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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4)

통감절요(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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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庚午]初平元年이라
正月 關東州郡 皆起兵하야 以討董卓할새 推渤海太守袁紹하야 爲盟主하니 屯河內하고 曹操 屯酸棗注+[通鑑要解]退溪頭註 縣名이라하고 袁術 屯魯陽하니 衆各數萬이라
豪傑 多歸心袁紹者로되 鮑信 獨謂曹操曰 하나니撥亂反正 君也
苟非其人이면 雖强이나 必斃하리니 殆天之所啓乎인저
○ 董卓 以山東兵盛이라하야 欲遷都以避之하야 遂燒焚宮廟官府하고 劫遷天子하야 三月 車駕入長安하다
○ 長沙太守孫堅注+[原註] 其子權卽位하니 是爲吳 亦起兵討董卓이러니 至南陽하니 衆已數萬人이라
前到注+[頭註]前進也魯陽하야 與袁術合兵하니 由是得據南陽하고 表堅行破虜將軍하다
○ 幽州牧劉虞 務存寬政하고 勸督農桑하니 民悅年登하야 穀石三十注+[通鑑要解]穀一石 錢三十也이라
靑, 徐士庶避難歸虞者 百萬이러니 皆忘其遷徙焉이러라


초평初平 원년元年(경오 190)
정월正月관동關東주군州郡이 모두 군대를 일으켜서 동탁董卓을 토벌할 적에 발해태수渤海太守 원소袁紹를 추대하여 맹주盟主로 삼으니, 원소袁紹하내河內에 주둔하고 조조曹操산조현酸棗縣注+[通鑑要解]산조酸棗퇴계退溪두주頭註의 이름이라고 하였다. 에 주둔하고 원술袁術노양魯陽에 주둔하였는바, 병력이 각각 수만 명이었다.
호걸들이 원소袁紹에게 마음을 돌리는 자가 많았으나 포신鮑信은 홀로 조조曹操에게 이르기를 “큰 지략은 세상에 자주 나오지 않으니, 을 다스려서 본래의 바름으로 돌아오게 할 자는 이다.
만일 그럴 만한 사람이 아니면 비록 강하더라도 반드시 실패할 것이니, 은 아마도 하늘이 이 난세를 구원하기 위하여 보낸 사람일 것이다.” 하였다.
동탁董卓산동山東의 군사(토벌군)들이 강성하다 하여 천도遷都하여 피하고자 해서 마침내 궁궐과 사당祠堂관부官府를 불태우고 천자天子를 위협하여 옮겨서 3월에 거가車駕(天子)가 장안長安으로 들어갔다.
장사태수長沙太守 손견孫堅注+[原註]뒤에 그 아들 손권孫權이 즉위하니, 이것이 나라이다. 이 또한 군대를 일으켜 동탁董卓을 토벌하였는데 남양南陽에 이르니 병력이 이미 수만 명이었다.
노양魯陽으로 전진注+[頭註]전도前到는 전진함이다. 하여 원술袁術과 병력을 합하니, 원술袁術이 이로 말미암아 남양南陽을 점거하고 표문表文을 올려 손견孫堅을 천거하여 파로장군破虜將軍으로 삼았다.
유주목幽州牧 유우劉虞가 힘써 너그러운 정사를 보존하고 농사와 양잠을 권면하니, 백성들이 기뻐하고 연사年事가 풍년이 들어서 곡식이 한 섬에 30注+[通鑑要解]곡식이 한 섬에 30인 것이다. 이었다.
청주靑州서주徐州사서인士庶人들이 전란戰亂을 피하여 유우劉虞에게 귀부歸附한 자가 백만 명이었는데, 모두 타향살이하는 시름을 잊었다.


역주
역주1 大略不世出 : 《資治通鑑》 등에 大자가 夫자로 되어 있는 바, 뜻에는 큰 차이가 없으므로 原文에 따라 해석하였다.

통감절요(4)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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