仁傑은 周나라를 뒤집어 唐나라로 만들었는데 그 마음은 똑같으며, 郭汾陽(郭子儀)은 長安과 洛陽 두 서울을 수복하여 종신토록 부귀를 누렸고 岳武穆(岳飛)은 金나라의 치욕을 씻을 것을 마음먹었으나 몸이 권간權姦의 손에 죽었으니, 그 는 똑같다.
曹孟德(曹操)이 신기神器를 노려보고 여우처럼 홀려 어린 군주를 속여서 구석九錫을 받지 말 것을 권한 것을 한하여 文若(荀彧)을 죽게 하였으니 이는 찬역簒逆하는 자의 소행이요, 郭子儀는 이 천하를 뒤덮고 지위가 신하의 최고 자리에 올랐으나 아들 郭曖가 말을 함부로 한 잘못을 꾸짖어 곤장을 치고 조정에 돌아와 대죄待罪하였으니 이는 신자臣子가 편안히 여기는 바이다.
평생 간사하게 속임수를 쓰다가 죽어서 진짜 성정性情을 나타낸 것은 曹操가 귀신과 같은 이유이고, 몸을 굽히고 힘을 다하여 죽은 뒤에야 그만둔 것은 諸葛亮이 이 된 이유이다.
하니 是舍生而取義 하니 乃殺身以成仁이라
蘇武는 匈奴에서 漢나라 (깃발)을 잡고 있었으니 이는 생명을 버리고 를 취한 것이요, 唐나라 顔眞卿은 李希烈에게 화복禍福을 말하였으니 이는 마침내 자기 몸을 죽여 을 이룬 것이다.
前漢의 李陵과 衛律은 흉노에게 항복하여 죄가 하늘에 통하였고, 宋나라의 張邦昌과 劉豫는 마음을 오랑캐에게 바쳤다.
前漢의 霍光은 두 군주(昭帝와 선제宣帝)를 옹립하였으나 자손이 멸망하였으니 이는 성만盛滿함에 처하고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요, 韓琦는 두 조정(仁宗과 영종英宗)에 계책을 정하여 덕망이 온 세상을 뒤덮었으니 이는 용사用捨행장行藏를 알았기 때문이다.
陶潛은 晉나라 처사處士가 되어 마음이 편안하고 날로 아름다웠으며, 揚雄은 王莽의 대부大夫가 되어 마음이 수고롭고 날로 졸렬하였다.
丞相出師 漢賊明大義也 萬古開群蒙也
‘諸葛亮이 中原에 쳐들어왔다.’고 쓴 것은 晉나라 역사책에 魏나라의 曹丕를 황제로 여긴 것이고, ‘승상丞相(諸葛亮)이 출사出師했다.’고 쓴 것은 漢나라의 역적인 魏나라를 드러내어 대의大義를 밝힌 것이며, ‘황제皇帝를 폐하여 으로 삼았다.’고 쓴 것은 唐나라 국통國統이 周나라의 기록에 어지럽힘을 당한 것이고 ‘황제皇帝가 房州에 있었다.’고 쓴 것은 만고萬古의 여러 사람들의 몽매함을 깨우쳐 준 것이다.
自初命晉大夫爲諸侯以來 千三百六十二年之間 誅亂賊於旣死하고 正名分於當時하며 定褒貶於往前하고 示勸懲於來世하니
그러므로 처음 晉나라 대부大夫를 명하여 제후諸侯로 삼은 이래로 1362년 동안 난신적자亂臣賊子를 이미 죽은 뒤에 처벌하고 명분을 당시에 바로잡으며 이미 지나간 옛날의 포폄褒貶을 정하고 앞으로 올 후세에 권선징악勸善懲惡을 보여주었으니, 이것이 朱子의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이 획린獲麟을 이어 지어진 것이다.
廣微가 소년으로 천하의 장원狀元이 되자 敬仲은 경계하기를 ‘반드시 천리千里 생민生民의 중한 임무를 생각하라.’ 하였고, 希元이 운명을 일자日者에게 묻자 和叔은 ‘모름지기 부귀富貴이달利達의 마음을 잊으라.’고 당부하였다.
是故建安與靑田 俱爲百世師 循序及修省 工夫齊妙用이라
이 때문에 建安(眞德秀)과 靑田(袁甫)이 함께 백세의 스승이 되는 것이요, 순서를 따르는 공부와 닦고 살피는 공부가 묘용妙用을 함께 한다.
