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
에 上年二十九
에 乃生戾太子
注+[釋義]宣帝時에 追諡曰戾라 史記諡法解曰 不悔前過曰戾라하야 甚愛之
러니 及長
에 性
이 仁恕溫謹
이라
上이 嫌其才能少하야 不類己하니 皇后太子寵寖衰하야 常有不自安之意라
上이 覺之하고 謂大將軍靑曰 漢家庶事草創하고 加四夷侵陵中國하니
朕이 不變更制度면 後世無法이요 不出師征伐이면 天下不安이니
爲此者는 不得不勞民이어니와 若後世에 又如朕所爲면 是는 襲亡秦之迹也라
欲求守文之主
注+[頭註]文은 猶法也니 言遵守故法하고 不用武功이라인댄 安有賢於太子者乎
리오
聞皇后與太子有不安之意라하니 可以意曉之하라 大將軍이 頓首謝러라
太子每諫征伐四夷어든 上이 笑曰 吾當其勞하고 以逸遺汝 不亦可乎아하니라
上
이 用法嚴
하야 多任深刻吏
호되 太子寬厚
하야 多所平
注+[原註]反은 音翻이니 謂錄囚覆奏하야 使從輕也라[釋義] 平反은 謂反罪人辭하야 使從輕而出也라 毛氏曰 平反은 理正幽枉也라하니 雖得百姓心
이나 而用法大臣
이 皆不悅
이리라
是時
에 方士及諸神巫 多聚京師
하야 率皆左道
注+[頭註]挾異端邪道하야 以罔惑于人이라 地道尊右하야 右爲貴라 故로 漢書云 右賢左愚요 右貴左賤이라하니 正道爲右요 不正道爲左라로 惑衆變幻
하고
女巫往來宮中하야 敎美人度(渡)厄하야 每屋에 輒埋木人祭祀之러니
因妬忌恚罵
하야 更相告
注+[通鑑要解]訐은 面斥人過하고 攻發人陰私라하야 以爲祝(呪)
注+[通鑑要解]祝은 向神之辭요 詛는 說文에 以禍福之言으로 相要曰詛라上無道
라하니 上
이 怒
하야 所殺
이 數百人
이라
上心에 旣以爲疑러니 嘗晝寢할새 夢에 木人數千이 持杖欲擊上이어늘 上이 驚寤하니 因是體不平이라
見上年老
하고 恐晏駕
注+[頭註]天子當晨起하나니 方崩稱晏駕者는 臣子之心에 猶謂宮車晩出也라後
에 爲太子所誅
하야 因言上疾
注+[原註]祟는 音粹니 說文에 神禍也라在巫蠱
라하다
於是에 上이 以充爲使者하야 治巫蠱獄하니 充云 於太子宮에 得木人尤多하고 又有帛書하야 所言이 不道하니 當奏聞이라하다
江充이 持太子甚急이어늘 太子計不知所出이러니 從其少傅石德計하야 收捕充等하야
太子自臨斬充
할새 罵曰 趙虜
注+[釋義]王氏曰 初에 江充爲趙王客이라가 得罪亡詣闕하야 告趙太子陰事하야 太子坐廢라 故로 下文云 前亂乃國王父子라하니라아
太子出武庫兵하고 發長樂宮衛卒한대 長安이 擾亂하야 言太子反이라
上
이 怒甚
이러니 壺關三老茂
注+[釋義]壺關縣은 屬上黨이요 茂는 三老名也니 失其姓이라 按百官表에 秦法十里에 一亭一鄕이요 鄕置有秩三老一人하야 掌敎化하고 又擇鄕三老一人하야 爲縣三老하니라 上書曰 皇太子承萬世之業
하니 親則皇帝之宗子也
어늘
江充
은 閭閻之隷臣
注+[頭註]隷는 賤稱이니 人有十等하니 王臣公이요 公臣大夫요 大夫臣士요 士臣皂요 皂臣輿요 輿臣隷요 隷臣僚요 僚臣僕이요 僕臣臺라으로 銜至尊之命
