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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7)

통감절요(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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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癸巳]七年이라
정관貞觀 7년(계사 633)
正月 更名하야七德舞注+[附註]蕭瑀以爲 破陣樂 形容未盡이라하야 請幷鳴劉武周, 薛仁杲, 竇建德, 王世充擒獲之狀하야 改爲七德舞하니 蓋取左傳之義 劉武周 見上卷破陣樂注 仁杲 稱秦帝하고 建德 稱夏王하고 王世充 稱鄭帝하니라 라하다
정월正月파진악破陳樂을 고쳐서 칠덕무七德舞라 이름하였다.注+[附註]소우蕭瑀가 “파진악破陣樂은 성상의 무공武功을 형용함에 미진한 곳이 있다.” 하여 유무주劉武周설인고薛仁杲두건덕竇建德왕세충王世充 등이 사로잡힌 정상情狀을 아울러 연주하고 이름을 고쳐 칠덕무七德舞라고 할 것을 청하였으니, 이는 《춘추좌전春秋左傳》에 “에는 일곱 가지 이 있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 유무주劉武周에 대해서는 해설이 상권上卷파진악破陣樂 에 보인다. 설인고薛仁杲진제秦帝라 칭하고 두건덕竇建德하왕夏王이라 칭하고 왕세충王世充정제鄭帝라 칭하였다.
癸巳 宴三品已上及州牧蠻夷酋長於玄武門할새 奏七德, 九功之舞하다
계사일癸巳日(15일)에 3품 이상의 관원과 주목州牧만이蠻夷의 추장들에게 현무문玄武門에서 연회를 베풀 적에 칠덕무七德舞구공무九功舞를 연주하였다.
魏徵 欲上偃武修文하야 每侍宴 見七德舞하면 輒俛(俯)首不視라가 見九功舞하면 則諦觀之注+[原註] 丁計反이니 審也 러라
위징魏徵무비武備를 그치고 문교文敎를 닦게 하고자 하여 을 모시고 잔치할 때마다 칠덕무七德舞를 보면 번번이 머리를 숙이고 보지 않고 구공무九功舞를 보면 자세히 살펴보았다.注+[原註]는 丁計反(체)이니,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다.
〈出本傳〉
- 《신당서新唐書 위징전魏徵傳》에 나옴 -
○ 去歲 帝親錄繫囚할새 見應死者하고 閔之하야 縱使歸家라가 期以來秋來就死하고 仍勅天下死囚하야 皆縱遣하야 至期來詣京師러니
지난해에 황제가 갇혀 있는 죄수를 직접 기록할 적에 마땅히 사형에 처해야 할 자들을 보고 가엾게 여겨 그들을 풀어주어 집에 돌아가게 했다가 다음해 가을에 와서 사형당하기로 약속하고는 인하여 명령을 내려 천하의 사형수를 다 석방하여 보냈다가 기한이 되면 경사京師로 오게 하였다.
至是九月 去歲所縱天下死囚凡三百九十人 無人督호되 皆如期自詣朝堂하고 無一人亡匿者어늘 皆赦之하다
이해 9월에 지난해 석방하여 보냈던 천하의 사형수 390명이 독려하고 인솔하는 사람이 없었으나 모두 기약과 같이 제 발로 조당朝堂에 나오고 한 사람도 도망하여 숨은 자가 없자, 이 이들을 모두 사면하였다.
歐陽公曰
구양공歐陽公이 말하였다.
信義 行於君子하고 而刑戮 施於小人하나니
신의信義군자君子에게 행해지고 형벌刑罰소인小人에게 베푼다.
刑入於死 乃罪大惡極이니 此又小人之尤者也 寧以義死언정 不苟幸生 此又君子之尤難者也
형벌이 사형에 처하는 데 해당하는 자는 죄가 크고 에 이른 것이니 이는 또 소인 중에 더욱 심한 자이고, 차라리 에 따라 죽을지언정 구차히 요행으로 살려고 하지 않음은 이는 또 군자君子로서도 더더욱 어려운 것이다.
太宗 錄大辟囚三百餘人하여 縱使還家라가 約其自歸以就死하니 以君子之難能으로 責小人之尤者以必能也
태종太宗이 사형수 3백여 명을 기록하여, 석방하여 집으로 돌아가게 하였다가 그들이 스스로 돌아와 죽음에 나아가도록 약속하였으니, 이는 군자君子도 하기 어려운 것을 소인 중에서도 특히 심한 자에게 반드시 해내라고 요구한 것이다.
