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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1)

통감절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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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辰]五十八年이라
58년(갑진 B.C.257)
魏王 使晉鄙救趙러니 秦王 使謂魏曰 吾攻趙하야 旦暮 且下하리니 諸侯敢救者 必移兵先擊之하리라
위왕魏王진비晉鄙를 시켜 나라를 구원하게 하였는데, 진왕秦王이 사신을 보내어 나라에 이르기를 “내가 나라를 공격하여 조만간에 장차 항복시킬 것이니, 제후諸侯 중에 감히 구원하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군대를 옮겨 먼저 공격하겠다.” 하였다.
魏王하야 止晉鄙하고 又使將軍新垣衍으로 說趙王하야 欲共尊秦爲帝하야 以却其兵이러라
위왕魏王이 두려워하여 진비晉鄙를 중지시켜 땅의 성벽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또 장군 신원연新垣衍을 시켜 조왕趙王을 설득해서 함께 나라를 높여 황제로 삼아 나라의 군대를 퇴각하게 하고자 하였다.
魯仲連 聞之하고 往見衍曰 彼秦者 棄禮義而上首功之國注+[釋義]譙周曰 秦用商鞅計하야 置爵二十等하고 以戰獲首級者 計而受爵하니 天下謂之上首功之國이라하니 皆以惡之也 索隱云 秦法 斬首多爲上功하니 謂斬一人首 賜爵一級이라 故謂之首功之國이라
노중련魯仲連이 이 말을 듣고 가서 신원연新垣衍을 보고 말하기를 “저 나라는 예의禮義를 버리고 전공戰功을 으뜸으로 삼는 나라이다.注+[釋義]초주譙周가 말하였다. “나라가 상앙商鞅의 계책을 써서 20등급의 작위를 설치하고 전투에서 잡은 적의 수급首級을 계산하여 작위를 주자, 천하에서 이를 일러 ‘전공戰功을 으뜸으로 삼는 나라’라고 하였으니, 모두 이를 미워한 것이다.” 《사기색은史記索隱》에 말하였다. “나라 법에는 수급首級을 많이 벤 것을 상등의 으로 삼았으니, 적 한 명의 목을 베면 한 등급의 작위를 하사하였기 때문에 이를 일러 전공戰功을 으뜸으로 삼는 나라라고 한 것이다.”
彼卽肆然而爲帝 則連 有蹈東海而死耳언정 不願爲之民也하노라
저들이 만약 방자하게(건방지게) 황제가 된다면 나(連)는 동해東海에 뛰어들어 죽음이 있을지언정 그 백성이 되기를 원치 않노라.
今秦 萬乘之國也 梁亦萬乘之國也어늘 從而帝之 將行天子之禮하야 以號令於天下하고 變易諸侯之大臣하리니
지금 나라도 만승萬乘의 나라이고 (魏)나라 또한 만승萬乘의 나라인데, 따라서 저 나라를 황제로 삼으면 나라는 장차 천자天子를 행하여 천하에 호령하고 제후들의 대신을 바꾸어 둘 것이니,
彼將奪其所不肖而與其所賢하며 奪其所憎而與其所愛하면 梁王 安得晏然而已乎 起再拜曰
나라가 장차 불초不肖하다고 여기는 사람의 것을 빼앗아 어질다고 여기는 자에게 주고 미워하는 사람의 것을 빼앗아 사랑하는 자에게 준다면 양왕梁王이 어떻게 편안히 있을 뿐이겠는가?” 하니, 신원연新垣衍이 일어나 재배하고 말하였다.
吾乃今 知先生天下之士也로니 不敢復言帝秦矣리이다
“나는 지금에야 선생이 천하의 선비인 줄을 알았으니, 감히 다시는 나라를 황제로 삼자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였다.
○ 初 魏公子無忌 愛人下士注+[釋義] 謂禮遇之하야 致食客 三千人이라
처음에 나라 공자公子 무기無忌가 사람을 사랑하고 선비에게 몸을 낮추어注+[釋義]는 〈몸을 낮추어〉 예우함을 이른다. 식객食客초치招致한 것이 3천 명이었다.