하니 何後學之有異리오
실로 길이 다르나 돌아감이 같으니 어찌 후학後學이 다름이 있겠는가.
旦晝所爲則夜必焚香하야 以奏于帝
낮에 한 일을 밤이면 반드시 분향焚香하고 상제上帝에게 아뢴 것은 열도閱道가 자기 마음을 다스린 것이 아니겠는가.
아내의 간사한 계책으로 인하여 朱子를 훼방해서 韓侂冑에게 아첨한 것은 바로 향인鄕人이 이익을 깨달은 것이다.
馮道 歷事於五季하야 惟恐失之하고嚴光 加足於帝腹하니 忘其貴也
馮道는 오대五代의 군주를 차례로 섬겨 행여 벼슬을 잃을까 두려워하였고 嚴光은 光武皇帝의 배에 발을 가하였으니 황제皇帝의 귀함을 잊은 것이다.
불을 밝혀 아침까지 이른 것은 바로 雲長(關羽)의 큰 절개이고, 옷을 물리쳐 얼어죽은 것은 실로 陳三(陳師道)의 작은 일이며, 젊어서 위조僞朝를 섬겨 벼슬이 낭서郎署에 이르렀다고 한 것은 진정표陳情表의 잘못이고, 을 구하여 을 얻었으니 또 무엇을 원망하겠느냐는 것은 고묘문告墓文의 올바름이다.
君親 雖曰不同이나 忠孝本無二致하니 是非得失 乃在乎人이라
군주와 어버이가 비록 다르다고 말하나 충성과 효도는 본래 두 이치가 없으니, 시비是非득실得失이 마침내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千載之下 公論不泯하니 其亦可畏也哉인저
천년 뒤에 공론公論이 없어지지 않으니, 이 또한 두려울 만한 것이다.
蓋人才難得하니 爲民上者 宜有以作成之也
인재人材를 얻기가 어려우니, 백성의 윗사람이 된 자가 마땅히 인재人材를 양성하여야 한다.
是故 欲治之君 須知爲治之要
이 때문에 훌륭한 정치를 바라는 군주는 모름지기 정치하는 요점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夫治也者 親賢遠奸하고 信賞必罰하며 明禮義, 謹學術하야 以身先之하야 使民知趨向之方하야 上下相師而人才出矣
정치라는 것은 현자賢者를 가까이하고 간사한 자를 멀리하며, 상과 벌을 공정하고 엄중하게 내리며 예의를 밝히고 학술을 삼가서 자기 몸으로 솔선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추향趨向할 방향을 알게 해서 상하가 서로 본받아 인재가 나오는 것이다.
如此 則師道尊而善人多하고 朝廷正而天下治하야 百姓大和하고 萬物咸若이라
이와 같이 하면 스승의 가 높아지고 선인善人이 많아지며 조정朝廷이 바루어지고 천하가 다스려져서 백성들이 크게 화목하고 만물이 모두 순하게 된다.
蓋爲治 必以人才爲本이요 求人才之道 又以敎化爲先이며 欲行敎化인대 非興禮樂이면 不可也 不興禮樂이면 則敎化不行이요 敎化不行이면 則民無所措手足이요 無所措手足이면 則三綱不正하고 九疇不敍하야 而欲致天下之治者遠矣
정치를 함은 반드시 인재人材를 얻음을 근본으로 삼고 인재를 구하는 방법은 교화敎化를 우선으로 삼으며, 교화敎化를 행하고자 한다면 예악禮樂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되니, 예악禮樂을 일으키지 않으면 교화敎化가 행해지지 못하고 교화敎化가 행해지지 못하면 백성들이 수족手足을 둘 곳이 없고, 수족手足을 둘 곳이 없으면 삼강三綱이 바르게 되지 못하고 구주九疇가 제대로 펴지지 못하여 천하天下가 잘 다스려지기를 바라는 기대가 멀어진다.
治天下者 必本之身이니 身端心誠이면 則賢才輔而天下治矣
그러므로 천하天下를 다스리는 것은 반드시 자기 몸에 근본하는 것이니, 군주의 몸이 단정하고 마음이 성실하면 어진 이와 재능 있는 자가 보필하여 천하가 다스려지는 것이다.
書云 愼厥身修하야 思永이라하고 詩云 上帝臨汝하시니 無貳爾心이어다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그 몸을 삼가 닦아서 영원함을 생각한다.’ 하였고,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상제上帝가 너에게 강림하시니 네 마음을 의심하지 말지어다.
