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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3)

통감절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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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寅]三十年이라
건무建武 30년(갑인 54)
車駕東巡하니 群臣 上言호되 卽位三十年이니 宜封禪泰山이라하야늘
거가車駕가 동쪽으로 순행하니, 여러 신하들이 상언上言하기를 “즉위하신 지가 30년이니, 마땅히 태산泰山봉선封禪해야 합니다.” 하였다.
詔曰 卽位三十年 百姓怨氣滿腹하니 吾誰欺
조서를 내리기를 “즉위한 지 30년에 백성들의 원기怨氣가 뱃속에 가득하니, 내 누구를 속이겠는가?
欺天乎
하늘을 속인단 말인가.
曾謂泰山 不如林放乎注+[釋義]王氏曰 禮 諸侯祭山川在其封內者 泰山 在魯地하니 魯公所當祭어늘 今季氏祭之 非禮也 孔子意謂 神不享非禮 林放 尙知問禮어든 誰道泰山之神 反不如林放耶아하야 欲誣而祭之 今光武擧此語者 謂泰山不可欺也
일찍이 태산泰山의 산신령이 임방林放만 못하단 말인가?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에 제후는 자기 봉내封內에 있는 산천山川에 제사한다. 태산泰山나라 땅에 있으니, 나라 군주가 마땅히 제사해야 하는데 지금 계씨季氏가 제사함은 가 아니다. 공자孔子의 뜻은 ‘태산泰山가 아닌 제사를 흠향하지 않는다. 임방林放도 오히려 를 물을 줄 알았는데, 누가 태산泰山이 도리어 임방林放만 못하다고 생각하여 속여서 제사 지내려고 하느냐.’고 하신 것이다. 이제 광무제光武帝가 이 말을 거론한 것은 태산泰山을 속일 수 없음을 이른 것이다.”
何事汚七十二代之編錄注+[釋義]封禪書 管仲曰 古者封泰山, 禪梁父者 七十二君이나 而夷吾所記者 十有二焉이니 昔無懷氏, 伏羲, 神農, 炎帝, 黃帝, 顓頊, 帝嚳, 堯, 舜, 禹, 湯, 成王 皆受命然後得封禪이라 正義曰 〈管〉仲所記 十二家 其六十家 無記錄이라 今光武言何事汚者 猶言何必汚涴也이리오
어찌 72편록編錄을 더럽힐 것이 있겠는가.注+[釋義]사기史記》 〈봉선서封禪書〉에 관중管仲이 말하기를 “옛날에 태산泰山하고 양보梁父한 자가 72명의 군주이다.” 하였다. 그런데 관이오管夷吾(管仲)가 기록한 것은 12명뿐이니, 옛날 무회씨無懷氏복희伏羲신농神農염제炎帝황제黃帝전욱顓頊제곡帝嚳우왕禹王탕왕湯王성왕成王이 모두 천명天命을 받은 뒤에 봉선封禪을 하였다. 《사기정의史記正義》에 이르기를 “관중管仲이 기록한 것은 12명이고 60명은 기록이 없다.” 하였다. 지금 광무제光武帝가 ‘하사오何事汚’라고 말한 것은 ‘하필 더럽힐 것이 있겠는가?’라고 말한 것과 같다. ” 하였다.
於是 群臣 不敢復言이러라
이에 여러 신하들이 감히 다시 말하지 못하였다.
〈出祭祀志〉
- 《후한서後漢書 제사지祭祀志》에 나옴 -
[新增]通鑑筆義曰
[新增]戴溪의 《통감필의通鑑筆義》에 말하였다.
封禪 其秦漢之侈心乎인저 雖聖人復起라도 不易斯言矣시리라
봉선封禪나라와 나라의 사치한(과시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일 것이니, 비록 성인聖人이 다시 나오신다 해도 이 말을 바꾸지 않으실 것이다.
人之好自侈大 何所不至哉
사람들이 스스로 과시하고 큰 체함을 좋아하는 것이 어찌 이르지 않는 바가 있겠는가.
極其侈大之意하야 施於人하야 無以加矣 而復飾說以誣上天하야 盛禮樂하고 侈儀衛하야 張大功德하야 升中喬嶽注+[附註] 上也 猶成也 謂巡狩至於方岳하야 燔柴祭天하고 告以諸侯之成功也 記禮器篇注 平也, 成也 巡狩而至方岳之下하야 升進此方諸侯治功平成之事하야 以告於天이라하고 告成于天하니
과시하고 큰 체하는 뜻을 지극히 하여 사람을 남에게 베풀어서 이보다 더할 수가 없고, 다시 말을 꾸며 상천上天을 속여서 예악禮樂을 성대하게 갖추고 의장儀仗호위護衛를 많이 하여 공덕功德을 과장해서 교악喬嶽에 성공을 올리고注+[附註]은 오름이고 과 같으니, 순수巡狩하여 방악方岳에 이르러서 나무섶을 태워 하늘에 제사하고 제후諸侯성공成功을 고함을 이른다. 《예기禮記》 〈예기편禮器篇에 “은 평함이고 이룸이니, 순수巡狩하여 방악方岳의 아래에 이르러서 해당 방위方位의 제후가 균평均平하게 다스린 공적功績의 일을 올려 하늘에 고하는 것이다.” 하였다. 하늘에 성공을 알렸다.