魏有隱士하니 曰侯嬴注+[釋義]姓名也 音盈이라 索隱云 又音이라
나라에 은사隱士가 있으니 후영侯嬴注+[釋義]후영侯嬴은 성명이니, 은 음이 영이다. 《사기색은史記索隱》에 이르기를 “또 다른 음은 리이다.” 하였다.이라 하였다.
年七十 家貧하야 爲夷門監者注+[釋義]夷門 梁城之東門이라 按魏公子傳曰 夷門之抱關者也라하니라러니 公子置酒하고 大會賓客할새 坐定 公子從車騎虛左注+[釋義]師古曰 凡乘車 尊者居左하고 御者居中하고 又一人處車之右하야 以備傾側이라하니 虛左者 謂空左方一位以迎之 蓋尊之也하고 自迎侯生이라가 侯生至 引坐上坐(座)하니 賓客 皆驚이러라
나이 70에 집이 가난하여 이문夷門감자監者(문을 감독하는 사람)注+[釋義]이문夷門나라 도성의 동쪽 문이다. 살펴보건대 《사기史記》 〈위공자전魏公子傳〉에 “이문夷門을 지키는 자이다.” 하였다. 가 되었는데, 공자公子가 술자리를 베풀고 빈객을 크게 모을 적에 빈객이 자리를 정하자, 공자公子거기車騎를 수행시키되 왼쪽을 비워두고注+[釋義]안사고顔師古가 말하기를 “무릇 수레를 탈 적에 높은 자는 왼쪽에 타고, 수레를 모는 자는 가운데에 타고, 또 한 사람은 수레의 오른쪽에 타서 수레가 한쪽으로 기우는 것에 대비한다.”라고 하였으니, 왼쪽을 비워두었다는 것은 왼쪽 한 자리를 비워두어 맞이함을 이르니, 높이는 것이다. 직접 후생侯生을 맞이하러 갔다가 후생侯生이 이르자 인도하여 상좌上座에 앉히니, 빈객들이 모두 놀랐다.
及秦圍趙 趙平原君之夫人 公子無忌之姊也 平原君使者冠蓋相於魏하야 讓公子曰
나라가 나라를 포위하자, 나라 평원군平原君의 부인은 공자公子 무기無忌의 누님이었으므로 평원군平原君사자使者들의 관개冠蓋나라에 서로 이어져 공자公子를 꾸짖기를
所以自附於婚姻者 以公子之高義 能急人之困也러니
“내(勝)가 스스로 혼인婚姻하여 장가든 것은 공자公子의 높은 의리로 남의 곤궁함을 급히 구원해 줄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今邯鄲 旦暮降秦이어늘 而魏救不至라한대
그런데 이제 한단邯鄲이 조만간에 나라에게 항복하게 되었는데도 나라의 구원이 이르지 않는다.” 하였다.
公子請魏王勅晉鄙救趙하고 及賓客辯士 遊說注+[釋義]荀悅曰 飾辯辭, 設詐謀하야 馳逐於天下하야 以要時勢者 謂之遊說萬端호되 王終不聽이러라
공자公子가 여러 번 위왕魏王에게 진비晉鄙에게 명하여 나라를 구원하게 할 것을 청하고 빈객과 변사들도 만단萬端으로 설득하였으나注+[釋義]순열荀悅이 말하였다. “말을 잘 꾸미고 속이는 모략을 써서 천하를 놓고 각축角逐을 벌여 당시의 권세를 잡으려고 하는 것을 일러 유세라 한다.” 왕은 끝내 듣지 않았다.