하야 迫蹴太子
하고 造飾姦詐
하니
太子進不得見上하고 退困於亂臣하야 寃結無告하야 不忍忿忿之心하고 起而殺充하니
太子自
不得脫
注+[通鑑要解]衛太子亡之湖하야 匿泉鳩里할새 夜伏水中하고 晝匿人家라 主人家貧하야 常賣屨以給이러니 發覺하야 吏圍捕太子한대 太子入室하야 距戶自經하니 塚在泉鳩澗東이라하고 卽自經
하다
初
에 上爲太子
하야 立博望苑
注+[釋義]義取廣博觀望也라하고 使通賓客
하야 從其所好
라
古之明王이 敎養太子에 爲之擇方正敦良之士하야 以爲保傅師友하야 使朝夕與之遊處하야 左右前後 無非正人이요 出入起居 無非正道라
然猶有淫放邪僻而陷於禍敗者焉이어늘 今乃使太子로 自通賓客하야 從其所好하니 夫正直難親이요 諂諛易合이니 此固中人之常情이라
上
이 頗知太子惶恐無它(他)意
注+[頭註]言爲充所迫하야 無以自明而起兵殺江充이요 非有他意也라러니
會
에 高寢郞
注+[頭註]高廟衛寢之郞이라田千秋 上急變
하야 訟太子寃曰 子弄父兵
이면 罪當笞
니 天子之子 過誤殺人
이면 當何罪哉
잇가
上乃大感寤하여 召見千秋하고 謂曰 父子之間은 人所難言也어늘 公獨明其不然하니 此는 高廟神靈이 使公敎我로다
公
은 當遂爲吾輔佐
하라하고 立拜
注+[通鑑要解]當其立見而卽拜之니 言不移時也라千秋爲大鴻
注+[釋義]武帝置此名하니 鴻은 聲也요 臚는 傳也니 所以傳聲하야 贊導九賓이라하고 〈出田千秋本傳〉 而族滅江充家
하다
上
이 憐太子無辜
하야 乃作思子宮
하고 爲歸來望思之臺
注+[釋義]言己望而思之하야 庶幾太子之魂歸來也라於湖
하니 天下聞而悲之
러라
처음에
상上이 29세에 마침내
여태자戾太子를
注+[釋義]여태자戾太子는 선제宣帝 때에 추시追諡하기를 여戾라 하였다. 《사기史記》 〈시법해諡法解〉에 이르기를 “예전의 과오를 뉘우치지 않는 것을 여戾라 한다.” 하였다. 낳아서 몹시 사랑하였는데, 장성하자 성품이 인자하고 온화하고 신중하였다.
상上은 그의 재능이 부족하여 자신을 닮지 않음을 싫어하니, 황후皇后와 태자太子는 총애가 점점 쇠하여 항상 스스로 불안해 하는 뜻이 있었다.
상上이 이를 깨닫고 대장군 위청衛靑에게 이르기를 “한漢나라는 모든 일이 초창기이고 더구나 사방 오랑캐들이 중국을 침략하여 능멸하니,
짐이 제도를 변경하지 않으면 후세에 따를 법이 없을 것이요, 군대를 출동시켜 정벌하지 않으면 천하가 편안하지 못할 것이니,
짐이 이것을 하려면 백성을 수고롭게 하지 않을 수 없거니와 만약 후세에 또다시 짐이 한 것과 같이 한다면 이는 멸망한 진秦나라의 자취를 인습하는 것이다.
태자太子는 돈후하고 조용함을 좋아하니 반드시 천하를 편안하게 할 것이다.
문文(先代의
법法)을 지키는 군주를
注+[頭註]문文은 법法과 같으니, 옛 법을 준수하고 무공武功을 사용하지 않음을 말한다. 구하고자 한다면 어찌
태자太子보다 나은 자가 있겠는가.