無貳無虞
의심하지 말고 생각하지 말라.
上帝臨汝라하니 此之謂也니라
상제上帝가 너에게 강림하셨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을 말한 것이다.”
역주
역주1 [譯註]陽節潘氏榮 : 元나라 婺源 사람으로 字가 伯誠이다. 박학하여 여러 경전을 통달하였으며, 史書에 더욱 뛰어나니, 배우는 자들이 節齋先生이라 칭하였다. 이 總論은 《資治通鑑》에 대한 것으로 眉巖 柳希春은 《眉巖集》 〈經筵日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陽節 潘榮은 元나라 사람으로 그가 지은 總論이 매우 좋습니다. 다만 종종 크게 잘못된 부분이 있습니다. 漢나라 文帝는 諸侯王으로 들어와 大統을 잇게 되자, 남향하여 세 번 사양하고 서향하여 두 번 사양하였는 바, 공손하고 겸손한 행동이 진심에서 나왔는데, 潘榮은 도리어 ‘백성들에게 속임을 보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趙普, 蘇軾, 蘇轍, 張方平은 모두 小人인데 도리어 이들을 모두 大賢이라 하였으니, 이런 부분이 바로 잘못된 것입니다. 기타 논평한 것은 명백하고 정대하며, ‘성패로써 영웅을 논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은 더더욱 좋습니다.[陽節潘榮 元時人 總論亦甚好 但往往有大謬處 漢文帝以藩王入承大統 南向讓三 西向讓再 恭謙之擧 發於中心 而榮乃謂示民以詐 趙普蘇軾蘇轍張方平 皆小人 乃皆以爲大賢 此等處是謬也 其他所論 明白正大 而所論不可以成敗論英雄者 尤善]” 다만 여기에 蘇軾과 蘇轍을 소인이라 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東坡 蘇軾은 伊川 程頤와 당쟁관계에 있어 사이가 나빴으므로 伊川의 學派인 朱子는 東坡 형제를 나쁘게 평하였는 바, 眉巖 역시 朱子의 영향을 받아 이렇게 비하한 것으로 보인다.
역주2 : 말
역주3 : 달
역주4 [譯註]沈潛而不能剛克……高明而不能柔克 : 沈潛은 자품이 침착하고 겸손하여 中道에 미치지 못하는 자이고 剛克은 강함으로 다스리는 것이며, 高明은 자품이 높고 명랑하여 中道에 지나치는 자이고 柔克은 유순함으로 다스리는 것이다. 《書經》 〈洪範〉에 “沈潛한 자는 剛으로 다스리고 高明한 자는 柔로 다스린다.[沈潛剛克 高明柔克]”라고 하였다.
역주5 [譯註]西向讓三 南向讓再 : 서향은 주인의 자리이고 남향은 군주의 자리로, 文帝가 처음 황제로 추대되었을 때의 일을 말한 것이다.
역주6 [譯註]輪臺之詔 : 輪臺는 縣의 이름으로 西域의 땅이었는 바, 지금의 廣西省 庭州 서북 지역이라 한다. 武帝는 征和 4년에 그동안 사방을 정벌하여 백성들을 괴롭힌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조서를 내리기를 “관리들이 멀리 輪臺에서 屯田을 경작하고 亭障을 일으킬 것을 청하니, 이는 천하의 사람들을 수고롭게 하는 것이지 백성을 편안히 하는 방법이 아니다.” 하였다.
역주7 [譯註]十四而識上官桀之詐 : 上官桀이 그의 아들 安, 御史大夫 桑弘羊 등과 함께 昭帝의 형인 燕王 旦으로 하여금 霍光이 두 마음을 품고 있다는 내용으로 上書하게 하였다. 당시 昭帝는 14세의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 말이 誣告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리고는 霍光의 嫌疑를 풀어주고 上書한 자를 잡아들이라고 명하였다.
역주8 [譯註]用宮人私侍 以劫其父 : 隋나라 말기 李淵은 晉陽宮監으로 있었는데, 반란이 사방에서 일어나자 李淵의 둘째 아들인 世民은 부친에게 군대를 일으켜 독립할 것을 청하였으나 李淵은 듣지 않았다. 이에 世民은 李淵에게 毒酒를 먹여 몹시 취하게 한 다음 宮女를 들여보내어 모시고 자게 하였는 바, 이는 大逆罪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다음날 李淵은 자신이 宮女를 데리고 잔 것을 알고는 하는 수 없이 隋나라를 배반하고 군대를 일으켜 國號를 唐이라 하였다. 世民은 바로 太宗이다.
