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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6)

통감절요(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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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6)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乙巳]〈陳至德三年이요 隋開皇五年이라
을사(585) - 나라 지덕至德 3년이고, 나라 개황開皇 5년이다. -
하야 詔天下하야 公私文翰 竝宜實錄하다
수주隋主문사文辭가 화려한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注+[頭註]삼조三祖나라 태조太祖 무제武帝(曹操), 고조高祖 문제文帝(曹丕), 열조烈祖 명제明帝(曹叡)이다. 천하에 명하여 공사公私문서文書를 모두 사실에 근거하여 기록하게 하였다.
治書侍御史李諤 亦以當時屬文 體尙輕薄이라하야 上書曰
치서시어사治書侍御史 이악李諤 또한 당시 사람들이 문장을 짓는 것이 경박하고 화려한 문체를 숭상한다 하여 상소하기를
魏之三祖注+[頭註]三祖 太祖武帝, 高祖文帝, 烈祖明帝 崇尙文詞하야 忽君人之大道하고 하니 下之從上하야 遂成風俗이라
나라의 세 황제가 문사文詞를 숭상하여 군주의 큰 도리를 소홀히 하고 시문詩文사부詞賦의 작은 기예를 좋아하니, 아랫사람들이 윗사람을 따라서 마침내 풍속을 이루었습니다.
遂江左, 齊, 梁 其敝彌甚하야 競一韻之奇하고 爭一字之巧하야
강좌江左(東晉)와 나라, 나라 때에는 이러한 문풍文風의 폐단이 더욱 심해져서 사람들이 한 운자韻字의 기이함을 다투고 한 글자의 교묘함을 다투었습니다.
連篇累牘 不出月露之形하고 積案盈箱 盡是風雲之狀이라
그리하여 수많은 글들이 달빛과 이슬을 형용하는 데서 벗어나지 못하였고, 책상에 가득한 글들이 모두 바람과 구름의 형상을 읊었습니다.
世俗 以此相高하고 朝廷 據玆擢士하야 祿利之路旣開 愛尙之情 愈篤이라
세속에서는 이로써 서로 높이고 조정에서는 이에 근거하여 선비들을 발탁해서 녹봉과 이익의 길이 열리게 되자 사람들이 화려한 것을 좋아하고 경박한 것을 숭상하는 정이 더욱 돈독해졌습니다.
於是 閭里童昏 注+[頭註] 音慣이니 束髮爲角하야 兩髮相竝이라 未窺六甲注+[頭註]黃帝命大撓하야 探五行之情하고 占斗綱所建하야 作甲子하고 以十干十二支相配하야 而成六甲이라 先製五言이라
그리하여 여리閭里의 어린 동자童子는 물론이고 왕공王公자제子弟注+[頭註]은 음이 관이니, 총관總丱은 머리를 땋아 묶어서 뿔 모양으로 만들어 두 갈래의 머리가 서로 나란한 것이다. 에 이르기까지 육갑六甲注+[頭註]황제黃帝대뇨大撓에게 명하여 오행五行의 실정을 탐구하고 북두칠성의 자루가 가리키는 바를 살펴서 갑자甲子를 만들고 십간十干십이지十二支를 서로 배합하여 육십갑자六十甲子를 완성하였다. 을 엿보기도 전에 먼저 오언시五言詩를 짓습니다.
文筆日繁하고 其政日亂하니 良由棄大聖之軌模하고 構無用以爲用也
그러므로 문한文翰이 날로 더욱 많아지고 정사가 날로 더욱 혼란해지니, 이는 진실로 대성인大聖人의 규범을 버리고 쓸데없는 글을 얽어서 쓰기 때문입니다.
今朝廷 雖有是詔 如聞外州遠縣 仍踵敝風하노이다 詔以諤所奏 頒示四方하다
지금 조정에서 비록 화려한 문장을 금하는 조령詔令을 내렸으나 신이 듣건대 변방의 먼 주현州縣에서는 여전히 옛날의 잘못된 풍속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고 합니다.” 하니, 조서를 내려 이악李諤이 아뢴 것을 사방에 반포하였다.
○ 是歲 陳主於光昭殿前 起臨春, 結綺, 望仙三閣하니 各高數十丈이요 連延數十間이라
○ 이해에 진주陳主광소전光昭殿 앞에 임춘각臨春閣결기각結綺閣망선각望仙閣 세 누각을 지으니, 각각 높이가 수십 길이고 연달아 이어진 것이 수십 칸이었다.