其囚及期而卒自歸하여 無後者하니 君子之所難이요 而小人所易也
그런데 그 죄수들이 기일期日에 미쳐 마침내 스스로 돌아와서 뒤처진 자가 없었으니, 이는 군자君子는 하기 어려운 바이고 소인小人은 하기 쉬운 바이다.
此豈近於人情이리오
이 어찌 인정에 가깝겠는가.
太宗之爲此 所以求爲此名이니
태종太宗이 이런 일을 한 것은 이러한 은덕을 베풀었다는 아름다운 이름을 구하려고 한 것이다.
安知其縱之而去也 不意其必來以冀免하야 而縱之乎 又安知夫被縱而去也 不意其自歸而必獲免하여 所以復來乎
그러나 태종이 석방하여 보낼 때에 그들이 반드시 돌아와서 사면되기를 바랄 것이라고 생각하여 이 때문에 그들을 풀어준 것이 아님을 어찌 알겠으며, 또 죄수들이 석방되어 떠나갈 때에 스스로 돌아오면 반드시 사면함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이 때문에 다시 온 것이 아님을 어찌 알겠는가.
夫意其必來而縱之 上賊下之情也 意其必免而復來 下賊上之心也
반드시 그들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여 놓아주었다면 이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정을 해친 것이요, 반드시 돌아가면 사형을 사면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다시 왔다면 이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마음을 해친 것이다.
吾見其上下交相賊하여 以成此名也로니 烏有所謂信義者哉리오
나는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해쳐서 이러한 미명美名을 이룬 것을 보았을 뿐이니, 어디에 이른바 신의라는 것이 있는가.
不然이면 太宗施德於天下 於玆六年矣어늘
그렇지 않다면, 태종太宗이 천하에 은덕을 베푼 지가 이때에 6년이었다.
不能使小人으로 不爲極惡大罪하고 而一日之恩으로 能使之視死如歸而存信義라하면 又不通之論也니라
그런데 소인小人으로 하여금 극악한 대죄大罪를 짓지 않게 하지 못하고, 하루아침의 은혜로 죽음을 보기를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여기게 하여 신의信義를 보존하였다고 하면, 이는 또 통하지 않는 의론議論이다.
然則何爲而可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겠는가.
曰 縱之來歸어든 殺之無赦하고 而又縱之而又來 則可知其信義爾
사형수를 석방했다가 돌아오거든 죽이고 용서하지 말며, 그 후에 또다시 석방해도 다시 온다면 그 신의를 알 수 있다.
이나 必無之事也
그러나 이는 반드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若夫縱而來歸而赦之 可偶一爲之爾
석방했다가 돌아옴에 죄를 용서해주는 것으로 말하면 우연히 어쩌다 한 번 할 뿐이다.
若屢爲之 則殺人者皆不死하리니 是可以爲天下之常法乎
만일 여러 번 이렇게 한다면 사람을 죽인 자가 모두 죽지 않을 것이니, 이것이 천하天下의 떳떳한 법이 될 수 있겠는가.
不可爲常者 其聖人之法乎
떳떳한 법이 될 수 없는 것이 어찌 성현聖賢의 법이겠는가.
是以 堯, 舜, 三王之治 必本於人情하여 不立異以爲高하며 不逆情以干譽하니 니라
그러므로 삼왕三王정치政治는 반드시 인정人情에 근본하여 특이한 것을 내세워 높은 체하지 않고 인정人情을 미리 헤아려 명예를 구하지 않았으니, 이 때문일 것이다.”
十一月 以開府儀同三司長孫無忌 爲司空한대 無忌固辭曰 臣 忝預外戚注+[頭註]無忌 太宗后之兄이라 하니 恐天下謂陛下爲私하노이다
11월에 개부開府 의동삼사儀同三司 장손무기長孫無忌사공司空으로 삼자, 장손무기長孫無忌가 굳이 사양하며 아뢰기를 “신이 외람되이 외척外戚의 반열에 끼어 있으니,注+[頭註]장손무기長孫無忌태종太宗후비后妃장손황후長孫皇后의 오빠이다. 천하 사람들이 폐하더러 사정私情을 둔다고 할까 두렵습니다.” 하였다.
