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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6)

통감절요(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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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6)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癸巳] 〈宋元嘉三十年이요 魏興安二年이라
二月 宋太子劭 弑其君義隆注+[頭註]劭巫蠱事覺이로되 赦不誅러니 至是하야 弑之이어늘
夏四月 武陵王駿 擧兵誅劭하고 武陵王駿 卽位하다
[史略 史評]史斷曰
文帝躬勤政事하야 侃侃忘疲하고 性存儉約하야 不事侈靡하고
加以在位日久하야 綱維備擧하고 條禁明密하야 四境晏然하고 戶口蕃息하야 政平訟理
惜乎 內無股肱之臣하고 外乏爪牙之士하야으로 不免死於讒間之口하고 而所與謀者 不過白面書生而已
而又不量其力하고 橫挑强胡하야 使師徒殲於河南하고 戎馬飮於江津하며 及其末路 狐疑不決하야 卒成子禍하니 豈非文有餘而武不足耶


계사(453) - 나라 원가元嘉 30년이고, 나라 흥안興安 2년이다. -
2월에 나라 태자太子 유소劉劭가 군주 유의륭劉義隆을 시해하였다.注+[頭註]나라 태자太子 유소劉劭무술巫術로 저주한 일이 발각되었으나 문제文帝가 용서해 주고 죽이지 않았는데, 이때에 이르러 문제文帝를 시해하였다.
여름 4월에 무릉왕武陵王 유준劉駿이 군대를 일으켜 유소劉劭를 죽이고, 무릉왕武陵王 유준劉駿이 즉위하였다.
[史略 사평史評]史斷에 말하였다.
문제文帝는 정사를 몸소 부지런히 힘써서 피로함을 잊었고 타고난 성품이 검약하여 사치함을 일삼지 않았다.
더구나 재위在位한 시일이 장구하여 기강紀綱이 골고루 거행되었으며, 법규와 금령이 분명하고 치밀해서 사방의 경내가 편안하고 호구戶口가 늘어나서 정사政事가 공평하고 송사訟事가 잘 다스려졌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안으로는 고굉股肱의 신하가 없고 밖으로는 조아爪牙(발톱이나 이빨)의 용사勇士가 없어서, 만리장성萬里長城과 같은 사람을 참소하고 이간질하는 말 때문에 죽게 함을 면치 못하였고 더불어 도모한 자는 백면서생白面書生에 불과할 뿐이었다.
또 자신의 능력을 헤아리지 않고 멋대로 강한 오랑캐에게 싸움을 걸었다가 군사들이 하남河南에서 섬멸당하고 오랑캐의 군마軍馬강진江津에서 물을 마시게 하였으며, 말년에 이르러서는 의심하고 결단하지 못해서 끝내 자식에게 시해당하는 를 이루었으니, 어찌 은 유여하였으나 가 부족해서가 아니겠는가.”


역주
역주1 萬里長城之人 : 萬里長城은 장수를 비유한다. 宋나라 장수 檀道濟는 前代의 조정에 공을 세워 위엄과 명성이 매우 중하자, 조정에서 그를 의심하고 두려워하여 참소하였다. 檀道濟가 체포당할 적에 분노하여 눈빛이 타오르는 횃불과 같았으며 관을 벗어 땅에 던지며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의 만리장성을 파괴하는구나.[乃壞汝萬里長城]” 하였는 바, 앞의 丙子年條(436)에 보인다.

통감절요(6)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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