역주9 [譯註]納巢刺王妃而封子明……若非魏徵辰嬴之喩 : 巢刺王은 太宗 李世民의 아우인 元吉의 봉호이며 妃는 楊氏이다. 魏徵은 直諫을 잘한 명재상이며 辰嬴은 춘추시대 秦나라 穆公의 딸로 晉나라의 太子인 圉가 秦나라에 인질로 와 있자 穆公은 그녀를 圉에게 시집보냈는데, 圉가 도망하여 晉나라로 돌아가 즉위하니, 이가 바로 懷公이다. 辰嬴은 미처 남편을 따라가지 못하고 秦나라에 남아 있었는데, 懷公의 叔父인 重耳가 다시 秦나라에 오자, 穆公은 그에게 秦나라 여자 다섯 명을 시집보냈는 바, 辰嬴이 여기에 포함되니, 즉 조카며느리를 叔父에게 시집보낸 것이었다. 太宗이 元吉을 죽이고 그의 妃인 楊氏를 받아들여 아들 明을 낳고 曹王에 봉한 다음 后로 삼으려 하자, 魏徵이 辰嬴의 故事를 들어 간하였으므로 后로 세우려던 계책을 중지하였다. 뒤에 나오는 文德皇后는 太宗의 后인 長孫氏인데 일찍 죽었다.
역주10 [譯註]太眞已配壽王 中宗親爲點籌於韋后 : 太眞은 楊貴妃이며 壽王은 玄宗의 아들로, 玄宗은 결국 며느리를 皇后로 삼았다. 韋后는 中宗의 妃인데 武三思와 간통하여 함께 雙陸을 두면 中宗은 이들을 위해 주판을 놓아 주었다. 그 후 韋后는 中宗을 독살하고 정치에 간여하다가 中宗의 조카인 李隆基에게 토벌당하였으니, 隆基가 바로 玄宗이다.
역주11 [譯註]以呂易嬴……以牛易馬 : 秦나라는 원래 嬴氏였는데 莊襄王이 呂不韋의 아들을 임신한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여 政을 낳으니 이가 곧 始皇帝이며, 東晉을 세운 司馬睿는 皇子가 아니고 牛金의 아들이라 하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12 [譯註]楊勇 : 隋나라 文帝의 長子로 太子가 되었으나 아우인 廣에게 살해되었다. 결국 廣이 즉위하니, 바로 煬帝이다.
역주13 [譯註]江左 : 江東 지방으로 곧 南朝를 가리킨다.
역주14 : 무
역주15 凱還 : 개선
역주16 [譯註]九經 : 천하와 국가를 다스리는 아홉 가지의 법으로 곧 몸을 닦는 것[修身], 賢者를 높이는 것[尊賢], 친척을 친애하는 것[親親], 大臣을 존경하는 것[敬大臣], 신하들의 마음을 체찰하는 것[體群臣], 백성들을 사랑하는 것[子庶民], 工人들을 우대하는 것[來百工], 먼 곳의 사람을 회유하는 것[柔遠人], 제후들을 품어주는 것[懷諸侯]으로 《中庸》에 보인다.
역주17 : 상
역주18 [譯註]都兪吁咈之治 : 都와 兪는 상대방의 좋은 말을 칭찬하는 감탄사이고 吁와 咈은 약간 부정하는 뜻의 감탄사인데, 이 네 가지는 堯‧舜 시대에 군주와 신하가 기탄없이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書經》 〈虞書〉에 자세히 보인다.
역주19 [譯註]釀成靖康之禍 : 靖康은 宋나라 欽宗의 연호로, 靖康 2년 宋나라는 金나라의 침공을 받고 수도인 汴京이 함락되었으며 徽宗과 欽宗이 金나라로 잡혀가 죽었다. 이에 高宗이 江南으로 쫓겨가 南宋을 세웠다.
역주20 [譯註]濂洛群哲 : 濂溪 周敦頤와 洛陽에 살았던 明道 程顥, 伊川 程頤 등의 儒賢을 가리킨다.