내 들으니 황후皇后와 태자太子가 불안해 하는 뜻이 있다 하니, 이러한 뜻을 가지고 깨우쳐 주라.” 하였으니, 대장군 위청衛靑이 머리를 조아려 사례하였다.
태자太子가 매번 사방 오랑캐들을 정벌하는 것을 간하면 상上이 웃으며 말하기를 “내가 수고로움을 맡고 편안함을 너에게 물려주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하였다.
상上이 법을 엄하게 적용하여 각박한 관리를 많이 임용하였으나
태자太子는 성품이 너그럽고 후덕하여
평번平反하는
注+[原註]반反은 음이 번이니, 기록된 죄수들을 다시 검토하여 아뢰어서 가벼운 형벌을 따르게 함을 이른다. [釋義]평번平反은 죄인을 논고論告한 말을 뒤집어서 가벼운 벌을 따라 나오게 함을 이른다. 모씨毛氏가 말하였다. “평번平反은 억울함을 다스려 바로잡는 것이다.” 바가 많으니, 비록 백성들의 마음을 얻었으나 법을 쓰는
대신大臣들은 모두 좋아하지 않았다.
이때에
방사方士와 여러
신무神巫들이
경사京師에 많이 모여서 대부분 모두 바르지 못한
도道로
注+[頭註]이단異端과 간사한 도道를 잡고서 사람을 속이고 미혹시키는 것이다. 지도地道는 오른쪽을 높여서 오른쪽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에 《한서漢書》에 이르기를 “우右는 어질고 좌左는 어리석으며 우右는 귀하고 좌左는 천하다.” 하였으니, 바른 도道를 우도右道라 하고 바르지 못한 도道를 좌도左道라 한다. 무리들을 현혹하고
변환술變幻術을 부렸으며
여자 무당들이 궁중에 왕래하여 미인美人에게 도액度厄(액막이)하는 방법을 가르쳐서 지붕마다 목인木人(나무로 만든 사람)을 묻어 제사하게 하였는데,
질투와 시기로 인하여 성내고 꾸짖으며 번갈아 서로 고자질하기를
注+[通鑑要解]알訐은 면전에서 남의 잘못을 배척하고 남의 은밀한 일을 공격하여 드러내는 것이다. “
상上을 저주하여 무도하다.”
注+[通鑑要解]축祝은 신을 향하는 말이요, 저詛는 《설문해자說文解字》에 “화복禍福의 말을 가지고 서로 바라는 것을 저詛라 한다.” 하였다. 하니,
상上이 노하여 죽인 것이 수백 명이었다.
상上이 마음속으로 이미 〈누가 저주하는가〉 의심하고 있던 차에 일찍이 낮잠을 잘 적에 꿈에 목인木人 수천 명이 몽둥이를 가지고 상上을 공격하려 하였는데, 상上이 놀라 잠을 깨니, 이로 인하여 몸이 편치 못하였다.
강충江充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태자太子와 황후인 위씨衛氏가 틈이 있다고 여겼다.
상上이
연로年老함을 보고 승하한
注+[頭註]천자天子는 새벽에 일어나야 하니, 천자天子의 붕어崩御를 안가晏駕라고 칭하는 것은 신자臣子의 마음에 오히려 궁중의 수레가 늦게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함을 이른다. 뒤에
태자太子에게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하여, 인하여 말하기를 “
상上의 병환의 빌미가
注+[原註]수祟는 음이 수이니,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신神의 화禍이다.” 하였다. 무고巫蠱에 있다.” 하였다.
이에 상上이 강충江充을 사자使者로 삼아서 무고巫蠱의 옥사를 다스리게 하니, 강충江充이 말하기를 “태자궁太子宮에서 목인木人을 얻은 것이 특히 많으며, 또 비단에 적은 글이 있어 말한 내용이 무도無道하니, 마땅히 아뢰어 보고해야 한다.” 하였다.