不許曰 吾爲官擇人하야 惟才是與하노니
이 허락하지 않으며 이르기를 “나는 관직官職을 위하여 사람을 선택해서 오직 재주 있는 자에게 준다.
苟或不才 雖親이나 不用하니 襄邑王神符注+[頭註]神通之弟 乃高祖之從兄이라 是也 如其有才 雖讐 不棄하니 魏徵等 是也
만일 재주가 없으면 비록 친척이라도 등용하지 않으니 양읍왕襄邑王 이신부李神符注+[頭註]이신부李神符이신통李神通의 아우이니, 바로 고조高祖종형從兄이다. 바로 그러한 경우이고, 만일 재주가 있으면 비록 원수지간이라도 버리지 않으니 위징魏徵 등이 바로 그러한 경우이다.
今日之擧 非私親也니라
오늘의 그대를 천거하여 사공司空으로 삼은 것은 친척을 편애한 것이 아니다.” 하였다.
〈出無忌傳〉
- 《신당서新唐書 장손무기전長孫無忌傳》에 나옴 -
○ 十二月 帝從上皇하야 置酒故漢未央宮할새 上皇 命突厥利可汗하야 起舞하고 又命南蠻酋長馮智戴注+[釋義]智戴 酋長馮盎之子名也 先盎遣入侍 亦侍宴이라 하야 詠詩하고
12월에 황제가 상황上皇을 따라 옛날 나라 미앙궁未央宮에서 주연을 베풀 적에, 상황上皇돌궐突厥힐리가한頡利可汗에게 명하여 일어나 춤을 추게 하고 또 남만南蠻추장酋長풍지대馮智戴에게 명하여注+[釋義]풍지대馮智戴추장酋長풍앙馮盎의 아들 이름이다. 예전에 풍앙馮盎풍지대馮智戴를 보내어 입시入侍하게 하였으므로 또한 황제를 모시고 잔치한 것이다. 를 읊게 하였다.
旣而 笑曰 自古未有로다
이윽고 웃으며 말하기를 “북쪽의 와 남쪽의 나라가 한 집안이 된 것은 예로부터 일찍이 있지 않았던 일이다.” 하였다.
奉觴上壽曰 今四夷入臣 皆陛下敎誨 非臣智力所及이니이다
이 술잔을 받들어 상황上皇을 위해 축수하며 이르기를 “지금 사방 오랑캐들이 들어와 신하 노릇 하는 것은 모두 폐하께서 가르친 결과이고, 신의 지혜와 힘으로 미칠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漢高祖 亦從太上皇하야 置酒此宮할새 妄自矜大注+[通鑑要解]漢高祖九年 置酒未央宮할새 奉玉巵爲太上皇壽曰 始大人 常以臣無賴하야 不能治産業하야 不如이라하더시니 今某之業所就 孰與仲多잇가하니라 하니 臣所不取也니이다
옛날 고조高祖 또한 태상황太上皇을 따라 이 에서 주연을 베풀 적에 망령되이 스스로 자랑하고 잘난 체하였으니,注+[通鑑要解] 고조高祖 9년(B.C. 198)에 미앙궁未央宮에서 주연을 베풀 적에 이 옥술잔을 들어 태상황太上皇을 위하여 축수하고 이르기를 “예전에 대인大人(부친)께서 항상 저더러 무뢰無賴하여 가산家産을 다스리지 못해서 의 힘(노력)만 못하다고 하시더니, 지금 제가 성취한 공업功業과 더불어 누가 낫습니까?” 하였다. 이는 신이 취하지 않는 바입니다.” 하였다.
上皇 大悅하고 殿上 皆呼萬歲러라
상황上皇이 크게 기뻐하고 대궐에 있던 신하들이 모두 만세를 불렀다.
○ 帝謂左庶子于志寧 右庶子杜正倫曰 朕年十八 猶在民間하야 民之疾苦情僞 無不知之로되 及居大位하야 區處世務 猶有差失이어든
황제가 좌서자左庶子 우지녕于志寧우서자右庶子 두정륜杜正倫에게 이르기를 “이 18세 때까지도 민간民間에 있어서 백성들의 고통과 진위眞僞를 알지 못하는 것이 없으나, 황제의 지위에 거하여 세상일을 조처함에 오히려 잘못하는 것이 있다.