公子乃屬賓客하야 約車騎百餘乘하야 欲赴鬪以死於趙할새 過見侯生한대
공자公子가 마침내 빈객들을 모으고 거기車騎 백여 을 모아 싸움에 달려가 나라에서 죽고자 할 적에 지나는 길에 후생侯生을 방문하니,
生曰 公子無他端하야 而欲赴秦軍하시니 如以肉投 何功之有리잇고
후생侯生이 말하기를 “공자公子가 별다른 방도가 없이 나라 군대에게 달려가 싸우고자 하시니, 이는 마치 굶주린 호랑이에게 고기를 던져주는 것과 같으니, 무슨 공(효과)이 있겠습니까?” 하였다.
公子再拜問計한대 生曰
공자公子가 재배하고 계책을 물으니, 후생侯生이 말하였다.
吾聞晉鄙兵符注+[釋義]慈湖王氏曰 符 信也 輔也 所以輔信이라 古者 以竹爲之 故字從竹이러니 後世詐僞蜂起하니 以竹易得之物이라 不足爲之防이라하야 於是 有銅鐵金銀으로 鑄爲物象而用之 漢文帝初 與郡國爲銅虎符竹使符 應劭曰 銅虎符 長六寸이니 第一至五 國家發兵遣使 至郡合符하야 符合이면 乃聽受之 竹使符 以竹箭五枚 長五寸이요 旁鐫篆書하고 亦一至五하니 出人徵發 用之 張晏曰 符以代古之珪璋하니 從簡易也 師古曰 與郡國爲符호되 各分一半하야 右留京師하고 左以與之하니 此漢制也 唐高祖入長安 罷隋竹使符하고 班銀菟符러니 其後 改爲銅魚木契하니 朝廷徵發 下敕書契魚어든 都督郡府參驗하야 皆合然後遣之하니라在王臥內하고 而如姬注+[釋義]其愛姬姓如氏最幸이라하니 力能竊之 且公子嘗爲報其父仇하니 如姬欲爲公子하야 死無所辭
“내가 들으니 진비晉鄙병부兵符注+[釋義]자호왕씨慈湖王氏가 말하였다. “부신符信이고 돕는 것이니, 을 돕는 것이다. 옛날에는 대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에 글자가 자를 따랐는데, 후세에 속임수가 벌떼처럼 일어나자, 대나무는 얻기가 쉬운 물건이라 위조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해서 이에 을 주조하여 물건의 모양을 만들어서 사용하였다. 나라 문제文帝 초년에 군국郡國에게 동호부銅虎符죽사부竹使符를 만들어 주었다. 응소應劭는 말하기를 ‘동호부銅虎符는 길이가 6이니 제1부터 제5까지는 국가에서 군대를 동원하기 위하여 사신을 보낼 적에 에 이르러 병부兵符를 맞춰보아 병부兵符가 맞으면 비로소 명을 따랐다. 죽사부竹使符죽전竹箭 5매로 길이가 5이고 옆에 전서篆書를 새기며 또한 1부터 5까지 있으니 사람을 내고 징발할 적에 이것을 썼다.’ 하였다. 장안張晏이 말하기를 ‘는 옛날의 규장珪璋을 대신한 것인데 간편함을 따른 것이다.’ 하였다. 안사고顔師古는 말하기를 ‘군국郡國에게 를 만들어 주되 각각 반씩을 나누어 오른쪽은 경사京師에 남겨두고 왼쪽은 군국郡國에게 주었으니, 이는 나라의 제도이다. 나라 고조高祖장안長安에 들어가자 나라의 죽사부竹使符를 없애고 은토부銀菟符를 나누어 주었는데 그 뒤에 동어銅魚목계木契를 만드니, 조정에서 징발할 적에 칙서敕書계어契魚를 내리면 도독都督군부郡府의 것과 맞춰보아 모두 합치된 뒤에야 보냈다.’ 하였다.” 가 왕의 침실 안에 있고, 여희如姬注+[釋義]여희如姬이 총애하는 여자의 여씨如氏인 것이다. 가 가장 총애를 받는다 하니, 힘이 병부兵符를 훔쳐낼 수 있으며, 또 공자公子가 일찍이 그녀 아비의 원수를 갚아 주었으니, 여희如姬공자公子를 위하고자 하여 죽는 것도 사양하지 않을 것입니다.