역주21 [譯註]指以朋黨 斥爲僞學 : 北宋의 徽宗 때에 간신인 蔡京이 司馬光과 程伊川 등 名賢을 黨人이라고 지목하여 금고시켰으며, 南宋 寧宗 때에는 朱子(朱熹)와 그 제자들을 僞學黨이라고 배척하였다. 僞學은 거짓 학문이란 뜻으로 韓侂冑 등은 여색과 재물을 멀리하라는 朱子의 說을 거짓이라고 비판하였다.
역주22 [譯註]二帝三王 : 二帝는 唐의 堯帝와 虞의 舜帝이고 三王은 夏의 禹王, 殷의 湯王, 周의 文王과 武王을 이른다.
역주23 : 탁
역주24 [譯註]六事以自責 : 六事는 여섯 가지 잘못된 정사를 이른다. 商나라 초기에 천하에 크게 가뭄이 들자, 湯임금이 桑林의 들에서 기도할 때에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일로써 자책하였다. “정사에 절도가 없고 백성들을 지나치게 부역시켰는가? 어찌하여 비가 오지 않음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고. 궁궐을 크게 짓고 궁녀들의 청탁이 성행하였는가? 어찌하여 비가 오지 않음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고. 뇌물이 자행하고 참소하는 자들의 중상모략이 많은가? 어찌하여 비가 오지 않음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고.[政不節與 使民疾與 何以不雨至斯極也 宮室崇與 婦謁盛與 何以不雨至斯極也 苞苴行與 讒夫興與 何以不雨至斯極也]” 《荀子 大略》
역주25 [譯註]作無逸, 陳豳詩 : 無逸은 《書經》의 편명으로 군주에게 안일에 빠지지 말 것을 경계한 내용이며, 豳詩는 《詩經》의 〈豳風 七月〉을 가리키는 바, 농민들의 농경생활을 묘사한 詩로 周公이 이것을 지어 고생을 모르고 자란 成王을 경계한 것이라 한다.
역주26 [譯註]楚王英 敬信沙門之法 : 沙門은 부처 또는 佛敎를 가리킨다. 後漢 明帝 때에 불교가 처음 中國에 들어왔는데, 이때 楚王 劉英이 가장 신봉하였으나 결국 반역죄로 죽임을 당하였다.
역주27 [譯註]修齋誦經 : 修齋는 승려나 도사와 함께 재계하고 음식을 공양하는 것이며, 誦經은 불경이나 도경을 외움을 이른다.
역주28 [譯註]狄仁傑 : 唐나라 때의 명재상으로 則天武后가 즉위하여 國號를 周로 고쳤는데, 뒤에 武后를 설득하여 國統을 되찾고 다시 국호를 唐이라고 하였다.
역주29 [譯註]蘭臺石室 : 蘭臺는 漢나라 때 宮中에 있었던 藏書閣의 이름이며, 石室은 돌로 꾸민 견고한 집으로 책을 간직하는 書庫를 가리킨다.
역주30 [譯註]五族忠賢之禁不除 : 五族은 자기로부터 高祖에 이르기까지 5대에 이르는 친족을 가리키며, 忠賢은 당시 黨錮의 화에 걸린 李膺, 范滂 등을 가리킨다. 後漢의 桓帝와 靈帝 때에 충신과 현자인 이들을 朋黨한다고 지목하여 친족들을 禁錮시켰다가 黃巾賊이 일어나자, 袁紹의 주청으로 이 금고가 풀리게 되었다.
역주31 [譯註]三后 : 和帝의 어머니는 梁冀의 고모이고, 順帝의 后와 桓帝의 后는 모두 梁冀의 누이이다.
역주32 [譯註]孟德……而致之死 : 孟德은 曹操의 字이고 文若은 荀彧의 字이며 九錫은 큰 공이 있는 대신에게 내리는 아홉 가지 권위의 상징물로 車馬, 衣服, 樂則, 朱戶, 納陛, 虎賁, 弓矢, 鈇鉞, 鬱鬯酒를 이른다. 曹操가 獻帝로부터 九錫을 받으려 하자, 荀彧이 이를 만류하니, 曹操는 荀彧에게 빈 사발을 보내었다. 이에 荀彧은 死藥의 사발을 내린 것이라고 생각하여 독약을 마시고 자살하였다.