況太子生長深宮하야 百姓艱難 耳目所未涉이니 能無驕逸乎
더구나 태자太子는 깊은 궁궐에서 생장生長하여 백성들의 어려움을 귀로 듣고 눈으로 보지 못하였으니, 교만함과 안일함이 없을 수 있겠는가.
卿等 不可不極諫이니라
들이 지극히 간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였다.
太子好嬉戲注+[通鑑要解]嬉亦戲也 하야 頗虧禮法이어늘 志寧 與右庶子孔穎達 數直諫하니 聞而嘉之하야 各賜金一斤, 帛五百匹하다
태자太子가 놀고 희롱하기를 좋아하여注+[通鑑要解] 역시 희롱한다는 뜻이다. 매우 예법禮法에 결함이 있자 우지녕于志寧우서자右庶子 공영달孔穎達과 함께 자주 직간하니, 이 이 말을 듣고 가상히 여겨 각각 황금 1근과 비단 500필을 하사하였다.
〈出政要〉
- 《정관정요貞觀政要》에 나옴 -
○ 上問魏徵曰 群臣 上書 可采 及召對 多失次 何也
위징魏徵에게 묻기를 “여러 신하들이 상서上書할 때에는 채택할 만하나 소대召對할 때에는 대부분 말의 차서를 잃음은 어째서인가?” 하니,
對曰 臣觀百司奏事하니 常數日思之라가 及至上前하야는 三分 不能道一이니이다
대답하기를 “신이 백관百官들이 일을 아뢰는 것을 보니, 항상 며칠 동안 생각하였다가 의 앞에 이르러서는 3분의 1도 말하지 못합니다.
況諫者 怫意觸忌하니 非陛下借之辭色이면 豈敢盡其情哉릿가
더구나 간쟁함은 임금의 뜻을 거스르고 꺼리는 일을 저촉하니, 폐하께서 그들에게 말씀과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지 않으신다면 어찌 감히 실정을 다 아뢸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由是 接群臣 辭色愈溫하다
이 이로 말미암아 여러 신하들을 접견할 때에 말씀과 얼굴빛을 더욱 온화하게 하였다.
嘗曰 煬帝 多猜忌하야 臨朝對群臣 多不語 朕則不然하야 與群臣相親하야 如一體라하더라
일찍이 말하기를 “ 양제煬帝는 시기심이 많아서 조정에 임하여 여러 신하를 대할 적에 말하지 않는 자가 많았으나 은 그렇지 않아서 신하들과 서로 친근하여 한 몸과 같다.” 하였다.
〈出諫錄〉
- 《위정공간록魏鄭公諫錄》에 나옴 -
역주
역주1 破陳樂 : 唐 太宗 때 만들어진 樂舞이다. 원래 이름은 秦王破陣樂으로, 太宗이 秦王으로 있을 때 劉武周를 평정한 공을 기리기 위하여 軍中에서 만든 樂曲인데, 太宗이 즉위한 뒤 呂才에게 音律을 맞추고 李百藥, 虞世南, 褚亮, 魏徵 등에게 歌辭를 만들도록 하여 완성한 악곡이다.
역주2 武有七德 : 《春秋左傳》 宣公 12년조에 “武라는 것은, 포악함을 금하고 전쟁을 그치게 하고 높은 자리를 보전하고 공업을 세우고 백성을 편안히 하고 무리를 화합하게 하고 재물을 풍성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夫武 禁暴 戢兵 保大 定功 安民 和衆 豐財者也]” 하였고, 그 註에 “이것을 武의 七德이라 한다.” 하였다.
역주3 : 솔
역주4 蓋謂此也 : ‘謂’는 ‘爲’를 가차하여 쓴 것으로 보인다. 만일 謂로 訓한다면 ‘不逆情以干譽라하니’로 懸吐해야 하며, 또 이 내용이 다른 글에 보여야 하는데, 보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古文眞寶》 등에는 이 句를 삭제하였다.
역주5 : 힐
역주6 胡, 越一家 : 胡는 突厥의 頡利可汗을, 越은 南蠻의 馮智戴를 가리킨다.
역주7 : 劉仲은 高祖의 형의 이름이다.

통감절요(7)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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