誠一開口 則得虎符하야 奪鄙兵하리니 北救趙하고 西却秦이면 五伯(霸)之功也니이다
진실로 한번 입을 열면 호부虎符(兵符)를 얻어 진비晉鄙의 군대를 빼앗을 수 있을 것이니, 북쪽으로 나라를 구원하고 서쪽으로 나라 군대를 퇴각시키면 이는 오패五霸의 공입니다.”
公子如其言하야 得兵符한대 侯生曰
공자公子가 그 말과 같이 하여 병부兵符를 얻으니, 후생侯生이 다음과 같이 당부하였다.
將在外에는 君令 有所不受하나니
“장군이 밖에 있을 적에는 임금의 명령도 받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有如鄙疑而復請之 則事危矣
만일 진비晉鄙가 의심하여 다시 청하면 일이 위태롭게 될 것입니다.
臣客朱亥 力士 可與俱라가 鄙不聽이어든 使擊之하소서
신의 문객門客주해朱亥는 힘이 센 장사이니, 함께 갔다가 진비晉鄙가 듣지 않거든 공격하게 하소서.”
公子至鄴하니 晉鄙合符하고 果疑之하야 擧手視公子曰 吾擧十萬之衆하야 屯於境上하니 國之重任이어늘 今單車來代之 何如哉
공자公子 땅에 이르자, 진비晉鄙병부兵符를 맞춰보고 과연 의심하여 손을 들어 공자公子에게 보이며 말하기를 “내가 10만의 군대를 동원하여 국경에 주둔하고 있으니 국가의 중대한 임무인데, 이제 단 한 대의 수레로 와서 이를 대신함은 어째서인가?” 하였다.
亥袖四十斤鐵라가 椎殺鄙하다
주해朱亥가 40근짜리 철퇴를 소매 속에 넣고 있다가 진비晉鄙를 쳐서 죽였다.
公子下令曰 父子俱在軍中者 父歸하고 兄弟俱在軍中者 兄歸하고 獨子無兄弟者 歸養하라하야 得選兵八萬人하야 將之而進하다
공자公子가 명령을 내리기를 “부자父子가 함께 군중軍中에 있는 자는 아버지가 돌아가고, 형제兄弟가 함께 군중軍中에 있는 자는 이 돌아가고, 독자獨子로 형제가 없는 자는 돌아가 부모를 봉양하라.” 하여 선발한 병사 8만 명을 얻어서 이들을 거느리고 전진하였다.
王齕 久圍邯鄲호되 不拔하고 諸侯來救하야 戰不利
왕흘王齕이 오랫동안 한단邯鄲을 포위하였으나 함락시키지 못하고 제후諸侯들이 와서 구원하여 여러 번 싸웠으나 승리하지 못하였다.
武安君 聞之하고 曰 王不聽吾計러니 今何如矣
무안군武安君이 이 말을 듣고 말하기를 “왕께서 내 계책을 듣지 않더니, 지금 어떠한가?” 하니,
秦王 聞之하고하야 免武安君하야 爲士伍注+[頭註]嘗有爵而有罪奪爵者 稱士伍라하니 言使役士卒之伍也하야 遷之陰密할새 至杜郵하야 使者賜之劍한대 武安君 遂自殺하니
진왕秦王이 이 말을 듣고 노하여 무안군武安君을 파면하여 사오士伍(卒兵)로 만들고注+[頭註]일찍이 벼슬이 있었는데 죄를 지어 벼슬을 빼앗긴 자를 사오士伍라 칭하니, 사역하는 사졸士卒의 대오를 말한다. 음밀陰密로 유배 보낼 적에, 두우杜郵라는 곳에 이르러 사자使者를 시켜 검을 하사하니, 무안군武安君이 마침내 자살하였다.
秦人 憐之러라
이에 나라 사람들이 불쌍히 여겼다.