역주33 [譯註]子儀功蓋天下……而歸朝待罪 : 郭子儀는 安史의 亂을 평정하여 공로가 많았으나 늘 근신하였다. 아들 郭曖가 昇平公主에게 장가들었는데, 부부간에 금슬이 좋지 못하여 자주 말다툼을 하였다. 郭曖가 公主에게 “네가 너의 아버지를 믿고 天子가 되려 하느냐. 우리 아버지는 天子를 하찮게 여겨서 하지 않는 것이다.” 하니, 公主가 노하여 궁중에 들어가 天子인 代宗에게 이 사실을 일러바쳤다. 이에 郭子儀가 아들을 곤장쳐서 가두고는 궁중에 들어가 待罪하니, 代宗이 “아녀자의 말을 들을 것이 없다.” 하고 용서하였다.
역주34 [譯註]操之所以如鬼也……亮之所以爲龍也 : 東坡 蘇軾의 諸葛亮祭文에 “諸葛亮을 보면 龍과 같고 曹操를 보면 귀신과 같다.[視亮如龍 視操如鬼]”라고 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
역주35 [譯註]蘇武持漢節於匈奴 : 蘇武는 漢나라 武帝 때 사람으로, 匈奴에 사신 갔는데 양국의 관계가 악화되자 匈奴는 蘇武를 北海에 유치하고서 숫염소가 새끼를 치면 돌려보내겠다고 하였다. 匈奴는 항복하라고 회유하며 음식을 전혀 주지 않았으나 蘇武는 때마침 내린 눈을 털방석의 털과 함께 씹어 먹으며 늘 漢나라의 節(깃발)을 잡고 절개를 지키다가 昭帝 때에 匈奴와 화친하게 되자 마침내 19년 만에 漢나라로 돌아왔다. 《漢書 蘇武傳》
역주36 [譯註]眞卿 陳禍福於希烈 : 顔眞卿은 唐나라 玄宗 때 사람으로, 安祿山이 반란하여 郡邑이 모두 항복하였으나 顔眞卿은 平原太守로 있으면서 平原 지방을 온전히 지켰으며, 義兵을 모집해서 역적을 토벌하여 河朔 諸郡의 盟主로 추대되었다. 뒤에 李希烈이 반란을 일으키자 평소 顔眞卿을 싫어하던 盧杞는 顔眞卿을 제거할 목적으로 德宗에게 顔眞卿을 보내어 적을 회유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이에 顔眞卿은 禍福으로써 李希烈을 설득하였으나 李希烈은 오히려 그를 역적으로 몰아 목 졸라 죽였는 바, 이 사실이 《舊唐書》와 《新唐書》에 보인다.
역주37 [譯註]李陵衛律罪通于天 : 李陵과 衛律은 모두 漢나라 武帝 때 사람이다. 李陵이 군사 5천 명을 거느리고 나가 浚稽山에서 單于의 군대 수천 명을 擊殺하였으나 결국 후속 부대의 지원이 없어 匈奴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衛律은 匈奴에게 사신 갔다가 항복한 자로 單于가 衛律을 시켜 蘇武를 설득하게 하자, 衛律이 말하기를 “내가 前日에 漢나라를 저버리고 匈奴에게 귀순하였는데 다행히 큰 은혜를 입어서 王이란 칭호를 얻고 馬畜이 산에 가득하다. 내가 이와 같은 부귀를 누리고 있으니, 그대도 오늘 항복한다면 내일 그렇게 될 것이다.” 하니, 蘇武는 衛律을 크게 꾸짖었다. 《漢書 蘇武傳》
역주38 [譯註]邦昌劉豫 : 邦昌은 張邦昌으로 欽宗 靖康 元年 金나라에 의하여 楚의 황제로 추대되었다가 곧 망하였고, 劉豫 역시 高宗이 南宋을 세우자 金나라에 의하여 大齊皇帝로 추대되었으나 곧 망하였다.
역주39 [譯註]霍光擁立二君而子孫夷滅 : 霍光은 漢나라 昭帝가 어린 나이에 즉위하자 그를 보좌하여 나라를 안정시켰으며, 昭帝가 죽은 다음 昌邑王 劉賀가 즉위하여 酒色에 빠지자 그의 帝位를 박탈하고 戾太子의 손자를 옹립하여 宣帝로 즉위하게 하였으며, 그 공으로 增封되었다. 또한 황후 許氏를 독살하고 자신의 딸을 황후로 만듦으로써 일족의 권세를 강화하였으나 霍光이 죽은 후 宣帝는 그의 일족을 반역죄로 몰아 모두 죽여 버렸다. 霍光이 두 임금을 擁立했다고 한 것은 바로 昭帝와 宣帝를 가리킨다.