강충江充이 태자를 협박하기를 매우 급하게 하자, 태자太子가 계책을 어떻게 내야 할 지 몰랐는데, 그 소부少傅인 석덕石德의 계책을 따라 강충江充 등을 체포하였다.
태자太子가 직접 임하여
강충江充을 목 벨 적에 꾸짖기를 “
조趙나라 오랑캐야!
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처음에 강충江充이 조왕趙王의 문객이 되었다가 죄를 얻고 도망하여 대궐에 나아가서 조태자趙太子가 음모한 일을 고발해서 태자가 이 일에 연좌되어 폐위되었다. 그러므로 아랫글에 이르기를 ‘전에 네 나라 국왕國王의 부자간父子間을 어지럽혔다.’고 한 것이다.”
전에 네 나라 국왕國王의 부자간父子間을 어지럽히고도 부족하였더냐?
마침내 또다시 우리 부자를 어지럽힌단 말이냐.” 하였다.
- 이상은 글이 똑같지 않은 부분이 많은데, 간혹 《한서漢書강충전江充傳》에 보임 -
태자太子가 무기고武器庫의 병기를 꺼내고 장락궁長樂宮의 호위하는 병졸을 징발하자, 장안長安이 소란하여 태자太子가 반란을 일으켰다고 말하였다.
황제가 감천궁甘泉宮에 있으면서 조서를 내려 반란한 자를 체포해서 목 베게 하니, 태자太子의 군대가 패하여 남쪽으로 도망하였다.
상上이 몹시 노여워하였는데,
호관壺關의
삼로三老인
무茂가
注+[釋義]호관현壺關縣은 상당군上黨郡에 속하고, 무茂는 삼로三老의 이름이니, 그 성姓은 전해지지 않는다. 《한서漢書》 〈백관표百官表〉에 진秦나라 법法은 10리里마다 1정亭에 1향鄕을 두고 향鄕마다 삼로三老 한 사람을 두어서 교화를 관장하였으며, 또 향鄕의 삼로三老 한 사람을 가려서 현縣의 삼로三老로 삼았다. 글을 올려 아뢰기를 “
황태자皇太子는
만세萬世의
기업基業을 계승하니 친함으로 말하면 황제의
종자宗子인데,
강충江充은
여염閭閻의 천한 신하로
注+[頭註]예隷는 천한 칭호이니, 사람은 열 등급이 있는 바, 왕王은 공公을 신하로 삼고, 공公은 대부大夫를 신하로 삼고, 대부大夫는 사士를 신하로 삼고, 사士는 조皂를 신하로 삼고, 조皂는 여輿를 신하로 삼고, 여輿는 예隷를 신하로 삼고, 예隷는 요僚를 신하로 삼고, 요僚는 복僕을 신하로 삼고, 복僕은 대臺를 신하로 삼는다. 지존至尊의 명령을 받들고서
태자太子를 압박하고 간사한 짓을 조작하여 꾸미니,
태자太子가 나아가서 상上을 뵐 수가 없고 물러나서는 난신亂臣에게 곤궁을 당하여 원통함이 맺혔으나 하소연할 곳이 없어서 분하고 분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일어나 강충江充을 죽인 것입니다.
자식이 아버지의 병기를 훔쳐 난難을 구원하여 스스로 화를 면하려고 하였을 뿐입니다.
신은 적이 생각하건대 태자가 간사한 마음이 없다고 여깁니다.” 하였다.