若此 可以明布天下하고 誇示群臣하며 跨越前王하고 傳誦來世라하니 此秦始皇之初心也
그리하여 이와 같이 하면 천하에 분명히 포고하고 군신들에게 과시하며 전왕前王을 뛰어넘고 내세來世전송傳誦될 수 있다고 여겼으니, 이는 진시황秦始皇의 처음 마음이었다.
後之人君 曷爲而效之
후세의 인군人君이 어찌 이것을 본받는단 말인가.
有言亡秦之政於太平之時 則聞者莫不惡之하고 又從而罪之어늘 獨乃何效秦始皇之侈하야 以爲帝王之盛事乎
태평할 때에 망한 나라의 정사를 말하는 자가 있으면 듣는 자가 미워하지 않음이 없고 또 따라서 죄주는데, 홀로 어찌하여 진시황秦始皇의 사치한 마음을 본받아서 제왕帝王의 성대한 일이라고 여긴단 말인가.
吾觀漢光武, 唐太宗 皆明智有餘로되 而執德不堅하야 始之所行 未嘗不善이나 終之所行 乃大不然하니 余是以 知侈心之難忘也
내가 살펴보건대 나라 광무제光武帝나라 태종太宗은 모두 밝음과 지혜가 유여有餘하였으나 을 잡아지킴이 견고하지 못해서 처음에 행한 바는 일찍이 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나 종말에 행한 바는 도리어 크게 옳지 못하였으니, 나는 이 때문에 사치한 마음을 잊기 어려움을 알게 되었다.
光武之言曰 吾誰欺
광무제光武帝의 말에 이르기를 ‘내 누구를 속이겠는가.
欺天乎인저
하늘을 속인단 말인가.
曾謂泰山不如林放乎아하니 其自知甚明이요 自處甚謙이라
일찍이 태산泰山의 산신령이 임방林放만 못하단 말인가?’라고 하였으니, 스스로 앎이 매우 분명하고 스스로 처함이 매우 겸손하였다.
이나 未嘗以封禪爲非是也러니 他日感會昌之符注+[頭註]見下丙辰年이라하야 欣然從之하야 固亦不待勸請矣
그러나 일찍이 봉선封禪을 나쁘다고 하지 않았는데, 후일에 회창부會昌符注+[頭註]회창부會昌符는 아래 광무제光武帝 중원원년中元元年 병진년조丙辰年條에 보인다. 에 감동되어서 흔연欣然히 이것을 따라 진실로 또한 권고하고 청원하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太宗之論 又異於光武矣
태종太宗의 말은 또 광무제光武帝와 다르다.
若曰 天下乂安하고 家給人足이면 雖不封禪이나 庸何傷乎
대략 이르기를 ‘천하가 다스려져 편안하고 집집마다 여유롭고 사람마다 풍족하면 비록 봉선封禪을 하지 않으나 어찌 해롭겠는가.
秦始皇封禪하고 而漢文帝不封禪하니 後世豈以文帝之賢 爲不及始皇耶아하더니
진시황秦始皇봉선封禪을 하였고 나라 문제文帝봉선封禪을 하지 않았는데 후세에 어찌 문제文帝의 어짊이 시황始皇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여기는가.’ 하였는데,
群臣猶固請不已한대 帝意欲從之 獨魏鄭公注+[頭註]魏徵封鄭公이라 以爲時不可耳
여러 신하들이 오히려 굳이 청하고 그치지 않자 황제가 마음속에 이것을 따르고자 하였으나 오직 위정공魏鄭公(魏徵)注+[頭註]위징魏徵정공鄭公에 봉하였다.만이 때가 불가不可하다고 말하였다.