魏公子無忌 大破秦師於邯鄲下하니 王齕 解邯鄲圍하고하다
나라 공자公子 무기無忌나라 군대를 한단邯鄲 아래에서 대파하니, 왕흘王齕한단邯鄲의 포위를 풀고 도망하였다.
公子無忌旣存趙 遂不敢歸魏하고 使將으로 하다 〈無忌 封爲信陵君〉
공자公子 무기無忌나라를 보존하고는 마침내 감히 나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장수를 시켜 그 군대를 거느리고 돌아가게 하였다. - 무기無忌신릉군信陵君으로 봉하였다. -
○ 秦太子之子異人注+[釋義]孝文王子也 後更名楚하니라 自趙逃歸秦하다
나라 태자太子의 아들 이인異人注+[釋義]이인異人효문왕孝文王의 아들이니, 뒤에 이름을 로 고쳤다. 나라에서 도망하여 나라로 돌아왔다.
太子妃曰華陽夫人이니 無子하고 夏姬生子異人하야 質於趙러니伐趙하니 趙不禮之하야 困不得意
태자太子화양부인華陽夫人인데 아들이 없었고, 하희夏姬가 아들 이인異人을 낳아 나라에 인질이 되었는데, 나라가 자주 나라를 정벌하니 나라가 그를 예우하지 아니하여 곤궁해서 뜻을 얻지 못하였다.
陽翟大注+[釋義]索隱曰 翟 音狄이니 俗又音宅이라 地理志 潁川陽翟縣이라 慈湖王氏曰 按戰國策 以不韋爲濮陽人이라하니라 正義云 陽翟 今河南府也 音古 往來賤買貴賣者也 呂不韋 適邯鄲이라가 見之하고 曰 此 奇貨可居注+[釋義]慈湖王氏曰 以異人으로 方財貨也 蓄積也 漢張湯傳 田信居物致富라한대 註云 謂居蓄賤物하야 以乘時射利也라하고之曰
양적陽翟의 큰 장사꾼注+[釋義]사기색은史記索隱》에 말하였다. “은 음이 적이니, 시속의 또 다른 음은 택(책)이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영천군潁川郡 양적현陽翟縣이다.’ 하였다.” 자호왕씨慈湖王氏가 말하였다. “살펴보건대 《전국책戰國策》에 ‘여불위呂不韋복양濮陽 사람이다.’ 하였다. 《사기정의史記正義》에 ‘양적陽翟은 지금의 하남부河南府이다.’ 하였다. 는 음이 고이니, 왕래하면서 싼 것을 사다가 비싸게 파는 자이다.” 여불위呂不韋한단邯鄲에 갔다가 이인異人을 보고 말하기를 “이는 기이한 보화이니 쌓아둘 만하다.”注+[釋義]자호왕씨慈湖王氏가 말하였다. “이인異人을 재화에 견준 것이다. 는 쌓아두는 것이다. 《한서漢書》 〈장탕전張湯傳〉에 ‘전신田信이 물건을 사서 쌓아두어 부자가 되었다.’ 하였는데, 에 이르기를 ‘싼 물건을 사서 쌓아두었다가 기회를 틈타 이익을 노리는 것이다.’ 하였다.” 하고는 마침내 설득하기를
秦王老矣 太子愛華陽夫人而無子하고 子之兄弟二十餘人 子居中하야 不甚見幸하니 太子卽位라도 子不得爭爲嗣矣리라
진왕秦王이 늙었고 태자太子화양부인華陽夫人을 사랑하나 아들이 없으며, 그대의 형제 20여 명 중에 그대는 중간에 있어 그리 총애받지는 못하니, 태자가 즉위하더라도 그대가 후사後嗣(후계자)가 됨을 다투지 못할 것이다.” 하였다.