역주40 [譯註]韓琦……識用舍行藏之道 : 韓琦는 字가 稚圭이며 諡號가 忠獻으로 宋나라 仁宗‧英宗‧神宗을 차례로 섬긴 名宰相이다. 그는 仁宗‧英宗 연간에 四川의 飢民을 구제하고 西夏의 침입을 격퇴하는 업적을 세우고 宰相에 올랐으나, 神宗이 즉위하자 王安石의 靑苗法 실시를 맹렬히 반대하며 대립함으로써 관직에서 물러났다. 用舍는 등용되고 버려지는 것이며 行藏은 道를 행하고 은둔하는 것으로, 孔子의 “등용되면 道를 행하고 버려지면 은둔한다.[用之則行 舍之則藏]”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여기서 用舍와 行藏의 道를 알았다는 것은 仁宗‧英宗 연간에는 그의 정책이 시행되었지만 神宗 연간에는 王安石으로 인해 뜻을 펼 수 없었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41 [譯註]陶潛爲晉處士……心勞而日拙 : 陶潛은 字가 淵明 또는 元亮이며, 혹은 이름이 元亮이고 字가 淵明이라고도 하는데, 潛은 은둔한 뒤에 고친 이름이다. 晉나라 말기에 彭澤令이 되었으나 상급관서의 아전에게 허리를 굽히기 싫어하여 80일 만에 벼슬을 버리고 歸去來辭를 읊고 돌아왔으며, 뒤에 劉裕가 晉나라를 멸망하고 宋나라를 세우자 세상에 나오지 않고 은둔하니, 諡號가 靖節이다. 揚雄은 前漢 말기 사람으로 당세에 유명한 학자였으나 王莽이 정권을 찬탈하자 역적인 王莽에게 붙어 劇秦美新論을 지어 王莽을 찬양하였다. 이 때문에 朱子의 《資治通鑑綱目》에 陶淵明이 죽은 大文에는 “晉나라의 處士인 陶潛이 죽었다.”고 하였고, 揚雄이 죽은 大文에는 “王莽의 大夫인 揚雄이 죽었다.”고 하였다. 心逸日休와 心勞日拙은 《書經》 〈周官〉에 “德을 행하면 마음이 편안하여 날로 아름다워지고, 거짓을 행하면 마음이 수고로워 날로 졸렬해진다.[作德 心逸日休 作僞 心勞日拙]”라고 보인다.
역주42 [譯註]諸葛入寇 晉史自帝魏也 : 昭烈帝 劉備가 죽고 劉禪이 즉위하자 諸葛亮은 魏나라로 出征하였다. 이를 두고 陳壽의 《三國志》에는 ‘諸葛亮入寇’라고 썼으니, 이것은 魏나라에 正統을 준 것이다. 朱子의 《資治通鑑綱目》에는 蜀漢에 正統을 주어 諸葛亮이 군대를 일으킨 경우에는 “魏나라를 정벌했다.[伐魏]”고 고쳐 쓰고 魏나라 군대가 국경을 침범한 경우에는 “入寇”라고 고쳐 썼다.
역주43 [譯註]廢帝爲王……帝在房州 : 則天武后는 아들 中宗을 폐위하고 廬陵王으로 강등하여 房州에 유폐한 다음 國號를 周라 하였는데, 司馬光의 《資治通鑑》에는 이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여 則天武后의 연호를 그대로 사용하였으나 朱子의 《資治通鑑綱目》에는 周나라를 인정하지 아니하여 매 연도마다 황제가 房州에 있었다고 大書하였는 바, 이는 《春秋》에 魯나라 昭公이 쫓겨나 乾侯에 있을 적에 ‘公在乾侯’라고 기록한 것을 따른 것이다.
역주44 [譯註]此綱目之所以繼獲麟而作也 : 獲麟은 기린을 사로잡은 것으로 魯나라 哀公 14년에 季孫氏가 사냥을 나갔다가 기린을 잡아오자, 孔子가 이것을 보고 눈물을 흘린 다음 《春秋》를 지었는데, 隱公 元年부터 시작하여 이 해까지 242년간의 역사를 기록하였으므로 이때를 춘추시대라 칭하고 그 이후를 전국시대라 하였는 바, 朱子의 《資治通鑑綱目》이 《春秋》를 이었음을 말한 것이다.