其牕牖注+[頭註]在屋曰牕이요 在墻曰牖, 壁帶注+[頭註]壁中橫木 露出如帶者 懸(縣)楣注+[頭註] 門上橫木이니 所以安戶扉者, 皆以沈, 檀注+[頭註]皆香木이라爲之하야 飾以金玉하고 間以珠翠注+[頭註] 珍珠 翡翠毛하며 外施珠簾하고 內有寶牀寶帳하니 其服玩瑰麗注+[頭註] 美也, 盛也 近古所未有
창호窓戶注+[頭註]지붕에 있는 것을 이라 하고, 담장에 있는 것을 라 한다. 벽대壁帶(壁에 가로지른 나무)注+[頭註]벽 속의 가로댄 나무가 허리띠처럼 노출된 것이다. 현미縣楣注+[頭註]는 문 위에 가로 댄 나무(上引枋)*) 이니, 문을 안정시키기 위한 것이다. ()와 난간을 모두 침향목沈香木자단목紫檀木注+[頭註]침향목沈香木자단목紫檀木은 모두 향나무이다. 으로 만들어서 금과 옥으로 꾸미고 진주와 비취새 깃털注+[頭註]는 진주이고 는 비취새 깃털이다. 을 섞었으며, 밖에는 주렴珠簾을 달고 안에는 보상寶牀보장寶帳을 두니, 복식服飾기완器玩의 화려함注+[頭註]는 아름답고, 성대한 것이다. 이 근고 이래로 일찍이 없었던 바였다.
每微風(漸)[暫]至 香聞數里러라
매양 미풍微風이 잠시 불어올 때마다 향기가 몇 리 밖까지 풍겼다.
其下 積石爲山하고 引水爲池하야 雜植奇花異卉注+[頭註] 百草總名이라하다
그 아래에 돌을 쌓아 가산假山을 만들고 물을 끌어다 못을 만들어서 진귀한 꽃과 풀注+[頭註]는 온갖 풀의 총칭이다. 을 섞어 심었다.
上每飮酒 使諸妃嬪及共賦詩하야 互相贈答하고 采其尤艶麗者하야 被以新聲하고 選宮女千餘人하야 習而歌之하되 分部迭進이라
이 매번 술을 마실 때마다 여러 비빈妃嬪여학사女學士들로 하여금 압객狎客과 함께 를 지어서 서로 화답하게 하고, 그중에 특히 요염하고 화려한 것을 골라서 새 곡조에 올리고 궁녀 천여 명을 선발하여 이것을 익혀서 노래하게 하되 몇 로 나누어서 번갈아 연주하게 하였다.
其曲 有玉樹後庭花, 臨春注+[頭註] 音洛이니 言臨春閣之樂也하니 大略皆美諸妃嬪之容色이라
악곡樂曲 중에 옥수후정화玉樹後庭花임춘락臨春樂注+[頭註]은 음이 락이니, 임춘락臨春樂임춘각臨春閣의 즐거움을 말한다. 등이 있으니, 대체로 여러 비빈妃嬪의 아름다운 용모와 자태를 찬미한 것이었다.
君臣酣歌하야 自夕達旦하야 以此爲常하니라
군주와 신하가 마음껏 술을 마시고 노래하여, 밤을 새워 새벽에 이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역주
역주1 隋主不喜辭華 : 《資治通鑑》에는 ‘隋主不喜辭華’ 이하부터 아래 ‘以此爲常’까지의 기사가 甲辰年條(584)에 보인다.
역주2 雕蟲之小藝 : 雕蟲은 벌레 모양이나 篆書를 조각하듯이 美詞麗句로 문장을 꾸미는 작은 재주라는 뜻으로, 이는 詩文과 詞賦 등의 文藝를 德行에 비하면 작은 재주에 불과함을 이른다.
역주3 貴遊 : 遊는 관직이 없는 것으로, 貴遊는 王公의 子弟를 가리킨다.
역주4 : 관
역주5 欄檻 : 처마 밑 계단 양쪽에 설치한 것을 欄이라 하고, 창과 문 사이에 설치한 것을 檻이라 하는 바, 모두 사람이 잡을 때 사용하는 것이다.
역주6 女學士 : 女官으로, 당시에 陳나라 後主는 文才가 있는 궁녀를 女學士로 임명하였다.
역주7 狎客 : 서로간에 예의를 차리지 않는 극히 친밀한 손님이라는 뜻으로, 陳나라 後主 때에 尙書僕射 江總은 지위가 재상이었는데도 정무를 돌보지 않고 날마다 都官尙書 孔範, 散騎常侍 王瑳 등 文士 10여 명과 함께 後主를 모시고 연회를 즐기면서 君臣間의 尊卑를 따지지 않으니, 사람들이 이들을 狎客이라 칭하였다.
역주8 : 락
역주9 上引枋 : 창이나 문틀 윗부분 벽의 하중을 받쳐 주는 것으로, 창문 위 또는 벽의 상부에 가로질러 댄다.

통감절요(6)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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