異人曰 奈何 不韋曰 能立適(嫡)嗣者 獨華陽夫人耳 不韋雖貧이나 請以千金爲子西游하야 立子爲嗣호리라
이인異人이 “어찌하면 좋은가?” 하고 묻자, 여불위呂不韋가 말하기를 “적사嫡嗣를 세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화양부인華陽夫人뿐이니, 내(不韋)가 비록 가난하나 청컨대 천금을 가지고 그대를 위하여 서쪽으로 가서, 그대를 세워 후사로 삼게 하겠다.” 하니,
異人曰 必如君策인대 秦國 與子共之호리라
이인異人이 말하기를 “반드시 그대의 계책처럼 한다면 나라를 그대와 함께 하겠다.” 하였다.
不韋乃與五百金하야 令結賓客하고 復以五百金으로 買奇物玩好하야 自奉而西하야 見夫人姊而以獻於夫人하고
불위不韋가 마침내 5백 금을 이인異人에게 주어서 빈객賓客을 맺게(사귀게) 하고, 다시 5백 금을 가지고 기이한 물건과 완호품玩好品을 사서 스스로 받들고 서쪽으로 가서 부인의 언니를 만나 이것을 부인에게 바치게 하고,
因譽異人之賢호되 賓客 遍天下하고 日夜 泣思太子及夫人曰 異人也 以夫人爲天이라한대 夫人러라
인하여 이인異人의 어짊을 칭찬하되 〈이인異人은 교유하는〉 빈객이 온 천하에 두루 널리 퍼져 있으며 밤낮으로 울면서 태자와 부인을 생각하여 ‘이인異人은 부인을 하늘로 여긴다.’고 말한다 하니, 부인이 기뻐하였다.
不韋因使其姊曰 夫人 愛而無子하니 不以繁華時 蚤(早)自結於諸子中賢孝者하야 擧以爲適이라가
불위不韋가 인하여 그 언니를 시켜 부인을 설득하기를 “부인이 사랑을 받고 있으나 아들이 없으니, 번화할 때에 일찍 스스로 여러 아들 중에 어질고 효성스러운 자를 맺어서 그를 들어 적자嫡子로 삼지 않았다가
卽色衰愛弛 雖欲開一言이나 尙可得乎
만일 미모가 쇠하여 사랑이 풀어지면 비록 한마디 말을 하고자 한들 오히려 될 수 있겠습니까?
今異人賢而自知中子不得爲適하니 誠以此時拔之 異人 無國而有國이요 夫人 無子而有子也 則終身有寵於秦矣리이다
지금 이인異人이 어질지만 스스로 중자中子라서 적자嫡子가 될 수 없음을 알고 있으니, 진실로 이러한 때에 그를 적자嫡子로 뽑는다면 이인異人은 나라가 없다가 나라가 있게 되고 부인은 자식이 없다가 자식이 있게 되는 것이니, 종신토록 진왕秦王에게 총애가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夫人 以爲然하야 乘間言之러니 太子與夫人으로 又刻玉符하야 約以爲嗣하고 因請不韋하야 傅之하다
부인이 그 말을 옳게 여겨 틈을 타서 태자에게 말하니, 태자가 부인과 함께 또 옥부玉符를 새겨 후사後嗣로 삼을 것을 약속하고, 인하여 여불위呂不韋를 청하여 이인異人을 가르치게 하였다.
不韋娶邯鄲姬絶美者하야 與居하야 知其有娠이러니 異人 見而請之어늘
여불위呂不韋한단邯鄲의 여자로 절색絶色인 자를 취하여 함께 살아 그녀가 임신한 것을 알았는데, 이인異人이 그녀를 보고 청하였다.