貞觀之末 屢欲東封이라가 以事而止注+[頭註]三十七卷壬辰年 會大水하야 事寢이라하니 由此言之하면 太宗 非眞知封禪之不足爲 魏鄭公 非眞知封禪之不可爲 意有所欲爲로되 事有所未可行하야 待時而後動爾
정관貞觀 말년에 여러 번 동쪽으로 가서 봉선封禪을 하려다가 일 때문에 중지하였으니,注+[頭註]본서本書 37권 태종太宗 정관貞觀 6년 임진년조壬辰年條에 〈나라 태종太宗봉선封禪을 하려고 하였으나〉 큰 홍수를 만나 일이 중지되었다. 이것을 가지고 말한다면 태종太宗봉선封禪이 할 만한 일이 못 됨을 참으로 안 것이 아니고, 위정공魏鄭公봉선封禪이 불가하다는 것을 참으로 알았던 것이 아니요,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가 있었으나 일이 행할 수 없는 바가 있어서 때를 기다린 뒤에 움직이려고 했을 뿐이다.
夫王者 父事天하고 母事地하야 兆南郊而就陽注+[頭註]十六卷丙戌年 所謂立郊兆於城南者 與垗通하니 爲畤界하야 祭其中也 卽陽也하고 因吉土注+[頭註]通典曰 神州 謂王者所居吉土 五千里內地名이라 記禮器注 吉土王者所卜而建都之地라하니라以升中하며 巡狩而告祭柴望注+[附註] 燔柴以祭天이요 謂名山大川五岳四瀆 望而祭之也 燔柴 加牲其上而焚之 或云 但取烟上升하니 祭祀求諸陽之義也하야 對越上天 可也 燔燎於山下 則固已畢祭矣
왕자王者는 하늘을 아버지로 섬기고 땅을 어머니로 섬겨서 남쪽 교외郊外에서 에 나아가고注+[頭註]본서本書 16권 광무제光武帝 건무建武 2년 병술년조丙戌年條에 이른바 ‘교조郊兆의 남쪽에 세웠다.’는 것이다. 와 통하니, 제단祭壇의 경계를 만들고 그 가운데에서 제사 지내는 것이다. 은 곧 이다. 길한 땅注+[頭註]통전通典》에 이르기를 “신주神州왕자王者가 거처하는 길토吉土를 이르니 5천 리 안의 지명地名이다.” 하였다. 《예기禮記》 〈예기禮器에 “길토吉土왕자王者가 점쳐서 도읍을 세운 곳이다.” 하였다. 을 인하여 하늘에 제사하여 성공成功을 고하며, 순수巡狩하여 고하고 기우제祈雨祭를 지내고 나무를 불태워 제사를 지내서注+[附註]는 나무섶을 태워 하늘에 제사하는 것이고, 명산名山대천大川오악五岳사독四瀆을 바라보고 제사함을 이른다. 번시燔柴는 나무섶 위에 희생을 올려놓고 태우는 것이다. 혹자或者는 이르기를 “다만 연기가 올라가는 것만을 취하니, 제사 지낼 때에 에서 을 구하는 뜻이다.” 한다. 상천上天을 대하는 것이 가하고 산 아래에서 불태우면 진실로 이미 제사가 끝나는 것이다.
登封於山上하야 金泥玉檢之藏하야 秘而不得宣 果何爲說이리오
산 위에 올라가 봉선封禪하여 금니金泥로 써서 옥검玉檢에 보관하여 숨기고 드러내지 않는 것이 과연 무슨 말인가.
是亦不過秘祝之意耳 果何與於事天哉
이 또한 은밀히 축원하는 뜻에 지나지 않을 뿐이니, 이것이 과연 하늘을 섬기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勞民費財하야 上不足以格天而下無補於民이요 徒事外虛名하야 以驚世俗이니 此三代聖人所決不爲者
백성을 수고롭게 하고 재물을 허비하여 위로는 하늘을 감동시키지 못하고 아래로는 백성에게 도움됨이 없고 다만 밖으로 허명虛名을 일삼아서 세속을 놀라게 할 뿐이니, 이는 삼대三代성인聖人이 결코 하지 않은 것이다.
後之儒者 事至治之君하고 當太平之時인댄 其毋曰封禪云이면 則善矣니라
후세의 유자儒者들이 지극히 다스리는 군주를 섬기고 태평한 때를 당한다면 봉선封禪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역주
역주1 林放 : 林放은 魯나라 사람으로 孔子의 제자이다. 일찍이 禮의 근본에 대해 물었는데 공자께서 칭찬하셨는 바, 이 내용이 《論語》 〈八佾〉에 보인다.
역주2 以事而止 : 《十先生奧論註》를 살펴보면 魏徵이 때가 불가하다고 말한 것이 바로 홍수의 폐해 때문이었고, 또 ‘以事而止’ 아래에 《唐書》 〈禮樂志〉를 인용하여 貞觀 15년에 太宗이 封禪하기 위하여 동쪽으로 洛陽에 이르렀다가 때마침 災異로 알려진 彗星이 나타나자, 封禪 儀式을 거행하지 않았다 하였다.

통감절요(3)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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