글을 아뢰자, 천자天子가 감동하여 깨달았으나 아직 드러내 놓고 사면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이에
태자太子는 스스로 죽음을 면할 수 없음을 헤아리고는
注+[通鑑要解]위태자衛太子가 도망하여 호수湖水에 이르러서 천구리泉鳩里에 숨을 적에 밤에는 물속에 숨고 낮에는 인가에 숨었다. 주인의 집이 가난하여 항상 신을 팔아 음식을 공급하였는데, 발각되어 관리들이 태자太子를 포위하고 잡아가려 하자, 태자太子가 방 안으로 들어가서 문에 스스로 목을 매어 죽으니, 무덤이 천구리泉鳩里 시내의 동쪽에 있다. 즉시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
예전에
상上이
태자太子를 위하여
박망원博望苑을
注+[釋義]박망원博望苑은 널리 관망觀望하는 뜻을 취한 것이다. 세우고
빈객賓客과 교통하게 하여 그 좋아하는 바를 따르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빈객들이 이단異端으로써 진언한 자가 많았다.
“옛날 현명한 왕이 태자太子를 가르치고 기를 적에 그를 위해 방정하고 돈후하고 어진 선비를 가려 보保와 부傅와 사師와 벗을 삼아서 조석으로 태자太子와 더불어 놀고 거처하게 하여, 좌우左右와 전후前後에 있는 자가 올바른 사람 아님이 없었고 출입하고 기거起居함이 올바른 도리 아님이 없었다.
그런데도 오히려 음탕하고 방자하고 사벽하여 화패禍敗에 빠지는 자가 있었는데, 지금 도리어 태자太子로 하여금 스스로 빈객賓客과 교통交通하여 그 좋아하는 바를 따르게 하였으니, 정직한 자는 친하기가 어렵고 아첨하는 자는 영합하기 쉬우니, 이는 진실로 보통 사람의 떳떳한 마음이다.
태자太子가 좋게 끝을 마치지 못한 것이 당연하다.”
관리와 백성들이 무고巫蠱의 일을 가지고 서로 고발한 것을 조사해 보니, 대부분 진실하지 않았다.
상上은
태자太子가 황공하여 일을 저지른 것이고 다른 뜻이 없었음을
注+[頭註]태자太子가 강충江充에게 핍박을 받아 스스로 변명할 수가 없으므로 군대를 일으켜 강충江充을 죽인 것이요, 딴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님을 말한 것이다. 자못 알고 있었는데,
마침
고침랑高寢郞注+[頭註]고묘高廟를 호위하는 낭郎이다. 전천추田千秋가
급변急變을 올려서
태자太子의 억울함을 호소하기를 “자식이 아버지의 병기를 가지고 희롱하면 죄가
태형笞刑에 해당하니,
천자天子의 아들이 과오로 사람을 죽였다면 무슨 죄에 해당합니까?” 하였다.
상上이 마침내 크게 감동하고 깨달아서 전천추田千秋를 불러 보고 이르기를 “부자간은 딴 사람이 말하기 어려운 것인데 공公이 유독 그렇지 않음을 밝혔으니, 이는 고묘高廟의 신령이 공公으로 하여금 나를 가르치게 한 것이다.
공公은 마침내 나의 보좌가 되어야 한다.” 하고는 즉시
注+[通鑑要解]서서 만나 보고는 즉시 임명한 것이니,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음을 말한 것이다. 전천추田千秋를 임명하여
대홍려大鴻臚로
注+[釋義]대홍려大鴻臚는 무제武帝가 이러한 이름의 관직을 두었으니, 홍鴻은 소리이고 여臚는 전함이니, 소리를 전하여 구빈九賓을 돕고 인도하는 것이다. 삼고, - 《
사기史記전천추전田千秋傳》에 나옴 -
강충江充의 집안은
삼족三族을 멸하였다.
상上은
태자太子가 아무 죄가 없음을 불쌍히 여겨 마침내
사자궁思子宮을 짓고
귀래망사대歸來望思臺를
注+[釋義]귀래망사대歸來望思臺는 자기가 바라보고 생각하여 행여 태자太子의 혼魂이 돌아오기를 바람을 말한 것이다. 호숫가에 지으니, 천하 사람들이 듣고 슬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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