不韋佯怒라가 旣而 獻之하야 期年而生子政注+[釋義]慈湖王氏曰 呂不韋傳 姬自匿有身(娠)하야 至大期時하야 生子政이라 徐廣曰 期 十二月也 索隱曰 譙周云 人十月生이어늘 此過二月이라 故云大期라하니 蓋當然也 旣云自匿有娠이면 則生政自當踰常期也 政後爲秦始皇帝하니라하니 異人 遂以爲夫人하다
여불위呂不韋는 거짓으로 노한 체하다가 이윽고 그녀를 바쳐 기년期年(1년) 만에 아들 을 낳으니,注+[釋義]자호왕씨慈湖王氏가 말하였다. “《사기史記》 〈여불위전呂不韋傳〉에 ‘여자가 스스로 임신한 사실을 숨기고 대기大期에 이르러 아들 을 낳았다.’ 하였는데, 서광徐廣이 말하기를 ‘는 12개월이다.’ 하였다. 《사기색은史記索隱》에 ‘초주譙周가 이르기를 「사람이 열 달 만에 태어나는데, 이는 두 달이 더 지난 것이다. 그러므로 대기大期라고 이른 것이다.」 하였으니, 마땅하다. 이미 스스로 임신한 사실을 숨겼다고 했으면 을 낳은 것은 마땅히 보통 기한을 넘어야 하는 것이다. 은 뒤에 진시황제秦始皇帝가 되었다.’ 하였다.” 이인異人이 마침내 그녀를 부인으로 삼았다.
邯鄲之圍 趙人 欲殺之어늘 不韋賂守者하야 得脫이라
한단邯鄲이 포위되자 나라 사람들이 이인異人을 죽이려고 하였는데, 여불위呂不韋가 지키는 자에게 뇌물을 주어 탈출할 수 있었다.
亡赴秦軍하야 遂歸하다 異人
이인異人이 도망하여 나라 군영으로 달려와서 마침내 본국으로 돌아왔다.
楚服而夫人注+[釋義]慈湖王氏曰 不韋以王后楚人이라 故使異人服楚製而說(悅)之하니라한대 夫人曰 吾 楚人也 當自子之注+[釋義]慈湖王氏曰 子 嗣也 我當自養之爲嗣也라하고 名曰楚注+[釋義]戰國策曰 本名異人이러니 王后說其狀하고 高其(智)[志]하야 曰 吾楚人也 而(自子)[子字]之라하고 乃變其名曰楚라하니라 改也라하다
이인異人나라 복식을 하고 부인을 뵈니,注+[釋義]자호왕씨慈湖王氏가 말하였다. “왕후王后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여불위呂不韋이인異人에게 나라 옷을 입게 하여 왕후王后를 기쁘게 한 것이다.” 부인이 말하기를 “나는 나라 사람이니, 마땅히 스스로 너를 길러 아들(後嗣)로 삼겠다.”注+[釋義]자호왕씨慈湖王氏가 말하였다. “는 후사이니, 내가 마땅히 스스로 길러 후사로 삼겠다고 한 것이다.” 하고는 이름을 고쳐 라고 하였다.注+[釋義]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에 이르기를 “본명이 이인異人이었는데 왕후王后가 그의 모습을 좋아하고 그의 뜻을 높이 여겨 말하기를 ‘나는 나라 사람이니 너를 아들로 삼아 기르겠다.’ 하고 마침내 그의 이름을 고쳐 라고 했다.” 하였다. 은 고침이다.
역주
역주1 [譯註]壁鄴 : 壁은 성벽에 군대를 주둔하는 것이며, 鄴 땅은 지금의 河南省 臨漳縣 40리 지점에 있으니, 趙나라 수도인 邯鄲과의 거리가 채 100리가 못 되었다.
역주2 : 리
역주3 : 촉
역주4 : 삭
역주5 : 뇌
역주6 : 퇴
역주7 : 삭
역주8 使 : 시
역주9 [譯註]魏王使晉鄙救趙……將其軍以還 : 赧王 58年條에는 57年條의 내용이 섞여 있는 바, 이 책에는 이 단락이 赧王 58年條에 나오지만 《資治通鑑》에는 57年條에 보인다.
역주10 : 삭
역주11 : 고
역주12 : 세
역주13 : 세
역주14 : 현
역주15 異人楚服而見夫人 : 楚나라는 衣服과 言語 등이 中國과 달랐는데, 華陽夫人이 楚나라 사람이므로 異人이 楚나라 복식을 하여 환심을 산 것이다.
역주16 :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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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갑진] 58년 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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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갑진] 58년 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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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갑진] 58년 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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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갑진] 58년 234

통감절요(1)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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