역주45 [譯註]廣微魁天下於少年……必念千里生民之寄 : 廣微는 袁甫의 字이며 敬仲은 楊簡의 자이다. 袁甫는 소년 시절 장원급제하였는데, 楊簡에게 수학하였다. 袁甫가 宋나라 理宗 때에 靑田縣 尹이 되자, 楊簡은 그에게 경계하기를 “반드시 千里의 백성들을 맡은 책임을 생각하라.” 하였다. 袁甫는 이후 靑田先生으로 불리웠다.
역주46 [譯註]希元……富貴利達之心 : 希元은 眞德秀의 字이고 和叔은 袁燮의 자이며, 日者는 四柱를 보는 사람을 이른다. 眞德秀가 급제하기 전에 자신의 운명을 사주쟁이에게 물었는데, 袁燮은 眞德秀에게 부디 富貴와 利達의 마음을 잊으라고 경계하였다.
역주47 [譯註]循序及修省……實殊轍而同歸 : 循序는 차례를 따라 학문의 경지가 순차적으로 올라가는 것으로 生而知之의 聖人을 이르고, 修省은 몸을 닦고 살피는 것으로 學而知之의 賢人을 이른다. 生而知之는 배우지 않고 나면서부터 저절로 道理를 아는 것이며, 學而知之는 배워서 아는 것이다. 길이 다르나 돌아감이 같다는 것은 學而知之도 成功을 하게 되면 生而知之와 다를 것이 없음을 이르는데, 建安(眞德秀)과 靑田(袁甫)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역주48 [譯註]豈閱道之治其心乎 : 閱道는 趙抃의 字이다. 宋나라 神宗 때의 名臣으로 낮에 나갔다가 밤에 돌아오면 낮 동안에 행한 일을 焚香하고 하늘에 告由하였으니, 이는 자기 마음을 바르게 다스리기 위해서였다.
역주49 [譯註]因妻邪謀……乃鄕人之喩於利也 : 아내의 간사한 계책을 인하여 朱子를 훼방한 唐仲友를 가리킨 것이다. 朱子가 浙東提刑이 되었을 때에 知州인 唐仲友의 잘못을 탄핵하였는데, 승상인 王淮의 아내가 唐仲友와 外兄弟間이었으므로 王淮는 이 사실을 숨기고 아뢰지 않았다. 王淮가 파직된 다음 韓侂冑가 정승이 되었는데, 朱子가 上書하여 한탁주를 비난하니, 한탁주가 주자를 원망하였다. 이에 王淮의 아내는 한탁주와 모의하여 朱子를 僞學黨이라고 비난하였다.
역주50 [譯註]郤衣而凍死 實陳三之細事 : 陳三은 陳師道로 字가 無己인데, 형제간에 세 번째였으므로 陳三이라 칭한 것으로 보인다. 陳師道는 趙挺之와 同婿間이었는데, 陳師道는 趙挺之가 탐욕스럽다 하여 미워하였다. 하루는 陳師道가 徽宗을 따라 郊祀에 참여하였는데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니, 그의 아내가 趙挺之의 집에 가서 갖옷을 얻어다가 입으라고 하였으나 陳師道는 물리치고 입지 않다가 寒疾에 걸려 죽었다. 《宋史 陳師道傳》
역주51 [譯註]少事僞朝……陳情之謬 : 僞朝는 괴뢰정권이라는 뜻으로 蜀漢을 가리키며 陳情은 李密의 陳情表를 이른다. 李密은 蜀漢 때에 郎署 벼슬을 지냈는데 뒤에 晉나라 武帝가 천하를 통일하고 자신을 부르자, 陳情表를 올려 늙은 할머니 때문에 떠날 수 없는 사정을 말하면서 “신이 젊어서 僞朝를 섬겨 郎署의 벼슬을 지냈습니다.”라고 하였는 바, 蜀漢은 朱子의 《資治通鑑綱目》에 비추어 볼 때 正統을 이어받았으므로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한 것이다.
역주52 [譯註]求仁得仁……告墓之正 : 南宋의 정승인 文天祥이 安南에 사로잡혀 있을 때에 사람을 보내어 아버지인 革齋先生에게 올린 祭文에 “仁을 구하여 仁을 얻었으니, 또 어찌 후회하겠습니까.[求仁而得仁 又何怨]”라고 말하였다.

통감절요(1)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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