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通鑑節要(4)

통감절요(4)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통감절요(4)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庚午]初平元年이라
초평初平 원년元年(경오 190)
正月 關東州郡 皆起兵하야 以討董卓할새 推渤海太守袁紹하야 爲盟主하니 屯河內하고 曹操 屯酸棗注+[通鑑要解]退溪頭註 縣名이라하고 袁術 屯魯陽하니 衆各數萬이라
정월正月관동關東주군州郡이 모두 군대를 일으켜서 동탁董卓을 토벌할 적에 발해태수渤海太守 원소袁紹를 추대하여 맹주盟主로 삼으니, 원소袁紹하내河內에 주둔하고 조조曹操산조현酸棗縣注+[通鑑要解]산조酸棗퇴계退溪두주頭註의 이름이라고 하였다. 에 주둔하고 원술袁術노양魯陽에 주둔하였는바, 병력이 각각 수만 명이었다.
豪傑 多歸心袁紹者로되 鮑信 獨謂曹操曰 하나니撥亂反正 君也
호걸들이 원소袁紹에게 마음을 돌리는 자가 많았으나 포신鮑信은 홀로 조조曹操에게 이르기를 “큰 지략은 세상에 자주 나오지 않으니, 을 다스려서 본래의 바름으로 돌아오게 할 자는 이다.
苟非其人이면 雖强이나 必斃하리니 殆天之所啓乎인저
만일 그럴 만한 사람이 아니면 비록 강하더라도 반드시 실패할 것이니, 은 아마도 하늘이 이 난세를 구원하기 위하여 보낸 사람일 것이다.” 하였다.
○ 董卓 以山東兵盛이라하야 欲遷都以避之하야 遂燒焚宮廟官府하고 劫遷天子하야 三月 車駕入長安하다
동탁董卓산동山東의 군사(토벌군)들이 강성하다 하여 천도遷都하여 피하고자 해서 마침내 궁궐과 사당祠堂관부官府를 불태우고 천자天子를 위협하여 옮겨서 3월에 거가車駕(天子)가 장안長安으로 들어갔다.
○ 長沙太守孫堅注+[原註] 其子權卽位하니 是爲吳 亦起兵討董卓이러니 至南陽하니 衆已數萬人이라
장사태수長沙太守 손견孫堅注+[原註]뒤에 그 아들 손권孫權이 즉위하니, 이것이 나라이다. 이 또한 군대를 일으켜 동탁董卓을 토벌하였는데 남양南陽에 이르니 병력이 이미 수만 명이었다.
前到注+[頭註]前進也魯陽하야 與袁術合兵하니 由是得據南陽하고 表堅行破虜將軍하다
노양魯陽으로 전진注+[頭註]전도前到는 전진함이다. 하여 원술袁術과 병력을 합하니, 원술袁術이 이로 말미암아 남양南陽을 점거하고 표문表文을 올려 손견孫堅을 천거하여 파로장군破虜將軍으로 삼았다.
○ 幽州牧劉虞 務存寬政하고 勸督農桑하니 民悅年登하야 穀石三十注+[通鑑要解]穀一石 錢三十也이라
유주목幽州牧 유우劉虞가 힘써 너그러운 정사를 보존하고 농사와 양잠을 권면하니, 백성들이 기뻐하고 연사年事가 풍년이 들어서 곡식이 한 섬에 30注+[通鑑要解]곡식이 한 섬에 30인 것이다. 이었다.
靑, 徐士庶避難歸虞者 百萬이러니 皆忘其遷徙焉이러라
청주靑州서주徐州사서인士庶人들이 전란戰亂을 피하여 유우劉虞에게 귀부歸附한 자가 백만 명이었는데, 모두 타향살이하는 시름을 잊었다.
역주
역주1 大略不世出 : 《資治通鑑》 등에 大자가 夫자로 되어 있는 바, 뜻에는 큰 차이가 없으므로 原文에 따라 해석하였다.

통감절요(4)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